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2023 F/W 속에 피어난 샤넬의 영원한 코드, 까멜리아.
우리가 패션쇼에 기대하는 건 과연 뭘까? 사람마다 또는 시대마다 다를 테지만 언제 어느 때나 공히 기대하는 보편적인 것이 꿈처럼 강렬한 자극일 것이다. 패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판타지 말이다. 이번 시즌 샤넬은 어떤 꿈으로 우리를 이끌까? 설레는 마음으로 현실과 철저히 분리를 원한 듯한 검은 공간으로 들어서자 압도적인 스케일의 스크린이 눈앞에 펼쳐졌다. 영상 속에는 일본의 모델이자 배우인 고마츠 나나가 60년대 레트로풍 아이 메이크업을 한 채 천천히 움직이는 회전목마를 타고 있다.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영상을 감상하며, 쇼장 한가운데에 다다르자 마치 미로 안에 숨겨둔 듯한 거대한 까멜리아 조형물이 등장했다. 탄성을 지를 정도로 크고 풍성한 자태로 말이다. 커다란 꽃잎 위로 회전목마를 탄 고마츠 나나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아련한 느낌의 흑백 영상을 보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샤넬의 2023 F/W 핵심 코드는 까멜리아임을.
“까멜리아는 단순한 주제를 뛰어넘은 샤넬 하우스의 불멸의 코드입니다. 평온한 느낌을 주는 친숙한 꽃, 까멜리아의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면모를 특히 좋아합니다.” 버지니 비아르의 말처럼 동백나무의 꽃인 까멜리아는 추운 겨울에 피는 꽃이다. 맹렬한 추위를 뚫고 피어나기에 그 강인함은 더욱 부각된다. 또 까멜리아는 꽃이 질 때 꽃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게 아니라 꽃봉오리째 툭, 그야말로 간결하게 툭 떨어진다. 강인한 생명력과 드라마틱한 마무리 탓에 무수한 시의 소재가 된 꽃이 바로 까멜리아다. 일본의 배우 고마츠 나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상은 듀오 사진가 이네즈와 비누드의 작업물로, 쇼가 시작되자 그 영상은 거대한 까멜리아 안에 투영되기 시작했다. 고마츠 나나의 눈은 마치 까멜리아의 눈이 된 것처럼 겹쳐 보이기도 했고, 회전목마는 까멜리아 안에 들어가 돌아가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켰다.
“이네즈와 비누드가 촬영하고 배우 고마츠 나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상 속 배경인 회전목마의 에너지에서 버뮤다 쇼츠 슈트와 비대칭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버지니의 말처럼 까멜리아는 포켓, 재킷, 버튼 위, 그리고 로맨틱한 프린트 속에서 피어났으며, 컬렉션 전체에 잔잔하게 스며들어 경쾌한 터치를 더했다. 또한 회전목마에서 얻은 영감은 비대칭 코트, 슬릿이 들어간 드레스, 비스듬한 앞면의 버뮤다 쇼츠, 슈트에 녹아들었고, 흰색, 빨강, 섬세하고 다양한 톤의 분홍까지, 마치 실제 까멜리아의 색처럼 생생하게 옷에 표현되었다. 그렇다고 꽃이라는 오브제를 보고, 이번 컬렉션이 마냥 여성스럽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브리엘 샤넬이 즐겨 입었듯 피크트 라펠, 댄디한 코트, 남성 가운, 남성 재킷 등 남성적인 디테일을 곳곳에 활용해 쇼가 여성스럽게 흐르는 것을 막았으니 말이다.
“바랜 듯한 색상, 더스티 핑크, 세공, 1960년대와 70년대의 느낌, 영국적인 분위기, 편안하게 몸을 감싸는 코트, 정통 소재 등으로 컬렉션을 더욱 사실적고, 매력적으로 풀어냈습니다.” 버지니의 말을 곱씹으며, 쇼를 다시 한번 보는 중이다. 하얗던 까멜리아가 피날레에 이르러 눈부시게 빨간색으로 변하는 모습이 화면에 흐른다. 더없이 시적인 쇼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패션쇼에 기대한 것을 가장 근사하게, 가장 판타지적으로 구현한 하우스가 바로 샤넬임을 새삼 확인했다. 룩 하나하나에 피어난 까멜리아와 거대한 오브제, 좌석에 놓인 까멜리아 생화까지, 까멜리아로 시작해 까멜리아로 끝난, 잊지 못할 꿈으로 남을 샤넬의 2023 F/W에서 우리는 패션의 존재 이유를 강렬하게 목격했다.
“까멜리아는 단순한 주제를 뛰어넘은 샤넬 하우스의 불멸의 코드입니다. 평온한 느낌을 주는 친숙한 꽃, 까멜리아의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면모를 특히 좋아합니다.”
- 패션 에디터
- 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