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의 빨간 불이 들어오는 순간 차은우는 돌변한다. 우아하고, 강렬하게. 빨간 불이 꺼지는 순간 차은우는 달라졌다. 딱 스물여섯의 맑은 청년으로. 오늘 이 촬영에서 가감 없이 꺼내 보인 차은우라는 사람의 콘트라스트는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이유일 것이다. 무대 위와 아래, 빨간 불이 켜지고 꺼지는 모든 순간의 차은우는 딱 이런 모습이다.
차은우를 향해 대중이 갖는 호감의 속성은 ‘인정과 수긍’이다. 그를 딱히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차은우는 상당한 미남이다’라는 명제를 거짓이라고 부정하진 않는다. 사실을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개인의 취향이나 끌림은 다른 문제니까. 차은우라는 시각 정보가 수정체와 망막을 거친 뒤 신경의 길을 따라 뇌에 도달하면,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탄하듯이, 혹은 ‘하늘이 참 파랗다’라거나 ‘저것은 꽃이다’라고 인지하듯이, 무엇을 봤다는 입력에 대한 자연스러운 출력으로 ‘참 잘생겼다’ 내뱉고야 마는 것이다. 윤곽이 선명한 작은 얼굴, 하지만 선 굵은 남자 배우 부류와는 또 다르게 오밀조밀한 면도 있는 이목구비의 조화, 하얀 피부, 큰 키와 굵은 체격. 이 외적 특징과 더불어 모범생 기질을 지닌 자의 선하고 건강한 광채가 그에게 있다. 성별을 초월한 아름다움의 표본 같은 대상이 파리에 뜨자, 그 모습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잠시 외출한 조각상’이라고 제목을 붙인 어느 사진기자의 작명법은 정직함에서 우러나오지 않았을까. 시상식장에서 차은우의 얼굴이 큰 스크린에 잡힌 순간 ‘우와’라고 해버린 다른 남자 아티스트들의 감탄사는, 지극히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최애는 최애고 차은우는 차은우다’라는 말이 괜히 생겼을 리 없다. 쇼메의 앰배서더인 차은우가 테이블 위에 준비된 목걸이, 팔찌, 반지를 바꿔 착용할 때마다, 하이 주얼리와 그토록 이질감 없이 한 몸처럼 어우러지는 한국 남성은 그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차은우는 마스크를 낀 채 인터뷰했다. 대화하는 동안 그의 표정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웃을 때면 그 커다란 눈이 실눈이 되었다. 크고 선명해서 결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눈과 눈웃음 지을 때의 눈은 차이가 컸기 때문에 그의 상태는 변화하는 눈으로 드러났다. “저는 의리가 있는 편이에요. 내 사람을 감싸 안거나 끌고 가려는 마음의 무게를 무겁게 느껴요. 마냥 베풀고 남을 챙겨주겠다는 게 아니에요. 상대가 잘되면 저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는 거잖아요.” 그의 눈이 웃음기 없이 아주 진지했을 때는 예를 들면 이런 말을 하던 순간이었다. “제가 아끼는 사람들에 대해 안 좋게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진짜 화가 나요. 그럴 땐… 분이 잘 안 풀려요.” 조금 부드러운 눈매로는 이렇게 말했다. “외모에 대한 칭찬은 언제나 감사하죠. 한편으로는 제 외적인 면 말고 다른 면을 알아봐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던 때가 있어요. 한 2년 전까지는 그랬나. 지금은 좀 달라요. 어떤 면으로 더 인정받고 싶다는 구분이 중요하다기보다 저는 그냥 저대로 갈 길을 열심히 나아가면 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인정받는 부분도, 평가도, 제가 한 대로 알아서 자리 잡겠죠.”
그는 대답하기가 난감할 때면 몸을 뒤로 빼면서 눈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에게 “아, 외모에 대한 코멘트를 듣고 듣다가 이제는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깨닫고 드디어 다른 단계로 넘어간 거군요?”라고 하자 그는 당황했는지 난감했는지, 눈웃음을 짓다 말고 고개를 숙인 채 크게 웃었다. 외모에 대한 반응을 평생 듣고 살았을 정우성이 ‘잘생겼다는 말이 지겨운가’라는 리포터의 물음에 ‘짜릿해. 늘 새로워’, 그리고 ‘잘생겼다는 말보다 연기 잘한다는 말을 더 듣고 싶은가’라는 물음에는 ‘잘생긴 게 최고야’라고 받아친 건 데뷔 후 20년이 지났을 때다. 미래의 차은우는 얼마나 능숙하게 자기식의 돌파구를 찾은 베테랑이 되어 있을까? 아스트로 멤버들이 차은우를 두고 ‘여기 나보다 잘생긴 사람 있으면 나와 봐!’ 같은 말은 절대 못할 타입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긴 하다.
외모로 칭송받은 배우들은 숙명적으로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꼬리표를 떼고 자신의 다른 가치를 증명하고자 조바심 내던 시기를 지나, 결국은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걸 깨닫고 묵묵히 경력을 쌓아가는 수순. 그 과정에서 어떤 배우는 자신에게 기대되는 이미지를 배반하고 전복하는 역할에 도전한다.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차은우는 배우이면서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보이그룹 멤버다. 연습생 기간 동안 신인 아이돌다운 자세 중 하나로 ‘사람들을 대할 때는 목소리를 세 톤 높여 밝게 말하라’는 가르침을 받았고, 2016년 6인조 그룹 아스트로로 데뷔했다.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신입사관 구해령>, <여신강림>을 통해 웹툰을 찢고 나와 카메라 앞에 선 캐릭터로서의 미덕을 실현한 차은우지만, 몇 년에 걸쳐 밝고 업된 말투와 행동을 익혀놓은 신인은 돌연 목소리를 낮게 깔거나 시크한 인물을 수행해야 했다. 그럴 때는 남모르는 힘듦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제가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스물여섯, 작품을 차곡차곡 쌓아가기 시작하는 시기의 차은우에게 필요한 건 무엇이든 전과 다름을 충족하는 일이었다.
11월 개봉하는 영화 <데시벨>은 소리에 반응하는 특수 폭탄으로 테러를 벌이려는 폭탄 설계자(이종석)와 전직 해군 부함장(김래원) 등등이 뒤얽히는 테러 액션극이다. 차은우는 수중 음향을 탐지하는 해군 음탐사 역할을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였다. “특별 출연이지만, 이야기에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분량이 많지 않아도 해군답게 준비하려고 머리를 아주 짧게 깎았죠. 막상 현장에 나갔더니 다른 형들의 머리가 생각보다 길어서 놀랐지만…(웃음). 스크린에 나오는 제 모습을 보고 싶어요. 곧 시사회를 앞두고 있는데, 그런 프로모션에 참여하는 것도 처음이라 설레요.” 드라마와 비교하면 좀 더 ‘한땀 한땀’ 작업해가는 영화 촬영장에서, 그는 선배들이 감독과 소통하고 신을 풀어가는 스타일을 조금이나마 지켜볼 수 있었다. 날것의 현장을 체험하는 값진 시간이었다. “참, 얼마 전에 신기한 일이 있었어요.” 뭔가 생각난 듯이 차은우는 한 파티 행사에 참석했을 때의 작은 에피소드를 꺼냈다. “누군가 저에게 ‘동민아!’라고 부르면서 다가왔거든요.” 차은우의 본명을 부르며 인사한 이는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을 연출한 이재용 감독이었다. 2014년, 열여덟 살 차은우는 송혜교와 강동원이 주연한 그 작품에 잠시 출연했다. 한창 성장 중이던 차은우의 모습은 지금과 달리 훨씬 여리여리하고 앳되다. “감독님이 ‘너무 잘 커줘서 고맙다’고, 반갑게 말해줬어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뵌 감독님을 우연히 만나니까 신기했죠. 그 작품을 제 데뷔작이라고 하기엔… 글쎄요, 그때 저는 연기를 어버버하게 한 것도 아니에요. 뭘 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게 다 처음이었으니까요.”
배우의 몸은 관음증적 대상만이 아니라 그가 화면에서 특정 캐릭터로 비칠 때 중요한 재료이기도 하다. 차은우는 곱상한 꽃미남의 계보를 잇는 동시에 ‘피지컬’에 있어선 남성성이 강조되기도 하는 하이브리드적 특질을 가졌다. 그런 차은우가 사제복을 입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데시벨> 이후 올해 안에 공개될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아일랜드>는 구마 사제인 차은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제주도 올로케이션으로 담은 이 퇴마 판타지극은 캐스팅 후 작품 크랭크인이 꽤 연기되었고, 매니지먼트에서는 다른 작품 일정을 잡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저는 <아일랜드>의 ‘요한’을 꼭 맡고 싶었어요. <데시벨>도, <아일랜드>도 저의 다른 모습을 보여줄 기회였으니까요. 요한이는 사제이지만 좀 까불대는 성격이에요.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불어와 라틴어를 조금 쓰는 장면도 있죠.액션도 많아요. 그런데 반은 인간, 반은 요괴인 캐릭터로 나오는 남길이 형(김남길)의 액션과 제 액션 성격이 살짝 달라요. 저는 달리고, 점프하고, 구르고…(웃음). 몸을 쓰는 연기도 재밌었어요.” 그렇게 연기를 하고 작품을 완성해가는 경험을 쌓는 동안, 차은우는 내면에서 단단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기분을 느낀다. “그 느낌을 뭐라 말해야 할지. 물렁물렁하면서도 단단해지는 느낌이랄까요. 걱정하고 고민했던 신을 찍은 후에 선배들이나 감독님에게서 잘 소화해냈다는 말을 들으면 가슴 쪽이 따뜻하게 차올라요. 무대를 통해 느끼는 감정은 그것보다 2cm는 외면 쪽에 자리하는 것 같아요. 연기할 때와는 다른 전율이 있죠. 무대에 딱 등장했을 때 그 거대한 함성 소리와 장관… 극한의 전율을 느끼게 해줘요.”
학창 시절 차은우는 반장을 여러 번 했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끈기와 성실함을 가진 편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그의 어머니는 차은우와 그의 동생이 어릴 적에는 조금 엄하게 키우셨다. 차은우가 살던 집 현관문이나 집 안 곳곳에는 ‘감사할 줄 알아라’ 같은 짧은 문구를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모범생 기질이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덕이 된다고 느낄 때도 있는지 묻자, 그는 말했다. “음. 그렇다고 인정하기 싫은 소심한 반항심도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느끼기도 해요(웃음). 아직 부족하지만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요인이 바로 그 점 때문인 것 같거든요. 제가 자라온 방식이나 가지려고 했던 자세가 이 일을 하는 데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됐을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부모님과 나눈 적도 있고요.” 얼마 전 처음으로 파리 패션쇼에 참석한 차은우는 그곳에서의 벅찬 감정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봉주르, 차은우 데스”라고 내뱉어버린 때도 있었지만. “감사한 시간들에 무뎌지지 않는 것. 이 일을 하면서 그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느꼈어요.”
파리가 낯설고 새로운 풍경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험을 안겨줬다면, 미국은 자유로운 방랑자의 무대였다. 올해, 차은우는 데뷔 후 처음으로 긴 휴가 시간을 얻었다. 모든 카메라와 조명 불이 꺼진 기간 동안 그는 LA, 라스베이거스, 하와이를 여행했다. LA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는 6시간 동안 차로 사막을 달리는 경험도 해봤다. “제가 계획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막상 여행을 해보니 아니더라고요. 즉흥적인 걸 더 좋아했어요. 식당 갈 때도 정해서 가기보다는 걷다가 적당한 데 들어가고. 저는 숙소나 렌터카를 예약하고, 공항에서 캐리어를 찾는 그런 일들을 직접 해보고 싶었어요.” 여행 이야기를 할 때 차은우는 귀했던 시간을 곱씹는 것처럼 말과 말 사이에 미련을 두는 인상이었다. 다시, 일이라는 일상의 불이 켜진 그에겐 곧 공개될 두 작품이 있다. 바로 얼마 전부터는 드라마 <오늘도 사랑스럽개>의 수학 교사로 살고 있기도 하다. 늘 바쁜 나날인 평소 언제, 어떤 상황에서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지 물었을 때 그는 순간적으로 숙제를 받아 든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확실한 답을 찾은 듯이 또 눈웃음 지으며 말했다. “퇴근길요(웃음). 특히 부담되고 신경 쓰였던 일정을 마친 날, 카니발에 앉아서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가는 길에는… 그 바람을 다 마셔버리고 싶어요.” 그의 몸에서 은은하게 빛나던 주얼리를 정리한 후, 스튜디오를 떠나며 차은우는 말했다. “어제도, 오늘도 열심히 일했어요. 잠시 후에도 차에 앉아 그 바람을 느낄 거예요. 그럴 때면 기분이 좋고 너무 행복합니다.”
- 패션 에디터
- 김신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 포토그래퍼
- 목정욱
- 스타일리스트
- 임혜림
- 헤어
- 박미형
- 메이크업
- 정보영
- 어시스턴트
- 신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