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직장 상사를 드라마에서 발견했다.
“잘했네. 잘했어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강기영이 연기하는 정명석 변호사는 시청자들로부터 ‘서브 아빠’라 불리며 무한한 애정을 받았다. 그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동시에 지닌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의 든든한 멘토. 유튜브에 돌고 도는 ‘정명석 명장면 모음’ 영상은 훌륭한 직장 상자이자 좋은 동료는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 답안이라 할 만한다. 그중에서도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이 장면이다. 정명석은 처음부터 우영우의 편에 서지 않는다. 로펌 대표에게 “자기 소개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가르치냐?”고 따지며 변호사로서 자질을 의심한다. 하지만 우영우가 새로운 관점으로 사건에 접근해 생각지 못한 방향성을 제시하자, 묵묵히 듣고 있던 정명석은 무언가 깨달은 듯한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어, 잘했네. 잘했어요.” 이 장면에서 그는 자신의 말실수를 바로잡으며 “미안해요.”라고 사과를 건네기도 한다. 드라마 초반 빌런인 줄 알았던 정명석이 우영우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는 순간이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알며 사과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이후 우영우에 대한 헌신과 조력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근거가 된다. 동시에 정명석은 칭찬과 인정에 갈증을 느끼는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존재 자체로 위안이 됐다. 요컨대, 판타지 같은 리더의 등장을 알리는 명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그랬어”
너무나도 당연한 소리지만 신입 사원의 일처리가 매끄럽지 못한 이유는 명확하다. 잘 몰라서다. 무지와 경험 부족에서 실수가 비롯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직장 상사 열에 아홉도 그런 시기를 거쳤고 자신의 빈틈을 경험과 요령으로 메웠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차가 쌓일수록 그 사실을 까맣게 잊게 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팔짱만 낀 채 후배의 업무 센스가 답답하다고 투덜댈 수 있을까. 핀잔과 질타를 받는 입장도 할 말은 있다. “알려주고 화를 내든가.” 그래서 웹툰 편집부를 배경으로 한 <오늘의 웹툰>에서 최다니엘이 연기하는 석지형 부편집장은 무척이나 이상적이다. 허당 면모도 있지만 적어도 일에서만큼은 에이스인 그는 의욕이 앞선 신입 웹툰 PD 온마음(김세정)에게 자상하게 때로는 냉철하게 전문가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나 선수 출신 지도자처럼 자신의 경험에 대입해 상황을 이해시키고 방향을 잡아 주는 화법은 그를 더욱 완벽한 멘토로 만든다. 이를테면 역량 부족을 자책하는 온마음에게 “괜찮다”라는 뻔한 위로 대신 “나도 그랬어”라는 식으로 눈높이를 맞추고, “서로에겐 최적의 타이밍이란 게 있는 거야. 그 타이밍이 올 때까지 최대한 열심히 성장을 해”라고 격려의 마침표를 찍는 장면이 그렇다. 뒤집어서 보자면, 시행착오를 발판 삼아 전력을 다해 자신을 개선하고 성장을 이룬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이 아닐까. 석지형은 그 타이밍에 이르렀다.
“고생했어”
겉보기에는 어딘가 물렁해 보이지만 날카로운 안목과 굉장한 경험치를 지닌 고수. 어디나 있을 법한 클리셰 같은 캐릭터가 <오늘의 웹툰>에도 존재한다. 박호산이 연기하는 장만철은 만화 잡지 시절부터 웹툰 시대까지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웹툰 편집부 편집장이다. 20년간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으로는 인복이 언급된다. 함께 일했던 만화가들도 그를 따라 플랫폼을 이동했을 정도다. 하지만 더 강력한 그의 무기는 인성과 인품일 것이다. 이게 없다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도 불가능한 법이다. 실제로 장만철이 빛나는 장면이 여럿 있는데, 배배 꼬인 문제와 갈등을 드라마틱하게 처리하는 해결사 면모보단 상대의 마음을 사는 리더십에 무게를 둔다. 웹툰 편집부에 만족하지 못해 부서 이동을 요청한 신입 사원을 포기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일하면 자기 주변 풍경이 변하는 법이다. 그럼 다음 스테이지가 보일 거야”라고 조언을 건네거나, 웹툰의 흥행만 쫓아 비난을 사지만 한편으로 편집부의 실적을 도맡고 있는 후배에게 “고마워. 회사에서 악역 맡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내가 알아. 물렁한 상사 덕에 그 역할 맡아주는 거 고맙게 생각해”라고 담담하게 진심을 전하는 식이다. 또 장만철은 허허실실 팀원들의 눈치를 보거나,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관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사람들을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한 발짝 물러서야 하는 순간과 다가가야 할 순간을 알고,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해 줘야 하는 말을 아는 지혜. 이 또한 좋은 멘토의 미덕임을 그를 보며 깨닫는다.
- 프리랜스 에디터
- 우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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