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판타지 향기가 풍기지 않나요? 드라마 <구미호뎐1938>에서 구미호를 연기하는 이동욱은 천생 ‘판타지 재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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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지금의 이동욱을 만들어준 작품”. 이동욱의 이 말처럼 드라마 <도깨비>의 저승사자 캐릭터는 그가 가진 본연의 매력과 그가 꾸준하고 성실하게 축적해온 재능을 극대화했다. 우선 비주얼 자체가 판타지 같다. 깊은 아이홀과 우뚝한 콧날, 백옥 피부와 유난히 붉은 입술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검은색을 걸친 듯한 피지컬은 저승사자라는 이질적인 존재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극 중 얼음 송곳처럼 차갑고 날이 선 저승사자는 사랑하는 상대 앞에서는 무장 해제되어 달달한 멘트를 건넨다. 이때 자칫 앞뒤가 맞지 않는 태세 전환이 뜬금없게 느껴지지 않는 건 이동욱이 가진 로맨틱한 이미지 덕분이다. 판타지와 로맨스. 이 둘을 동시에 배합하면 그게 이동욱이 가진 독보적인 색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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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
이동욱이 이어 온 판타지 캐릭터 계보의 시작점이다. 드라마 <아이언맨>에서 그는 분노가 차오르면 몸에서 칼날이 돋아나는 주인공을 연기했다. 심지어 괴력을 발휘하고 차보다 빨리 달리기도 한다. 드라마는 이런 능력으로 악의 무리를 웅장하게 처단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몸에 칼이 돋는 남자와 그를 보듬는 여자의 로맨틱 코미디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 설정에 그친 기이한 능력, 그걸 보여주는 엉성한 시각효과가 날카로운 부메랑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치미 뚝 떼고 만화 같은 설정을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표현한 이동욱의 얼굴만큼은 흡입력이 있다. 그의 차가운 외모에서 판타지가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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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지옥이다
이동욱의 반전 같은 얼굴이 번뜩인 작품이다. 치과 의사의 가면을 쓴 살인마 역을 맡아 이동욱은 고시원을 배경으로 벽을 긁는 소리처럼 섬뜩한 공포가 스멀스멀 퍼지는 이야기에 의외성과 차이를 더했다. 그의 첫 악역 연기였는데 보고 나면 의외라기보다는 이제야 왜 이런 역할을 시도했지 싶은 생각이 든다. 좁고 어두운 세계관에서 이동욱의 흰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핏기 없고 싸늘해 보이며, 동그랗고 큼직한 눈은 희번덕거리기에 최고의 재료였다. 이전의 이동욱에게서 상상할 수 없었던 가히 비현실적인 얼굴. 그래서 다크 판타지 캐릭터로 꼽아 봤다. 게다가 그가 연기한 괴물 같은 존재가 현실에는 결코 존재하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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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뎐
<도깨비>로 한 단계 새로운 챕터를 맞이한 이동욱의 이후 행보는 철인 3종 경기 같았다. 수영, 달리기, 마라톤을 차례로 소화하듯 <라이프>, <진심이 닿다>, <타인은 지옥이다>를 거치며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에 발을 딛었다. 그다음 작품인 <구미호뎐>도 전작들과 차원이 달랐다. 전통 설화와 요괴를 현대로 끌어들인 판타지물로 그가 선택한 역할은 ‘남자 구미호’. 엄청난 재력가이자 문무에 능하며, 평소에는 빈둥거리지만 일은 똑 부러지게 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금수저 사기캐’ 같은데 실제로는 요괴를 처단하는 산신이다. 이동욱은 그 양면을 아주 멋지게 연기했다. 게다가 말빨도 대단한 캐릭터다. 대사의 적지 않은 분량이 그의 애드리브였으니, 이동욱이야말로 ‘사기캐’다.
- 프리랜스 에디터
- 우영현
- 사진
- tvN, OCN,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