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지노가 7년만에 앨범을 낸다

권은경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알게 된 빈지노가 앨범 <노비츠키>와 함께 온다. 오랜만에 날씨가 바뀌는 어느 날처럼, 반갑고 새로운 느낌으로.

트랙 재킷은 로에베 제품,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W Korea> 정말 오랜만입니다. 드디어 곧 앨범이 나오나요

빈지노 출시일이 임박했다고만 말할게요. <더블유>가 나오고 오래 안 가 발매될 거예요. 지금은 꽤 많은 과정이 이미 제 손을 떠났어요.

7년 만의 정규앨범이죠.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요. 군대에 다녀오고, 잘 알려진 여자친구와 결혼도 했고.

오늘처럼 이렇게 화보를 촬영하는 게 신기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 행복해요. 행복한 순간들은 자주 있어요.

어떤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죠?

일단은 당연히 음악 작업 할 때죠. 그 음악이 내가 들어도 너무 좋을 때 무척 행복해요. 집에 들어가면 한동안은 스테파니, 그리고 강아지들과 엉켜 있어요. 계속 작업한 이후에는 쿨다운하는 시간이필요하거든요. IAB 스튜디오에 나가 테이블 앞에 앉아서 친구들과 회의하고, 웃고, 떠들고··· 그러다 가끔 엄마, 아빠와 만나 밥 먹고. 그런 순간들에 큰 행복감을 느끼곤 해요.

일상과 주변의 소중함을 느끼는군요. 임성빈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나요?

예전에는 행복했어도 그걸 행복이라고 알아채는 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샘플이랄까, 데이터베이스 자체가 적었으니까. 시간이 지나고 전보다 나이 들고 보니 이런저런 경우의 데이터가 생긴 거죠. ‘내게 이런 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런 상황은 다시 안 생겼으면 좋겠다’ 식으로 상황을 구분할 수 있게 됐어요.

나이 들면서 상당히 좋은 점 중 하나는 바로 데이터가 쌓인다는 점 같아요. 나에 대해서, 사람과 세상에 대해서 늘 과거보다는 지금 가진 데이터가 많은 셈이죠.

맞아요. 그 미학이 있어요.

2011년부터 몸담은 일리네어 레코즈가 해체된 후 2021년 BANA의 아티스트로 합류했어요. 앨범명은 <노비츠키>라는 점을 그때 먼저 알렸고, 수록곡 중 하나인 ‘트리피(Trippy)’를 올 초 공개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죠.

세상의 시선으로는 앨범 발매가 늦어졌다고 볼 수 도 있지만, 제 시점에서는 2023년이 딱 맞는 해라고 느껴요. 제가 군대에서 휴가 나올 때마다 한 호텔에 묵었어요. 신기하게도 계속 같은 방을 내주더라고요. 그 방이 2023호였어요.

‘2023’은 운명의 숫자 같은 거군요?

그 숫자가 뇌리에 박혔어요. ‘2023년’이 당연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로.

앨범명에 쓰인 노비츠키는 유명한 농구선수로 알고 있어요.

독일 출신의 NBA 슈퍼스타인데, 한 팀에서 우직하게 뛰었어요. 언더독이었다가 역경을 이겨내고 파이널 우승까지 한 역사로 유명하죠. 제가 그의 스토리를 좋아해요. 저도 또 다시 무언가를 쟁취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그 이름이 지난 2년 동안 은은하게 ‘정신’이 되어줬을 것 같아요.

네, 정신의 한 부분이 됐죠. 앨범에 하나의 주제나 메시지를 잘 붙이는 뮤지션도 많던데, 저는 앨범을 관통하는 단 한 가지를 찾기가 참 힘들더라고요. 지난 앨범들 때도 그랬어요. 내 여러 가지 이야기가 한곳에 모였다는 그 스타일만큼은 이번에도 같네요. 재밌는 일화가 있어요. 제가 2000년대 초반 중학생 때 스트리트 패션 사진을 찍힌 적이 있는데, 그때 노비츠키 팀의 트레이닝 저지를 입고 있었어요. 어릴 적부터 좋아한 의류였죠. 제 안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스테파니도 독일 사람이고, ‘노비츠키’는 여러모로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있는 선택이었어요.

체크무늬 코트, 안에 입은 가죽 베스트, 가죽 쇼츠는 프라다 제품.

블레이저와 팬츠는 이곤랩 by 아데쿠베 제품, 민소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작업을 위한 송 캠프로 찾아 떠난 곳이 스웨덴이었어요. 왜 스웨덴인가요?

작업하러 미국으로 가는 아티스트가 많아요. 유럽 쪽으로는 흔히 파리나 베를린으로 가는 것 같고요. 스웨덴으로 가는 사람은 못 봤어요. 제가 북유럽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고, 뭔가 다른 곳으로 가보고 싶었어요. 거기서 같이 작업할 프로듀서들도 유럽인으로 찾았어요. 영국, 덴마크, 프랑스 등에서 온 친구들과 작업했죠.

 

날씨가 대체로 우중충하지 않았나요? 몸이나 정신을 다운시킬 것 같은데.

날씨도 엄청 우중충했고, 심지어 겨울에 갔기 때 문에 오후 4시면 깜깜해졌어요. 다운되는 기운이 있더라도 새로운 공간에 와 있다는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제 작업실이 가장 익숙하지만, 그 공간이 나를 배신할 때가 있거든요. 새 회사인 BANA는 제가 뭐라도 해보도록 지속적으로 푸시해줘서 아티스트로서 그 점이 참 고마웠어요.

공간이 나를 배신한다는 건 어떤 느낌이죠?

처음 뭘 해보려고 할 때는 여기서 하면 뭐든 집중해서 잘 만들 것 같고, 내일도 모레도 기대돼요. 그러다 어느 순간 지겨워지면서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 작업실 구린 것 같아’(웃음). 탓할 대상이 필요하니까 괜히 그렇게 되는 거죠. 스웨덴에선 한 달 정도 있었어요. ‘이제 내 작업실로 가면 또 정말 잘해볼 수 있겠다’ 싶을 즈음 한국으로 왔고. 사실 거기서 1년이라도 보내려면 잘 보냈을 것 같아서 좀 아쉽지만.

한 달 동안 나름 그곳에서의 루틴이 생겼을 것 같아요. 그 시간 동안 빈지노의 하루하루는 어떤 식으로 돌아갔나요?

말뫼라는 항구도시에 있었거든요. 축구선수 이브라모비치가 태어난 도시이기도 합니다(웃음). 호텔과 스튜디오를 매일 걸어서 오갔어요. 그 스튜디오는 커피 원두 공장이던 곳을 개조한 데라서 커피가 다양하게 있었어요. 10~11시쯤 일어나서 스튜디오로 가 우선 커피 한 잔 마시죠. ‘뭐 좀 할까?’ 하면 오후 3시경. 밤까지 작업을 한 후에는 사실 호텔로 돌아와도 바로 누워 잠들진 못해요. 소리 자극을 계속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유튜브를 본다든가 다음 날 작업할 것을 가볍게 들어본다든가 하면서 쿨다운을 시키죠. 새벽 3~4시경 잠들고 일어나면 다시 또 하루가 시작되고.

카디건, 팬츠, 슈즈는 발렌티노 제품, 목걸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레이저는 마르니 제품.

스튜디오에 창문들은 좀 있었나요? 빛이 드는 공간이었을지.

창문은 여기저기 많았는데, 본격적으로 뭘 시작할 때면 이미 어둑해진 상태라(웃음). 일단 들어가면 부엌이 있고, 한쪽 소파에서 같이 커피 마시거나 회사 직원들이 업무를 봤어요.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메인 스튜디오 룸, 옆으로 꺾으면 라이브 룸이 있고요. 제가 작업하던 룸은 거기서 더 들어가면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인데, 진짜 오래돼 보이는 책장과 낡은 소파, 먼지 쌓인 책상 정도만 있었어요. 방음도 잘 안 되는 곳이어서 메인 스튜디오 룸에서 프로듀서가 비트 찍는 소리가 계속 스며드는···. 빛은 제 맥북 모니터에서 새어나오는 빛만 있는 채, 딱 헤드폰 끼고서 아주 몰입한 상태로 보내는 거죠.

그 시공간이 상상되네요, 커피 향기도 나는 것 같고. 표정이 행복해 보여요.

말뫼에는 한국인은 물론 관광객도 흔하지 않은 데다, 우리가 머문 동네가 할렘 비슷한 곳이었어요. 그 특유의 바이브를 즐겼어요. 마침 호텔에서 스튜디오 오가는 길에 한식집도 있었어요. 하루는 한식이 당겨서 비빔밥 먹으면서 사장님과 얼굴 트고 대화도 나눴네요. 그 동네서 한국인을 만나니 서로 반가운 거죠. 다음에는 거기서 라면도 끓여 먹고.

스웨덴에 머무는 동안, 그곳의 무디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데모곡 ‘Soda’를 공개했죠. 그때 같이 공개한 이미지에 물가가 보이던데 말뫼에서 찍은 사진인가요?

그건 코펜하겐에서 제가 찍은 사진이에요. 크리스마스를 독일에 있는 가족들과 보내려고 이동하는 일정이었는데, 말뫼랑 코펜하겐이 가깝거든요. 경유지로 일주일 정도 코펜하겐에 머물면서 ‘마지막으로 작업 한 번 더 때리고 가자’ 해서 리프레시 겸 작업도 했어요. 호텔에서 맞은 둘째 날 아침, 창가를 보다가 아래 지나가던 사람을 찍어봤어요.

 

사진 속 한 장면일 뿐이지만, 그 지역의 톤이나 기운에는 참 비슷한 데가 있는 듯해요. 그 한 컷에서도 쌀쌀한 공기가 느껴지는데, 가운 차림에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지나가는 남자라니요.

저도 코펜하겐에 막 도착한 후라 그 모습을 보고는 ‘뭐지?’ 싶어서 급히 찍었는데, 좀 더 있으면서 알게 됐죠. 덴마크 사람들은 한겨울에도 수영을 즐겨요. 대단한 이벤트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상처럼 스윽. 호텔이 바닷가 바로 앞이어서 그런 장면을 자주 봤어요. 자전거를 타고 온 여자아이들이 얘기하면서 놀다가 갑자기 그 자리에서 옷을 벗고 다 같이 물에 들어가더라고요. 오래 노는 것도 아니고 몇 분 만에 다시 나와서 몸 닦고, 옷 입고, 다시 자전거 타고 가던 길 가고.

스웨덴에서 송 캠프를 하는 동안 여러 지역에서 불러 모은 유럽인 스태프들은 대개 힙합 장르 위주의 음악을 하는 이들이었나요?

힙합을 베이스로 해도 딱 힙합만 추구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여러 면으로 얼터너티브함이 있는 친구들 위주였죠. 너무 한 가지 스타일만 하거나 클리셰 같은 비트를 찍는 인물은 예상보다 일찍 자기 집으로 돌아갔을 거예요.

 

같이 일하는 구성원의 면면과 작업 환경이 달라지면 환기되는 바도 있고, 결과물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미세하게 다름이 있을 거라고 봐요. 실제로 유럽 지역 사람들과 엉켜 있으면서 뭔가 다른 정서를 느끼기도 했나요?

일단 협업에 아주 능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한국에서는 협업이 능숙하게 잘 된다고 느낀 경우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제 경우는 그래요. 스웨덴에서 작업한 친구들은 협업이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느낌이고, 의견을 내거나 뭘 할 때도 주저함이나 쑥스러움이 별로 없었어요. 그 장점에 따른 부작용으로 자꾸 이상한 의견을 내거나 자기 멋대로 하는 애들도 있었지만(웃음). 그래도 내가 좀 싫은 티를 내도 눈치 안 보고 자기 것을 하는 모습, 다른 사람의 피드백에 열려 있는 자세로 임하면서 또 거기에 너무 빠져들진 않는 모습을 저는 흥미롭게 받아들였어요.

 

그럼 이번 정규앨범에 실린 음악은 스웨덴에서의 시간을 통해 나온 것들이 기본이라고 보면 될까요?

그렇진 않아요. 왜냐면 <노비츠키>는 결국 지난 5년 정도의 이야기거든요. 그동안 제 인생에 몇몇 중요한 찰나가 있었고, 스웨덴은 그중 일부예요. 군대,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 스테파니와의 기억, 그리고 음악에 대한 제 태도, 이런 것들이 모두 앨범 작업에 영향을 끼쳤어요 당연하게도.

파자마 셔츠는 메종 마르지엘라, 슈트 팬츠는 더블렛 by 10 꼬르소꼬모 서울, 슬라이드는 돌체앤가바나 제품, 목걸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 5년 정도의 이야기 중 의미 있는 찰나들에 인덱스를 해본다면, 우선 ‘군대’가 있겠군요. 막상 군 생활을 해보니 스스로 새롭게 발견한 자기 모습이 있던가요? 연예인들이 빠른 속도의 삶을 살다가 군대에서 규칙적인 시간을 보내면서 의외로 안정감을 느낀 경우를 많이 봤어요.

나도 무난한 군인으로 잘 존재할 수 있구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서도 살 수 있구나, 관심받던 삶에서 벗어나도 큰 타격을 받진 않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걱정한 것보다 괜찮았어요. 휴가 때는 스테파니가 해외에 있다가 저를 만나러 왔기 때문에 우리 둘이 시간을 주로 보냈지만, 외출할 때는 혼자 녹음도 하면서. 작업하려고 부대 주변에 방을 하나 구해뒀거든요.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은 군대에서 생겼나요?

전역한 후부터인 듯해요. 주변에서 힘든 시간을 겪는 친구들을 보기도 하고, 요즘 시대가 정신 건강을 조명하고 그 중요성을 일깨우는 분위기 같거든요. 저 역시 우울함이 컸던 시기가 있어서 ‘나는 괜찮나?’ 하고 저를 들여다봤죠. 전에는 정신적, 심리적 건강 문제는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어요. 이젠 내 기분과 감정을 직면할 줄 알게 되었고, 더 솔직해졌어요.

 

결국 보다 성숙한 단계로 가고 있겠네요. 스스로도 그 점을 느끼나요?

네. 성숙해졌다고 자주 생각해요. 나를 점검하고, 옷 정리를 하거나 쓰레기통 비우듯이 꾹꾹 쌓인 감정을 비워내고, 거기서 재활용할 것들은 추리고. 이런 과정을 정신적으로 좀 해낸 기분이에요.

 

전역 후 2019년에 발표한 싱글 ‘패션 호더’에서 ‘집안에 온통 비싼 새 쓰레기’라고 직접적으로 말했죠. 거기서부터 빈지노의 변화를 조금은 눈치챌 수 있었어요. 그래서 요즘 옷방 상태가…

옛날보다 훨씬 가벼워졌죠. 물론 미니멀리스트 되긴 힘들겠지만. 착용하지도 않을 옷이나 신발을 그냥 방치해두기보단 순환시키고 싶어요. 여전히 몇 달에 한 번씩은 버리거나 주변에 나눠주고 있어요.

 

물질적인 것에 있어선, 해볼 만큼 거의 다 해봤다 싶은 사람들이 ‘전향’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합니다(웃음). 어느 순간 그 많은 사물이 곧 정신적인 짐으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뭔가를 사는 행위에서 기쁨을 많이 느꼈어요, 예전엔. 이제는 한 매장에서 아이템을 싹 쓸어오고 그러는 행위에 더 이상 끌리지가 않아요. 이거저거 사들이는 건 제 안에서 유행이 끝난 느낌이랄까… 여행을 간 김에 자연스럽게 쇼핑하는 건 재밌는 거 같고요.

 

가죽 재킷과 팬츠, 아이보리 탱크톱, 검정 부츠는 보테가 베네타 제품, 목걸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결혼 생활은 어때요?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와 꽤 오래 연애했습니다만, 결혼에 이르기까지 어떤 확신이나 계기가 있었나요?

결혼에 대한 확신이라기보단 관계에 대한 확신이라고 말해야겠어요. 우리에게도 여러 드라마가 있어요. 제가 군대에 가면서 둘 다 아주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커플로서 잘 이겨냈죠. 그렇게 동거를 하다 보니까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졌어요. 우리가 만약 ‘결혼은 너무 바보 같은 짓이야’ 싶다면 이 시스템을 빠져나와도 우리 관계는 말이 돼요. 결혼해야 확신이 생기는 관계가 있다면, 우리는 그런 쪽은 아니니까.

 

둘이서 손 잡고 용산구청을 통해 그 제도 안으로 들어간 거잖아요? 오래 연애했어도 결혼은 다른 문제더라 하는 커플이 많은데, 경험해보니 조금 다른 걸 느끼나요?

뭐 얼떨결에 제도로 들어왔는데요. 우리는 똑같아요. 하지만 바깥 세계에서 볼 때 다른 간판이 걸린 상태죠. 가끔은 ‘내가니 남편이래’, ‘나는 니 부인이래’ 하면서 둘이 킥킥대요.

 

밥이랑 빨래, 청소 같은 집안일은 누가 주로 하나요?

스테파니가 더 많이 하죠. 저는 부지런히 그걸 도와요. 어떤 집안일이든 거의 같이 하는데, 스테파니가 대장이고 저는 어시인 셈이에요. 스테파니의 성향이 있거든요. 저는 카오스에서도 잘 사는 사람이고, 스테파니는 청소하면서 큰 보람을 느끼는 타입이에요. 그 보람을 제가 이길 순 없으니까 같이 깨끗하게 해야죠.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이 동거하던 시절을 봤을 때, 임성빈이 꽤 다정한 남자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카메라 때문이 아니라 평소의 스타일이 묻어나오는 게 보이더군요.

저, 다정합니다(웃음). 잘 보여야죠, 그 사람한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잘 보이려고 해야 맞지 않아요? 내가 다정하게 했을 때 상대가 좋아하니까 저도 최대한 다정하고 나이스하려고 노력하는 거지, 만약 상대가 그런 스타일을 별로 안 좋아했다면 저도 다르게 굴겠죠.

 

결혼 후 아티스트로서도 점점 충만해지는 걸 느끼는 듯한 인상입니다.

네. 어릴 때는 결혼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어요. 사회에서, 결혼에 관해 관성적으로 쓰는 표현이 있는 거 같아요. ‘혼자가 좋은 거다’ 식으로. 그런 말들 때문에 저도 뭔가 오해했어요. 지금은 결혼했다는 상태에 오히려 신선함과 재미를 느껴요. 긍정적인 면이 있고요. 혼자일 때는 음악 작업을 하다 보면, 작업이 잘되면 좋긴 하겠지만 그거에만 매달리죠. 작업이 잘 안 풀릴 때는 끝도 없이 우울해지고 남과 비교하면서 ‘나 왜 살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젠 집에 가면 부정적인 생각을 딱 끊어낼 수 있는 차단선이 생겼어요. 그냥 집이 아닌 진정한 집이 존재하는 것 같고, 또 창문이 생긴 것 같고 그래요.

블레이저와 팬츠는 마르니, 안에 입은 베스트는 메종 마르지엘라, 슈즈는 나이키 제품.

지난 수년간 빈지노의 삶에 서서히 변화가 따른 듯한데, 음악에 대한 태도를 들여다보면 어떤 생각이 자리 잡고 있죠?

‘나에겐 내 영역이 있다’. 남에 대해 따지는 건 이제 제 세계에서 더 이상 화두가 아니고, 그냥 제 스타일이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어요. 이건 성격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진짜 나를 찾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과거에는 누가 더 잘났나, 친구는 별로다, 이런 거에 신경을 좀 썼어요. 빈지노의 음악이 별로라는 소리가 들리면 그걸 비상사태로 받아들였을 거예요. 그만큼 나를 증명하고 싶었어요.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하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해요. 증명이나 누구의 말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통상적으로, 또 다소 습관적으로 해왔던 음악 페스티벌 무대도 좀 졸업하고 싶고요. 그런 걸 매해 별 의식 없이 반복하다 보면 졸업이 없는 학교를 계속 다니는 기분이거든요. ‘그 다음’에 대한 질문이 생겨요. 그렇다면 어떤 형태의 공연을 해갈 것인가, 고민이 필요하죠.

나의 좌표나 존재감을 상대적으로 신경 쓰기보단, 그저 나 자신에 집중하도록 초연해졌나 봅니다.

부정적인 반응에는 당연히 거슬리고 짜증 나는데 예전 같진 않아요. 사실 누가 맞고 틀리고, 잘나고 못나고 그런 게 어딨겠어요. 모두가 각자 맞는 걸 하고 있겠죠. 물론 이런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여전히 내가 짱이네?’(웃음).

힙합 커뮤니티에서 ‘빈지노가 이젠 힙합에 대한 애정이 떨어진 것 같다’라고 말하는 글을 봤어요.

제 아이덴티티를 두고 힙합만이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저는 여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이 크고,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힙합은 제가 좋아하는 여러 재료 중 하나예요. 곧 나올 앨범에는 소위 말하는 힙합적인 것과 힙합적이지 않은 게 다 섞여 있을 거예요. 앨범을 들어보면 그냥 저 같아요. 나다운 걸 하는 게 중요해요.

 

빈지노다운, 임성빈다운 게 뭔지는 본인만이 제일 잘 알 수 있겠군요.

혹은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더 잘 알 수도 있고요. 저는 적어도 유행하는 걸 찾아 반영하고 더 젊어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어요.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이 할 법한 이야길 듣고 싶지 않나요? 나는 나의 단어와 말투로, 내가 할 법한 말을 해요. 내가 나로서 음악을 하는 거예요. 그 사실이 첫 번째지, 사운드니 장르니 뭐니 하는 건 그에 비하면 상관없는 문제죠.

 

어쩌면 음악에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아요. 이런 이야기를 쭉 들은 후 비로소 앨범을 감상한다면, 지난 몇 년을 거쳐온 아티스트의 결과가 2023년 이렇게 세상에 드러나는구나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2023년 오랜만의 새 앨범 공개를 눈앞에 둔 지금 당신의 기분은 안녕한가요?

그동안 한 날씨 속에 있다가 이제 조금 다른 내일을 맞을 것 같은 기분이에요.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B컷

자유를 노래하는 밴드 새소년

음악으로 만난 고상지와 박준면

장기하식 리듬에 빠져

에디터
권은경
포토그래퍼
N'OUIR
스타일리스트
정환욱
헤어·메이크업
김우준
어시스턴트
윤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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