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리치의 최연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해리스 리드

김민지

더 포괄적이고 수용적인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해리스 리드(Harris Reed)와 나눈 이야기.

아홉 살 해리스 리드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이가 더 들어서 이곳을 떠나면 나는 파리에서 살 거야. 그곳에서 나만의 옷을 만들 것이고, 그 일은 나를 자유롭게 해줄 거야. 그리고 프랑스 럭셔리 하우스의 디렉터가 될 테야. 그곳에서 나는 궁극적인 탈출구를 찾을 거야.” 니나리치 디렉터로 부임하며, 하우스 역사상 최연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해리스 리드는 그 꿈을 이루었을까. 더 포괄적이고 수용적인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해리스 리드(Harris Reed)와 나눈 이야기.

<W Korea> 니나리치 2023 F/W 컬렉션으로 하우스 데뷔를 치렀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나?

해리스 리드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지냈다. 나의 첫 니나리치 쇼의 마법과도 같은 작품들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에 매 순간이 정말 초현실적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그 황홀한 순간들을 즐겼다. 지금은 가을에 열리는 다음 시즌을 위해 하루하루를 아주 집중적으로 보내고 있다. 직물, 텍스처 그리고 다양한 제작물과 프린트의 색감을 깊이 탐구하며 지낸다. 첫 시즌을 하는 기분 그대로 흥분된 상태의 연속이다. 볼드하고, 강렬한 디자인을 통해 니나리치가 추구해온 디자인을 사람들에게 새롭게 상기시키고 싶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작업해야 할지 완전히 이해했다.

2018년 당신이 센트럴 세인트 마틴 재학생인 시절, 해리스 리드의 모자와 옷으로 화보를 촬영한 적이 있을 만큼 당신의 오랜 팬이다. 하우스 역사상 최연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기사를 봤는데, 소감이 어떤가?

(크게 웃으며) 완전 좋다! 니나리치의 CD라니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도 느낀다. 사람들의 기대치에 대한 압박이 있지만 나에게는 훌륭한 팀이 있고, 치료사와 같은 나의 사랑스러운 파트너가 있음에 감사하다. 늘 다짐하는 게 내 작업에 대해 확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설혹 실수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배우면 된다. 그리고 내 가족은 항상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르라고 말해줬다. 내가 늘 앞서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많은 압박감이 있다. 그럼에도 니나리치 하우스가 유동성(fluidity)과 포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를 지지하고 선택해준 것에 매우 감사하다. 하우스의 이러한 지지는 파리 내에서도 꽤 도전적인 이야기인 듯하다.

처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제의를 받고서 어떤 준비를 했는가?

니나리치가 나에게 접근한 방식은 꽤나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다른 CD 일을 하고 있었는데, 미팅에서 나에게 니나리치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매우 자연스럽게 물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농담처럼 들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모두 혼란스러움에 웃을 뿐이었다. 나는 ‘No’라고 답했다. 왜냐하면 니나리치의 보물창고 같은 아카이브에 이미 모든 것이 있고, 다만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창조적으로 전달하려는 것은 이미 거기에 있으며, 나는 다만 아카이브의 관점에서 그것을 더욱 향상시키고 보다 연관성이 있도록 만드는 것일 뿐이다.

디렉터 발표 이후 동료 디자이너 쳇 로(Chet Lo)가 아주 격하게 축하하는 것을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서 봤다. 당신 세대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또 서로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깊은 유대감이 인상 깊었다.

나는 나의 팀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 디자이너들의 지원과 지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동료이자 친구인 쳇 로는 정말 엄청나다. 나는 그가 그 모든 것을 어떻게 해내는지 절대 알 수 없을 거다. 그는 진짜 타고난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그의 지지와 사랑에 항상 감사하다.

NINA RICCI 2023 F/W

NINA RICCI 2023 F/W

NINA RICCI 2023 F/W

NINA RICCI 2023 F/W

NINA RICCI 2023 F/W

NINA RICCI 2023 F/W

NINA RICCI 2023 F/W

이번 컬렉션의 영감은 무엇이었나? 니나리치의 80~90년대 아카이브를 많이 참고한 것 같다.

니나리치의 풍부한 아카이브는 정말 훌륭한 참고서다. 다소 분류되지 않은 부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손실된 자료도 제법 있지만. 랑방, 입생로랑 그리고 피에르 발망의 이미지들 또한 레퍼런스의 손실로 그 원형이 잊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강렬하고 인상적인 80년대와 90년대의 숨겨진 아카이브를 찾아내 사람들이 잊고 있던 니나리치의 대담하고 힘이 넘치는 이미지를 다시 불러오고자 했다. 나는 Mr. Ricci가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회사에 들어와 연 첫 런웨이 쇼를 기억한다. 그 쇼는 매우 리치하고 환상적이었다. 나는 이러한 브랜드 코드를 현대적이고 대담한 방식으로 되살리고 싶었다.

독일 아티스트 지닌 브리토(Jeanine Brito)와 협업한 일러스트 프린트도 눈에 띈다. 그와의 작업은 어땠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닌 브리토를 발견했는데, 그는 정말 놀라운 아티스트다.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그들과 협업하는 건 너무나 매혹적이다. 나의 브랜드가 새롭게 주목받는 훌륭한 아티스트와 지속적으로 협업하는 플랫폼이기를 바란다. 지닌 브리토는 우리의 다양한 브랜드 상징을 시적인 방식으로 매우 아름답게 그려냈다.

니나리치는 명품 향수 브랜드로, 많은 소비자에게 패션 제품보다는 향기로 더 알려져 있기도 하다. 패션과 향수를 담당하는 새로운 총괄 디렉터 에드윈 보드슨(Edwin Bodson)과의 협력도 기대된다.

니나리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패션뿐 아니라 향수, 뷰티 영역까지 섭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브랜드 중 하나
이며, 이런 점에서 니나리치의 CD 제안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덕분에 나는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다. 사실 많은 브랜드가 패션 영역과 향수 영역의 상호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에드윈 보드슨과 우리 팀 전체는 니나리치가 추구해온 패션, 뷰티 사업과 향수 사업의 호응이 보다 긴밀하게 작동하도록 고민하고 있다. 실제로 향수 사업은 업계에서 아주 주목받는 영역이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가 30년 동안 조향사로 일하신 것도 내게는 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향기가 가지는 스토리텔링을 사랑하고, 그것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있다. 그렇기에 내가 니나리치의 패션 부문을 맡는 동안에는 향수 브랜드라는 니나리치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고 싶다.

니나리치와 당신의 브랜드인 해리스 리드는 어떤 차이점을 두고 접근하고, 또 디자인하나?

매우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니나리치는 현대적인 고급 기성복 브랜드로서, 예를 들면 팬츠와 블레이저, 정장, 블라우스를 만드는 디자인 하우스다. 하지만 해리스 리드는 고객 개개인에 초점을 맞추며 기성복 개념은 아니다. 예전의 알렉산더 맥퀸과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같이 모든 것이 아틀리에서 만들어지는 런던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다크하고 풍부한 표현이 가능한 공간이다. 내가 니나리치에 영입된 이후 메트갈라와 오스카 같은 행사에서 보여준 조각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을 펼칠 수 있게 해준 아트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은 나에게 엄청난 기회이자 경험이었다. 니나리치는 나에게 데일리 룩을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점점 판타지가 사라지는 패션계에서, 당신은 여전히 판타지를 갈망한다(자전거 바퀴만 한 챙이 달린 모자는 당신의 시그너처다). 하지만 럭셔리 하우스의 수장이 매출 걱정 없이 디자인만 하기는 쉽지 않다. 당신의 컬렉션은 거의 모든 룩이 쿠튀르를 방불케 하는데, 매출에 대한 고민은 없나?

패션은 사람들에게 환상과 비전을 파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에 접근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데님 피시테일 가운을 만든다고 하면, 쇼룸에서 그것과 비슷한 스커트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뷔스티에 톱을 만든다면 그것은 좀 더 상업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방가르드와 상업성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사람들은 “와! 이 옷 완전 미쳤네? 그런데 이런 건 누가 입어?”라고 말한다. 내 생각에 사람들은 오스카 시상식의 레드 카펫에서 이런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는 듯하다. 나는 우리 고객에게 오스카 시상식에서 입는 드레스와 같은 패브릭과, 같은 테크닉으로 만든 좀 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제공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NINA RICCI 2023 F/W

NINA RICCI 2023 F/W

NINA RICCI 2023 F/W

NINA RICCI 2023 F/W

당신의 스타일을 떠올리면, 전통적인 남성적 형태, 이를테면 이브 생 로랑의 ‘르 스모킹’ 턱시도가 떠오르는 재킷의 어깨 스타일과 20세기 중반 영국계 미국인 디자이너 찰스 제임스(Charles James)의 드레스가 떠오르는 겹겹이 장식된 조각 같은 치마를 합쳐놓은 것만 같다. 어릴 적 당신의 영웅은 누구였는가?

드레스 디자이너 찰스 제임스는 내가 특히 존경하는 디자이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있는 그의 작품과 그의 드레스 사진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하지만 내게 영감을 주는 롤모델은 항상 바뀌었다. 나는 이브 생 로랑, 알버 엘바즈, 칼 라거펠트 등 전설적인 디자이너들을 흠모해왔다. 그중 마크 제이콥스는 아주 오래 내게 영향을 미친 디자이너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대상은 항상 변한다.

당신이 입성해 하우스에 일으킨 변화 중 가장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을 확장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더 보편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과 감각이 사람들을 더욱 파리에 빠져들게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일까? 런웨이에는 다양한 체형의 모델이 등장했다.

파리를 뒤흔드는 것이 중요했다. 아름다움을 백인 시스젠더 프렌치걸처럼 보이는 것만이 아닌, 실제로 다른 인종, 다른 사이즈, 다른 성별을 통해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프렌치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드러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니나리치 쇼케이스는 진정성 있고 강력한 수단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NINA RICCI 2023 F/W

NINA RICCI 2023 F/W

NINA RICCI 2023 F/W

NINA RICCI 2023 F/W

당신의 인스타그램 상단에 고정시켜놓은 세 개의 포스팅이 인상적이다. 해리스 리드 모자를 착용한 비욘세의 매거진 커버, 그리고 니나리치 컬렉션을 착용한 해리 스타일스, 그리고 당신이 등장한 매거진 커버. 보다 포괄적이고 수용적인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당신의 최종 목표가 궁금하다.

나의 최종 목표는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생겼든, 자신이 누구든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이고 관대한 미적 인식이 더 많은 나라에서 수용되기를 바란다. 나는 패션이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끌어낼 아주 좋은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미적 기준과 미적 수용이 앞으로 더 많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보며, 이런 부분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하우스의 수장이 되었으니 무척 바쁠 텐데, 달라진 당신의 일상도 궁금하다.

그전보다 개인적인 시간을 누리기가 어려워진 건 사실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느끼는 듯하다.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 저녁을 먹거나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니나리치의 새로운 시대가 무척 기대된다. 다음 시즌에 대해 힌트를 준다면?

다음 시즌까지 주어진 6개월의 시간에서 절반이 지났고, 컬렉션을 완성할 시간이 절반가량 남은 시점이다. 우리는 패브리케이션 차원에서 아주 심도 있게 고민하고 있으며, 레이스와 시퀀스가 어떻게 보여질지를 두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나는 첫 번째 시즌에서는 대담하고 강조된 실루엣을 통해 나의 이름을 각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레드카펫에서 내 작품을 선보인 귀한 경험과 다음 시즌을 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에 감사하며, 더 특별한 것을 해보고자 한다. 현재 우리 팀은 데일리 룩을 어떻게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지 고민하는 동시에 아주 강한 실루엣과 좀 더 다양한 질감, 그리고 화려함을 입히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에디터
김민지
파리 통신원
이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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