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놀랍게도 샤이니가 한 팀으로 꾸준히 활동을 지속한 기간이자 키(Key)의 아티스트적 상상력이 응집된 시간이다. 이제 키는 솔로 앨범 <Gasoline>으로 자신만만한 그의 왕국을 보여주려 한다.
<W Korea> 한여름 땡볕 아래서 F/W 의상을 입고 화보 촬영을 했는데, 어쩜 그리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얼굴이 고울 수 있어요? 고생했어요.
Key 어휴, 아니에요, 아니에요.
언젠가부터 예능으로 키의 센스 있는 시각을 꾸준히 볼 수 있어서 좋아요. MBC <나 혼자 산다>와 tvN <놀라운 토요일> 모두 재밌는 프로그램이잖아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자주 쓰는 ‘지겨워’, ‘지긋지긋해’, 이런 말은 그냥 콩트 하듯이 뱉는 추임새 같은 거예요, 진심이에요?
하하. 뭐, ‘어휴 못 살아’의 다른 표현이죠. 그리고 진지하게 못 살겠으면 정말 ‘못 살겠다’라고 하겠어요?(웃음)
작년에 발표한 솔로곡 ‘Bad Love’의 가사 중에도 ‘다 지긋지긋해’가 등장하죠(웃음). 저는 키를 볼 때마다 나른한 만담가 같다고 느꼈어요. 베테랑다운 여유도 전해지고요.
생활 속 많은 순간들에서 ‘위트’로 넘어가고자 하는 저만의 주문이 있는 듯해요. 주문에 해당하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냈을 때 공감하는 사람들의 반응, 또 그 반응이 일으키는 환기 효과라는 게 있잖아요. 저한테는 그런 의미예요.
애어른 같다는 소리 자주 들었죠?
아기 때부터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똘똘한 아이였나요?
똘똘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대가족 사이에서 자라서 그런지 눈치가 빨랐던 것 같아요. 저는요, 아이 때부터 쭉 이 상태였어요(웃음).
시니컬함과 다정함을 동시에 지닌 사람 같아요. 한편으로는, 키를 언뜻 본 사람이라면 ‘저 친구는 의욕이 별로 없나’라고 여길 때도 있을 듯해요. 하지만 전혀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전혀 아니죠. 제가 오늘 촬영장에서도 말을 거의 안 했죠? 속으로 끊임없이 살피고 생각하는 중이라 그런 거예요. 제 성격이 그래요.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도 겉으로 보이는 제 상태가 그렇게 유쾌하지 못해요. 주로 가만히 있으면서 속으로 생각을 계속하거든요. ‘다음 신에서는 어떻게 해볼까’를 비롯해서 이것저것.
발을 동동거리는 성격과는 다르게, 생각의 회로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거죠. 일터에서 그렇게 살다 보면 집에 가서 거의 쓰러지지 않아요?
네, 그래서 제가 집을 좋아해요. 고정 프로그램을 더 늘리지도 못하겠어요. 집에 가서 뻗는 날이 많아질 테니까.
솔로 앨범 <가솔린>이 8월 30일에 나오는데, 지금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태예요?
이제 앨범 작업은 모두 끝났어요. 활동만 앞두고 있어요.
작년 9월에 낸 미니 앨범 <Bad Love>의 ‘Bad Love’에서는 레트로한 무드로 키가 좋아하는 ‘외화’의 요소들을 담았어요. 이번에는 어떤 음악이에요?
지난 솔로 앨범과는 확실히 달라요. 힙합 베이스도 있고, 무엇보다 웅장해요. 이미지적으로 말하자면 저의 ‘킹덤’을 표현하려 했어요.
감동적이거나 뿌듯함을 주는 데 대한 반응으로 ‘가슴이 웅장해진다’라고 표현하는 일이 꽤 보편화됐더라고요. 키의 웅장함은 요소가 풍성하고 드라마틱하다는 얘긴가요?
브라스 사운드가 있어서, 악기의 소리가 만들어내는 느낌이 웅장하다는 뜻에 가까워요. 물론 사운드도 그렇고 비주얼 면에서도요. 무엇보다 좀 더 주체적인 곡을 노래하고 싶었어요. ‘Bad Love’는 어쨌든 누군가 ‘나쁜 사랑에 빠졌다’는 가상의 이야기잖아요, 샤이니의 ‘Don’t Call Me’도 그랬고. 이번에는 소설이 아닌 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역시 켄지 누나와 같이 작사했고요.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라는 말이군요. 키의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나요?
저를 ‘가솔린’에 빗대봤어요.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는 위험한 성질을 가졌으면서 에너지원이기도 한 것. ‘자신 있으면 건드려봐, 나도 가만히 안 있는다’ 이런 느낌이에요. 생각보다 가솔린이라는 키워드가 가요에서 많이 안 쓰인 것 같아요, 지누션 선배님들 이후로는.
2018년에 첫 솔로 정규앨범으로 <Face>를 냈고, 작년 미니앨범 이후 11개월 만에 다시 솔로를 선보이네요. 앞선 솔로 활동으로 느낀 점은 뭘까요?
<Face>는 저에게 실험 그 자체였어요. 군대 가기 전이라 시간도 부족해서, 제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두기도 했어요. <Bad Love>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해본 앨범이고요. 그 태도가 이번 앨범 작업에서도 유지됐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이번 솔로를 내기까지 어쨌거나 저에겐 데뷔 후 14년이 넘는 시간이 있었잖아요. 그 점을 무시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뭔가를 구현해내려면 상상력이 명확해야 하는데, 상상력을 키워갈 시간을 오래, 많이 둔 거죠. 새로운 걸 해보려고 할 때 제 입에서 저도 모르게 생각이 술술 나오는 걸 보면 그래요.
시간이 그냥 흐른 게 아니라는 걸 몸소 느끼는군요? 아티스트든 직장인이든, 한 분야를 적어도 10년 이상 꾸준히 파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공감할 것 같네요. 머릿속이 반짝이는 그 순간이 자주 찾아오질 않아서 그렇지(웃음).
어떤 일을 거절할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겼을 때도 시간이 꽤 쌓였다는 걸, 내 역량이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걸 느끼곤 해요. 어떤 경우에는 내 행복감과 무언가를 교환해야 할 때도 있잖아요. 저는 불행 7을 겪어야 행복 3이 온다고 생각해요. 연습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무대를 해내려면 연습을 열심히 해야 하죠. 행복 3을 위해 해내고 겪어야 할 것들의 밸런스를 잘 찾는 일은 중요해요. 특히 프리랜서라면요.
몇 년 전에 거리에서 음악이 아닌 말로 버스킹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죠? 그때 키의 강연을 인상적으로 기억해요. 활동하면서 꽤 오랫동안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것 같아도 그저 참았고, 세월이 쌓인 후 어느 순간부터 뭔가가 보이고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네. 그 쌓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확신이라는 게 더 굳게 생긴 것 같아요. 모든 걸 주체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배우고 성숙해지는 시기가 없었다면 오히려 저는 어떤 틀에 갇혔을 거예요.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진짜 자유가 생겼어요. 왜냐면 어릴 때도 지금처럼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막상 좀 더 주체적으로 굴어도 되는 자유가 생기면 그때부터는 허둥지둥하기 쉬운데, 키는 실행하고 발산만 하면 되는 거였나봐요. 어느 순간 샤이니의 스타일링 콘셉트를 비롯해 샤이니 콘서트 의상이나 비주얼 콘셉트에 적극 관여하는 인물이 됐어요. 데뷔 후 수년간 ‘인내’하던 시기에는 그럼 칼을 간다는 느낌으로 버텼나요?
그것보다는 뭐, 억울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랬죠. ‘나 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저라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고 했잖아요. 자신감은 예전부터 있었어요. 하지만 데뷔 초기부터 회사에서 ‘네 마음대로 해봐라’ 했으면 지금처럼 못했을 거예요. 좋은 스태프들과 지내면서 매일 알아가고 느끼는 시간, 공부가 되는 시간을 거쳤어요. 지금도 물론 매일 배우고 느끼는 바가 있겠지만, 이제 무언가가 엄청나게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올 일은 적어요. 이런 영어 표현이 있죠. ‘Been There, Done That.’ 데뷔 후 지금껏 얼마나 많고 큰 드라마가 쌓였겠어요?
방금 그 말에서는 ‘어휴, 지긋지긋해’가 떠오르네요(웃음).
어휴, 그러니까요. 이젠 엄청나게 힘들 일도, 충격적일 만큼 기쁠 일도 많지 않아요.
좀 더 자극이 필요하다고 느끼진 않고요?
음, 저는 딱히 자극이 필요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저 무언가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예요. 한다면 미친 듯이 해야 하고.
키가 ‘하느냐 마느냐’를 판단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은 뭐예요?
결국은 ‘끌리는가 안 끌리는가’죠. 무언가를 할 때 제가 거기에 시간과 노력을 얼마나 쏟을지 저는 아니까, 마음이 끌려야 해요.
문화와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어떤 예술가를 좋아하나요?
곧 내한하는 시규어 로스도 좋아하고, 데이비드 보위, 달리… 뭐 아주 많아요. 그리고 미술관에서 자주 본 작품을 만든 작가분이 있는데… 특히 로봇처럼 생긴 하얀 조각을 낚싯줄에 매달아놓은 작품…. 까먹을 수가 없는 작가님 이름인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요. 저에게 큰 영감을 준 작품인데….
이불? 작년에 리움 미술관 개관전을 봤나요?
이불! 이불! 이불 작가님! 네.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에 설치된 그 기묘한 작업요. 보면서 ‘와, 이것은 대체 신일까, 인간일까, 로봇일까, 과연 뭘까’ 싶었어요. 기존에 있던 걸 콘셉트화하거나 색다르게 표현하는 경우는 많잖아요. 예를 들어 신화 속 신을 모티프로 삼아 뭘 만든다거나. 그 작품을 보면서는 어떤 특정 종교와도 상관없고, 또 어떤 역사나 설과도 관계없는 새로운 존재를 목격한 기분이었어요. 아예 새로우면서도 아이코닉한 것을 탄생시켜보자는 생각을 여태껏 왜 안 해봤나 싶더라고요. 강렬한 울림이 있었어요.
흥미롭네요. 아티스트 키가 ‘이거 하나는 자신 있다’ 할 만한 점은 뭘까요?
제가 오지랖이 좀 넓고, 관심사가 많다 보니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인사이트가 있다는 점이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해줘요. 예술 얘기만은 아니에요. 일이라는 건 한마디로 시간과 돈의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주어진 것 안에서 얼마나 잘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한 문제라는 걸 알아요.
매니지먼트 입장에서는 아주 귀한 아티스트네요.
귀찮은 아티스트일 수도 있겠죠(웃음). 저는 일할 때 알고 싶은 게 많거든요. 그래서 알려달라고 말하는 편이에요. 예산, 장소, 시간 등등. 결국 효율성에 관한 거죠. 그런 여건을 파악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해요. 적정 수준에서 나에 대해 깨우치게 되는 점도 있고.
15년 차 프로답게 현명하네요. 초보일 때나 베테랑일 때나 그 시기에 맞는 고민이 있을 텐데, 키의 고민 레퍼토리는 어떤 주제예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동향을 살피는 일이 귀찮아지면 어쩌지 싶어요. 내가 좀 뒤처진 상태 같다고 느끼면, 그제야 어떤 동향을 파악하려는 행동 자체가 이미 뒤늦은 것 같고 싫어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 자신을 마주하게 될까 봐. 그런데 당분간은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요.
내년이 샤이니 데뷔 15주년이에요. 열여덟 살에 데뷔해서 지금 서른둘이죠. 재재가 진행하는 유튜브 예능 <문명특급>에서 샤이니의 데뷔곡인 ‘누난 너무 예뻐’를 엄마 뱃속에서 들었다는 중학생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세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샤이니가 데뷔하던 무렵만 해도 10년 이상 가는 팀이 많지 않았어요. 제가 어리거나 가요계 후배인 입장일 때 10년 차, 15년 차 뮤지션을 보면서 느낀 것. 그리고 현재 어린 세대나 후배가 제 연차의 뮤지션을 보면서 느끼는 것. 그 두 경우가 꽤 다를 거예요. 지금 당장 중고등학생이 샤이니에게 어떤 인상을 갖고 있는지는, 제가 그들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정확히 알 수 없지만요. 저는 활동 연차가 오래됐다고 해서 음악을 하거나 일을 할 때 ‘이 정도로만 하면 충분하지’ 같은 생각을 안 하려고 해요.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현역의 폼을 잃어버릴 것 같거든요. 지금처럼 언제나 현역이었으면 좋겠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보이면 좋겠어요.
키에게는 어떤 욕심이 남아 있나요?
그런 건 별로 없고, ‘일단 무언가를 하기로 했다면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대한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내야 한다’라는 생각뿐이에요. ‘어머, 솔로 앨범을 다 냈어요? 몰랐네요’ 식의 반응은 저에게 전혀 상처가 안 돼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사람이 언제 어디서 제 음악을 접해도 제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여야 한다는 점이에요. 스스로 안 부끄럽다면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않을 수 있어요. 예전에는 인맥 욕심도 많았어요. 그런데 나이들어 보니 그런 거 다 부질없어요.
인맥. 어휴, 지겨워… 하지만 연습생 시절에 꿈꿨던 모습이나 야망이라면 야망은 있었겠죠?
있었죠. 진작에 도달했고요. 데뷔하기 전에는 흥행 여부를 떠나서 그저 무조건 데뷔가 하고 싶었어요. 데뷔를 하니까 1위를 하고 싶었고, 1위를 하니까 콘서트를 하고 싶었고. 동방신기 형들을 보면서는 도쿄돔에 서보고 싶다는 꿈을 키웠고…. 저는 공연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인파 속에서 땀 흘리면서 공연하는 제 모습, 콘서트의 마지막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구체적 장면들을 상상했어요. 아직도 ‘비주얼라이징’의 힘을 믿어요.
와, 국가대표 선수들이 그렇게 이미지 훈련하는 거 알아요? ‘시각화’의 힘은 자기계발서나 메달리스트에게서 들어봤는데, 신선합니다.
비주얼 드림! 어떤 상황에서 내가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 행동까지 속으로 시각화해요. 만약 상상이 잘 안 간다면, ‘아직 내게 그걸 해낼 만한 힘이 없구나’라고 생각해요.
샤이니는 2021년 초에 7집 <Don’t Call Me>를 발표했고, 태민이 제대한 후인 내년에 완전체로 컴백할 예정이죠. 키의 솔로는 곧 나오고요. 가까운 미래와 내년이라는 미래를 앞두고 마지막 말을 남겨준다면요?
저는 지금의 모든 상황이 아주 자연스러워져서 좋아요. 무슨 말이냐면, ‘드디어 오랜만에 컴백!’ 식으로 대서특필할 만한 컴백이 아니라는 거죠. 누군가 ‘와, 키가 솔로 앨범을 낸다고?’ 하면서 놀랄 일도 아니고요. 제 직업은 뮤지션이고, 앨범을 내는 게 이 직업에서 할 일이에요. 음악을 하고 발표할 수 있다는 게 큰 감흥을 일으킨다거나 새삼스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 그 자연스러움이 좋아요. 샤이니 역시 꾸준히 음악을 선보여왔어요. 15년 가까운 시간 동안 팀이 와해된 적도 없습니다. 저도 샤이니도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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