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싱글 ‘Let It Ring’을 발매하며 데뷔한 오늘날의 팝 신예, 라일리(Reiley). 2019년 틱톡에 올린 영상 하나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순간부터 현재 그가 펼치고 있는 알록달록한 팝 판타지의 세계까지. ‘제4회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로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오늘밤 이 곡을 마지막으로 저는 이 무대를 떠나요. 너무 잊지 못할 공연이었어요. 여러분이 보내주신 사랑 덕분에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어요. 모두 사랑해요. 지금까지 라일리였습니다.” 지난 10월 9일, 아침만 해도 청명하기만 했던 가을 하늘은 때아닌 비로 금세 잿빛을 띠기 시작했다. 3년간 이어진 팬데믹이 긴 터널을 지나 어느덧 내리막길을 걸을 즈음, 야외 음악 페스티벌 ‘제4회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가 열렸고 축제의 이튿날 뮤지션 라일리가 무대에 섰다. 삽시간에 쌀쌀해진 날씨에 관객들은 황급히 외투를 걸치거나 우비를 쓰며 무대를 보기 바빴는데, 경력 이후 처음으로 대형 음악 페스티벌을 찾은 라일리는 연신 웃음을 지으며, 때론 감격해 울먹이며 공연을 이어갈 뿐이었다. 감출 수 없는 행복의 감정이, 그의 얼굴에 시종 걸려 있었다. “제 인생에서 첫 대규모 공연이었어요. 2021년 첫 싱글 ‘Let It Ring’을 발매했으니 팬데믹 때 데뷔한 셈이니까요. 공연 직전까지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요. 갑자기 비가 내려서 관객들이 에너지가 떨어져 있으면 어쩌나, 혹여 가사를 까먹진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오르니 그럴 필요가 없었더라고요. 너무 크게 환호해주셔서 제가 손가락으로 어딜 가리키기만 하면 ‘꺄!’ 하는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오는 식이었어요(웃음).” 9일 공연을 마치고 며칠 후, <더블유>와의 화보 촬영 현장에서 만난 라일리가 말했다. 그는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다양한 프로모션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캘린더를 빼곡히 채운 여러 프로모션 중에서도 그가 ‘가장 기대한 일정’이었다는 <더블유>와의 화보 촬영 현장엔 그의 부모님이 동행했다. “고향인 페로 제도에서 덴마크로, 덴마크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한국으로. 3번이나 환승해야 하는, 20시간 30분의 긴 비행이었는데 한국만큼은 부모님과 함께 꼭 와야 했어요. 저와 부모님 모두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과 K팝을 좋아했거든요.” 세 사람은 흡사 하나의 ‘팀’으로 보이기도 했다. 라일리의 엄마는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그가 화보 촬영하는 모습을 빠짐없이 기록했고, 아빠는 떡볶이, 김밥, 명랑핫도그 등 간식으로 준비한 한국의 길거리 음식을 라일리에게 틈틈이 건네며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리고 아들, 라일리는 이따금 촬영에 틈이 생기면 소파에 앉아 엄마의 뜨개질을 대신해줬다. “누나가 두 명인데 쌍둥이예요. 둘 다 아이가 둘씩 있어 아쉽게 한국에 같이 오지 못했거든요. 엄마가 손주들에게 줄 담요를 만들고 계셔서,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로 저도 좀 해봤는데 소질은 없는 것 같네요(웃음).”
2002년생, 올해로 21세인 오늘날의 신예 팝스타 라일리. 그의 고향은 영국에서 약 300km 떨어진 유럽의 작은 섬 페로 제도다. 총인구 5만 명으로 강원도 평창과 비슷한 면적이자, 고래 사냥으로 유명한 나라. 라일리는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도 이곳을 떠나지 않은 채 살고 있다. “아주아주 작은 나라예요. 고향을 떠올리면 ‘안전함’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범죄도 없고 아이들은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뛰놀고. 국경일이 되면 모두가 전통 의상을 입고 길거리로 나와 어울리곤 하죠.” 살며 마주하는 수많은 행운 중 하나는,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고 훗날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깨닫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라일리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13세에 첫 카메라를 쥐었을 땐 자신만의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고, 15세까지 기계체조를 배우며 대회에 나가 관중들 앞에서 화려한 ‘플립’ 동작을 펼칠 때면 기계체조 선수를 선망하곤 했다. 그리고 16세, 처음으로 오른 뮤지컬 무대에서 자신의 앞날을 뒤바꿀 ‘음악’과 마주하게 됐다. 배역도 없이, 싱잉 파트도 없이 단지 무대의 수많은 배우들 뒤에서 춤추는 역할이었지만 라일리는 뮤지컬 무대에 선 날들을 두고두고 기억한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정말 여러 창의적인 것을 찾아 좇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뭐든 독학으로 배우곤 했어요. 돌이키면 관중 앞에 서서 그들을 즐겁게 하는 일을 유독 좋아했던 것 같아요. 기계체조 대회에 나가 사람들 앞에서 기술을 할 때, 관객석을 꽉 채운 뮤지컬 무대에 설 때 제가 살아 있음을 느꼈어요.” 그리고 라일리가 열여덟을 맞이하던 2019년, 그의 인생을 뒤바꾼 일이 벌어진다. 라일리는 틱톡을 개설해 컬러풀한 배경에 은색 마이크를 두고 열창하는 영상을 게시했는데, 첫 포스팅 후 첫 주 만에 무려 250만 팔로워를 불러모으게 됐다(현재 팔로워는 약 1100만 명이다). ‘Very Pop’이라 정의할 수 있는 통통 튀는 음악적 색깔, 뛰어난 성량, 트레이드마크인 곱슬머리의 라일리는 미국의 음반사 ‘애틀랜틱 레코드’의 눈에 띄었고 그들은 라일리가 가진 놀라운 재능을 일찍이 알아봐 정식 음반을 발매하자며 계약서를 건넸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이윽고 메이저 데뷔에 골인한 라일리의 서사를 보면 ‘21세기형 스타 탄생’이란 과연 이 같은 모습이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라일리가 2021년 3월 발매한 데뷔곡 ‘Let It Ring’은 아이폰의 기본 벨소리를 샘플링해 만들어졌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그가, 자신의 데뷔곡으로 스마트폰의 가장 상징적인 요소를 차용한 곡을 선보인 셈이다. 한편 온통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채워져 셀로판지를 연상시키는 ‘Let It Ring’의 뮤직비디오는 K팝 스타의 그것과 겹쳐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그게 바로 제가 정조준한 것이기도 해요. ‘K팝스러운 것’ 말이에요. 오래전부터 K팝의 팬이었던 저로서는 K팝이 늘 영감의 원천이었거든요. 오늘날 거대하게 성장한 K팝 산업에는 제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수준 높은 음악, 스타일링, 영상 프로덕션까지. 지금 세계의 음악 산업을 볼 때면 ‘스타’가 더는 ‘스타’가 아니게 된 현상이 눈에 띄거든요. 그런데 K팝 아이돌은 말 그대로 ‘스타’란 단어 말고는 설명할 수 없잖아요. 저는 그렇게 한 뮤지션이 보여줄 수 있는 ‘스타성’을 늘 그리워했던 것 같아요.” 라일리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단순히 음악만이 아닌, 음악을 둘러싼 모든 외피를 표현하려는 뮤지션에 가깝다. 직접 자신을 스타일링하고, 직접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며 그는 무엇보다 ‘보이는 음악’ 을 펼치려 한다. 실제 ‘Let It Ring’, ‘You’ 등 그가 직접 연출한 뮤직비디오를 보면 신예지만 놀랍도록 완성도 있는 프로덕션의 퀄리티가 눈에 띈다. “물론 음악이 가장 중요하죠. 그런데 시각적 요소도 저에겐 그와 동등하게 중요해요. 듣는 순간 여러 색깔이 보이는 듯한 음악, 이는 늘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이에요. 사람들은 ‘비주얼’을 강조하는 뮤지션에게 간혹 손가락질을 보내곤 하지만 ‘비주얼’을 통해서도 진실한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이클 잭슨, 비욘세, 레이디 가가를 보세요. 완전히 ‘미친’ 아웃핏을 통해 세상에 없는 독창적인 캐릭터를 창조한 이들이잖아요.”
‘Let It Ring’이 세상에 라일리의 존재를 알린 곡이었다면, 한편 지난해 9월 발매한 첫 EP <Brb, Having an Identity Crisis>는 비로소 라일리란 어떤 뮤지션이자 사람인지를 제시한 앨범이었다. ‘정체성 위기’라는 뜻의 단어를 앨범명에 내건 것에서 알 수 있듯, 라일리는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겪은 혼란은 물론, 틱톡 스타에서 레코딩 스타로 변신하며 겪을 수밖에 없었던 과도기적 시절의 고민을 음악에 담아냈다. “아마 세 번째 게시물이었을 거예요. 당시 틱톡에선 ‘Hey Julie! 챌린지’가 있을 정도로 카일의 ‘Hey Julie!’가 유행이었거든요. 저도 이를 커버한 영상을 올렸는데 그때를 기점으로 조회수나 팔로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던 것 같아요. 틱톡을 통해 지금처럼 노래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무척 감사하지만, 글쎄요. 그때 당시엔 모든 게 실감 나지 않았어요. 폭발적인 조회수, 좋아요 수들이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느껴졌거든요. 사실 틱톡은 목표를 위한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바로 ‘언젠가 내 음악을 할 거야’라는 목표 말이에요. 그래서 ‘Let It Ring’ 발매 이후 깊은 고민에 빠진 것 같아요. 틱톡 스타 이상이 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했죠. 그 당시를 돌이키면 마치 아주 거센 파도에 혈혈단신으로 몸을 맡긴 기분이었어요.” 오롯이 ‘나’의 음악을 들려주고자 했던 열망은 고스란히 EP 앨범에 담기게 됐다. 유년기 아버지와 겪은 갈등을 그려낸 ‘Superman’부터 “내가 기묘해질수록, 난 더 기묘하게 나를 사랑해”라 읊조리며 자신의 이해할 수 없는 점마저 인정하는 ‘자기 수용’의 메시지를 담은 ‘Strange Love’까지. 라일리가 통과해야만 했던 모든 불안, 우울, 고민의 순간은 마치 수많은 피스의 퍼즐처럼 EP 앨범에 담겼다. “그런데 확실히 EP를 기점으로 저 역시 저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원하는 게 뭔지, 싫어하는 건 뭔지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지금 무척 홀가분해요. 비로소 ‘나’로서 지금이란 순간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거든요.”
‘슬라슬라’를 앞두고 언젠가 라일리는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한국에 가면 SNS에서 본 커다란 도서관에 꼭 가리라!’ 인터뷰 당일 그는 마침내 ‘소원 성취’를 했다며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책으로 빼곡한 책장이 천장까지 솟아 있는 거예요. 너무나 포토제닉한 광경이어서 도서관이되, 일종의 커다란 포토 부스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한국에 관한 이야기에 라일리는 에디터에게 수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혹시 뉴진스 아세요? 저 최근에 완전 꽂혔거든요.”, “제주도가 제 고향과 비슷한 면적이라 들었어요. 그런데 비행기 말고 배 타고도 갈 수 있나요?”, “시간 되면 경복궁에도 가고 싶어요. 한복을 입으면 무료 입장이라던데, 실화?” 등등. 그는 10월 한 달간, 충무로 인근에 에어비앤비를 잡아 가족과 머물며 서울을 투어할 계획이라 말했다. “한국은 제게 큰 의미로 다가와요. 늘 영감의 대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최근 AB6IX와 협업한 사건은 저의 경력에 있어 일종의 마일스톤이었죠. 제가 가장 처음으로 본 K팝 뮤직비디오가 AB6IX의 ‘Breathe’였거든요.” 라일리와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대화에서 느낀 점은 그는 진정으로 음악을, 그리고 음악으로 수렴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뮤지션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그의 10년 뒤가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1시간가량의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마지막으로 그에게 10년 후, 그러니까 31세를 통과하고 있을 자신에게 미리 건네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물었다. “사실 별다를 건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제가 사랑하고 있는 걸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덜 긴장하고, 덜 스트레스 받으면서 사랑하는 일을 할 것. 그저 ‘Keep Going’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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