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우리말답게, 공연을 공연답게 하는 가수, 장기하와의 인터뷰
삶에서도 음악에서도 군더더기를 줄여 정수만 남기고자 하는 장기하. 이제 그 이름이 쓰인 글자만 봐도 장기하식 리듬감이 느껴진다.
<W Korea> 바로 지난주까지 단독 공연을 6회 하셨죠. 4월에 나온 싱글 <해 / 할건지말건지>도 신나게 공연하고 싶어서 만든 음악이고요.
장기하 싱글 구상은 작년부터 해놨지만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간 건 올 초부터예요. 싱글 녹음하고, 밴드와 모여 연습하고, 싱글 발매 후 공연까지 무사히 마치니 5월이 됐네요.
작년에 나온 미니앨범 <공중부양>에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라는 곡이 있어요. 듣다 보니 ‘아니 좀 하면 어때서?’ 싶어 ‘해’를 만들었다고, 이번 싱글 소개글에 쓰여 있네요? 딴 건 몰라도 공연만큼은 무조건 ‘해’야 하죠?
무대에 있을 때 가장 강렬한 쾌감을 느끼곤 해요. 유튜브에 있는 공연 영상들은 결코 실제 공연의 분위기를 담진 못하죠. 제가 작년 겨울엔 공연을 쉬었어요. 딱 해가 바뀌면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자 마음먹었는데, 네, 했어요.
<공중부양> 타이틀곡인 ‘부럽지가 않어’는 뮤직비디오만 보고 있어도 재밌습니다. 뮤직비디오는 뮤직비디오고, 공연은 공연이죠. 작년엔 독특한 공연을 하셨더군요.
제 공연은 같은 성격이 하나도 없어요. 작년엔 저와 안무가 둘이서 공연했어요. 20분 정도 분량인 <공중부양> 수록곡을 가지고 70분짜리 공연을 했죠. 무용과 스탠딩 코미디 요소 등등 여러 가지를 섞어서. 그 공연만큼은 직접 보지 않은 이상 말로 전달되는 성격이 아니에요. 저, 안무가 윤대란, 디제이 디구루 셋이 대학원의 공연론 워크숍이라도 하듯이 준비했어요. ‘공연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논의부터 시작해서 재밌고 새로운 걸 만들어보려고 한 결과죠. 공연자로서 지평이 넓어진 기분이었어요.
이번 단독 공연은 오랜만에 풀밴드 편성으로 했습니다. 밴드 구성은 장기하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형태일까요?
그렇죠, 저는 2002년 이후부터 계속 밴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 상태가 익숙해요. 처음엔 드러머였고요. 연주자들이 함께 있어 든든하고, MR만 틀고 공연할 때보다 훨씬 재밌고. 물속에 들어간 물고기가 된 것처럼요.
배우들을 만나면 실은 내성적이고 낯가리는 성격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음악인도 무대 위아래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던데, 새삼스럽지만 참 신기하고 흥미로운 현상이에요.
뭐든 퍼포먼스를 하는 주인공이 되면 별다른 수가 없죠. 어떻게 보면 궁지에 몰렸다고도 할 수 있어요, 그 역할을 해내야만 하는 자리기 때문에. 애초 소질이 없는 사람이면 해당 직종을 계속하고 있지도 않을 거고요. 여러 사람 속에서 평범하게 있을 때와 내가 딱 주도해야 하는 무대의 주인공일 때는 다른 모습일 수밖에요.
2018년 11월 장기하와 얼굴들 마지막 앨범이 나온 후, 2022년 2월 ‘부럽지가 않어’가 실린 <공중부양>을 발표했습니다. 그 사이는 많은 고민과 모색의 시간이었겠죠.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나서, 저는 어느 방향으로든 뻗어갈 수 있는 상태가 됐어요. 그건 막연해졌다는 뜻이에요. 막연하게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은 ‘나라는 뮤지션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뭘까’였어요. 고민하는 과정에서 평소 듣지 않던 음악도 들어보고, 음악을 아예 안 듣는 시기도 가져보고, 또 산문집도 냈죠. 이런저런 시간과 생각을 거친 끝에, 그때까지 제가 활동해오면서 획득한 정체성은 두 가지가 있다고 정리했어요. 하나는 ‘우리 말을 우리말답게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점, 또 하나는 ‘밴드를 하는 사람’이라는 점.
4년의 시간을 아주 깔끔하고 간단하게 잘 정리해주시네요?
너무나 막연하고, 후련하기도 하고, 간단치가 않은 시간이었는데 요약하자니 그렇게 되네요. 그 두 가지 정체성을 놓고도 다시 고민을 해봤어요. 그 중에서 조금이라도 더 중요한 건 뭘까. ‘우리말에 대한 태도’더라고요. 그 점을 전보다 더, 완전히 강조한 음악을 만들어야겠다 싶었어요. 그 외 요소는 최소한으로만 갖춘 그런 음악.
그래서 <공중부양>과 ‘부럽지가 않어’가 탄생했군요.‘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가사를 쭉 읽으면 산문시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텍스트 자체의 임팩트가 크다기보다, 장기하라는 사람과 박자와 운율과 여러 뉘앙스 안에서 생명력이 생겨요.
사람들이 노래라고 받아들이는 최소한의 기준이 뭘까. 그 최소한의 기준만 충족한다면, 그 외 것들은 군더더기라고 볼 수도 있죠. <공중부양>을 만들면서 제가 한 고민은 결국 그런 식으로 줄이고 빼면서 핵심만 남기려는 거였어요. ‘이게 노래냐? 노래라고 인정 못하겠다’ 같은 댓글을 봤는데, 저는 그걸 보고 뿌듯했어요.
노래와 노래 아닌 것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다는 거네요. 그런데 뿌듯했다고요?
네. 보통의 노래를 두고서는 호불호를 떠나 이게 노래냐 아니냐 논쟁을 벌이진 않잖아요. 제 곡은 누군가에겐 노래로 들리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재밌는 노래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걸 봤어요. 경계에 근접했다는 것은 노래라는 것이 갖춰야 할 핵심만 남긴 거라고 볼 수 있죠. 노래가 밈으로 번지기도 하고, 지금까지 제 음악을 듣던 이들과는 다른 세대가 호응한 것 같아서 저도 기쁘고 흥미로웠어요.
우리말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자리 잡았나요?
제가 드러머로 있었던 밴드, 눈뜨고코베인에서부터 시작됐어요. 가수로서 저의 사상적 토대가 다 눈뜨고코베인에서 만들어진 거예요. 멤버들이 최고의 롤모델로 삼는 팀이 산울림이었죠. 우리말을 가지고 영어처럼 발음하는 것보다 산울림처럼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다루는 게 진짜 멋있는 거다, 저는 이런 주장을 멤버 형들을 통해 처음 접했어요. 산울림, 송골매, 신중현, 송창식 등등. 들어보니 과연 너무 멋졌어요.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는 드럼의 어떤 면에 끌렸죠?
따져보면 진짜 시작은 드럼보다 기타예요. 중학생 때 아버지가 통기타를 사주시면서 기타를 쳤어요. 드럼은 교회에서 배우기 시작했고요. 중고등부 찬양팀 드러머였거든요. 그런데 기타 치는 사람은 많아도 드럼 치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어? 내가 조금만 익히면 드러머가 될 수 있겠는데? 드럼 치면 내가 짱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드럼은 ‘희귀템’이라는 걸 알아챘군요.
청소년들이 악기를 접하기 가장 쉬운 장소가 교회예요. 한국에서 드럼의 가장 큰 소비자가 교회일걸요? 음악 신이 아니라. 새벽마다 예배 전에 형들과 모여 연습했는데, 또래 친구 중에서 저만 드럼을 칠 줄 알더라고요. 거기서 기타도 제가 제일 잘 쳤지만, 저 아니면 드럼채를 잡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드럼을 맡기도 했고요.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이 데뷔할 무렵까지는 인디 밴드나 ‘홍대 음악’이 꽤 존재했는데, 점점 밴드를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사회가 변하는 걸 생각하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해요. 밴드 음악은 오프라인을 전제로 하거든요. 두세 명 이상이 일단 모여야 연주를 하든 뭘 하든 해요. 그런데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모바일로,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변했잖아요. 모바일, 모빌리티는 기동성을 말하는데 밴드는 한마디로 기동성이 떨어지는 거죠. 기동성이 떨어지면 경쟁력도 떨어지고. 밴드 음악은 아무 데서나 쉽게 하기도 어려워요. 연주 소리도 워낙 크지, 그럼 합주실도 빌려야지.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혼자 하는 음악이 유리해졌어요. 그런 면에서 랩이 유리한 장르가 된 거 같아요. 마이크만 있으면 혼자서도 해 볼 수 있으니까. 사회학적으로 보면 그렇긴 한데···.
참, 사회학과 나오셨죠?(웃음) 록은 수십 년 전부터 유행해서 계보를 이어오는 음악이고, 그만큼 전통적인 무엇은 시대가 바뀌면 영향을 크게 받죠.
지금 밴드 음악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비주류이긴 해요.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저는 조만간 기가 막힌 밴드가 출현할 것 같아요. 정말 제대로 된 또라이 같은 누군가가 나타나서.
난세에서 영웅 난다는 건가요?
밴드가 정말 드물기 때문에 누구 하나 소질이 좀 있는 친구가 나타나면 잘될 거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어린 친구들은 K팝이나 힙합을 더 듣고 자라서, 자꾸 그쪽으로 관심이 생기는 거죠. 거긴 이미 레드 오션인데. 어린 세대 친구들을 만나면 제가 이런 얘길 해주면서 꿀팁도 주고 싶은데, 아쉽게도 10대 정도의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네요.
장기하가 질투심을 느낄 정도로 당신에게 없는 재능을 가진 부류가 있나요? ‘부럽지가 않어’에서 하나도 부럽지가 않다고 하긴 했습니다만.
누군가, 뭔가를 보고 순간적으로 살짝 반응이 있을 때는 많아요. 근데 뭐, 그 정도에서 그쳐요. 제가 정말 하나도 부럽지가 않아서 그런 노래를 쓴 건 아니에요. 써놓고서 계속 듣고 생각하다 보니까 ‘누구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겠다’ 싶은 생각이 점점 들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뭐 하나 싶고. 사람이 노래 따라가는 것 같기도 하고.
‘남들 부러워해서 뭐 하나, 나는 나인데’라고 좋게 단념할 줄 아는 건가요?
쓸데없는 부러움, 그런 것도 다 인생의 군더더기죠. 사람의 인생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해요. 행복에 도달하긴 쉽지 않다는 관점에서 보면요.
장기하의 그런 말들은 냉소에서 비롯된 거라기보다 자기 암시에 가까운 듯해요. 말이나 글, 스스로 되뇌는 문구들이 실제로 자신에게 통하는 경험을 좀 해봤나요?
네. 나는 왜 자꾸 쓸데없는 걸 신경 쓰고 그 때문에 고통받을까. 어릴 때부터 늘 고민이었어요. 별 쓸모 없는 일들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마음이 조금씩 힘들까. 번뇌죠, 번뇌.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쓸 때, 진짜로 다 상관이 없어서 그런 책을 쓴 게 아니에요.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에 썼어요. 예를 들면 그런 제목처럼, 내가 그렇다고 나도 믿는 거예요.
당신에겐 느리고 초연해 보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별 욕망 없이, 무리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요.
아니, 있어야 할 욕망은 다 있어요. 인간에게 기본적인 욕구들요. 그리고 인정욕도 좀 있는 것 같아
요. 꼭 많은 사람에게 음악을 인정받는 게 아니어도, 질이든 양이든 어떤 형태로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물론 남의 인정만 중요한 건 아니에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중요하다는 나의 인정과 남의 인정 둘 다 충족되면 좋겠죠. 반반 정도 비율로?
장기하의 약점은 뭐죠?
좀 둔해요. 내가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살다가 뒤늦게 뭔가가 오곤 하더라고요. 그 점을 이젠 저도 잘 알기 때문에 경계하려고 합니다. 제대로, 충분히 쉬려고 노력해요. 휴식은 정말 필요하고 중요해요.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에서 그랬더군요. 밴드를 결성하던 초기, 다른 건 몰라도 눈 앞에 있는 관객들만은 확실히 재밌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재미’는 지금까지 장기하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된 것 같아요.
맞아요. 재미없으면 의미도 없어요. 내가 누군가를 재밌게 해줄 수 있다는 크고 작은 경험치도 생겼고요. 장기하와 얼굴들을 할 때, 관객이 20명 정도만 모인 행사장에 간 적이 있어요. 기획이나 모객이 잘못된 공연이었죠. 거의 텅 빈 느낌의 장소에 연령대도 높은 분들만 있었는데, 마지막에는 그분들이 방방 뛰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굉장히 뿌듯한 날이었어요. 나는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다, 했죠.
곧 서재페 무대를 앞두고 있죠. 뮤직 페스티벌에서 관객들의 호응이 생각보다 적다거나 뜻대로 안 풀린다면, 어떤 비기를 발휘하나요?
간단합니다. 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돼요. 제 팬들만 있는 게 아닌 페스티벌에 가서 ‘당신들 내 노래 다 알지?’ 같은 태도로 공연하면 재수 없겠죠. 반대로 단독 공연에서 ‘여러분이 이 곡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식으로 쭈뼛거리면 못나 보일 수 도 있고요. TPO에 맞게 행동하면 됩니다. 그럼 상대방도 ‘저 사람은 내 입장에서 생각해주는구나’ 하고 호감을 가질 거예요.
장기하가 페스티벌 공연 때 어떤 노래를 부르면 분위기가 좀 달아오르던가요?
일단 뭐 ‘우리 지금 만나’, ‘그렇고 그런 사이’, ‘풍문으로 들었소’, ‘별일 없이 산다’ 정도죠. 제 공연 보신 적 있어요? 없어요? 이런 곡들은 일단 전주만 나왔다 하면 거의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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