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러울 만큼 유별나지만 그래서 매력적인 남주가 나타났다.
<일타 스캔들>의 최치열
“또라이인데 재수까지 없네. 왜 저렇게 사람이 차갑지 그랬다가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 추운 사람이구나 했다가, 어라? 사람이 은근 따뜻하네. 이 온기는 뭐지? 했다가 걱정했다가 많이 아팠다가 원망스러웠다가 애틋했다가 그러고는 이러고 있네요.” 남행선(전도연)의 이 애정 어린 말은 서로 마음을 빼앗고 빼앗긴 일타 강사 최치열(정경호)을 스캔하듯 상세히 설명해준다.
<일타 스캔들>의 잘나가는 수학 강사 최치열은 까칠하다. 예리한 게 아니라 예민하다. 오죽하면 배부름의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섭식 장애를 앓는다. 또 칼같이 선을 지키며 산다. 선 안 지키고 사는 걸 더 피곤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밉지 않다. 수학 답안처럼 그의 인생도 막힘없고 틀림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허술하다. 연약하기 이를 데 없다. 여기서 의외의 인간미가 나온다. 깡마른 몸으로 허둥대는 모습에선 없던 보호 본능도 생긴다.
결정적으로 최치열은 속에 뜨신 게 있다. ‘나는 좋아한다. 이 여자를’ 이렇게 마음의 답을 확인한 뒤로 상대에게 온기와 애정을 열강하듯 쏟아낸다. 대책 없이 사랑에 빠져 “아니라고 부정도 해 보고 이런저런 합리화도 해 봤지만 피할 수 없었다”고 고백을 서슴지 않는 남자는 흔치 않다. 처음에는 고난이도 수학 문제처럼 영 답이 보이지 않는 상대이지만 어쨌든 애니웨이. 틀릴 때마다 답에 가까워지듯 알면 알수록 이런 최치열에게 열렬해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연애대전>의 남강호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연애대전>은 이야기 면에서 솔깃하다. 남자라면 지긋지긋한 변호사 여미란(김옥빈)과 여자를 병적으로 의심하는 인기 배우 남강호(유태오)의 계약 연애를 그린다. 서로 상극인 그들을 통해 사회 문제인 남녀 갈등 요소를 끌어들인 점이 흥미롭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후 전개는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맴돈다. 오해하고 미워하다 이해하고 사랑에 빠지는 수순이다. 그럼에도 꽤 재미있다.
로맨스 장르로서 순도 높은 재미는 캐릭터로부터 기반한다. 현실판 ‘원더우먼’ 여미란은 대책 없이 털털하고 주먹 좀 쓰는 액션파다. 남강호는 ‘멜로의 신’이라 불린다. 하지만 이성과의 스킨십에 불안을 느낄 정도다. 망가짐도 불사하는 김옥빈이 극을 쥐락펴락하는 와중에 유태오가 연기하는 남강호가 큰 매력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멋지다. 황홀한 수트 핏은 또 어떻고. “지구상에서 가장 잘생긴 배우 중에서도 가장 배우 같은 얼굴”이라고 감독이 밝힌 유태오의 캐스팅 이유가 정말이지 납득된다.
무엇보다 남강호는 순수하다. 가정사와 과거 연애로부터 촉발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는 과정이 그리 미덥지 않지만, 여미란과 조심스럽게 연애를 시작하고 한 발씩 진도를 나간다. 오랜만에 자전거 페달을 엉거주춤 다시 밟는 거랄까. 완벽한 겉모습에서 예상 못한 순정 어린 모습이 오히려 새롭게 느껴진다. 유치할 수도 있는 연애담을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다면 남강호는 로맨틱한 몫을 다 한다.
<신성한, 이혼>의 신성한
누구나 다 나름의 내밀한 사연이 있다. 남들의 문제적 사연을 술술 다루는 이혼 전문 변호사 신성한(조승우)도 그렇다. 굴레 같은 사연을 지닌 게 확실하다. 원래 그는 피아니스트였다. 독일에서 음대 교수로 지내다 불현듯 뒤늦게 사법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피아노 치던 머리로” 끝내 변호사가 된 뒤로는 이혼 소송만 맡고 있다. 범상치 않은 사연이 농밀하게 느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간미 넘치는 인물”. 조승우의 설명처럼 신성한은 극 초반부터 매우 사람 냄새 나는 면모를 보여준다. 월세 타령을 하는 건물주이면서 오랜 친구들과 티격태격하고 트로트를 흥얼거린다. 그런가 하면 흔들리는 의뢰인에게 승소를 다짐하며 “근처 국밥집 가서 따뜻한 국밥 드셔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약속을 지킨다. 한편 취중에는 누군가를 향한 날 선 감정을 꺼내기도 한다. 술기운에 피아노를 맹렬하게 연주한 뒤에는 쓸쓸한 표정으로 묘한 구석을 남긴다.
명석함과 인간미가 균형을 이루고 예술적 기운이 충만한 것만으로도 신성한은 흥미를 유발하는 인물이다. 나아가 종잡을 수 없는 사연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앞으로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면 이 매력적인 캐릭터가 한층 입체적으로 그려질 거다. 음악이든 인물이든 뻔한 레퍼토리는 튀지 않는다. 변주가 있어야 계속 끌리는 법이다.
- 프리랜스 에디터
- 우영현
- 사진
- tvN, Netflix, 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