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매 순간 분노와의 투쟁이다.
세상엔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일단 이 분노는 출근길부터 시작된다. 지하철 계단에서 우산의 방향을 뒤따라오는 사람의 명치를 향해 휘두르는 사람,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 사람, 이미 숨 쉴 공기조차 없는 지옥 상태에서 계속 밀고 타는 사람들. 그리고 반대로 나 역시도 누군가에겐 화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백팩을 앞으로 매지 않은 나, 큰 소리로 음악을 크게 듣는 나, 지하철 손 잡이 두 개를 단단하게 움켜쥐고 놓지 않는 나. 그렇다. 우리는 매일이 치열한 생존이며 경쟁이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적절한 예의와 배려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해 사무실에 앉는 순간 두 번째 분노 타임이 시작된다. 모든 일에 숟가락만 얹으며 지적질만 해대는 얌체 상사, 커뮤니케이션을 두 번 세 번 하게 만드는 일 머리 없는 동료, 탕비실에 일주일 치 간식이 채워지면 순식간에 다 털리는 집단 몰지성, 일 년 내내 오를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연봉 동결과 무지막지한 야근과 주말 근무는 또 어떤가. 이쯤 되면 산다는 건 고통이자 형벌이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데! 대상이 불분명한 분노는 계속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제 분노는 일상 속에서도 소소하게 그리고 때로는 엉뚱하게 분출이 된다. 그 분노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를 향해 빗나갈 때도 있고, 때로는 걸려오는 스팸 전화나 우연히 어깨를 부딪친 타인을 향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울그락 불그락해지는 얼굴 근육을 힘겹게 붙잡고 속으로 참을 인을 새긴다. 소소한 분노에 굴복하는 것은 내 마지막 존엄성마저 해치는 행위임를 되뇌며 말이다.
이탈리아 고대 로마제정기의 철학자 세네카는 <분노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분노가 가진 위험성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경고의 메시지를 울린다. 그 가운데 기억할 만한 구절을 소개한다.
“너의 분노는 일종의 광기다. 무가치한 것에 높은 가격을 매기기 때문이다.”
“분노는 사치보다 더 나쁜 죄다. 사치는 자신의 쾌락을 즐기는 것이지만, 분노는 남의 고통에서 기쁨을 얻기 때문이다.”
“분노는 악의와 질투를 능가한다. 악의와 질투는 그저 어떤 사람이 불행했으면 하고 바라지만, 분노는 직접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분노는 우리에게 증오하라고 말한다. 인간 본성은 남들을 도우라고 명하지만, 분노는 남들에게 해를 입히라고 명한다.”
“분노는 무너져 내리는 건물과도 같다. 자신이 무너트리면서 파괴해버린 것 위로 자기 자신도 같이 산산이 부서져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한 때 나는 거센 분노의 원인을 찾고자 정신과를 찾아갔던 적이 있다. 몇 가지 테스트 끝에 의사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S님 께서는 그동안 인생을 상당히 참고 사셔왔던 것 같아요. 마음의 분노를 평상시에 지나치게 억압해서 자신도 모르게 쌓여온 그런 방어 기제가 분노를 더 키워온 것이지도 모르죠. 이제는 본인의 의견을 어느 정도 부드럽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셔도 좋을 겁니다.”
다시 한번 분노의 대인배 세네카의 명대사를 곱씹으며 오늘을 산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웃어라.”
- 프리랜스 에디터
- 김소라
- 사진
-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