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는 나빠야 한다

우영현

의심의 여지 없이, 이정재의 에미상 수상은 그의 글로벌 활약을 예고한다. 따라서 할리우드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정재는 지독하게 나쁘고 못되고 악랄해야 한다. 그래야 영화도, 이정재도 모두 웃을 있다. 확실한 증거가 이렇게 많다.

<도둑들> 뻔뻔한 사기꾼

만약 <태양의 없다>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동네 건달이자 뻔뻔한 사기꾼 기질을 보였던 홍기가 정신을 차리고 도둑질에 손을 댔다면 <도둑들> 뽀빠이가 되지 않았을까. <도둑들> 한국의 케이퍼 무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해 손을 잡았지만 각각의 꿍꿍이가 달라 결국 속고 속이느라 진땀 빼는 이야기와 만듦새가 발군이다. 도둑들끼리 누가 착하고 그런 없겠지만 중에서 가장 못된 캐릭터를 꼽는다면 이정재가 연기한 뽀빠이다. 비열함으로 따지면 일등이고, 질투와 탐욕이 넘실대며, 앞에선 의리도 사랑도 없는 인물이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콧수염조차 가짜다. 흥미로운 빌런이지만 그럼에도 뽀빠이가 마냥 밉지 않다는 점이다. 별의별 꾀를 부려도 금세 의중을 들키는 설정도 한몫하지만 <태양은 없다>에서 보여주듯 허세 떨고 능글능글한 캐릭터를 맛깔나게 소화해내는 이정재의 기량이 영락없이 발휘된다. 감아 차기 하면 손흥민인 것처럼, 이런 연기에는 이정재가 그야말로 적역이다. 그러니 홍기와 뽀빠이를 잇는 역할을 맡아 이정재표 사기꾼 3부작을 완성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관상> 날뛰는 폭군

영화 <관상> 이정재가 연기한 수양대군의 등장 전후로 나뉜다는 정설이다. 관객의 뇌리에 깊게 각인됐고, 영화를 봤다고 해도 번쯤 들어 봤을 장면. 광폭함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사냥개와 깡패 같은 부하들을 병풍 삼아 수양대군은 입꼬리의 흉터가 들어 올려질 정도로 야심만만한 미소를 지은 위풍당당하게 영화에 들어선다. 빈틈없이 무섭게 밀어붙이듯 등장한 수양대군에 대한 반작용처럼 영화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지고 이야기에는 힘이 몹시 얹어진다. 변곡점과 다름없는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의 왕권을 탐해 역모를 일으키는 인물이다. 영화에선목을 물어 뜯는 이리의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관상>에서 수양대군 하면 가히 압도적인 등장신과 행세를 하며내가 왕이 상인가?”라고 묻는 연회장 장면을 떠올리는데, 그의 오만하고 잔혹한 면모가 몰아치듯 생생하게 드러나는 때는 바로 이거다. 영화 막바지, 수양대군은 기어이 주인공 관상가로부터대군은 왕이 이라는 대답을 듣지만이미 나는 왕이 되었는데 왕이 상이라니. 이거 엉터리 아닌가라고 거들먹거린다. 그리고는 관상가의 아들을 겨냥해 활시위를 당긴 무심하게 돌아선다. 긴장감이 무섭게 감돌던 등장신 못지않게 소름 끼치는 마무리. 그렇게 이정재의 수양대군은 명실공히 그해 영화계를 점령했다

<암살> 비열한 배신자

독립군 동료를 팔아 넘긴 변절자 염석진이 재판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며 언급한구멍이 개지요라는 대사가 무수한 패러디를 낳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암살>에서 이정재에게 의미가 각별한 대사는 이게 아닐까 싶다. “몰랐으니까. 해방될 몰랐으니까.” 친일파 역할은 도저히 연기할 없어 출연을 고사한 이정재의 마음을 염석진의 마지막 대사가 돌려 세웠다고 한다. 당시 조국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이들이 있었다면, 앞도 모르는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릇된 선택을 사람도 있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는 정의로운 인물들이 돋보일 있게끔 추악하고 괘씸하게 보이도록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정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밀정의 불안하면서 예민한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그가 15kg 감량하며 48시간 동안 잠을 자고 촬영을 했다는 알려진 사실이다. 개봉 당시 이정재는연기 인생 가장 공들인 캐릭터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를 보상 받듯 1,270 명의 관객이 그의 열연을 바라봤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미친 킬러

레이는 자신의 형제를 암살한 청부살인업자를 사냥개처럼 쫓는 추격자다. 그리고 이정재의 필모그래피에 가장 극악무도하고 잔혹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캐릭터로 위치한다. “이유는 중요한 것이 아니야. 이젠 기억도 나네라는 레이의 대사처럼 그는 점점 지독하고 광적으로 목표물에 집착하게 되고, 복수는 살육으로 번진다. 하지만 레이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미치광이 캐릭터에 머물지 않는다. 이정재의 얼음송곳 같은 눈빛과 거친 목소리, 리얼한 액션, 스타일이 극대화된 비주얼이 근사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두고두고 기억될 매력적인 빌런으로 거듭났다. 작품에서 이정재는 캐릭터의 외형을 직접 고민하고 제안했다. 결과 타투로 목을 덮은 레이가 큼직한 선글라스를 쓰고 흰색 코트 차림으로 형의 장례식장에 나타나는 장면은 허를 찌르듯, 얼핏 싱거운 스토리의 영화에 이상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가늠케 한다. 놀라운 그런 모습도 얄미울 만큼 이정재에게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염라대왕 역할까지 흐트러짐 없이 소화했던 그다. 소문에 따르면 레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스핀오프 시리즈가 제작된다. 피도 눈물도 없는 나쁜 자식과 그보다 나쁜 놈들의 대결이 그려질 거라고 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정재의 서늘하고 삐딱한 매력의 종합판이 상이다

세상을 놀라게 한 이정재의 행보

에미상 수상한 이정재가 그 직전에 한 일

프리랜스 에디터
우영현
사진
쇼박스,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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