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기간 일과 생활의 루틴이 와해됐을 때,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 우울과 비관이 가득했을 때 크리스토퍼 케인을 붓을 들었다. 작업은 제법 쌓였고, 비엔나에 자리한 구깅 갤러리(Gugging Galerie)에서 케인의 전시가 열린다.
“패션 현장에서 나는 종종 아웃사이더라고 느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람들은 가장자리에,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패션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 동시에 아웃사이더라 불린 크리스토퍼 케인(Christopher Kane). 그는 올여름, 비엔나 외곽에 자리한 구깅 갤러리에서 자신의 그림과 그가 직접 큐레이팅한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구깅 갤러리는 정신과 의사 레오 나브라틸(Leo Navratil, 1921-2006)이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마리아 구깅의 정신과 요양원에 있는 그의 부서에서 1950년대에 재능 있는 사람들의 예술 작품을 홍보하며 시작되었다. 그 후 1981년 거주지, 스튜디오, 갤러리 및 커뮤니케이션 공간 ‘예술가의 집(House of Artists)’으로 정비되었고, 아트 브뤼트 센터는 2006년 6월에 문을 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갤러리와는 다른 조금 특별한 곳에서의 작업, 사람의 나체, 투박한 라인과 콜라주 기법을 활용한 그의 작품을 접하며 과연 그는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건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긴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 그는 더블유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팬데믹 동안에 겪은 내적 변화와 그것을 승화시키는 방식으로 택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W Korea> 디자이너로서가 아닌, 아티스트로 만나게 됐다. 그림이라는 작업은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는지 궁금하다.
크리스토퍼 케인 Christopher Kane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2020년인데, 팬데믹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어떻게든 다른 생각을 하거나 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제한 없이 나를 표현할 수 있고, 거기서 큰 자유를 경험했다. 처음에는 무엇을 만들어낼지에 대한 생각도 없이 그저 손이 가는 대로 그리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다양한 얼굴과 몸을 그리게 되었다. 도시 전체가 코로나로 봉쇄되었기 때문에 손에 잡히는 재료를 주로 사용했지만 스튜디오로 돌아온 이후로는 지난 시즌에 사용한 오래된 패브릭으로 콜라주를 시작했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그림이 나를 이끄는 대로 그렸다. 특정한 모델이나 누군가를 보고 그린 적은 없다. 영감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갑자기 떠올랐다. 나에게 그림 그리는 시간은 거의 명상에 가깝다. 그림 그리는 동안 어떤 생각도 안 나서 너무 행복하다.
그림에 몰두한 후 디자이너로서 달라진 점이 있을까? 패션에 반영되었다면, 그 변화는 무엇일까?
가장 큰 변화는 패션이라는 ‘일’을 하면서 환상적인 취미를 다시 찾은 것이다. 이는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패션, 가족, 친구 외에 소중한 무언가가 생긴 것이니까. 물론 그림을 그리며 작품을 만들 때는 그것을 몸에 어떻게 적용할지 항상 생각한다. 2021 S/S 컬렉션 이후로 계속 내가 직접 제작한 직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든다. 2021 S/S 시즌 ‘Home Alone’ 컬렉션에서 내 그림을 프린팅한 옷감으로 작업한 건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프린트부터 시작된 이 옷의 모든 것이 ‘크리스토퍼 케인’의 것이라는 사실은 무척 매력적이다. 현재는 ‘Painted By Christopher Kane’이라는 라인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해당 라인에는 보통 면과 더치스 새틴(duchess satins)을 사용한다.
갤러리의 성격을 설명하는 “Art Brut: 때 묻지 않은 거친 예술, 문화적 주류 밖에서 창조된”, 이 문장이 뜻하는 건 무엇인가?
어릴 때부터 나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느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작은 광산 마을에서 자랐고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진학하기 위해 런던으로 이주했다. 학교에서도 나의 일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고 느꼈는데, 런던에서도 비슷한 감정은 이어졌다. ‘아웃사이더 아트’에서는 제한과 규칙이 없다. 그래서 이 장르에 언제나 끌렸던 것 같다. 아웃사이더 아티스트의 작품은 찰나에 느낀 의미와 감정을 담아내기 때문에 매우 정직하다. 갤러리 구깅의 하우스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예술가들은 다른 이들의 간섭 없이 본능적인 예술을 창조한다.
당신은 종종 옷(패션)을 통해 당신의 작업을 공유하기도 했다. 경중을 따질 수는 없겠지만, 갤러리에 걸리는 작품과 패션으로 승화되는 작품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되나?
특별한 기준은 없는 것 같다. 보통 그림을 그리면 그 작품이 옷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 패턴화가 가능할지 등은 바로 캐치된다. 런웨이를 걷게 될 옷(패션)이 될지, 갤러리에 걸리는 작품이 될지는 느낌으로 알 수 있지만, 창작 못지않게 수정과 편집 작업도 중요하다.
디자이너로서 당신의 팬이 전시를 보러 비엔나에 간다면, 전시 중에서 어떤 부분을 눈여겨보라고 말하고 싶은지?
구깅 갤러리는 역사와 예술이 매우 방대한, 정말 특별한 공간이다. 너무나 유니크한 공간이라 한 번쯤 방문해볼 만하다. 갤러리 디렉터 니나 카츠니그(Nina Katschnig)와 갤러리 창시자 요한 파일라허(Johann Feilacher)의 갤러리 운영 방식은 대단하다. 그들은 예술가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엄청나고 작가가 편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촘촘하게 지원한다. 10월 9일까지 하는 나의 전시를 놓치더라도 구깅 갤러리가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보러 방문해보길 권한다.
이번 전시는 내 작품 외에 구깅 작가들의 작품도 큐레이션했는데, 요한 코레크(Johann Korec)와 아르놀트 슈미트(Arnold Schmidt)의 멋진 작품을 볼 수 있다. 최근에 발견한 요하네스 레히너(Johannes ‘Lejo’ Lechner)의 콜라주 작품도 너무 좋았고, 놀라운 작업 방식을 보여준 레오폴트 스트로블(Leopold Strobl)의 작품도 함께 큐레이팅했다.
작품 활동이 앞으로 크리스토퍼 케인이라는 디자이너에게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
‘curated by…’ 시리즈의 일환으로 전시를 진행하게 된 것은 니나와 구깅 갤러리 팀과 오랜 기간 나눠온 대화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협업이었다. 이 전시에 들어간 모든 이들의 정성과 땀이 모두 특별했고 내 작품을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일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다. 이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는 지금 나 자신과 끊임없이 협력한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은 나에게는 그 자체로 치유와 같다. 집에 있든 스튜디오에 있든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작업할 수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다.
- 패션 에디터
- 김신
- 통신원
- SUSAN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