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가 2023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
지난 7월 5일, 발렌시아가 하우스의 역대 52번째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자 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의 3번째 오트 쿠튀르 무대가 열렸다. 장소는 하우스 설립자인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만든 파리 조지 5가에 있는 발렌시아가 살롱. 무려 50년간 중단된 발렌시아가의 쿠튀르 컬렉션을 부활시킨 장본인인 뎀나. 그는 현재의 오트 쿠튀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오프닝을 연 블랙 벨벳 드레스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시절의 작품을 오마주한 것이었다. 뎀나는 1964년부터 1968년까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모델이자 뮤즈로 활약한 현재 69세의 다니엘 슬라빅(Danielle Slavik)을 실제로 무대 위로 불러들였다. 진주 목걸이를 단 블랙 벨벳 드레스는 다니엘 슬라빅이 모델 시절부터 가장 좋아하는 발렌시아가 드레스였다. 클래식으로 문을 연 발렌시아가 컬렉션은 곧 특유의 파격으로 이어졌다. 더블 버튼 재킷과 드레스는 슈트를 거꾸로 뒤집어 입은 듯했고, 우아한 이브닝드레스는 거칠게 과장된 형태나 의외로 소재를 사용하며 흥미롭게 전복됐다. 강풍에 순간 얼어붙은 것처럼 보이는 뻣뻣한 형태의 울 코트와 스카프는 아티스트 루시앙 프로이트(Lucien Freud)에게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것인데, 제작에만 꼬박 2일이 소요됐다. 오트 쿠튀르 다운 각별함이다.
무엇보다 트롱뵈이유(trompe-l’œil) 즉 눈속임 기법으로 만든 데님 재킷과 팬츠, 페이크 퍼 코트 컬렉션은 쿠튀르에 대한 뎀나의 생각은 물론 쿠튀르의 현시대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야기했다. 발렌시아가에서 선보인 데님은 언뜻 보면 평범한 그저 데님인데 캔버스에 오일로 페인팅하는 기법을 통해 무려 두 달 반의 시간 동안 공들여 완성한 것이었다. 뎀나는 컬렉션이 끝난 후 백스테이지에서 이를 ‘캐주얼 쿠튀르’ 혹은 ‘보이지 않는 쿠튀르’라고 명명했다. 이는 최근의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와도 일맥상통하는데, 파리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경제적 불안이 해소되지 않은 현시점에서 걸어 다니는 광고판처럼 부를 과시할 때가 아니라는 일종의 영민한 선택이었다. 한편 그것을 착용하는 사람이나 가까운 지인만큼은 가치를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를테면, 피날레를 장식한 크롬 레진 볼가운 드레스는 CAD로 디자인하고 아연도금 레진으로 3D 프린팅 한 다음 크롬 처리하고 벨벳으로 안감을 넣은 것으로 제작에만 무려 10개월의 시간이 걸린 대작이다. 잔다르크에게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뎀나의 뮤즈인 미국 화가 엘리자 더글라스(Eliza Douglas)가 입고 런웨이를 걸었다.
‘캐주얼 쿠튀르’는 뎀나가 세 시즌 전에 발렌시아가 쿠튀르 컬렉션을 부활시킨 이후로 꾸준히 이어온 작업의 일환이다. 아쉽게도 숱한 논란을 자아냈던 사건은 완벽히 지워지지 않겠지만, 뎀나는 분명 우리가 상상만 하는 것들을 실제로 내어놓는 특별한 디자이너임에는 분명하다. 의도적 다운그레이드는 경쟁적으로 더 고급스러움을 지향하는 여타 럭셔리 브랜드와는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 프리랜스 에디터
- 명수진
- 영상
- Courtesy of Balencia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