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다가오는 2023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이승윤과의 대화
‘내게 남은 이 한 모금의 노래가 그대의 눈물이, 쉴 곳이 될 수 있다면’. 누군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의 노래를 들어준다면, 원하는 맥락으로 즐겨준다면, 이승윤이라는 서사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그답게 지속될 것이다.
<W Korea> 바로 얼마 전까지 전국 투어 콘서트를 했죠. 올해 1월에는 정규 2집 앨범 <꿈의 거처> 를 냈고요. 정규 작업을 위해 예민하게 몰입했을 텐데 바로 인생 첫 전국 투어를 달렸네요. 미리 체력 관리는 좀 했나요?
이승윤 그냥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웃음). 앨범 작업할 때부터 투어 끝날 때까지 제 몸 상태를 들여다보려고 하질 않았어요. 그저 ‘내 체력은 좋다, 좋다···’ 세뇌했죠. 제가 뭔가를 한번 하고 나면 일주일은 앓아야 하는 타입이거든요.
그거, 자기 체력 수준은 생각지 않고 무조건 몸과 마음 다 쏟아붓는 사람들 특징이잖아요. 끝까지 몰아붙인 후에는 끙끙 앓을 수밖에요. 그래서 지 금 상태는 어때요?
투어 다 끝난 후 체력이 방전되어서 2~3주 앓았어요. 그러다 이틀 전부터 좀 괜찮아졌습니다. 멘탈적으로는 좋은 상태예요. 무사히 잘 끝났으니까요.
마지막 행선지가 대만이었으니, 실은 전국을 벗어나 해외로 진출했어요. 첫 투어를 막 마친 지금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대만 공연 기회는 제 투어 일을 하던 분을 통해 성사되었어요. 저는 관객이 열두 명만 있어도 무조건 가겠다고 했죠. 그런데 많이 와주셨어요, 한국에서 오신 분도 있고. 투어의 시작이던 서울 공연은 수개월 준비한 것을 처음 선보인 자리니까 당연히 기억에 남죠. 그리고 지역마다 특유의 조명, 온도, 습도 같은 게 있어요. 그 각기 다른 특성을 느낄 때 참 좋았어요.
투어하는 동안에는 매 공연마다 비슷한 퀄리티와 에너지를 유지해야 하잖아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 같군요.
네, 그게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해보면서 터득한 점은 초반 서너 곡 부르는 동안 다 쏟아부어야 한 다는 거예요. 공연 시간을 고려해서 에너지를 안배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제 집중력도 다소 흐트러지는 것 같고 안 되겠더라고요. 가수 콘서트는 기획과 구성을 짜는 작가가 함께하는 경우가 많지만, 제 경우는 즉흥적인 요소가 많거든요. 제가 먼저 관객에게 에너지를 제공해야 그 즉흥성이 가미되고 분위기도 살아나요.
초반에 에너지 확 끌어올리기. 공연 세트 리스트의 맨 윗줄에서 그 막중한 임무를 맡은 세 곡이 뭐였죠?
‘웃어주었어’, ‘말로장생’, ‘누구누구누구’를 불렀습니다. 세트 리스트에 다 넣지 못한, 예전에 쓴 노래 중에서 관객이 원하는 신청곡을 받기도 했어요. 재밌는 추억 거리가 됐죠. 신청곡이 계속 이어졌던 상황이 기억에 남네요. 그런 즐거운 순간에도 다음번에는 내가 신경 써서 잘 해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느꼈고요.
공연의 희열, 팬들의 지지 외에 얻은 게 있다면 뭔가요?
저는 이번 앨범 작업부터 투어까지의 여정을 ‘내가 비로소 초심으로 살고 있다’고 표현해요. 바로 이런 걸 하고 싶었고, 사실은 그러기 위해 다른 것 들의 힘을 빌리기도 하면서 산 거죠. 그런데 살다 보면 초심을 제대로 구현하려고 필요한 것들을 하다가 어느새 초심과 다른 방향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한 걸음씩, 초심으로 다가가 살아보겠다··· 이런 의미를 다지는 저만의 훈장을 얻었습니다.
이승윤의 초심에는 어떤 바람이 있었죠?
제 노래로 가득한 투어를 해보는 것. 그러려면 그만한 곡 수가 있어야 하고, 공연을 찾아주는 팬과 공연을 꾸려줄 많은 이들의 수고가 필요하죠. 타이밍도 적절하게 맞아떨어져야 하고요. <싱어게인> 이후 2년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드디어 그 모든 걸 설득력 있게 꾸릴 시공간이 주어진 거예요.
<싱어게인>에는 ‘무명가수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죠. 이승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마음으로 음악 하는 사람인데, 유명세를 얻고 둘러싼 환경이 크게 달라지면서 다이내믹한 물살을 타는 기분이었나요?
음악 시장, 미디어, 주류 문화 등에서 대다수가 ‘이렇게 하는 게 좋고, 옳은 거야’라고 생각하는 방향성이 있는 거로 보였어요.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맡겨버리면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거, 초심 같은 것과는 결이 다른 삶을 살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저는 그 흐름에서 미묘하게 다른 포인트의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이에서 선을 타는 일에 집중해왔달까요.
<꿈의 거처> 소개글이 이렇게 시작하더군요. ‘삶을 공허에게 전부 빼앗기기 전에 선수를 치자. 앨범이나 일단 내자.’ 거대한 물살을 타며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질 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눈앞의 중요한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군요.
네. 저는 그 물살을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무언가에 반기를 들며 ‘진짜는 이런 거야!’ 하려는 게 아니라, 다만 ‘내 취향과 내 세계는 이렇습니다’라고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예를 들어 방송이나 매체 활동을 하면, 저는 그 흐름에서 베스트를 해낼 인물은 못 돼요. 말을 잘하거나 재밌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내 세계를 지키려는 일이 자칫 반기를 드는 것처럼 여겨지더라고요. 지난 2~3년은 어떤 흐름 안에서 그저 ‘나의 취향과 세계는 이런 겁니다’라고 구축하는 시간이었어요.
이승윤의 취향과 세계는 정규앨범에 고스란히 담겼겠고요. 스케일이 큰 음악을 좋아하시죠?
적어도 현재 제 취향은 그래요. 내가 무언가를 제대로 딱 만들어본다면, 바로 스케일이 큰 음악을 해보고 싶었어요. 스케일은 단순히 여러 소리를 많이 나열하고 쌓는다고 생기는 건 아니에요. 소리의 레이어를 어떻게 세밀하게 쌓느냐가 관건인데, 공동 프로듀서인 친구 조희원과 믹싱을 도와준 매니 팍의 공이 엄청 커요.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과 제 취향이 조금 달라서, 그 취향을 잘 구현해 줄 기술자를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이에요.
요즘 유행하는 건 뭔데요?
다소 비어 있고, 대신 한 가지 매력적인 사운드가 주도하는 스타일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좀 잡다한 걸 좋아합니다. 요소가 많고, 겹겹이 쌓인 상태 말이에요.
이승윤의 음악을 말할 때는 가사에 대한 이야기가 꼭 따릅니다. ‘말로장생’이라는 노래에서는 말로 서로 죽이고 살아남는 말 많은 세상이, ‘비싼 숙취’에서는 성취 뒤에 늘 따르는 숙취가 모티프죠. 은유와 직유, 언어유희를 통해 음악가의 서사가 만들어지다 보니 가사를 곱씹고 해석하는 청자가 많아요.
음악에 대한 피드백은 늘 감사해요. 하지만 제 가사에 대해 제가 많이 언급하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제 이야기를 내보낸 후에는 그걸 들은 각자의 해몽이 덧붙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뻗어나가길 바라거든요. 제가 가사 자체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할수록, 노래를 일정한 사이즈에 가둬버리는 꼴이 될 거예요.
이승윤에겐 어떤 야망이 있습니까?
최근 제 화두는 창작자들의 풀이 더 넓어지고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프로듀서, 믹스 엔지니어 등등의 기술자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아요. 다양한 방식과 색깔이 담긴 창작물을 위해서는 여러 장인이 필요해요. 그들이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테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작업을 해 보고 싶은데, 막상 선택지가 별로 없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느낌. 이런 이야길 많이 하고 다니려고요. 그래서 기술자들이 더 드러나고, 여러 갈래의 징검다리가 생기면 좋겠어요. 그렇게 만들고 싶은 게 제 야망입니다.
음악 할 때 말고는 뭘 하고 어떤 시간을 보낼 때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끼나요?
제가 대만 콘서트를 하고 오는 길에 펑리수를 일곱 박스 샀거든요? 원래는 다섯 박스만 사려고 했는데, 여섯 박스 사면 하나를 더 준다기에 결과적으로 일곱 박스가 생겼어요. 그런데 막상 집에 와보니 그걸 나눠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선물을 줄 만한 가까운 사람들과 대만에 같이 다녀왔거든요. 그 친구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최근의 가장 큰 낙인 것 같아요. 같이 모여 음악 하고, TV 보면서 뭐 시켜 먹고, 가끔 피파 게임도 하고.
펑리수 일곱 박스의 행방은 어찌 되었나요? 그런 거 사실 박스는 큰데 안에 든 건 몇 개 없죠.
두 박스는 우리 직원한테 줬어요, 부모님 드린다 길래. 음악 말고 다른 일 하는 친구들을 곧 만날 건 데 걔들한테도 주려고요. 그리고 두 박스는 제가 먹었습니다.
작년에는 음악 페스티벌 공연을 몇 차례 하셨죠. 그리고 올해,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서요. 서재페는 처음이죠?
네. 제가 서재패에서 공연할 SK핸드볼경기장이 제 투어 첫 공연장이에요. 그 무대 이후 ‘언제 또 여길 와볼 수 있을까’ 했는데, 조만간 다시 서게 된다니 신기해요. 서재페는 제가 좋은 의미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페스티벌이에요. 예전부터 늘 힙한 형, 누나들이 가서 즐기는 곳으로 기억하고 있거든요. 또 범접할 수 없는 대가들이 공연하는 곳이고요. 그런 무대에 제가···.
아티스트로서 ‘이거 하나는 자신 있다’ 할 만한 점은 뭔가요?
음. 범용성요. 음악의 스펙트럼에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범위는 제가 80 정도로 해낼 수 있다고 봐요. 제 공연에서는 노래 의 성격이 다양해요. 돌이켜보면 그렇게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장점인 것 같습니다.
범용성, 쓰임새가 있는 뮤지션이군요. 문장가이기도 하시죠. 이승윤의 음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요?
‘한 모금의 노래’. 그 제목의 노래 후렴구가 이렇습니다. ‘내게 남은 이 한 모금의 노래가 그대의 눈물이 쉴 곳이 될 수 있다면’. 네, 그 정도가, 제 음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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