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지구에 불시착한 괴짜들처럼 자신들의 방정식대로 정의한 새로운 K팝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바밍타이거와 함께 떠난 지구 나들이
2017년 세상에 나올 때부터 그랬다. 바밍타이거는 마치 지구에 불시착한 괴짜들처럼 자신들의 방정식대로 정의한 새로운 K팝을 사람들에게 들려줬다. 난해한가 싶다가 금세 설득되고, 기묘하다 느끼다 일순 빠져드는 이들의 음악. 바밍타이거의 오메가사피엔, 머드 더 스튜던트, 소금, 비제이원진, 이수호, 산얀, 서울더솔로이스트까지, 일곱 친구가 초여름의 한때 지구 나들이를 떠났다.
<W Korea> 오늘 촬영을 위해 산, 들, 폭포를 누볐죠. 바밍타이거가 단합 대회를 떠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산얀 평소에도 저희끼리 자주 놀러 다녀요. 다들 자연을 좋아해서 유독 자연에서 함께한 추억이 많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송 캠프를 2번 떠났는데 둘 다 장소가 산이었을 정도예요.
보통 송 캠프에서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나요?
소금 저희는 진짜 ‘송 캠프’를 하러 가요. 생각보다 다들 술도 안 즐기고요. 몇 병 사 가더라도 꼭 남더라고요. 10시 기상, 12시 점심시간. 이렇게 스케줄도 딱딱 정해놓고 움직이는 편이에요. 정말 은근히 열심히 해요.
산얀 그런데 ‘의도된 열심’이 아닌 게 좀 특이하죠. 본인들이 좋아하는 걸 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저도 내심 ‘그냥 모아놨더니 이게 되네?’ 싶을 때가 있습니다(웃음).
서울더솔로이스트 또 그냥 송 캠프를 하질 않아요. 그때그때 3명을 프로듀서로 지명해서 20분씩 작업을 주도하는 로테이션제도 시도해봤고.
자유분방한 분위기일 거라 짐작했는데, 의외입니다.
일동 너무 그래서! 너무 자유분방해서 아예 룰을 정한 거예요(웃음).
산얀 안 그러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저희 직장인처럼 출퇴근도 해요. 10시 출근, 5시 퇴근.
오메가사피엔 멤버 이수호의 작업실이 저희 사무실이기도 하죠. 무단 점거하는 느낌으로 사용 중입니다(웃음). 하루 7시간 일하는 셈인데 사실 7시간 내내 미쳐서 작업하진 않고요. 그중 진짜 작업하는 시간은, 분위기 좋은 날엔 2시간 반 정도 되려나?
올해 열리는 전 세계 뮤직 페스티벌 라인업에서 유독 바밍타이거의 이름이 자주 눈에 띕니다. 지난 3월 미국에서 열린 ‘SXSW 2023’에선 유망 뮤지션에게 수여하는 ‘크룰케 프라이즈’를 아시안 최초로 수상했고, 그 기세를 이어 7월 일본 ‘후지록 페스티벌’ 무대에 서기도 하죠. 오는 6월엔 서재페에 첫 참가하는데, 어떤 기대를 품고 있나요?
산얀 언젠가 서보고 싶은 무대 중 하나였죠. 국내에서 정말 몇 안 되는, 히스토리 있는 페스티벌이잖아요.
오메가사피엔 너무나 영광입니다. 빌 에반스, 루이 암스트롱 선배님들에 뒤이어 저희가 서재페 무대에 선다는 사실이.
산얀 그분들 안 왔고, 그보다 이미 돌아가셨어···.
오메가사피엔 아,그래? 농담입니다(웃음). 이번 무대에선 미공개 곡도 선보일 것 같아요. 다 같이 단체복 입고 무대에 서기도 할 거고요.
바밍타이거는 2017년 결성 당시부터 ‘얼터너티브 K팝 밴드’를 표방했죠. K팝은 K팝이되 ‘얼터너티브’를 강조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듯합니다.
머드 더 스튜던트 사실 K팝이 여러 음악 장르 중 하나로 불리지만 엄청나게 무수한 하위 장르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그저 ‘K팝’이라고 간편하게 부르고요. K팝은 음악 장르라기보다 차라리 ‘문화’이자 ‘현상’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저희는 하나의 장르로 규정되지 않는 현상 자체를 잡식적으로 펼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산얀 그리고 거기서 좀 더 나아가서 ‘더 알 수 없는 음악을 하자’란 마음도 있었죠. 아무도 모르고, 우리도 정의할 수 없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의 장르 자체가 되어버린 음악을 하자는게 모토였던 것 같아요.
그럼 바밍타이거가 하는 음악을 문장이나 단어로 묘사해볼 수 있을까요?
서울더솔로이스트 엉뚱한 외교관? 어쨌든 누구 한 명 엉뚱하지 않은 사람 없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음악이니까.
비제이원진 그런데 이것저것 안 가리고 모든 장르를 하니까 잡식성 외교관?(웃음)
산얀 ‘이것도 K팝이야?’란 반응이 나오는 음악. 어쨌든 늘 우리 음악에 자신은 있었으니까. ‘너희가 생각하는 K팝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는데 이런 것도 K팝이야’를 제시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멤버 각자가 솔로 활동을 하는 동시에 때때로 그룹으로 뭉쳐 앨범을 내는 식으로, 팀이 ‘컬렉티브’ 형태를 띠는 것도 독특합니다. 이런 건 어떨까요. 일곱 멤버의 ‘입사 순서’를 말해본다면?
산얀 우선 2017년 제가 디렉터로서 팀을 결성했고, 이후 소금(퍼포머)과 오메가 사피엔(퍼포머), 비제이 원진(퍼포머, 프로듀서)과 머드 더 스튜던트(퍼포머, 프로듀서), 이수호(프로듀서, 영상 디
렉터)와 서울더솔로이스트(멀티플레이어)가 합류했죠. 사실 팀의 형태를 미리 생각하고 시작했다기보다 그저 마음 맞는 사람끼리 자연스럽게 모인거였어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보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들인지에 집중하다 보니 지금의 팀이 이뤄졌고요. 사람이 모이면서 점점 비전도 뚜렷해진 것 같아요.
만화 <원피스>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너 내 동료가 되라.” 그럼 바밍타이거의 일원이 되기 위해선 ‘적어도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게 있을까요?
서울더솔로이스트 바이브(Vibe)할 때와 칠(Chill)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웃음)
일동 어우! 구려!(웃음)
서울더솔로이스트 하하, 장난이고요. 사실 다들 자신과 비슷한 ‘친구’가 필요했던 사람들이지 않나 생각해요. 저만 해도 제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에 같이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주변을 돌아봤을 때 ‘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인 것 같아요.
머드 더 스튜던트 비슷한 생각이에요. 그냥 가족 같아요. 저희끼리만 공유하는 뭔가가 있는데 그걸 굳이 말로 설명하기 시작하면 굉장히 묘연해져요.
외로운 괴짜들이 모여 가족을 이뤘다는 점에서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오메가사피엔 그렇죠. 저도 어릴 때부터 남들과는 사고방식이 달랐거든요. 그래서인지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뭔가 오는 게 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편한 느낌?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깊은 속내를 알 수 있고, 상대도 나의 속내를 알 수 있고. 그런 사람이 우리 멤버로 들어올 수 있음 더 없이 좋죠. 음악이든 영상이든 뭔가를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단 결국 사람이 좋아야 팀이 오래 지속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좀 신기한 건, 좋은 사람이 또 음악도 영상도 뭐든 잘하더라고요.
소금 저는 같이 실패하고 실수할 수 있는 사람, 같이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이면 충분한 것 같아요.
오메가사피엔 그리고 자기에게 솔직한 사람이 좋아요.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당당하게 오픈할 줄 아는 사람이면 환영이 에요. 저희끼리도 엄청 솔직한 편이거든요. 물론그러다 보니 서로의 약점도 잘 알고 미친 듯이 놀리면서 괴롭히지만, 전 바로 그 놀리는 것까지가 ‘러브’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산얀 그런데 사실 누가 들어와도 저희에게 교화될 것 같긴 해요. 사실 인생에서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거든요. 바로 그 지점이 한 사람을 만드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와 함께 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당연히 가족으로 품고 싶을 것 같아요.
데뷔 이듬해인 2018년 발표한 싱글 ‘I’m Sick’로 국내외 음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자극적 연출로 어떠한 극단에 치닫고 있는 한국의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 문화를 풍자한 MV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죠. 이후로도 2021년 전형적인 한국식 중국요리점을 배경으로 촬영한 ‘Just Fun!’의 MV를 공개하고 김창열, 쿠사마 야요이 등 아시아의 현대 거장 작가를 소개하는 애니메이션 콘텐츠 ‘The G.O.A.T’ 등을 전개하며 줄곧 ‘아시안’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해왔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오메가사피엔 우선 저는 유년 시절을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을 오가며 지냈어요. 저에게 이런 다국적 백그라운드가 있기에 오히려 한국적인 것, 동양적인 것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게 된 것 같기도 해요. 정작 한국에 살기 때문에 무엇이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것인지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를 왕왕 봤거든요. 시야가 동양에만 국한되어 있으면 서양의 것이 탐나죠. 그러다 보면 언뜻 좋아 보이는 서양의 무언가를 좇고 따라 하게 되고, 결국 ‘나’에게 ‘나’의 것은 없는 상태가 돼요. 저는 그것만큼 별로인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나의 모든 건널 따라 한 거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동양에서 동양의 것을 해야만 진짜 멋있는 거라고, 오히려전 느끼는 것 같아요.
산얀 결국 우리가 가진 가장 개인적인 것, 본질적인 것을 보여주자는 마음이었어요. 그게 웃기게 보이든 멋지게 보이든 상관없고 ‘이게 동양적인 것이다’라며 제시한 거죠.
머드 더 스튜던트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며 모르고 지나치는 한국적인 것.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무조건 아는 것. 그 무의식 속에 있는 한국적인 것을 좀 구체화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이를테면 봉준호 감독의 초기작 <플란다스의 개>도 보면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건 무엇보다 한국적이다’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거든요. 2000년대 촬영된 한국 음악 MV도 전부 서양의 사운드, 촬영 기법이 활용됐는데도 지극히 한국적이에요. 그리고 그 이유는 알 수 없어요. 이렇게 사람들이 미처 분간하지 못하는 한국적인 지점들을 구체화해서 제시하고 싶은 것 같아요.
지금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문화, 사회적 코드는 무엇인가요?
오메가사피엔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셀피를 과도하게 보정해서 올리는 사람이 있어요. 턱은 거의V자 형태고 눈은 얼굴의 1/3을 차지하는 식으로요. 너무나 기형적이라 생각하는데 막상 댓글을 보면 칭찬이 태반이에요. 소셜미디어 유행이 낳은 현상 중 하나인 듯한데, 저는 이들을 ‘신인류’라고 불러요. 요즘 그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떠올리는 것 같아요.
소금 1960년대 냇가에서 빨래하는 여성을 담은 사진을 볼 때면 묘한 울림을 느껴요. 작년 뮤지션 임금비와 함께 발표한 싱글 ‘소금비 (Salt Rain)’의 MV에도 여성들이 빨래하는 장면을 꽤 주요하게 넣었을 정도로 빨래하는 여성, 물에 담가놓은 빨랫감 등의 이미지가 저에게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이유는 몰라요. 그저 저한테 강하게 다가올 뿐이에요.
서울더솔로이스트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 최근 들어 기술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육안으론 실제 사진과 AI가 형성해낸 가상 이미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잖아요. AI 프로그램에 예전부터 제가 좋아했던 원숭이가 마취되어 CT 촬영을 하는 이미지를 넣거나 종교, IT, 기술 등의 명령어를 넣어보고 있어요. 제가 현실에서 카메라로 담아내고 싶던 이미지들을 프로그램을 통해 1분 만에 만들어내는 데 요즘 빠져 있어요.
자신이 바라고 추구하는 문화적 아이콘은 누구인가요?
산얀 백종원. 자신이 좋아하는 걸 아직까지 계속 따라가는 사람인 것 같아요. ‘나는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해’라는 게 보이잖아요. 무작정 비즈니스를 벌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뭔지 아는 사람 같이 느껴지죠. 그리고 베풀 줄 알고 손도 크시잖아요?(웃음) 백종원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소금 저는 없어요. 오히려 항상 ‘나’를 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냥 ‘없는 것’에서 찾고 싶어요. 그리고 음악적으로든 스타일, 인격적으로든 완성되려면 적어도 60대 할머니는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해요. 천천히 가자, 늘 다짐한달까요.
어떠한 제약도 없다고 가정해봅니다. 각자가 그리는 꿈의 무대는 무엇인가요?
오메가사피엔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와 같은 분쟁 지역에서 공연하는 것.
비제이원진 나의 공연을 전 세계의 모든 스크린에 송출하는 것.
소금 완전한 자연 속에의 공연. 산 중턱에 있는 큰 바위를 무대로 노래 부르고 싶어요.
산얀 비틀스가 해체 전 마지막 공연을 자신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한 건물의 옥상에서 했듯이, 저희도 작업실이든 제 집이든 그곳의 옥상에서 펼치고 싶어요.
이수호 친구들과 함께 우리들만의 뮤직 페스티벌을 만들어 공연하는 것.
머드 더 스튜던트 부산 기장에서 자랐는데, 그땐 제가 음악 한다는 걸 세상에서 저밖에 모르던 때였어요. 좀 소박한 꿈이지만, 그곳에서 좀 크게 무대를 펼쳐보고 싶어요.
오메가사피엔 아, 저 하나 더 떠올랐습니다. 저를 퇴학시킨 초등학교를 통째로 빌려서 공연하는 것도 재미있겠는데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