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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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무엇도 아닌 ‘뽕’을 찾아 오랜 시간 헤맨 뮤지션 250. 그가 마침내 첫 정규앨범 <뽕>을 발매했다. 

흰색 재킷과 셔츠는 모두 헤이슨테일러 제품.

이야기는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의 마지막 날, 서울 홍대 클럽 ‘헨즈’에서 열린 송년 파티에서 250은 훗날 자신의 첫 정규앨범으로 불릴 <뽕>의 발매를 예고했다. 비록 오랜 시간을 경유한 약속이었지만, 올해 3월 18일 마침내 <뽕>은 발매되었고, 그사이 250이 <뽕>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분투를 치렀는지는 앨범 발매에 앞서 그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뽕을 찾아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250의 ‘뽕 찾기 대모험’을 요약하자면 대략 이러하다. 대한민국 뽕짝의 대표주자 이박사를 만나고, KBS <전국노래자랑>의 예선 현장에 불쑥 찾아가 참가자 인터뷰를 하고, 성인 콜라텍을 전전하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최신 뽕짝 앨범을 들으며 시장 조사를 하고, 영등포 춤 연수원에 찾아가 사교댄스 ‘리듬짝’을 배우기.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사이사이 250은 연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내가 하는 게 뽕짝이 맞나?” 아마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자기 검열이었을 거다. 250은 과거 오랜 시간 서울의 클럽에서 DJ로 활약해왔다. 나아가 이센스의 ‘비행’, 김심야의 ‘Interior’와 같은 힙합 트랙을 프로듀싱했으며 NCT 127의 ‘Chain’, 있지의 ‘Gas Me Up’ 등의 K팝 트랙을 작곡하며 이름을 알린 프로듀서다. 여러 각도로 뜯어보아도 그의 이력은 ‘뽕’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다. 그렇기에 250이 별안간 뽕짝 앨범을 발매했다는 소식은, 진지한 B급 유머와도 같이 다가온다. 하지만 그의 앨범을 단순한 농담이라 치부하기엔 곤란한 지점이 많다. 영국의 평론지 <와이어>는 <뽕>을 두고 “250의 성취는 음악적 결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뽕을 찾아가는 과정 전체에 있다”라고 평했는데, 실제 250은 앨범에서 신중현, 양인자, 이박사 등 한국 대중 음악사의 상징적 인물들과 손잡으며 뽕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이어갔다. 나아가 뽕과 EDM의 이종교배로 탄생한 묘한 사운드 질감, 뽕의 기본적 정서인 슬픔을 묘사하는 방식에선 이런 감상도 스친다. ‘확실히 이전까지 들어본 적 없는 음악.’ 이쯤 되니 남는 질문은 하나다. 그는 왜 뽕짝을 찾아 헤맸나? 앨범 <뽕>을 발매한 직후인 어느 날, 뮤지션 250을 만났다.

검은색 재킷은 톰 포드 by 미스터 포터, 프린트 셔츠는 드리스 반 노튼 by 미스터 포터, 팬츠는 킹스맨 by 미스터 포터, 부츠는 후망, 반지는 SCBL 제품.

<W Korea> 첫 질문이 이렇다. “… 그래서 뽕을 찾았나?”

250 어느 정도?(웃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거진 앨범에 담겼다고 본다. 다 만들고 돌아보니까 과거 내가 음악을 만들던 시간 동안 어떤 기분으로 살았는지도 담긴 것 같고. 구체적으로 뭔가를 딱 찾았다기보다 이제는 뽕이 자연스러워진 것 같달까.

이전까지는 래퍼 이센스, 김심야의 힙합 트랙이나 보아, NCT 127, 있지 등 케이팝 가수의 트랙을 작편곡해왔다. 이번 앨범 <뽕>은 그간 당신이 펼친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음악이다.

가요 작업을 할 땐 기본적으로 즐겁게 작업한다. ‘이 사람에겐 이런 사운드가 어울리겠어’ 라고 상상하면서 작업하니까. 그런데 <뽕>은 철저히 ‘나’가 느껴져야 하는 음악이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멋있어 보이고 있어 보이는 것들은 다 제끼려고 했다. 앨범 발매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프로듀싱을 할 때처럼 머리를 굴리거나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는 쪽으로 가려고 했으니까.

많은 음악 장르 중 왜 ‘뽕’이어야 했는지가 궁금하다.

처음 회사에서 ‘뽕짝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뽕이라는 말 한 마디에서 느껴지는 여러 감상을 모으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웃음).

오랜 시간 헤매며 앨범을 작업하다 ‘됐다’ 하며 갈피를 잡은 순간이 있었나?

앨범을 여는 ‘모든 것이 꿈이었네’란 곡이 있다. 이박사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키보디스트 김수일과 함께한 곡이다. 이박사의 자택에서 김수일 선생님을 만났을 때 그가 즉흥적으로 흥얼거린 멜로디를 녹음해 완성한 곡인데, 그 보컬 파일을 어떻게 활용할지 2년이나 고민한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그 녹음 파일을 들었는데 선생님과 만난 그때가 굉장히 옛날처럼 느껴지는 거다. ‘어느새 지난 일이 되었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징하게 알겠는 상황이 딱 오더라고. 처음엔 선생님의 보컬을 기반으로 굉장히 세련된 사운드를 쓰려고 했는데 급선회했다. 1960~70년대 빈티지 건반 악기인 멜로트론을 사용해서 굉장히 아날로그스럽고 따뜻한 질감의 소리를 내려고 했지.

앨범의 마지막 곡인 ‘휘날레’에선 만화 <아기공룡 둘리>의 오프닝 타이틀곡을 부른 오승원과 함께했다. 자그마치 3년에 걸쳐 그를 수소문했다 들었다.

아마 11년 전 영상일 거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오승원 씨가 아들의 학교 공연장을 찾아 대중 앞에 굉장히 오랜만에 얼굴을 드러내고 〈아기공룡 둘리〉의 주제가를 부른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녀가 첫 소절 “요리 보고”를 부르며 입을 떼는데 그 한 소절에 관중들이 아예 뒤집어진다(웃음). 나도 그걸 듣는데 순간 기분이 너무 이상해지더라고. 댓글도 보면 다들 슬프다는 반응이다. 자신이 〈아기공룡 둘리>를 보던 시절은 너무 까마득한데, 주제가를 부른 오승원의 목소리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그대로니까.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내가 그 추억의 시간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느끼면서 슬픔이 찾아오는 거지. 그때 결정했다. ‘이 사람의 목소리를 담아야겠다.’ 어쩌면 오승원 씨와 함께 작업하는 순간 앨범의 방향이 명확해진 것 같다고도 느껴진다.

한편 ‘휘날레’의 가사는 양인자가 작사했다. 조용필의 대표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작사가로도 유명한 사람이지?

맞다. ‘휘날레’를 오승완 씨에게 맡겨야겠다고 생각한 후 가사를 한창 고민하던 때 어릴 적 내가 좋아했던 노래를 몇 개 찾아보니 대부분이 양인자 선생님이 작사한 곡이었다. 특히 김국환의 ‘타타타’. 정말 좋은 가사라고 생각하거든. <엄마의 바다>라는 드라마에서 배우 김혜자가 라디오에서 ‘타타타’를 들으며 울먹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어린 시절 나에게 상당히 강렬하게 각인됐다. 양인자 선생님에게 거의 맨땅에 헤딩 수준으로 연락을 드렸는데 굉장히 흔쾌히 응해주셨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춤추기 좋은 노래는 슬픈 노래다”라고 말한 걸 봤다. 그런데 <뽕>에 수록된 곡들 역시 슬픔이 기본 정서이되 댄서블한 리듬으로 이뤄져 있다는 인상이 스친다.

슬플 때 추는 춤은 어딘가 ‘절박한 춤’이라고 느껴진다. 왜, 사람들은 클럽에 즐거운 마음으로 놀러 가지 않나. 그런데 나는 늘 도망치는 기분으로 클럽에 갔던 것 같다. 바깥세상은 너무 힘들고 짜증 나니까. 보통 클럽에서는 주로 해외에서 들어온 하우스, 테크노 음악이 흐르는데 나는 그것들이 춤추기 좋은 음악이라고 느껴지진 않더라고. 감정적으로 동하는 무언가가 있을 때 비로소 춤추기 좋다고 느껴진달까. 그래서 내가 기쁨과 환희를 주는 음악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슬프게 만드는 음악을 하는 것 같다. 다만 160의 템포로 드럼이 빠르게 달리는 식으로 만들어서 사람이 춤추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없게 하는. 어떻게 보면 좀 못된 심보다. 울면서 춤추게끔 하니까.

앨범을 작업하며 수도 없이 자문했을 질문일 거다. “그래서 뽕은 무엇인가?”

‘옛 생각’.

뽕에 얽힌 당신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인가?

스물셋이었을 거다. 술에 좀 취한 날이었다. 그때 당시 이박사에 꽂혀 있었다. 야밤에 술에 취한 상태로 인터넷으로 디깅을 하다가 프랑스어로 된 한 사이트에서 이박사의 앨범을 들은 기억이 있다. 잘은 모르지만, 프랑스의 엄청난 힙스터의 사이트였던 것 같다. 그때 음악에서 느낀 어떤 질주감이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박종원
스타일리스트
현국선
헤어&메이크업
채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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