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신나게 공을 차고 뛰노는 일곱 살 꼬마일 때부터, 황희찬에게 축구는 ‘당연한 것’이었다. 축구라는 의심 없는 운명 속에 산 공격수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을 이끈 결승골의 주연이 되었다.
<W Korea> 축구 국가대표팀이 12월 7일에 입국했는데, 황희찬 선수는 10일 밤이면 소속팀인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에 합류하러 떠나죠. 그저께는 청와대에 갔고, 어제 일정은 어땠어요?
황희찬 인터뷰를 네 군데 했어요. 방송 3사 뉴스 프로그램과 스포츠 채널요.
포르투갈과 치른 조별 리그 3차전에서 추가 시간에 결승골을 넣은 기분이 어떤지, 손흥민 선수의 패스를 받을 때 골이 터질 거라 직감했는지, 많이들 묻죠?(웃음) 저는 카타르의 날씨가 경기하기에 어땠는지 궁금해요. 그곳 여름 날씨가 너무 뜨겁다고 월드컵 일정까지 조정한 초유의 월드컵이잖아요.
날씨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사는 영국과 비교하면 비도 안 내리는 편이고, 더운 나라니까. 영국은 추울 때 정말 춥거든요. 저는 겨울보다 여름이 좋아요. 우리가 조별 리그를 치를 땐 4시랑 6시 경기였고, 마지막 16강전 때만 밤 10시 경기였어요. 초저녁이면 선선한 편이고 밤에는 좀 쌀쌀할 때도 있었어요.
각 클럽이 한창 시즌을 치르는 도중 월드컵이 열려서 선수들 컨디션에 대한 우려가 많았잖아요. 막상 치러보니 어때요?
적지 않은 선수들이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을 당해서 참가하지도 못했어요. 그런 점에서 이번 카타르 월드컵 일정에 아쉬움이 큰 선수가 많을 것 같아요. 그래도 좋았던 건 따뜻한 월드컵을 치렀다는 거예요. 따뜻한 지역에서 경기할 수 있었다는 건 긍정적인 점이에요.
경기장 잔디는 괜찮았어요? 카타르는 뜨거운 기온 속에서 잔디를 관리하려고 돈과 기술을 엄청 투자한다고 들었어요.
아, 관리가 잘된 잔디였어요. 그런데 우리가 쓰는 잔디하고는 아예 성격이 다르더라고요. 우리 선수들이 적응하기까지 일주일은 걸릴 정도였어요. 보통은 하루 이틀이면 경기장 잔디에 적응하거든요.
밟으면 느낌이 어땠는데요?
보통의 잔디보다 더 부드럽기도 하면서… 잔디 높이가 꽤 낮았어요. 그래서 패스를 받을 때 공이 오는 속도가 빨랐어요. 땅도 좀 딱딱한 편이었고요.
세리머니하면서 상의를 벗었을 때 보인 그 검정 조끼 말이에요. 선수들 활동량과 움직임 등등을 세세하게 측정해주는 장비. 리그 경기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건가요?
네, 클럽 팀에서도 다 사용해요. 요즘은 국내 축구 동호회에서도 많이 쓴다던데요? 사실 그걸 착용하지 않아도 선수들에 대한 데이터는 다 잘 파악할 수 있는 편이에요. 이젠 경기장 안에 그런 측정 시스템이 따로 갖춰져 있거든요.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팀이 있기도 하고.
그럼 안 입어도 되지 않아요? 좀 답답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네. 아무래도 몸이 약간 쪼이니까 불편하다고 안 입는 선수도 많아요. 굳이 착용하는 이유는 팀 내부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고, 뭐 꼭 착용하지 않아도 되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이런 설명을 해주니까 일타강사한테 그들만의 리그에 대해 전해듣는 기분이네요.
이 정도로 설명하는 건 저도 처음이에요(웃음).
스포츠 경기를 경기장에서 보는 것과 중계방송으로 보는 것의 시야 느낌은 꽤 달라요. 축구 중계방송은 카메라가 주로 공의 움직임을 따라가잖아요. 그런데 공이 오지 않아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카메라 프레임 밖의 선수들이 있어요. 황희찬 선수는 부상 문제로 우루과이전과 가나전을 벤치에 앉아 관람했습니다. 그 시선으로 볼 때 눈에 들어온 인상적인 장면이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순간들이 중계 화면에 잡혔을지 안 잡혔을지 모르겠는데, 저는 이번에 정말 큰 감동을 느꼈어요. 경기장을 뛰는 선수만 경기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벤치에 있는 선수들도 진짜 자기가 뛰는 것처럼 응원하고, 목이 터져라 도왔어요. 예를 들면 경기장 안 선수들은 자기 뒤편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알아채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벤치에서 ‘뒤에 수비 있어!’ ‘돌아서야 돼!’ 막 소리치며 알려요. 경기를 못 뛰고 벤치에 앉아 있으면 속으로 심통을 부리거나 무심하게 구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 팀은 서로 다 같이 돕는 모습이어서 뭉클했어요.
국가대표팀의 황희찬은 지금껏 벤치보다 경기장에 있는 선수였는데, 이번에 좀 다른 경험을 한 거군요.
네. 저는 선발로 나서는 때가 많았단 말이에요. 경기를 뛰는 선수들 모습도 대단했어요. 다들 다리에 쥐가 나고 힘든데, 90분이 넘는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고…. 그런 장면들이 주는 감동 때문에 힘이 났어요.
포르투갈전을 마치고 16강행을 확정짓기 전에, 우루과이와 가나전 결과를 기다리느라 선수들이 둥글게 모여 작은 폰을 들여다봤죠. 승부차기 같은 결정적 시간이 오면 한국 팀은 어깨동무를 하고 일렬로 비장하게 서 있어요. 그런 건 정말 한국적인 모습이고, 주로 동양의 정서 같기도 해요. 그 정서의 영향인지 어떤 때는 행동거지와 인성이 너무 강조된다고 느끼진 않나요?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마냥 자유로울 것 같은 외국 선수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그들만의 규율을 따라요. 잘하는 선수들은 인성도 좋은 경우가 많고요.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쨌든 인성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축구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인성적으로 훌륭한 모습을 보이는 게 더 좋은 선수로 가기 위한 기본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해요. 축구선수든 아니든, 인성은 중요한 요소예요.
문득, 인스타그램에 올리셨던 황희찬 선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진이 생각나네요.
제가 태어날 때부터 같이 살았어요. 저는 영국에 있지만, 여전히 다 같이 살고 있고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제 전부예요. 어릴 때부터 모든 면에서 필요한 걸 저한테 알려주신 것 같아요. 고마운 일에는 꼭 고맙다고 인사하고, 미안한 일에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라. 남한테 절대 피해 끼치면 안 된다…. 이런 거 가르쳐주셨어요. 제가 너무 순수하게만 컸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할머니 할아버지 덕인 것 같아서 또 고마워요.
운동선수의 DNA는 누구한테 물려받은 것 같아요?
아빠도 엄마도, 할아버지랑 할머니도, 다들 반 농담처럼 서로 ‘내 피를 물려 받은 거다’ 해요(웃음). 그런데 집안 어른들한테 진짜 운동 신경이 좀 있었나 봐요. 다들 운동을 잘 하셨다는 얘길 들은 적 있어요. 누나도 어렸을 때 육상을 잠깐 했고요.
황희찬과 축구의 첫 만남이라고 하면 언제를 꼽겠어요? 그냥 공놀이하는 걸 넘어 스파크가 튀었던 때.
2002 한일 월드컵 때요. 그 월드컵을 보면서 축구선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일곱 살이었는데, 그때부터 매일 놀이터나 운동장에 나가서 축구를 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 활동을 했고, 포항 스틸러스 유스 클럽에서도 활약했죠. 어릴 적 축구할 땐 어떤 아이였나요?
어느 정도 신체 힘은 있었는데, 피지컬적으로 특별하진 않았어요. 골 넣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경기 때 골을 하나라도 못 넣으면 그날 밤 잠을 못 잘 정도로. 중 2 때는 잠시 방황한 기간이 있어요. 부상을 당했거든요. 어차피 한동안 운동 못하니까 이때 실컷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하자는 마음으로 놀았더니 2주 만에 14kg이 쪘어요. 팀에 복귀했을 때는 친구들 실력이 저보다 성장해 있더라고요. 충격을 좀 받았어요. 그때부터 선수로서 철들기 시작한 것 같아요. 알아서 계획을 짰고,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누가 가르치고 강요해서 황희찬을 만든 게 아니라 스스로 깨우친 거네요?
맞아요. 나름 좌절을 겪으면서 힘든 상황에서 이겨내는 법이나 노력하는 법을 알아간 듯해요.
그럼 그 이후 ‘나는 큰 선수가 될 거야’ 식으로 포부도 제법 커졌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그냥 ‘나는 무조건 된다’라고 생각했어요. 자라서 국가대표 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고요. 모든 운동을 할 때마다 ‘응. 나는 잘할 거야’ 하는 마음으로 했어요.
바로 그 유명한 위닝 멘탈리티네요!
그거 굉장히 중요해요. 어린 친구들한테도 많이 얘기해주고 싶은 부분이에요. ‘나는 이미 이겼다’, 이길 생각을 하는 거. 자신감에 찬 상태에서 하는 것과 ‘내가 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있어요. 자꾸 주문을 외우다 보면 주문대로 생각하는 법을 익힐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이기는 법을 더 알게 되고 그래요.
포항제철고 졸업 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로 가셨죠. 유럽에서 아예 유소년 클럽 시절부터 겪었다면 모를까, 프로 무대로 진출하면서 낯선 나라로 향했으니 적응하기가 쉽진 않았겠어요.
네. 프로 시작을 바로 유럽에서 한다는 건 사실 정말 어려운 일인데, 그때는 전혀 그런 생각도 안 들었어요. 왜냐면 저는 초, 중, 고를 거치는 동안 늘 득점상이나 최고상을 받으면서 컸거든요. 거기서도 제일 잘할 거라는 생각으로 갔죠. 갔는데….
각 나라의 황희찬이 다 모여 있던가요?
브라질이니 유럽이니 이런 데서 다 잘하는 선수들이 왔더라고요. 처음 6개월 정도는 정말 힘들었어요. 저한테 패스가 잘 오지도 않았고. 어느 순간 자신감이 떨어졌어요. 패스 하나를 위해서도 소통이 필요한데 언어 때문에 뭐가 잘 안 됐어요. 일단 언어가 제일 중요하다는 걸 느껴서 한동안 언어 공부를 집중적으로 했어요. 말이 좀 통한 이후부터 조금씩 제 축구도 보여줄 수 있었어요.
20대 시작과 함께 유럽 생활을 했으니 쇼핑도 거기서 종종 했겠죠. 처음으로 거금을 들여 구입한 아이템은 뭐예요?
오스트리아에 처음 갔을 때 신발하고 시계를 샀어요. 아주 비싼 거. 손을 벌벌 떨면서 카드를 냈던…(웃음). 제가 처음 번 돈으로 그렇게 써보는 거였거든요.
갓 스무 살 때 비싼 시계를 샀으면 손 떨 만했네요.
그러니까요. 당시 저한테는 정말 큰 액수여서 계산대 앞에 서 있으면서도 속으로 ‘아, 이걸 진짜 사도 되나. 이게 맞나. 엄마한테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니야?’ 이랬어요. 지금 생각하면 재밌는 기억이에요.
프리미어 리그에는 이제 적응을 마쳤죠?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임대를 거쳐 울버햄튼 원더러스로 가셨어요.
제 스스로는 적응을 마쳤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적응 자체가 힘든 리그예요. 이적료가 몇천억인 세계적 선수들도 적응을 제대로 못하고 떠나는 곳이잖아요.
과거 이태리나 독일 무대에서 활약하다 프리미어 리그로 옮긴 후, 관상이 달라졌던 몇몇 선수가 떠오릅니다…. EPL의 어떤 점이 그렇게 잘하는 선수들도 힘들게 만드는 걸까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리그와는 정말 다른 점이 많은 느낌이에요. 리그 자체의 실력이나 힘이 강한 것도 다른 점이지만, 축구 외적으로도 적응해야 할 게 많아요. 날씨 문제도 커요. 언어와 문화 차이도 극복해야겠죠. 이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이라면 실력에 있어선 의심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실력 외의 요인 때문에 생기는 정신적, 심리적 문제를 잘 조율하지 못하면 자기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힘든 곳이 프리미어 리그 같아요.
10대 때부터 이기는 법을 알았던 황희찬의 멘탈리티는 그래서 지금, 안녕한가요?
제가 스무 살부터 유럽 생활을 하면서 한 시즌에 한 번씩은 꼭 멘탈이 힘들어졌거든요. 축구를 둘러싼 일도 사람이 하는 거다 보니까 가끔 제게 공정하지 못한 결과가 돌아올 때도 있었어요. 이를 테면 외국인 선수인 저보다는 자국 선수가 더 챙김을 받는 식으로, 겉으로 쉽게 드러나진 않는 것들. 그런데 이젠 오히려 즐기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어요. 잘 즐길 수 있을 거 같아요. 전에는 힘들게 느꼈을 그런 순간들이 오히려 저를 더 강하게 만들 거예요. 절대 지고 싶지 않다고 늘 생각했던 나니까. 이 마음으로 경쟁하고 도전도 하고 있는 상태 같습니다.
뛰어난 운동선수에게는 잠재력과 가능성이 유독 폭발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커리어의 정점이 되는 순간요. 황희찬한테는 그 시점이 왔나요? 아직 안 왔을까요?
아직은, 안 왔죠. 저는 현재 계속해서 ‘우상향’ 중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 패션 에디터
- 이예지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 맨 디지털 디렉터
- 최진우
- 포토그래퍼
- 김영준
- 스타일리스트
- 박지영
- 헤어
- 장해인
- 메이크업
- 이봄
- 어시스턴트
- 이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