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한 박재범

박재범 같은 인물은 박재범 말고 없다. 그만큼 덩치가 크면서 그 정도로 활동적인 스타는 박재범이 유일하다. 그는 공들여 키운 레이블의 수장을 벗어나 홀로 새 둥지를 만들고, 소주 브랜드를 론칭하고, 댄서 팀을 꾸리며, 현재 진행형인 아티스트로 종횡무진한다. 

박재범이 입은 로고 프린트 셔츠와 베이지 코튼 팬츠는 Valentino, 원 스터드 스니커즈는 Valentino Garavani, MVP 댄서들이 입은 검은색 점프슈트는 Agent Peek 제품.

박재범이 입은 로고 프린트 셔츠와 베이지 코튼 팬츠는 Valentino, 원 스터드 스니커즈는 Valentino Garavani, MVP 댄서들이 입은 검은색 점프슈트는 Agent Peek 제품.

스튜디오의 테이블 위에 요즘 구하기 힘들다는 ‘원소주(WON SOJU)’ 몇 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얼마 전 박재범은 자신이 론칭한 이 소주를 10박스 정도 구입하려다 물량 부족으로 5박스만 손에 넣었다. 2월 말 여의도 ‘더 현대’ 에서 원소주 팝업스토어가 열렸을 때, 오전 11시 30분부터 예약 신청이 가능한 앱에 접속했던 누군가는 11시 32분쯤 ‘대기자 1126팀’이라는 문구를 확인했다. 샤넬 매장에 입장하기 위해 ‘오픈런’ 대란이 일어난다는 서울에서, 투명한 소주병을 손에 쥐려는 인파가 백화점 한 층을 가득 메우는 풍경이 펼쳐졌다. 이 모든 건 2018년 싱글 ‘SOJU’가 나올 즈음부터 싹튼 일이다. 제이 지가 세운 락네이션과 최초로 계약한 아시안이 미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소주를 건넬 때, 그것이 ‘제이 팍이 만든 술’이냐고 묻는 이들이 있었다. 박재범과 인사를 나누고 어울리는 영미권 관계자들에게는 아티스트가 브랜드 하나쯤 론칭하는 일이야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박재범은 언젠가 해외의 클럽과 바에 도열한 주류 속에 한국의 소주가 자리잡은 모습을 상상하며 길고 복잡한 여정을 시작했다. 전통주 장인들을 찾아다니고 매주 미팅을 하는 동안 ‘감압식’이니 ‘옹기’니 하는 용어부터 초록색의 불투명한 병에 담긴 소주가 한국에 널리 퍼지기까지의 과정을 알게 됐다. 물론 팝업스토어를 오픈하는 첫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몇 시간을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저한테 관심이 없던 사람도 원소주는 맛보고 싶어 한다고 들었어요. 원소주에 ‘핫한 인싸’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이 현상이 한때의 ‘하이프’로 끝나지 않길 원해요. ‘박재범 소주’로 화제를 일으키다가 사그라드는 것보다는 이 브랜드가 서서히 완성도를 갖춰가는 모양새면 좋겠어요. 제 커리어도 그렇게 흘러왔잖아요.”

보이 로고 셔츠는 Valentino, 브이 로고 시그너처 펄 네크리스는 Valentino Garavani 제품.

브이 로고 카디건과 줄무늬 셔츠, 버건디색 팬츠는 Valentino, 브이 로고 벨트와 VLTN 호보백은 Valentino Garavani 제품.

최근 몇 년간 K-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박재범 같은 인물은 박재범 말고 없다. 그만큼 덩치가 크면서 그 정도로 활동적인 스타는 박재범 혹은 Jay Park이 유일하다. 그는 한국 힙합 신의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는 두 레이블을 만들고 키운 수장으로, 해마다 꾸준히 싱글을 발표하고 후배 아티스트들이 요청할 때면 기꺼이 피처링과 찬조 출연에 응하는 현역 래퍼로, 또 힙합의 본토와 화려한 파티에서 ‘갱스터부터 재벌까지’ 두루 겪어본 월드 와이드 아티스트로 살았다. 대형 클럽의 구단주들에게 유소년을 육성하는 문화가 자연스럽듯이 김하온이나 서동현, 트레이드 엘 같은 10대를 영입하며 그들의 부모를 안심시켰고(“커리어 시작 단계인 친구들한테 곁에서 누가 영향을 끼치는지는 정말 중요하거든요.”), UFC 팬으로서 정찬성 선수를 지원하기 위해 나섰다. 2020년 여름, 하이어뮤직 아티스트 단체 화보를 위해 만났을 때 그는 ‘돈은 원 없이 쓰고 살지만, 돈 쓰는 것보다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가 훨씬 고민’이라고 했다. AOMG와 하이어뮤직과 락네이션, 한국과 해외, 주위의 아티스트들과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에게 가장 큰 화두는 ‘우선순위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거 부자들의 전형적인 특징 아니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니죠. 돈이야 벌면 된다는 생각은 옛날부터 했어요. 벌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은 벌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잖아요. 특히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는 제가 시간 들여 노력해야 유지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2022년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 박재범은 오랜 고민 끝에 AOMG와 하이어뮤직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알렸다. 580만 팔로워가 있던 인스타그램 계정도 삭제했다. 1월 1일에는 커리어의 한 챕터를 정리하듯 돌아보는 내용의 싱글 ‘To Life’를 발표했다. 그가 ‘모어 비전’이라는 새 회사를 설립하고 아이유가 피처링한 싱글 ‘가나다라(GANADARA)’로 나타난 건 3월의 일이다. 그사이 박재범은 영앤리치레코즈에서 기획한 유튜브 힙합 서바이벌 ‘드랍 더 비트’의 지원자로 랩을 하는 영상을 찍으며 엔터테인먼트 쇼에 기꺼이 동참하는 여유도 보였다. 촘촘한 그의 궤적을 좇다 보면 그가 아티스트이자 엔터테이너로, 또 새로운 일을 벌이는 개척자로서 종과 횡으로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저는 저를 리브랜딩하는 중이에요. 어느 정도를 이룬 상태에서 0으로 돌아가 다시 빌드업해 간다는 거,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독한 마음을 먹어야 다 내려놓고 시작할 수 있어요. 기존 인스타그램을 없애고, 제가 설립해서 파급력까지 갖춘 회사를 놓아버린다는 게 어떻게 보면 치명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스스로에게 불리한 상황을 계속 만드는 사람이에요. 데뷔 후 14년 동안 활동했어요. 상도 받고 돈도 벌고, 잘나가는 사람이 됐고,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욕심낼 법한 것은 다 경험해봤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저한테 자극을 주겠어요? 자꾸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죠.”

스터드 장식 스웨터와 푸른색 실크 셔츠, 체크 팬츠는 Valentino, 오픈 스케이트 스니커즈와 원 스터드 클러치는 Valentino Garavani 제품. 테이블에 놓인 술은 국내산 쌀 100%로 만든 증류주인 원소주(Won Soju). 대한민국 화폐 단위인 ‘원’과 동전을 메인 모티프로,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원 안에 배치했다.

트위드 재킷은 Valentino, 진주 네크리스는 Valentino Garavani 제품.

소주 브랜드 론칭, 새 마음으로 시작하는 시점에서 발표한 싱글 소식 외에 박재범이 요즘 일정 시간을 들여 참여하고 있는 일은 브레이킹 크루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JTBC <쇼다운>이다. “혹시 <쇼다운> 어때요? 재밌어요? 저야 비보이 출신이니까 이들의 무대를 지켜보는 게 너무 재밌거든요.” 박재범은 가수 데뷔 후에도 브레이킹 대회에 참여한 적이 있을 정도로 비보이의 DNA가 진한 댄서다. 물구나무를 선 상태에서 어깨로 바닥에 착지하는 것이 그의 시그너처 동작이었다. “체어라는 기술도 즐겨 했죠. 그런데 <쇼다운>에 출연하는 댄서들과 저를 비교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제가 ‘저지’로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그 댄서들은 하나같이 ‘월드 클래스’거든요. 2024년 파리 올림픽부터 ‘브레이킹’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잖아요. 비보이가 한마디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만큼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뜻이에요. 저도 예전에 해내고 싶은 기술이 있어서 무수히 연습해봤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 해내는 이 댄서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아요. 얼마나 고생하고 희생했을지도 짐작하고요. 무한 리스펙트를 표할 수밖에 없어요.”

<더블유>는 박재범에게 최근 그와 가장 긴밀하게 지내고 있을 친구들인 MVP 댄서들도 화보 촬영장으로 와줄 것을 부탁했다. 지난해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통해 댄서가 일으키는 폭풍과 영향력을 감지한 박재범은 재빨리 가까운 댄서들을 모아 새로운 팀인 MVP(@morevisionproject)를 만들었다. 이 최정예 춤꾼들은 소속 크루나 각자의 활동 영역이 있는 이들이다. 박재범의 여러 콘서트를 함께한 원웨이크루의 쇼리포스, 각각 음악 프로듀서와 모델로도 활동 중인 리버스크루의 너리원과 곤조는 <쇼다운>에 출연하고 있기도 하다. 박재범과 30여 개 도시로 월드 투어를 다닌 태리는 댄스팀 C.A.P.T의 단장이고, 자타공인 한국 힙합 배틀 Top 5에 드는 옐로디는 백석예대와 상명대 교수다. 시온은 여러 음악 활동과 더불어 ‘장여사의 아들’로도 활동 중이다. 화보 촬영장은 한동안 시끌벅적한 무대로 변했다. 중력과 육체에 관한 일반 상식을 거스르는 쇼, 쇼, 쇼. 아쉽게도 박재범과 오래 전부터 연을 맺은 두 형인 주니(국중이)와 와썹은 촬영에 함께하지 못했다(주니는 <킹덤 2>,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배우들의 움직임 연기를 지도한 K-좀비 안무 선구자이고, 와썹은 현재 MNH 엔터의 퍼포먼스 디렉터를 맡고 있다).

박재범이 입은 그래픽 스웨터와 무릎 위에 둔 체크 셔츠, 댄서 태리가 입은 펀칭 장식 셔츠, 옐로디가 입은 회색 후디, 시온이 입은 브이 로고 재킷, 곤조가 입은 스터드 장식 셔츠, 쇼리포스가 입은 검정 티셔츠는 Valentino 제품. 너리원이 입은 하얀 티셔츠는 개인 소장품.

“당장 명확한 뭔가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모은 건 아니에요. 우리가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댄서들을 위한 자리가 점점 늘어날 것 같아서 팀을 꾸리자고 제안했어요. 그동안 이 친구들과 저는 박재범의 무대나 박재범과 관련된 콘텐츠 위주로 작업해왔거든요. 그런데 시대가 왔잖아요. 댄서가 가수 없이도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 시대. 제가 잘하는 건 명분과 계기를 만들어주는 일이에요. 저는 워낙 일을 추진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명분’은 단체를 이끄는 대표직을 경험해본 박재범이 대화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실력자 옆에 ‘박재범’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어떤 효과가 일어나는지 잘 아는 그는 자신이 댄서들에게 해줄 역할이 있다고 했다. 그 역할에는 로고 작업이나 SNS 활용법 같은 세세한 실전 사항부터 어떤 행보를 만들어가면 좋을지 조언하는 일도 포함된다. “지금까지 제가 본 많은 댄서들이, 뭐라고 하나, 잔머리를 못 굴려요. 순수하게 춤밖에 몰라요. 특히 남자 댄서들은 나이스하고 무덤덤해요. <쇼다운>에서도 춤으로 총이라도 쏠 것처럼 무대를 달구던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으면 조곤조곤 말해서 제가 깜짝 놀란다니까요. 점잖고 수줍은 목소리로 ‘네, 부숴보겠습니다…’(웃음).”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방송될 <스트릿 맨 파이터>를 낳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 또 <쇼미더머니> 같은 방송에 관한 이야기로 흘렀다. “<스우파>가 성공한 건 그 드라마의 스토리 때문이었다고 봐요. 전부터 다양한 춤 자체를 접한 시청자는 많았을 거예요. 하지만 <스우파>에는 댄서들의 관계와 신경전이 있었어요. ‘누구랑 누구의 관계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구나’ 알게 되면 배틀에 더 관심이 가죠. 댄스팀 간의 사이나 팀원들의 인간관계를 알고 보면 스토리가 더 재밌고요.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그런 방송이 처음이다 보니 날것이 담겼다는 거예요. 한번 경험을 거쳐서 공식이 생기면, 사람이 자꾸 계산을 하게 되거든요.” 그는 댄서들을 조명하거나 위하는 기회가 많아진 것이 기쁘면서도 걱정과 함께 여러 감정을 느끼는 중이다. “방송사에 제일 중요한 건 콘텐츠가 흥행하는 거죠. 저는 그 콘텐츠와 관련된 문화에 속한 사람이고요. 제 관심사는 결국, 한 문화가 발전하고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가 높아지는 거예요. 그럼 신의 지속력도 생길 수 있어요.”

힙합 문화에서 ‘커뮤니티’는 중요한 가치다. 그리고 박재범을 비롯해 스윙스나 사이먼 도미닉, 다이나믹 듀오 같은 이들은 <쇼미더머니>가 힙합 신에 일으킨 활달한 공기와 ‘한국 힙합 = 쇼미더머니’처럼 되어버린 공식, 래퍼가 스포트라이트를 맛본 이후의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자기 길을 개척하지 못하는 사례 등 무수한 변화와 결과를 지켜보고 체감한 입장이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건 의미가 없어요. 행복은 같이 느끼고 나눌 때 생겨요. 꼭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뭔가를 같이 할 일도 아닌 거 같아요. 돈만 생각하자면, 불법적인 일을 해서라도 벌 수 있는 거잖아요.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거나 의미를 찾아야죠. 의미가 있으면 가치도 생겨요.”

아이보리색 스웨터와 사이드 버튼 장식 팬츠는 Valentino, 로고 메신저백과 VL7N 스니커즈, 로고 진주 네크리스는 모두 Valentino Garavani 제품.

브이 로고 셔츠와 니트 재킷, 데님 팬츠는 Valentino, 로고 크로스보디 백은 Valentino Garavani 제품.

박재범에게 ‘큰 의미’ 중 하나는, 그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명분 혹은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자기의 역할론에 있다. 몇 년 전부터 종종 은퇴를 입에 올리던 그가 ‘지금 은퇴해버리면 나는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느낀 이유다. “은퇴는 여전히 마음속에 있어요. 시기가 문제죠. 아직까지는 제가 할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소주 론칭을 준비하면서도 또 한 번 느꼈어요. 제가 소주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전통주 양조장이나 장인들을 찾아다니면 그쪽에서 저를 반기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저를 환영하고 저한테 어떤 기대까지 하더라고요. 제가 더 이상 누군가나 무엇에 보탤 게 없고 남의 덕을 보려고만 하는 입장이 된다면, 그때는 은퇴하는 게 낫죠.” 박재범은 원소주와 안동소주, 화요, 일품진로 등의 맛을 비교하고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의 차이’를 짚는 리뷰들이 생기는 걸 보면서, 전통주 업계 관계자들이 자신에게 기대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자신보다 커리어의 경험치가 덜한 주변인이 훨씬 많은 상황에서 그들과 무엇을 나누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일에 관한 생생한 감각일 것이다.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왕성한 작업량으로 유명한 박재범은 현재 진행형인 플레이어로서 후배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물론, 역으로 그 또한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기도 한다. ‘가나다라’의 아이디어는 스무 살이던 김하온이 “형, 이거예요”라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끝에 결정된 것이다(박재범은 ‘가나다라’라는 모티프가 유치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애초 아이유가 먼저 피처링해준 다른 곡이 있었지만, ‘가나다라’가 더 사랑받을 곡인 것 같다는 아이유의 피드백이 있었기 때문에 이 곡이 세상에 나왔다. “리드하는 입장이 되려면 그 리더가 제일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할 말 없게. 그냥 땅을 파라고 할 게 아니라 저도 같이 땅을 파야 한다는 거죠. 제가 말로 들려줄 수 있는 것들은 많아요. 누군가 원하고 필요로 할 때 얼마든지 말해줄 수 있어요. 그 말이 무게감을 가지려면, 저도 평소에 같이 움직이고 행동으로 보여줘야죠.”

지금 박재범에게 ‘아직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이루고 싶은 무엇’이 있을까? 그는 목표를 세우는 타입이 아니다. 특히 숫자와 관련된 꿈 같은 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위를 쳐다본다면 하늘 위로는 끝도 없이 올라갈 수 있다. 세상의 높이에는 제한이라는 게 없으니까. 대신, 나의 곁이 되는 부근은 웬만큼 표시된다. 이젠 없었던 일처럼 모두의 기억에서 잊혔지만, 박재범이 연예계에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던 과거 한때도 그는 지금과 똑같은 생각을 품었다. “살아서 숨 쉬고 있고, 가족과 친구와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 제겐 가장 귀해요. 돈이나 지위는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해도 노력으로 얻을 수 있죠. 그 무엇도 한 사람이 살아 있다는 인생 자체와 비교할 게 아니에요. 저와 제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다면, 저는 그거로도 좋습니다.”

박재범은 자신에 대해서가 아닌 남을 보며 감동한다고 했다. <쇼다운>에서 댄서들의 진기한 공연을 볼 때, 시작 단계부터 지켜본 AOMG와 하이어뮤직의 아티스트가 승승장구할 때, 그래서 그들의 통장이 두둑해지고 그들의 가족까지 풍족해질 때, 코리안 좀비가 링 위에서 싸울 때, 이 모든 사람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이 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느꼈을 때, 그는 감동했다. 생각할수록 화려한 스웨그로 스타일링한 단단한 거인 같은 박재범이다. 그가 부모님으로부터 자주 ‘타투 그만해라’, ‘불 좀 끄고 다녀라’ 같은 말을 들으며 산다는 점은 이 비현실적인 영역의 힙합 스타에게 비로소 일상의 이미지를 부여한다. “누구나 슈퍼스타가 될 가능성은 있어요. 얼마나 노력하는지, 또 얼마나 큰 욕심과 야망을 품었는지에 달렸죠. 저도 그걸 잊지 않으려고 해요.”

Mr. Fabulous (박재범)

박재범은 끝까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