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배우, <마녀2> 신시아

박서령

초토화된 비밀 연구소에서 깨어난, 아이 같은 순수함과 파괴적인 본성을 동시에 지닌 소녀. 그 소녀를 연기하는 미지의 배우, 신시아. 기다림 끝에 개봉한 <마녀 2>와 함께 신시아라는 미스터리가 베일을 벗었다.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초인 캐릭터를 묘사한 영화 <마녀>의 큰 즐거움은 ‘발견’에 있었다. 처음부터 시리즈물로 기획된 스케일이 큰 작품을 통해 미지의 배우를 만나고 알아가는 과정은 관객에게도, 영화를 둘러싼 업계인에게도 반가운 일이다. <마녀 Part 1. The Subversion> 이후 <마녀 Part 2. The Other One>(이하 <마녀 2>)이 공개되기까지, 새로운 마녀는 작품 스태프들을 제외하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기밀처럼 저 너머에 상상으로 존재했다. 1,408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탄생했다는 주인공, ‘신시아’라는 배우의 이름만이 단서였다. <마녀 2>의 언론 시사회 후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박훈정 감독은 ‘전편의 구자윤(김다미 배우)과 닮은 듯 닮지 않은 얼굴이어야 했다’고 말했다. 구자윤을 캐스팅할 때는 ‘반전을 줄 수 있는 얼굴’을 찾았다면, 이번 캐스팅 때는 ‘첫 등장 때 부합하는 얼굴’을 찾았다는 말과 함께. 태어나고 자란 폐쇄된 연구소에서 벗어나 세상 속으로 처음 발을 떼는 ‘소녀’. 아이이면서 초인이고, 천진하지만 위력적이며, 세상을 향한 물음표마저 적극적으로 띄울 수 없는 낯선 감각이 온몸에 배어 있을 그 존재는 하얀 눈밭에 찍힌 핏자국처럼 선명한 신비로움이다. 6월 15일 영화가 개봉하기 전 <더블유>를 통해 첫 화보 작업을 하는 그녀를 어떻게 맞아야 했을까? ‘소녀’도, 신시아도 베일에 싸인 상태에서 우리는 기기묘묘하고 수수께끼 같은 공간으로 주인공을 불렀다(사물들로 이뤄진 기묘한 박물관 같은 촬영지는 작가 최정화의 작업실로, 그는 이번 촬영을 위해 기꺼이 문을 열어주었다). 마침내 신시아라는 미스터리가 눈앞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보디슈트와 러플 장식 팬츠,니트 장갑은 모두 알라이아 제품.

깃털 장식 원피스는 발렌티노 제품.

새빨간 가죽 드레스와 벨트, 부츠는 알렉산더 맥퀸 제품.

원피스, 안에 입은 쇼츠는 프라다 제품.

레이어드한 피케 셔츠는 미우미우 제품.

주얼 장식 민트색 원피스는 미우미우, 앞코가 뾰족한 구두는 프라다 제품.

<W Korea> 신시아라는 이름은 본명인가요?
신시아 네.

예쁜 이름이에요. 사진가와 계속 놀란 거 알아요? 생애 첫 화보인데, 카메라 앞에서는 표정도 느낌도 확 달라졌어요.
도착하기 전에는 긴장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다들 편안하게 해주셔서 긴장도 금방 풀리고 아주 즐겁게 촬영했어요. 감사합니다.

긴장을 풀어줬다고 하기에는 우리가 시아 씨를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린 나머지 너무 리액션을 안 해서 미안한걸요. 평소 셀피를 즐겨 찍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배우 활동을 하면 사진 촬영할 일이 많다고 들었어요. 이제 조금씩 연습해야죠.

<더블유> 7월호가 발행되기 전인 6월 15일에 <마녀 2>가 개봉해요. 다음 주에는 언론 시사회가 있고요. 완성작을 미리 봤나요?
아니요, 저도 아직 못 봤어요.

4년 전 <마녀> 때도 캐스팅 경쟁률이 화제였는데, <마녀 2>의 신시아는 1400명 이상의 여배우 중에서 선택된 존재예요. 캐스팅 소식을 처음들은 그 순간이 기억나요?
결과 통보가 예정된날, 저녁까지 아무 연락이 없어서 반쯤 포기한 상태였어요. 그러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받았는데… 감독님이셨어요. 저는 빵을 먹고 있다가 전화를 받았어요.

어떤 대화가 오갔죠?
“여보세요?” “나 박훈정 감독인데 지금 뭐 하고 있니?” “문어빵을 먹고 있어요.” “응, 그래. 지금 코로나 시국이니까 집에서얌전히 빵 먹으면서 있어.” 이러고 끊으셨어요.

감독님이 캐스팅 고지를 티저 형태로 해주셨네요?
알듯 말듯 하게. 먹고 있던 빵을 떨어뜨렸어요. ‘어? 이거 붙었다는 뜻인가?’ 하면서 그냥 ‘네’ 하고 끊었죠(웃음). 그 이후에 대본 받으라고 다시 연락을 주셨어요.

많은 신인 배우들이 <마녀 2>의 시나리오를 얼마나 받고 싶었을까요? 신시아가 그걸 손에 쥐었어요. 읽으면서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와, 엄청나다.’ 단숨에 읽었어요. 소름이 돋았고, 많이 놀랐어요. 그러다 금방 정신이 들면서 ‘그런데 이걸 내가 해내야 하잖아?’ 라는 깨달음이(웃음). 부담이 되면서 설레기도 하고, 복합적인 마
음이 교차했어요.

뭐가 그렇게 엄청났어요?
제가 <마녀>의 팬이에요. 이번에는 1편보다 세계관이 훨씬 확장된 느낌이었고 신선했어요.

1편부터 아주 마음에 들어 했군요?
네. 반전의 충격이 인상적이었어요. 또 김다미 선배님이 연기한 구자윤은 아무렇지도 않게 최우식 선배님 이나 여러 남자를 날려버리잖아요. 간결하면서도 아주 큰 힘을 드러내는 그런 장면이 새롭게
보였어요. <마녀 2>의 설정에서 제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주인공이 이름 없이 그냥 ‘소녀’라는 점이에요. 1편의 구자윤은 거둬주신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인데, 저는 비밀 연구소에서만 있던 실험체이다 보니 따로 주어진 이름이 없어요. 그저 실험체로서 ‘소녀’로 불려요.

크랭크업한 지 좀 지났죠? 영화 첫 촬영 날, 어떤 장면을 처음으로 찍었을까요?
촬영은 재작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시작해서 작년 4월 말에끝났어요. 거의 이야기 순대로 찍었거든요. 비밀연구소인 ‘아크’에서 소녀가 깨어나는 장면이 첫 촬영이었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 칠을 하고서… 온몸이 피범벅이었어요. 헤어스타일은 살짝 반 삭발한 상태였고요. 첫날의 기억이 저에겐 오래갈 것 같아요.

마녀답게 등장부터 임팩트 있네요. 영화 홍보사 측 말로는 신시아 배우가 소녀만의 표정을 찾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던데,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소녀에겐 세상의 여러 자극이 모두 처음 겪는 경험이거든요. 뭔가를 표현하는 데도 서툴고 미숙함이 있죠. 때문에 표정이 어느 정도 절제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어떤 표현을 하려 하기보다는 최대한 덜어내고 눈빛으로 나타내려 했어요. 저도 제가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거울 보면서 연습하거나 셀프 캠으로 찍어보기도 하면서 준비했어요.

소녀는 한마디로 괴력을 지닌 신생아 같은 존재네요.
네, 그런 느낌일 거예요.

이제 절제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해로운 사람을 하나씩 저 멀리 날려버릴 차례예요. 전편은 한정된 공간에서의 액션 위주였는데, 이번에는 바닥과 천장이라는 X축과 Y축이 따로 없이 더욱 다이내믹한 액션이 펼쳐진다고요?
저는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게 아니라서 맨몸 액션을 많이 익혀야 했어요. 초반에는 그런 액션에 대한 감을 잡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보통의 인간이 아닌 존재인데, 움직임을 어떻게 하면 ‘소녀’답게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요.

이 작품의 핵심이 될 만한 대사 한마디를 꼽아 본다면요?
“네가 날 아크 밖으로 꺼낸 거야?” 소녀의 캐릭터 포스터에 적힌 문구이기도 해요. ‘누가’ 소녀를 밖으로 나오게 했는지, 그 점이 우리 작품의 기묘한 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녀’나 구자윤처럼 특별한 여자 주인공 캐릭터가 흔치 않죠, 특히 한국 영화에서는. 고등학생 때 뮤지컬 <카르멘>을 보고서 연기에 관심이 생겼다면서요. 카르멘이라는 아이코닉한 여성에게 끌렸을까요?
명절에 부모님과 함께 본 작품이었어요. 카르멘도 물론 좋았지만 무대, 음향, 조명, 배우의 연기 등등 그 모든 게 결합된 하모니에 압도당해버렸어요. 너무 좋아서 이후 네댓 번을 더 봤죠. 그렇게 본격적으로 뮤지컬에 빠져들었어요.

아하, 작품에 꽂히면 N차 관람하는 스타일이군요?
네. 아주 끝까지 가는 편이어서…(웃음).

반갑습니다. 저는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를 극장에서만 다섯 번 본 사람입니다.
하하. 제가 가장 많이 본 작품은 뭔지 꼽기도 힘들어요. 여러 번 반복해서 본 작품이 너무 많거든요.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기분이 가라앉았을 때 좋아하는 작품을 보면 다시 기분이 좋아지기
도 해요.

<카르멘>을 만나기 전까지는 연기나 연예계 쪽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네. 다른 직업을 생각하면서 공부했어요. 패션계와 잡지 에디터 같은 일에 흥미가 있었어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열두 번 정도 본 것 같아요. 그 이상 봤을 수도 있어요. 그만큼 관심이 많았고, 혼자서 글도 써보고….

잡지계가 인물 하나를 영화계에 뺏긴 셈이네요(웃음).
고등학생 때 바짝 준비해서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나요? 뮤지컬에 빠진 후 바로 연기 준비에 들어간 건 아니고, 2년 동안 부모님 몰래 뮤지컬과 연극 공연을 열심히 보러 다녔어요. 학교 수업 마치면 대학로나 충무로로 가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제 통장과 카드도 만들었고요. 조금씩 돈을 모아서 티켓 사려고요. 공연 보러 먼 지방까지 가기도 했고…. 그렇게 오가면서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제법 적극적이군요, 뭐 하나에 꽂히면.
고3 올라가는 겨울에, 제가 그동안 본 공연을 가지고 나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부모님께 보여드렸어요. ‘네가 이 정도로 진심이구나’ 하면서 연기 쪽 진로를 허락해주셨죠.

연기하겠다는 꿈을 더 기르고 키우게 만들어준 배우가 있나요?
케이트 블란쳇을 좋아해요. 블란쳇의 작품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블루 재스민>이에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보여주는 모습에 대비가 있는데, 그 상충하는 면모가 좋아요.

케이트 블란쳇이 점점 과민하게 변하는 재스민의 모습을 섬세하게 보여줬죠. 한 작품에 꽂히면 여러 번 반복 시청하듯이 시아 씨를 또 그렇게 만드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아요.
먹는 거요. 맛집 탐방을 정말 좋아해요. 예를 들어 회에 꽂히면 어종별로 먹어보는 식이에요. 오징어회에 꽂혔다 싶으면 무늬오징어, 갑오징어 등등 종류별로 먹어보려고 해요. 맛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다른 곳에서 먹으면 어떤 맛이 날까, 다른 맛집은 어떻게 요리할까’ 싶어서요. 먹성도 좋은 편이고요.

목소리가 아주 조용하고 차분한데, 좋아하는 거 얘기할 때면 톤이 조금 높아지는 거 알아요? 그리고 환하게 웃네요. 배우로서 본인의 마스크는 어떻다고 생각하나요?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어떤 분은 이런 표현을 해주셨어요. ‘얼굴에 빛과 그늘이 같이 있다.’ 제가 배우로서 뛰어난 마스크를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선과 악, 착한 느낌과 어두운 느낌 같은 대비를 지녔다는 건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녀 2>에서는 지금 그 밝은 표정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겠죠? 배우가 된다는 건 얼굴이 많이 알려진다는 뜻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데, 유명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작품 촬영에 들어가면서부터 각오라면 각오는 어느 정도 하고 있었지만, 감을 잡을 수도 없어요. 원래도 밖에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 아니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앞으로 ‘나 자신을 잃지 말자’라는 생각을 해요. 촬영을 마치고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서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려고 나름 애썼어요.

단단해지기 위해서 뭘 했나요?
우선은 책을 많이 읽었어요. 책을 보면 재미도 있고, 여러 삶을 간접 체험할 수 있기도 하니까요. 교회에 다니면서 마인드 컨트롤도 하고….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고 싶어요.

어떤 종류의 책을 좋아하나요?
소설요. 시집, 수필, 인문학 등등 다양하게 읽어보려고 하는데 확실히 제 손이 잘 가는 건 소설이더라고요. 조지 오웰을 워낙 좋아해요. 어릴 때 <1984>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게 제 ‘인생의 책’이에요.

좋아하는 소설로 고전을 먼저 얘기하는군요.
네, 집에 민음사 전집이 있는데, 예전부터 고전을 더 좋아했어요. 물론 부모님 취향의 영향도 있을 거예요. 하루키도 좋아합니다. 저는 마냥 술술 읽히는 것보다는 좀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요.

아카데믹한 기질이 있는 듯해요. 좋아하는 걸 집요하게 반복해서 즐기거나 ‘디깅’하는 사람은 순수하게 그 행위가 재밌어서 하는 면이 큰데, 시아 씨는 그러면서도 그런 행위를 통해 배움을 얻고자 하는 것 같다는 인상이 들어요.
그런가요? 수산시장을 다 뒤져서라도 기어이 무늬오징어를 찾아내는 사람이긴 해요.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느껴지고요. 그렇게 쌓인 생활 속 데이터가 앞으로 연기하는 데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마녀 2>의 소녀에게 세상이 처음이듯 배우 신시아에게도 큰 상업 영화를 둘러싼 경험이 처음이었을 테죠. 배우는 작품을 할 때마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셈인데, 첫 이별은 어떤 기분으로 남아 있나요?
크랭크업 후엔 후련했어요. 그런데 그런 마음은 잠깐이더라고요. 금세 아쉽고, 보고 싶고, 그리워졌어요. 제주도 촬영장에서 모든 스태프들과 몇 개월을 붙어 지내다가 어느 날 각자의 또 다른 삶과 일을 찾아 헤어졌으니…. 제가 연기했던 소녀를, 같은 환경 안에서 연기할 일도 다시는 없는 거고요. 그 점을 생각하니 좀 슬펐어요. 네, 이런 이별을 처음 겪어본 거잖아요. 모든 순간이 그리워요.

‘연기란 이런 거구나’라고 느꼈나요?
스스로와의 대결이라는 걸 실감했어요. 슛이 들어가면 누가 도와줄 수 없는, 오로지 저 혼자서 해내야 하는 몫이 있다는 걸 알았죠.

작년의 신시아와 앞으로의 신시아는 전혀 다른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스타로 불릴 준비는 됐나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녀’로서, 그리고 이제는 배우로서 인사드릴 준비는 된 것 같습니다.

새로운 마녀, 신시아의 김치찌개 레시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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