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불면증에서 해방된 에디터는 믿게 됐다. 한 발, 한 발 노력하면 누구나 불면증을 치료할 수 있음을.
안 해본 게 없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밤마다 양을 세거나 유튜브에서 ASMR을 듣고, 숙면을 유도한다는 478 호흡법도 따라 해봤다. 수면 클리닉에 방문해 두피와 온몸에 수십 개의 센서를 장착한 채 수면다원검사도 했다. 숙면에 좋다는 라벤더 오일로 아로마테라피를 하고,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건강기능식품도 먹었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시계, 에어컨 등 집 안 곳곳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모두 감춘 채 수면 안대와 귀마개까지 해야 겨우 잠이 들까 말까였고, 심할 땐 악몽에 비명을 지르며 온몸이 경직된 채로 잠에서 깨기도 했다. 그렇게 학창 시절부터 잠과 씨름한 지 어언 20년.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달간의 노력 끝에 ‘좋은 아침’을 맞이하게 됐다. “나 이제 불면증 이겨냈잖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지행동치료가 답이다
“불면증의 원인은 대부분 ‘생각’과 ‘행동’입니다. 수면제나 정신과 치료는 불면증을 야기하는 생각과 행동을 치유하지 않으므로, 효과적으로 불면증을 치료할 수 없어요.”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하버드 불면증 수업>의 저자 그렉 D. 제이콥스(Gregg D. Jacobs)는 불면증은 생각과 행동 때문에 발생하는 학습된 질병이라고 말한다. 바꿔 말해, 생각(인지)과 행동을 바꾸는 인지행동치료로 불면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전 세계의 모든 수면 전문가는 불면증 인지행동치료만이 부작용 없이 지속적인 효과를 보이는 유일한 치료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약물적 치료는 급성 불면 증상을 보이는 경우나 불면증 인지행동치료를 시작하는 초기에 함께 사용할 수는 있지만 원인을 치료하는 방법은 결코 아니죠. 인지행동치료의 가장 큰 장점은 불면증의 원인을 치료한다는 것입니다.”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은 교수 역시 노력으로 습관을 바꾸면 반드시 나아질 거라고 이야기한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석훈 교수는 “실패 없는 인지행동치료의 첫 번째 조건은 환자의 불면증이 인지행동치료에 적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면무호흡증과 하지불안증후군처럼 약물치료나 시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죠. 인지행동치료가 가능한 경우 훈련받은 의사의 관리하에 치료받아야 하며 최소 6주 이상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라고 조언한다. 내 경우 왼쪽 콧구멍 속 공간이 작아 수면 시 호흡이 원활하지 않지만 그것이 불면을 일으킬 만한 수준은 아니기에 인지행동치료가 적합했다.
“초기 면담이 끝나면 가장 먼저 수면일기를 작성하고 잠을 잘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수면위생교육을 실시하죠. 이후 인지치료와 행동치료를 포함해 복식호흡, 명상 같은 이완 훈련까지 다양한 방법이 동원됩니다.” 정석훈 교수의 조언에 따라 수면일기작성을 시작, 몇 시에 불을 끄고, 불을 끈 이후 실제로는 몇 시쯤 잠자리에 들었으며, 몇 번이나 잠에서 깨고, 또 몇 시에 기상했는지 제시된 문항에 답했다. 아침에 1분만 투자하면 충분히 되새길 수 있는 질문들이었다. 일주일간의 수면일기를 토대로 잠자리에 누워 있는 시간과 실제로 잠을 잔 시간을 계산한 수면 효율을 측정했고, 이를 바탕으로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을 정했다. 이를 지키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간에 불을 껐고, 침대에 누워 TV,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도 줄여갔다. 침대에 눕는 행동이 잠을 취하기 위함임을 뇌에 학습시키고자, 다시 말해 침대에서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시간을 줄이게 된 것이다.
인지행동치료에 공들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여름휴가였다. 하늘길이 열려 떠난 사이판. 프리다이빙과 스쿠버다이빙을 즐긴 6박 7일은 매일이 ‘꿀잠’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다로 나가 햇볕을 쬐고, 물속에서 온몸으로 운동했으며, 컨디션 유지를 위해 술도 일절 마시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검색엔진에 불면증을 한 번쯤 검색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적절한 햇볕과 운동, 금주는 숙면에 효과적이다. 더욱이 출근 압박이 없는 모처럼의 휴가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처음 만난 여성 4명과 불편한 도미토리의 이층침대에서 매일 함께 잠을 잤는데, 아침이 이토록 상쾌하다니(심지어 그중 한 명은 코까지 골았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깊은 잠의 맛보고 나니 이를 놓치기 싫다는 욕망이 들끓었고, 사이판에서 돌아온 직후 불면증 관련 도서와 유튜브를 차례로 격파했다. 유튜브에는 해가 뜨면 잠에서 깨고 해가 지면 잠드는 자연 속 캠핑이 숙면에 도움이 됐다는 사람이 많았다. 미국 콜로라도대학 연구팀 역시 2017년 캠핑을 일주일만 해도 불면증이 치유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피실험자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도 그 패턴이 일정 기간 유지됐다고 했다. 인공적인 빛을 멀리한 채 자연의 순리에 맞게 생체리듬이 변하며 잠을 잘 잘 수 있게 된 것이다. 일주일간 바다에서 다이빙하고 돌아온 이후 꽤나 잘 자고 있는 나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어 무릎을 탁 쳤다. 다시 잠 못 들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올바른 수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먼저 아침에 눈을 뜨면 커튼부터 열고, 식탁을 창가로 옮겨 아침 식사 시간에 햇빛을 봤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잠에서 깨면 억지로 자려고 애쓰는 대신 햇빛이 들어오는 발코니에서 가벼운 요가로 몸과 마음을 깨웠다. 회사에서는 모니터의 방향을 창문을 등지게, 즉 시선이 창문을 향하도록 틀었고, 저녁에도 해가 지기 전까지는 커튼을 닫지 않아 햇빛을 보는 시간을 최대로 늘렸다. 잠들기 전 자극적인 영상은 금물. 대신 몸과 마음의 이완을 위해 침대에 누워 복식호흡을 하며 사이판 바다에 둥둥 떠 있던 기분 좋은 순간을 회상했다.
수면에 대한 생각도 바꿨다. 그렉 D. 제이콥스는 저서를 통해 하루 6번 정도 자다가 깨는 것은 평범한 현상이라고 이야기한다. “불면증 환자는 흔히 잠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어요. 중간에 깨면 내일 제대로 일할 수 없을 거라며 괴로워하죠.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은 각성을 일으켜 불면증을 악화하기 때문에 잠에서 어느 정도 깨는 건 지극히 정상이며 제대로 생활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해요.” 정석훈 교수의 조언을 떠올리며 ‘나 오늘 좀 잘 잤네?’, ‘두 번 깨긴 했지만 개운한걸?’, ‘수면 시간은 적었지만 수면 효율은 좋았을 거야!’라고 세뇌하듯 스스로 정신교육을 했다. 또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일 생각은 사무실을 벗어나는 순간 스위치를 끄듯 껐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주식과 울화가 치미는 뉴스도 멀리했다. 한 달쯤 지났을까? 결과는 놀라웠다. 평일은 알람이 울리기 직전에 기가 막히게 잠에서 깨고, 주말에도 평일과 비슷한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게 된 것이다. 더는 주말마다 부족한 잠을 몰아 잘 필요도 없게 됐다. 아직 완벽하게 잠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는 잠을 자는 것이 두렵지 않고 불면증 때문에 괴롭지도 않다. 내 삶의 지휘권을 되찾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맞춤식 개인화 서비스,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
스스로 수면 패턴과 일상의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어려운 이를 위한 치료법으로 최근 새롭게 대두하고 있는 것이 바로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 DTx)’다. 디지털 치료제는 애플리케이션(앱), 게임, 가상현실 등을 활용하는 일종의 소프트웨어로 약물은 아니지만 마치 의약품처럼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향상시킨다. 일반적인 수면 건강 앱이 수면을 평가하고 숙면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그친다면,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는 환자의 생활 습관과 수면일기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를 병원의 전자 차트 시스템으로 전달해준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의사는 이를 분석해 개개인에 맞춤화된 처방을 더욱 효율적으로 내릴 수 있다. 다른 치료제와 마찬가지로 임상시험에 근거해 유효성과 안정성이 검증돼야 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나 미국식품의약국(FDA) 등 규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시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보통의 수면 앱과 차이가 있다. 의사의 처방이 필요치 않은 건강기능식품과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처럼 말이다.
미국에서는 6~9주간 과제를 제시하는 ‘솜리스트(Somryst)’가, 영국에서는 6단계로 구성된 치료 프로그램인 ‘슬리피오(Sleepio)’가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 상태. 국내에서는 현재 에임메드에서 개발한 ‘솜즈(Somzz)’와 웰트에서 선보인 ‘필로우Rx(Pillow Rx)’가 식약처로부터 확증임상시험 승인을 받아 임상을 진행 중이며, 올해 안에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는 환자가 눈앞에서 사라져 있는 동안 어떻게 생활했는지 알 수 있어요. 환자의 동의하에 결제 앱을 연동하면 오후에 커피를 마신 것을, 마이크를 켜면 잠을 자며 코를 골거나 뒤척였음을 탐색할 수 있죠. 이를 의사에게 전달해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일방향의 전달이 아닌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웰트 강성지 대표의 설명이다. “같은 불면증 환자라도 어떤 환자는 운동을 하는 것이, 어떤 환자는 카페인을 줄이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죠.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에 기록되는 수면일기를 토대로 취침시간과 기상시간, 수면 효율을 파악하는 건 물론 걸음 수, 음주 여부, 카페인 섭취 등의 생활 습관까지 환자의 상태를 환자와 의사 모두가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에임메드 DTx본부 정경호 본부장이 덧붙인다. 이쯤 되니 한편으로 개인정보 유출이 걱정인가? 웰트는 국제표준화기구(ISO) 및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가 제정한 기준에 맞는 개인정보보호 관리 시스템으로 고객의 정보를 관리할 계획. 에임메드 역시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정보보호와 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ISMS-P)’ 인증과 더불어 ‘미국의료정보보호법(HIPPA)’ 규정을 준수, 개인정보 유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관리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취침시간을 잘 지키셔야 해요’, ‘6000보 이상 걸은 날 수면 효율이 더 좋군요!’라는 피드백과 더불어 병원에 방문하지 않아도 언제든 앱을 통해 상담까지 가능하다니, 이 정도면 충분히 습관의 변화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부족한 자의에 디지털 치료제와 전문의의 타의가 콤보 세트로 더해지면 치료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 솜리스트를 사용한 불면증 환자들은 불면증 증상의 중증도가 45% 줄었고, 치료 후 6~12개월 뒤에도 지속적인 수면 개선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비슷한 증상으로 밤마다 불면증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면, 앞으로 다가올 신기술에 기대 주저하지 말고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보기를 바란다. 혹시 아나, 에디터처럼 ‘푹잠’을 자는 날이 올지!
- 뷰티 에디터
- 천나리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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