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적인 프린트에 깃든 그래픽 모티프가 입체적인 3D 형태로 바뀌는 마법. 클래식한 조형미 대신 추상적 기품을 택한 디올 하이 주얼리의 담대한 아름다움.
빠르게 소비하는 대상이 아닌, 시간을 두고 그 가치를 음미하게 한다는 점에서 하이 주얼리와 쿠튀르는 유사한 궤적을 그리지만 이 둘은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일반적인 런웨이에서 하이 주얼리를 제대로 선보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델의 걸음 속도를 좇다 보면 하이 주얼리는 자세히 볼 수 없다. 지난 6월 4일, 디올은 시칠리아 타오르미나의 그랜드 호텔 티메오의 중심에서 오직 하이 주얼리만을 위한 이벤트를 열었다. 서정적인 갈라와 함께 천천히, 정직한 보폭으로 걸어 나오는 모델들의 몸 위로 새롭게 출시한 ‘Dior Print’ 하이 주얼리가 찬연하게 빛났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오트 쿠튀르 실루엣과 나란히 배치된 137개의 마스터피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즐기는 디너 후, 동화 같은 패션쇼가 펼쳐지면서 ‘주얼리 위에 프린트 드로잉을 구현하기’를 꿈꿨던 빅투아르 드 카스텔란의 오랜 아이디어가 마침내 세상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칵테일 파티가 펼쳐진 정원에서는 고대 그리스 여신 스타일을 고스란히 구현해낸 모델들이 살아 있는 회화 작품 같은 자태를 드러냈다. 석조 받침대에서 포즈를 취한 그들은 그리스 조각상에서 목격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자세로 새 컬렉션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디올 주얼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빅투아르 드 카스텔란은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만드는 데 능하다. 레이스의 세계를 탐구하던 2018년의 ‘Dior Dior Dior’, 텍스타일 염색 효과를 활용한 2020년의 ‘Tie & Dior’, 그리고 브레이드에 주목한 2022년 1월의 ‘Galons Dior’에 이어, 새롭게 선보이는 ‘Dior Print’의 디자인은 디올 하우스에 새롭고도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되기에 충분했다. 스트라이프와 체크, 리버티 프린트와 타이다이 같은 평면적인 프린트에 깃든 그래픽 모티프를 입체적인 3D 형태로 탈바꿈한다는 기발한 콘셉트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 각각의 프린트 모티프는 미니어처 사이즈로 구현된 패브릭을 연상케 하는데, 깔끔하게 재단된 듯한 이어링 디자인, 리본처럼 물결치는 형태의 초커와 플래스트런, 링과 네크리스로 형태만 바꾼 듯한 플라워 디테일에서는 디자이너의 손길마저 느껴진다. 화려한 드롭 이어링, 펜던트, 그리고 관능적인 커프링크스를 완성하는 쿠션 같은 볼륨감에서는 경이로운 기술력 또한 엿볼 수 있다.
디올 하이 주얼리의 탁월함은 시선을 집중시키는 컬러 조합과 사실적인 디테일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아름다운 젬스톤과 파리 공방의 뛰어난 기술력은 말 그대로 평범한 수준을 초월한, 독보적인 문양을 완성한다. 세 가지 컬러의 골드 소재로 완성된 네크리스에서 멀티 컬러의 리본이 교차하는 디자인은 기술적 위업까지 느껴지니까. 주얼러들은 여러 모티프를 작은 크기의 주얼리로 축소하는 과정에서 제작 과정에 맞는 세팅 유형과 젬스톤 배치 시의 밀도를 고려했고, 체크와 스트라이프 모티프가 각 주얼리의 움직임과 윤곽선에 어우러지도록 양각과 원근감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마스터 주얼러는 디테일을 연결하는 링크를 제작하기 위해 워치메이킹 분야의 전문적인 노하우 또한 차용했다. 화려하다는 수식어로도 충분하지 않은 멀티 컬러 젬스톤의 그윽한 빛은 또 어떤가. 마치 패브릭을 보는 듯한 메탈 네크리스에 환한 빛을 더하는 11.92캐럿의 콜롬비아산 에메랄드, 주얼리의 주름 디테일에 자리한 젬스톤에 플라워와 스트라이프를 조합한 디자인은 이번 컬렉션의 철학을 일관되게 반영한다. 체크 모티프를 입체적으로 구현한 주얼리에서는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로 재해석된 뉴 네이비 컬러를 만나볼 수 있다. 또한 핑크, 바이올렛, 블루 사파이어, 화이트 다이아몬드, 모브 애미시스트가 줄지어 장식된 꽃잎은 스트라이프와 어우러지며 링, 네크리스, 이어링, 그리고 매혹적인 시크릿 워치에 한층 풍성한 매력을 불어넣는다. 이토록 ‘젬스톤을 격렬하게 흩뿌린’ 디자인은 기존의 조형적인 스타일에서 한발 물러나 무작위적이고 그래픽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저마다 독특한 매력을 지닌 젬스톤이 모여, 클래식 하이 주얼리 작품에 특유의 개성까지 부여한 것이다.
“쿠튀르와 마찬가지로 하이 주얼리 제작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로 조정이 필요합니다. 젬스톤 세팅의 곡선형 표면으로 인해 프린트와 라인이 변형되는 만큼 정교한 작업이 필수죠.” 빅투아르 드 카스텔란의 말이다. 디올 하우스에 존재하는 다양한 세계를 진귀한 작품으로 승격시키는 하이 주얼리의 전문성과 정성. 사람의 시간과 손길이 닿은 이 마스터피스는 하우스가 전달하는 감동 중 가장 큰 감동이며, 존경이 아닐까. 그들의 섬세함은 때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하게 만들기도 한다. 파리의 우아한 품격과 이탈리아의 돌체비타가 어우러지는 광경 속의 ‘Dior Print’는 쿠튀르 예술에 찬사를 보낸다. 평면 프린트가 입체적 형태로 변신하고, 클래식한 조형미 대신 추상적 아름다움을 택한 디올 하이 주얼리의 새로운 도전은 오랜 시간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준 디올 하우스의 무한한 여정이 아닐까. 이번 컬렉션의 그 배짱 두둑한 도전 정신은 다시금 하우스의 한계를 뛰어넘었음을 증명했다.
- 패션 에디터
- 김민지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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