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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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온도가 서늘함을 넘어 차갑게 내려앉을 시점, 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가 시작된다. 주인공 연쇄살인마를 맡은 배우 김영광이 깊고 깊은 푸른빛 저 너머, 날카롭게 형형한 눈빛을 건넬 차례다.

주얼 장식의 실크 셔츠와 톱, 팬츠는 드리스 반 노튼 제품.

<W Korea> 밤샘 드라마 촬영을 하고 왔다면서요? 하지만 재생 속도를 두 배 빠르게 돌린 것처럼 화보 촬영이 일사불란하게 착착 돌아갔네요!

김영광 제가 특별하게 잘한 건 없는데, 워낙 예전부터 합을 맞춘 친한 스태프들을 만나 편하게 촬영하다 보니…(웃음)

오는 11월 18일 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가 공개됩니다. 타짜로 말하자면 패를 뒤집기 직전의 심경은 어때요?

촬영하는 내내 너무 즐거웠던 작품이에요. 오픈을 앞두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거든요. 막연하게 기다리던 시간이 끝났다 싶으니 지금은 심장이 많이 두근거려요. 긴장인지, 기대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기존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보니, 긴장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요.

얼마 전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죠? 3년 만에 정상적으로 진행되어 더 의미 깊은 시간이었을 텐데, 10월의 부산은 어땠나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어요. 작품을 들고 간 터라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즐거웠어요. 영화인들의 열광적인 열기를 느꼈거든요. 관객들 앞에서 <썸바디>를 소개하는 자리라 더 뜻깊게 와 닿았을지도 몰라요.

주목받는 OTT 신작은 영화제를 통해 사전 공개하는 추세가 확실히 자리 잡았어요. 부산에서는 <썸바디> 8부 중 1~3부가 선공개됐고요. 그만큼 기대작이란 점에서 밑줄을 긋고 싶네요.

일부만 공개되니까 ‘관객과의 대화’ 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쉬워요. 작은 이야기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많은 걸 풀어놓지 못했거든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해서 기분 좋았습니다. 정지우 감독님이 뛰어난 연출로 다듬어주셨는데 제가 관객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까 조심스럽기도 했고요. 마음이 간질거려요. 이런 기분은 작품이 오픈되기 전까지 계속 이어질 것 같아요.

유독 기억에 남은 반응이 있었어요?

‘소름 끼쳤다?’ 얼핏 들었는데도 기분이 정말 좋았거든요. 전편을 다 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요. 작품을 본 사람들이 서로 해석한 내용으로 토론하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여운이 남는 작품은 ‘그래서 그 사람이 그랬던 거야’ 하면서, 각자 찾아낸 단서로 분석하게 되잖아요? 그런 바람이 있습니다.

러닝 톱과 가죽 팬츠는 보테가 베네타, 팔찌와 반지는 크롬하츠 제품.

영화 <해피엔드> <은교> <4등> <침묵> <유열의 음악 앨범> 등을 연출한 정지우 감독은 금기시된 인간의 욕망과 일상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거로 유명해요. 감독부터 각본, 각색, 촬영 등 멀티플레이어로서 탄탄한 스토리를 선보이죠. 그의 러브콜을 받자마자 첫 번째로 떠오른 생각이 뭐예요?

나를? 도대체? 감독님께서 왜!!!

지금 그 표정은, 당황한 밈으로 유명한 ‘벤틀리’ 얼굴과 매우 흡사한데요(웃음)?

딱 이 표정 그대로였어요(웃음).

정지우 감독의 넓은 이야기 스펙트럼 속에서 상상해본 당신의 모습이 있었나요?

제가 어떤 역을 맡게 될까, 상상하거나 기대하고 자시고도 없었어요. 그저 ‘무조건 해야죠,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가 뭐라고, 어서 마음껏 절 가져다 쓰세요( 웃음)!’였어요. 가슴이 벅찼어요.

정지우 감독은 ‘영광 배우가 로맨틱 코미디에서 보여준 캐릭터와 연기를 좋아하는 팬이었다. 장르를 넘어서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여러 가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어요. 배우에겐 너무나 설레는 멘트 아닌가요?

그렇죠! 전 감독님을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정신이 혼미했어요. 그저 빨려 들어가듯 감독님의 말씀을 경청했는데요. 작품의 내용이나 캐릭터 이야기는 그 순간 약간 흐릿하게 들리고, 그저 속으로 ‘네, 할 수 있습니다!’만 외쳤어요.

누군가 나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나아가 가능성을 발견해준다는 것. 엄청나게 달콤한 당근인 동시에 지쳐도 힘을 내야 하는 채찍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썸바디> 촬영장에서 지쳐본 적이 없어요. 정지우 감독님의 첫 시리즈물인데, 그간 고수하던 영화 제작 방식 그대로 진행되었거든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어요. 배우가 아직 몸이 덜 풀렸거나, 어딘가 불편한 지점이 있다면 그걸 캐치해 상황을 유연하게 해결하세요. 지나가는 말도 모두 기억해 ‘배우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되짚어 작품에 녹여내시고요. 다정하고 세심하셔서 감동받은 적이 많아요. 정말 행복한 경험이었어요.

서로를 향한 고백이 절절하네요(웃음). <썸바디>에서는 소셜 앱 ‘썸바디’를 중심으로 살인사건이 얽혀요. 주인공인 연쇄살인마 성윤오는 당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낯선 사람이죠. 영화 <너의 결혼식> <해피 뉴 이어>, 드라마 <초면에 사랑합니다> <안녕? 나야!>에서의 로맨틱한 배우 김영광을 기억한다면 더더욱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순조로웠나요?

처음에는 조금 어려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배우들은 어떤 연기를 할 때, ‘내가 왜 이 상황에 놓여 있는가’, ‘내가 왜 이 말을 하고 있는가’를 역추적하거든요. 명분과 당위성을 찾는 게 습관이에요. 근데 이번에 감독님과 고심해 찾은 결론은, ‘성윤오가 왜 그러는가에 대한 특별한 이유를 만들지 말자’였어요. 그것이 이 사람을 더 잘 설명하는 방법이겠다 싶었죠. 제가 그를 이해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풀어놓으면 감독님께서 살을 붙이고 정리해서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셨어요. 어려웠다면 어려웠는데, 이걸 실현해가는 과정이 되게 재밌었어요.

포스터에 담긴 김영광의 눈빛이 매우 인상적이에요. 극적으로 터지면서 어딘가 묘하게 억눌린 감정, 그 속에서 번뜩이는 광기가 엿보여요. 촬영 때 어떤 생각을 하면서 감정을 끌어올렸나요?

저도 포스터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요. 따로 촬영한 건 아니고 현장 스틸이에요. 그래서 저도 작품 내용을 더 알려드리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데, 죄송합니다(웃음). 포스터를 본 친구들한테서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평소 보던 제 얼굴이 아니라 더 호기심이 든다고요.

<더블유>와 나눈 지난 인터뷰에서 ‘기회가 된다면 재밌는 악역, 독특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고 했던 말 기억하나요?

소원을 이뤘네요.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간절하게 원한 만큼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어요. 제 안에 숨어 있던 많은 요소를 작품으로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스스로 약속을 지킨 것 같아 상당히 기뻐요. 한편으로는 다행이고요. 앞으로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보겠다는 말을 특별하게 하지 않아도, 이제는 이러한 제 마음을 알아주시지 않을까 해요. 어떤 자신감도 생겼어요.

하이넥 집업 장식 판초는 샤넬 제품, 장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관객과의 대화’에서 <썸바디>를 통해 배우로서 한 차례 성장하는 기쁨을 맛봤다고 했어요. 연기자로 데뷔한 14년 연차를 회사로 셈하면 차장, 부장이잖아요? 이 단계에서 느끼는 갈증은 어떠한 형태인가요?

이젠 어떤 단계, 혹은 영역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정확하게 설명하긴 모호한 개념이에요. 유명세는 확실히 아니고… 제 가능성을 조금씩 발전시켜 나가다 보면 <썸바디>의 윤오가 될 수도 있고, 또 전혀 상상하지 않은 인물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직 캐릭터 몰입감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연기력을 지니진 못했지만, 그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욕구가 굉장히 커요. 저 너머가 어디일까, 가보고 싶어 스스로를 끈질기게 괴롭히곤 해요. 이런 감정은 신인, 신입일 때와는 전혀 다르죠. 최근에는 약간 피 말릴 정도로 이런 고민에 깊이 빠져 있어요.

성장에 대한 욕구가 뜨겁게 발화한 시기군요?

그런데 또 막상 촬영이 끝나면, 마음이 편해져요. 여정이 좋았건, 힘들었건, ‘이번 여행도 뭔가 재밌었다!’ 하는 게 남아요. 그 맛이 있더라고요. 그런 순간이 좋아서 작품에 더 몰입하는 것 같아요.

<썸바디>의 연쇄살인마는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잖아요. 김영광은 어떤 편인가요? 그와 반대로 절제하고 누르는 감정이 익숙한가요?

저는 많이, 많이 누르는 편이에요. 밤에는 오늘 하루가 어땠는가, 서툰 부분은 없었는가 늘 복기하죠. 너무 들뜨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해요. 들뜨면 놓치는 부분이 많거든요.

자기 검열을 하면 마음이 가라앉는 일이 잦지 않나요? 그럴 때 심연에서 올라오는 당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작품 하나가 보통 짧으면 4개월, 길면 8개월 정도 진행되거든요. 캐릭터와 작품 내용에 따라 좀 어두워지기도 하고, 밝아지기도 해요. 그렇지만 촬영이 끝나면 모든 게 다 해결돼요.

작품이 끝나고 재정비할 때, 자신에게 어떤 보상을 주나요?

뭐든지 주죠. 끝나면 일주일에서 2주일간은 거의 잠만 자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아무거나 먹고, 채널을 돌려보다 또 잠들어요. 휴대폰을 끄고 지내기도 해요. 사실 그리 전화가 자주 오는 편은 아니에요(웃음). 그러곤 슬슬 다음 작품을 대비하죠. 첫 촬영 때 당황하지 않도록요.

러닝 톱과 가죽 팬츠는 보테가 베네타, 팔찌와 반지는 크롬하츠 제품.

<썸바디>는 소셜 앱이 중심인 이야기예요. 당신의 폰에서 가장 사용 빈도 높은 앱은 뭐예요?

유튜브요!

고기 굽는 영상을 즐겨 본다고 했던 인터뷰가 기억나네요. 여전한가요?

요즘은 미스터리나, 음모론을 다루는 채널을 재밌게 보고 있어요(웃음). 유튜브를 보통 잠들기 전에 많이 보잖아요? 와, 정말 이런 게 진짜일까, 싶어 보다가 결국 끝까지 보지 못하고 잠들어요.

소셜 시대와 잘 어울리는 사람인가요?

아뇨. 낯가림도 심하고 숫기가 없어요. 상대와 친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수시로 민망해하거나 당황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이 일을 하면서 면역력이 생기긴 했어요.

차곡차곡 올곧고 쉼 없이 작품을 선보이는 배우, 모델 출신, 태평양 어깨로 열심히 운동하는 상남자, 비닐도 벗기지 않는 만화책을 수집하는 마니아. 여기에 삭제하거나 새롭게 주입하고 싶은 김영광 연상 단어가 있나요?

거실에서 운동하는 장면을 SNS에 올린 적이 있는데…. 매일 운동하진 못하고 작품을 앞두면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관리하는 정도예요. 언제나 최상으로 준비된 상태는 아닌데 부담스러울 때가 있죠. 지금 좀 부끄러워져서 집에 가면 운동해야겠어요.

밤새 일한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다니! 지치지 않고 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온다고 믿어요?

불안감에서 오는 것 같아요. 한 작품을 달리고 나면 누구나 끄트머리에선 지치거든요. 한계점이 와요. 쉬고 싶다, 쉬고 싶다 되뇌지만, 막상 끝나서 2주를 쉬고 나면 또 엄청난 공포가 몰려와요.

그 공포감은 어떤 형태예요?

멈추면 감이 떨어질 것 같아서요. 어딘가로 멀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무서움도 있어요. 쉬지 않고 연기해야 또 계속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만 같죠. 그래야 다양한 캐릭터의 제안이 올 것만 같고요. 그냥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꽃 모티프가 달린 재킷, 팬츠, 시스루 톱은 모두 발렌티노 제품.

앞으로 당신의 내일을 궁금해할 사람이 더 늘거라 확신해요. 그들에게 보여주고픈 내일, 당신이 그리는 내일이 있나요?

당장 하루아침에 좋은 배우로 완성되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작품이 차곡차곡 꾸준하게 쌓인다면 언젠가, 어느 순간에는 제 연기도 좋아지지 않을까요? 아직은 먼 미래인 것 같아서 현재 할 수 있는 것을 집중하고 또 집중하려고요.

가깝게는 내년 1월에 선보일 차기작, 디즈니 플러스의 멜로물 <사랑으로 말해요>가 될 수 있겠네요. 거기선 어떤 얼굴로 나와요?

사람은 저마다 사연과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예요. 오늘도 그 촬영을 하면서 한껏 슬퍼하고 왔어요. <썸바디>가 매섭다면, <사랑으로 말해요>는 짠한? ‘맵짠’으로 또 다르게 느끼실 것 같아요.

컨트리뷰팅 에디터
최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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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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