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한 여자의 감정을 고스란히 공유하며 일어나는 이야기, 드라마 <링크: 먹고 사랑하라, 죽이게>의 여진구와 문가영. 햇살과 그림자 사이로 싱그러운 찰나를 드러내던 두 20대는 행복과 눈물, 이성과 감성, 그리고 로맨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W Korea> 참 희한한 이야기다. 5월 첫 방송을 앞둔 tvN 드라 마 <링크: 먹고 사랑하라, 죽이게>는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데, 공개된 줄거리만 보면 더 물음표가 생긴다. ‘한 남자가 낯선 여자의 온갖 감정을 느끼며 벌어지는 감정 공유 판타지 로맨스’라니.
여진구 내가 타인의 기쁨, 슬픔, 공포 등등의 감정과 연결되면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도 그 사람의 감정을 생생히 느끼게 된다. 초능력처럼 원할 때 상대방과 ‘링크’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불시에 남의 감정이 내 감정을 다 지배해버리는 현상이라고 할까.
문가영 드라마 후반부에 실마리가 등장한다. 누군가는 우리 작품을 판타지로 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판타지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거다.
‘링크’는 극 중 셰프 역할인 여진구와 레스토랑에 취업한 문가영 사이에 생기는 은밀한 전이 현상이다. 누군가의 감정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면 과연 어떨까?
여진구 처음 촬영을 시작하면서는 연기할 때 좀 무섭기도 했다. 내가 맡은 인물이 슬프지도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슬퍼져야 하고, 웃기지 않은 상황에서 막 웃어야 하니까. 배우가 연기할 때 아주 어려운 상황 중 하나가 변화의 폭이 클 때인데,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돼서 작품 결정을 망설였다. 혼자 생각을 해보다가 ‘내가 이걸 하고 싶어 하는구나’ 알았다. 그다음부터는 감독님, 작가님과 이 기이한 상황들을 어떻게 표현할지 빨리 의논하고 싶었다.
남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는 사람은 어느 순간 온몸이 욱신거릴 것 같다(웃음). 반대로 남에게 감정을 들키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밀한 폭로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문가영 극 중 나는 공유하고 싶지 않은 순간까지 남과 공유하게 되는 쪽이다. 내 입장에서는 창피한 경우도 많겠지. 하지만 아까 ‘이구동성 퀴즈’를 하면서 답했듯 둘 중 하나를 택하자면 나는 강제로 공유를 ‘당하고’ 싶진 않다(웃음).
여진구 작품을 하면서 느꼈는데, 나는 차라리 감정 공유를 당하는 쪽이 낫겠다 싶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감정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면? 어휴, 좀 소름 돋을 것 같아(웃음). 상대가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내 지난날을 자꾸 곱씹게 되지 않을까?
오늘, ‘감정’에 대해 주로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두 사람은 평소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거나 말하는 스타일인가?
문가영 나는 그러지 않는 편이다.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는 쪽이다. 그리고 참는 것에 무척 익숙하다. 예를 들면 불편한 게 있어도 불편하다고 굳이 말하지 않는다. 이 일을 하면서 더 그렇게 됐을 수도 있겠다. 이제는 좀 바뀌려고 한다. 달라지기 위해 안 하던 걸 하자니, 훈련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요즘 열심히 훈련 중이다(웃음).
여진구 맞아, 그게 문제야. 잘 참는 것.
여진구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인가?
여진구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연기하는 작업을 일이라고 표현하고 싶진 않은데, 통상적으로 일이라고 한다면, 내가 하는 일에서는 내 감정이나 생각 등을 털어놨다가는 상황이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들과 있을 때라면 달라지겠지. 요즘 들어 나도 ‘잘 참는 게 과연 좋은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참는다고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닌 것 같더라. 그런데 참지 않고 털어놔버리면 친구들이나 좀 더 편안한 사람들과 터놓고 얘기할 때 통쾌함이 주는 자극이 사라진다는 느낌도 있고.
두 사람 다 워낙 어릴 때부터 일했고, 각자의 출연작이 40편을 넘는다. 잘 참는다는 그 공통점은 사회적으로 단련된 프로 정신일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는 이성과 감성 중 어느 쪽이 더 강한 사람이라고 보나? 어릴 적부터 드러난 기질이 어땠는지 떠올려 본다면 말이다.
문가영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딱 50대 50이었던 것 같다. 음악하는 엄마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독일에서는 엄마가 유학하던 시절이니까 집에서 늘 피아노를 치거나 음악을 들으셨다. 자연스럽게 나도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자랐다. 그러다 일을 시작하고 어릴 때부터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내 상태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나 혼자 있을 때면 다분히 감성적이고 감정에 맘껏 빠진다. 하지만 문밖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온전하게 이성적인 사람으로 변한다. 일하는 나와 혼자 있는 나, 그 둘이 철저하게 분리되는 느낌이다.
혼자 집에 있는 문가영은 어떤 모습인가?
문가영 눈뜨자마자 노래를 튼다. 집에 있는 날에는 잠들 때까지 노래가 계속 흐른다. TV는 잘 안 본다. 청소하고, 책 보고. 책 읽는 거 좋아한다. 가끔 저녁에 동기들과 게임할 때도 있고. 각각의 시간을 다 나눠놓기 때문에 차례대로 하면 하루가 훅 간다.
여진구의 이성과 감성의 밸런스는 어떤 것 같나?
여진구 한쪽으로만 유독 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 사이를 잘 오가는 법을 배웠다.
문가영 그거, 아주 중요한 것 같아. 연기하는 생활을 하면서 더 잘 익히게 됐지.
눈물은? 잘 우나?
여진구 보통 내 일상에서는 우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운다(웃음). 장르 안 가리고 다양하게 뭘 보다가 잘 울지. 뭐 딱히 예를 들기가 힘들 정도로.
문가영 정말? 신기하다. 왠지 잘 안 울 것만 같았는데.
여진구 감수성이 풍부한 것과는 또 다른 차원 같다. 연기하지 않을 때는 철저히 시청자 입장이다. 잘 보다가 등장인물의 처지에 이입되거나 이야기가 슬프게 다가오면, 어우….
문가영 마음이 닿을 때 그런가 보네.
문가영의 눈물은 안녕한가?
문가영 나는 정말 눈물이 없는 편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운 기억은 없다. 한 번도 없는 건 아니겠지만.
여진구 음, 문가영은 울게 만들기 어려운 사람이구나.
눈물 없는 편인 문가영에게도 기억나는 눈물이 있나?
문가영 대체로 눈물이 없는데, 그런데! 내가 글에 좀 약하다. 뭔가를 읽다가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문가영을 울리는 글은 어떤 글인가?
문가영 최근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엉엉’ 운 것까진 아니고, ‘또르륵’. <자기 신뢰>라고, 현대 작가의 저서가 아니라 고전 느낌의 철학서 내지 자기계발서인데… 지금은 날 건드린 그 문장이 뭐였는지 잘 떠오르지 않지만, 아마 그 순간 내게 필요한 말이었는지 무슨 요인 때문인지 별것 아닌 문장에 그렇게 됐다. 그런 날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독서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말 울컥할 법한 얘기라서 그렇다기보다는 타이밍이 잘 맞게 어떤 문장을 만났을 때, 그 문장이 전하는 무언가가 있다.
특정 문장과 ‘링크’되는 현상을 겪은 셈인가. 내 감정을 숨기고 싶어도 고스란히 드러내게 되는 대표적 대상을 꼽자면 ‘연인’과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닐까 한다. 인생에서 정말 사랑하는 존재가 생긴다면, 그 대상과 링크되길 원하나?
여진구 나는 싫다. 아무리 사랑하는 관계여도 어쨌든 자기 삶은 자기만의 영역이다. 내 감정과 생각, 가치관 등등을 타인에게 온전히 오픈할 수 있는 권리는 그 사람 자신에게 있어야 하고.
문가영 상대에 대해 뭐든 알고 싶고,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고, 그래서 욕심이 들 때도 있겠지만 진구 씨 말대로 다 알지는 못하는 것이 결국 상대방을 위한 일 같다. 만약 모든 걸 알게 되면 누군가 한쪽은 분명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또 감정이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정말 사랑하는 대상이라면, 어느 정도 텔레파시가 통하지 않을까? 사랑한다는 건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뜻이고, 그러면 감이 좋아질 거다. 관심 갖고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까.
두 사람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로맨스는 어떤 형태인가?
문가영 내가 좋아하는 건 편안함이다. 편안한 솔메이트. 그리고 ‘낭만’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낭만이라는 게 뭐냐면, 예를 들어 친구 같은 그 사람과 ‘일 마치고 집에 가서 치킨 먹어야지’, 하는 거다. 그런 순간을 나누고 싶은 사람. 낭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
여진구 우리 MBTI가 같다더니. 성향이 비슷한 데가 있긴 한가 봐. 나도 그 단어를 좋아한다, 낭만.
‘낭만’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뭔가?
여진구 내게는 이런 낭만이 있다. 그 사람이 아플 때 프렌치 어니언 수프를 해주고 싶다는 거(웃음).
문가영 요리를 워낙 잘하니까.
프렌치 어니언 수프라는 구체적인 메뉴가 등장하다니. 죽 전문점에서 공수하는 전복죽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여진구 예를 들면 그런 느낌으로, 소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있지. 그 정도 외에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로맨스라고 하면 ‘일상’이라 하고 싶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뭘 하고 싶다는 걸 넘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일상에서 같이 쉴 수 있다면 그게 참 좋을 것 같다.
연기 경력과 내공이 받쳐주는 여진구는 연애를 대본으로 배웠다는 풍문을 들었다(웃음).
여진구 나에게 연애 문제를 상담하는 사람이 꽤 많다….
문가영 와! 정말?
진실은 잘 모르겠지만, 상담에 앞서 그들에게 ‘본 솔루션은 실전 경험에서 우러났다기보다 드라마로 익힌 데이터’라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나?
여진구 우선, 내가 아무리 대본을 많이 봤어도 60억 개 정도를 보진 못했다(웃음). 드라마를 보며 이야기와 인물의 감정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나도 작품을 통해 ‘연애를 한다면 이렇게 하고 싶다’에 대해 배운 거지, 연애의 정답을 배운 건 아니다. 아마 나에게 얘기를 털어놓거나 상담하는 친구들은 우리 작품에도 언급되듯이 어떤 무게 때문에 털어놓는 게 아닐까? ‘비밀의 무게’ 말이다.
여진구처럼 신뢰 가는 목소리와 태도의 소유자라면 나도 비밀을 털어놓고 싶을 거 같긴 하다.
여진구 연애하면서 생기는 감정의 무게. 이걸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많잖아. 그걸 편안한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그 순간 자체가 의미 있는 것 같다. 필요로 하면 내 의견을 말해주지만, 나는 주로 ‘힘들었겠다’ 하고 공감해줄 뿐이다.
오늘 지켜본 문가영은 활짝 잘 웃으면서도 들뜬 느낌보다 차분한 느낌이 더 커서 인상적이다. 혹시 소리치며 화를 낸 기억이 있나?
문가영 연기할 때 말고는 딱히… 가까운 이들에게서 ‘너무 이성적이야’ 같은 말을 종종 듣는다.
스스로 약점이라고 여기는 것은 뭔가?
문가영 내가 자신 있는 것 중 하나가 상처를 잘 안 받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약점이랄 게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물론 자주 상처를 받지만, 자가 치유가 잘 된다. 상처를 받아도 어떻게든 보호막을 만들거나 잘 품으려 한다. 가끔은 그 점이 버겁다. 그 버거움이 약점이라면 약점일까? 하지만 계속해서 자가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여진구는 1997년생, 문가영은 1996년생이다. 배우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나이 들길 바라는가?
문가영 내 나이대에 맞는, 삶의 그 순간들에 잘 어울리는 작품을 만나고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매번 나보다 타인이나 일이 먼저였던 것 같다. 정작 나에게는 좀 소홀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파악하고, 말하지 않던 걸 말하기도 하면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중인데 이게 의외로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계속 알아가야지.
여진구 배우로서는 안주할 줄을 모르는 배우로 살면 좋겠다. 겁먹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한 인간으로서는 글쎄, 삶을 너무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싶진 않은데… 아!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지 방금 막 강하게 든 생각이 있다.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 되고 싶다!
자신이 어떨 때 기쁘고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인지 알고 있나? ‘완벽한 행복’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순간은 뭔가?
문가영 나에겐 딱 꼽을 만한 순간이 있다. 중요한 신을 소화 하는 날, 아주 만족스럽진 않아도 무사히 잘 끝내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 그런데 마침 노을이 지고 있거나 저 멀리 해가 막 떠오르는 순간이라면…. 나는 늘 음악을 틀어놓으니까, 그 순간에 어울리는 좋아하는 노래까지 흐르고 있겠지. 그럴 때면 너무나 행복하다. ‘잘 마쳤다’는 마무리의 순간이기도 하다.
여진구 나는 뭐라고 말할지 좀 고민이 된다. 왜냐면 내 행복의 허들은 좀 낮은 편이라서. 나 역시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창밖을 봤는데 풍경이 예쁘면 행복하고, 고된 날이라 기분이 썩 좋진 않다가도 마침 비가 내리고 있다면 그것대로 비가 나를 위로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행복하다.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다.
문가영 아, 낭만적이야.
두 사람 꽤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다. 못 느끼나?
문가영 우리가? 그런가?
여진구 응, 그런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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