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 2023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
파리 로댕 뮤지엄에서 열린 디올 쿠튀르 컬렉션. 런웨이의 벽면은 이탈리아의 예술가 마르타 로베르티(Marta Roberti)의 작품으로 장식됐다. 동물, 자연, 여성을 그린 고대 벽화 분위기의 그림은 이번 컬렉션의 영감이 과거로부터 시작했음을 짐작하게 했다. 무슈 디올은 ‘내가 만드는 옷은 고대 패션 아이디어와 연결되어 있다. 나는 명백한 단순함을 유지한다(My dresses are connected to the idea of the clothes of the antiquity. I keep an apparent simplicity)’는 말을 남긴 바 있으며,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이런 무슈 디올의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총 66벌의 컬렉션을 선보이며 극도로 절제된 우아함의 미학을 보여줬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쇼를 며칠 앞두고 고대 신화에서 여성을 이야기하는 철학자 아드리아나 카바레로(Adriana Cavarero)의 단편과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Simone Weil)의 책 이미지를 공유하면서 컬렉션 뒤에 숨겨진 영감을 은근히 드러내기도!
그리스 시대의 여성복인 페플로스(peplos), 튜닉(tunic)은 모던한 디자인으로 재해석됐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오트 쿠튀르의 전형성을 만들어내는 구조나 안감 등의 요소를 제거하는 일종의 ‘빼기 작업’을 통해 이번 컬렉션을 완성해갔다. 오프닝을 장식한 크림에 이어 카멜, 그레이, 골드, 실버, 블랙 등의 은은한 컬러 팔레트가 이어졌다. 장식적인 요소를 최대한 덜어내고 하이힐 대신 플랫슈즈를 매치해 현실의 여성이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옷임을 강조했다. 대리석 조각상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깍은 듯한 크림색 바재킷, 심플한 디자인의 칼럼 드레스(column dress) 등은 미니멀한 디올의 매력을 보여줬다. 한편 수공예적 레이스와 테슬, 매듭 장식 등은 오트 쿠튀르 다운 품격을 보여줬고, 크고 작은 주름 디테일이 곳곳에서 활약하며 우아함을 더했다. 은은한 컬러의 최고급 울과 실크, 정교한 자수를 더한 산퉁 실크, 진주 장식을 넣은 조젯 크레이프까지 섬세하게 적용된 소재의 활약도 돋보였다. 한편, 베스트, 팬츠, 볼레로 등의 아이템을 드레스와 자유롭게 레이어링 하여 심플함 속에서도 새로운 느낌을 줬다. 겉보기에는 드레시한 옷이지만 운동복을 입은 것처럼 편안하게 하기 위해 몇몇 아이템에는 스트레치가 가미된 브로케이드 원단을 사용한 것! 이 모든 것은 결국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로 귀결된다.
“나에게 쿠튀르는 천천히 작업할 수 있는 영역이다. 고객은 쿠튀르가 다른 종류의 옷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온다. 시대를 초월하는 옷이다.” 로마 태생의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신화적 상상력을 풀어놓으며 고대와 미래를 연결 짓고, 누구나 꿈꿀법한 패션 판타지를 멋진 현실로 펼쳐 놓았다.
- 프리랜스 에디터
- 명수진
- 영상
- Courtesy of Di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