‘신체 비율 폭망러’ 오명 쓴 7부 팬츠의 화려한 귀환
엊그제 버뮤다 팬츠에 열광하던 내가 오늘은 카프리 팬츠 쇼핑에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다. 하루 아침에 달라지는 트렌드가 그리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한 카프리 팬츠에 푹 빠진 내모습은 스스로 조금 생경할지도 모르겠다. 무릎을 덮는 7부 길이 덕분에 가뜩이나 친근한 비율의 종아리를 더욱 짧아 보이게 만드는 카프리 팬츠를 다시 눈 여겨 볼 줄이야.
제니퍼 애니스톤, 사라 제시카 파커 등 2000년대 초반 패션 트렌드를 휘어잡던 그녀들이 줄기차게 입을 때도 흔들리지 않던 나인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유는 꽤나 명확했다. 타이트한 실루엣의 카프리 팬츠는 이미 데일리웨어로 익숙해진 요가복 레깅스와 크게 다를 바 없었고, 큼직한 사이즈의 와이드 실루엣은 Y2K 트렌드의 영향으로 다시 입게 된 카고 팬츠에 적응해 이질감이 덜했던 것. 게다가 평소 즐겨 입는 테일러드 재킷이나 옥스퍼드 셔츠 등 클래식한 아이템과도 멋드러지게 어울리니 더이상 마다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가장 현실감 있게 다가온 스타일링은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의 룩이다. 그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볼륨감이 심히 부족하지만 브라렛만 제외한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옷차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날렵한 라인의 뮬 덕분에 가장 우려됐던 종아리 라인이 매끈해 보인다는 장점도 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Y2K 그 잡채인 데본 리 칼슨의 카프리 팬츠 소화능력은 두 말 하면 입 아플 정도. 크롭 티셔츠, 겨드랑이에 착 달라붙게 멘 미니 백, 올해 여름 너도나도 위시리스트에 올려 두었던 플랫폼 슬리퍼까지 모든 아이템의 조합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인생 스타일리스트를 만난 후로 패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한 제니퍼 로렌스의 카프리 팬츠 착장도 눈 여겨 볼 만 하다. 숨 쉬는 것 조차 불편해 보이는 타이트한 실루엣 대신 본인 체형에 편하게 잘 맞는 디자인을 골라 친구와 함께 거리를 활보하는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친근하지 않은가?
훌륭한 신체 비율을 가진 자라면 지지 하디드의 ‘친구 생파 룩’을 참고해 볼 것. 자크뮈스의 데님 카프리 팬츠를 선택한 그녀는 보통의 여자라면 쉽게 도전하지 못할 실루엣과 디테일로 점철된 아이템으로 보란듯이 무장해 화제가 됐다. 90년대 느낌 낭낭한 스톤 워싱도 모자라 종아리를 뒤덮는 아찔한(?) 길이, 게다가 여기에 납작한 플랫 슈즈를 신었다는 건 뭘 입어도 자신감이 넘친다는 얘기.
실현 가능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 가장 높은 별점을 주고 싶은 건 단연 벨라 하디드의 옷차림이다. 잠옷과 스포츠웨어 그 사이 어딘가를 유영하는 듯한 독특한 디테일의 셋업은 미국 비키니 브랜드 ‘프랭키 비키니’의 것. 탄탄한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짧은 길이의 마이크로 쇼츠를 입었다면 늘 그렇듯 익숙한 벨라의 모습에 시선을 돌렸겠지만 묘한 매력을 가진 7부 길이의 팬츠 때문에 어쩐지 ‘나도 한 번?’ 같은 용기가 절로 생길 정도다.
- 프리랜스 에디터
- 노경언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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