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세상에선 배우 주현영이 연기한 캐릭터가 자주 회자되고 있었다.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 2에서 그녀가 연기한 ‘주기자’가 그것이다. 서툴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자꾸만 실수를 해버리는, 하지만 누구라도 미워하기엔 어려운 캐릭터. 주기자는 실제 배우 주현영과 묘하게 겹쳐진다. 연기에 대한 순수한 욕심과 뭐든 배우려는 낮은 자세가, 주현영에게 있다.
<W Korea> 이번 대선 그 어느 때보다 흥미롭게 지켜보겠어요. 최근 <SNL 코리아> 시즌 2에서 대선 후보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주기자가 간다’ 코너를 진행했잖아요.
주현영 확실히 감회가 색다르긴 하죠. 마침 오늘 촬영장에 올 때 차가 막힐까 봐 지하철을 탔거든요. 그런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양옆으로 이재명, 윤석열 후보가 선거 유세를 하고 있는 거예요. 기분이 좀 묘하긴 했어요.
게다가 요즘 대선 후보 TV 토론이 한창 열리고 있죠.
토론만 했다 하면 카톡 방에 불이 나요. <SNL> 출연진이 다 모인 카톡 방이 하나 있거든요. 선배님들이 실시간으로 반응을 올리시는데 대부분 이런 식이에요. ‘와…, 지금, 방금, 와…’(웃음)
‘주기자가 간다’ 첫 회를 기억하세요?
네. 홍준표 의원의 인터뷰였어요. 첫 회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가장 날것의 무언가가 나온 인터뷰이기도 했고요. 코너를 막 시작했던 당시라 의원님 앞에서 구경하고 있던 선거 캠프분들도 다들 ‘쟤 뭐지?’ 하는 기색이었어요. 얼굴은 웃고 있는데 마냥 웃는 것은 아닌(웃음). ‘어떻게 우리 의원님한테 저런 질문을 하지?’란 표정으로 저를 동물처럼 신기하게 쳐다보는 분위기였어요.
‘주기자가 간다’ 이전에 ‘인턴기자 주현영’ 코너가 있었죠. 주현영이라는 본명을 그대로 쓴 초보 기자로 분해 시사 풍자를 하는 코너였는데, 지금 유튜브에서 그 첫 회의 조회수가 700만을 달리고 있어요.
와, 600만 찍은 건 알았는데 700만을 넘었다는 건 오늘 알았네요. 사실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기획이었어요. 솔직히 일회성 코너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처음 대본 리딩을 할 때만 해도 재미없어서 안 웃는 선배님도 많았어요. 유일하게 영미 선배가 ‘이건 무조건 된다’ 하셨어요. 박수를 짝짝 치면서 ‘나왔다’ 하는데 솔직히 제 기를 살려주려고 저러시나 싶었거든요.
이런 말도 있더라고요. ‘주현영도 대단하지만 주현영을 발굴해낸 <SNL>도 대단하다.’
너무 맞는 말이에요. 제 장기를 펼쳐 보여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SNL>에서 아무것도 없는 저를 뽑아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저에 대한 엄청난 확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을 텐데. <SNL> 오디션 현장에서 유명하신 분을 많이 봤거든요. 솔직히 그것 보고선 ‘글렀구나’ 생각했어요. 저도 여태 배우로서 여러 웹 드라마에 출연한 건 맞지만 저보다 훨씬 인지도 있고 쟁쟁하신 분들이 워낙 많았어요. 그래서 더 감사하죠.
오디션 현장에선 무슨 연기를 했어요?
한국 팬들에게 처음으로 한국어 노래를 불러주는 일본 가수부터 일진은 아니고 이진 정도 되는 친구가 추는 춤, 그 이진이 담배를 빌리는 장면…(웃음).
하하. 원래 개그 욕심이 있는 분이었군요.
네… 제가 좀 그렇습니다.
사실 <SNL>에 앞서 2019년 단편영화 <내가 그리웠니>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죠. 그런데 <SNL> 속 희극 연기로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탓인지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반응이 지배적인 듯해요. ‘알고 보니 주현영 배우라더라!’
그렇죠. <일진에게 찍혔을 때>나 <마음이 시키는 대로>처럼 그동안 웹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천천히 작품을 쌓아왔는데 <SNL>를 통해 저도 놀랄 정도로 갑자기 주목받게 됐어요. 그래서인지 요새 이런 말도 자주 들어요. 희극 이미지로 굳혀지면 나중에 정극을 할 때 힘들지 않겠냐고.
좋은 조언? 지적? (‘인턴기자 주현영’ 속 유행어 “좋은 조언? 지적? 아무튼 감사합니다”가 있다)
하하. 딴지?(웃음)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사실 별로 개의치 않았거든요. ‘앞으로 작품을 통해 증명해 보일 거야’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한마디로 오기죠, 오기. 도리어 사람들의 걱정을 동력 삼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중에 내가 작품에서 진지하게 연기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주기자만 떠올리면 어떡하지? 그러면 작품을 만드는 감독님이나 관계자들에게 민폐가 아닌가?
‘주기자가 간다’가 한창 인기를 끌 무렵 당신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이렇게 패기 넘치게 말하더라고요. ‘난 오기가 있다.’
그땐 정말 그랬어요. 오기가 넘치던 시절! 그런데 슬슬 걱정이 되더라고요.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어? 주기자다!’라고 말씀하시니까. 그런데 요즘엔 또 이렇게 생각해요. 이 또한 결국 배우로서의 숙제인 것 같다고. 앞으로 착실히 작품에 임하면서 주기자가 아닌 그 작품 속 인물로 대중에게 다가가야 하는 숙제인 거죠. 그리고 이런 고민의 정착지는 결국 또 오기인 것 같고요. ‘내 직업이 배우니까 이 과제는 반드시 해결해야겠다’라고 스스로 되뇌는 거죠.
마침 올해 상반기 당신이 출연한 넷플릭스 시리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공개돼요. 확실히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오기가 있나요?
그렇죠. 사람들이 ‘주현영 역시 배우구나’라고 생각해준다면 좋겠죠. 그리고 사실 지금 걱정보다 기대가 더 커요. 제가 맡은 ‘동그라미’란 인물은 그간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캐릭터 같거든요. 주인공 ‘우영우’의 유일한 친구인데, 정해진 패턴이랄 게 없는 인물이에요. 내면에서 충동을 느끼면 그게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나요. 그래서 처음 캐릭터를 연구할 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나 <불량 공주 모모코> 같은 일본 영화를 많이 참고했어요. 어떻게 보면 호불호가 명확히 갈릴 캐릭터인데 저는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엔 얼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뿐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실지 너무 궁금해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촬영하며 배우로서 새삼 느끼게 된 것이 있나요?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는 거. 어떻게 보면 <SNL>은 무대 연기에 가깝거든요. 에너지를 막 표출하는 거죠. 여태 그런 식으로 에너지를 표출하는 걸 즐겨왔는데, 정작 그 에너지를 카메라 연기에 맞게 다듬는 법은 몰랐던 것 같아요. 사실 이건 과거 웹 드라마를 찍으면서도 느꼈던 부분이에요. 아직 한참 부족하죠. 그래서 현장에서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며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새롭게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누구도 저한테 ‘현영아 연기는 이렇게 해야 해’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선배님들이 하는 걸 보면서 배우고 있어요.
주인공 우영우의 단짝으로 등장하니, 우영우를 맡은 배우 박은빈과 호흡할 기회가 많았겠네요?
맞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언니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 어색한 게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인지 제가 평소 갖고 있던 고민을 저도 모르게 언니한테 털어놓게 되더라고요. ‘여기서 방금 이렇게 연기한 게 후회되는데 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보면 딱, 굉장히 현명하게 대답을 내려주세요. ‘현영아~ 그건 그때 너의 최선이었던 거니 너무 자책하지 마~ 잘하고 있어~ 난 재미있는데?’
근데 방금 성대모사한 거예요?
하하! 네. 그렇게 따뜻하게 말해주니까 저도 감동받아서 촬영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언니한테 카톡을 보내는 거죠. ‘언니 아까 너무 고마웠어요ㅜ’(웃음)
과거 첫 주연을 맡은 드라마 <마음이 시키는 대로>의 OST를 직접 부르기도 했어요. 또 최근엔 케이팝 뮤지션의 쇼케이스 MC로도 활약하고 있죠. 연기, 예능, 노래, MC 할 것 없이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고 있어요.
정말 할 수만 있다면 다 하고 싶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뮤지컬, 연극 무대에도 서고 싶거든요. 사실 최근 드라마 <쇼윈도:여왕의 집>에 출연한 전소민 선배님을 보며 어떤 확신을 느낀 적이 있어요. 선배님도 예능 <런닝맨>에 출연하면서 대중에게 굉장히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갔잖아요. 그런데 작품 속에선 <런닝맨> 속 웃긴 전소민이 아닌 맡은 배역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그걸 보면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선배님처럼 예능을 하면서 충분히 배우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구나.’ ‘나도 저렇게 될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정말 큰 용기를 얻었어요. 그래서 요즘엔 제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분야라면 뭐든 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미가 중요하네요?
맞아요. 제가 즐길 수 있는 거,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일찍이 배우를 꿈꾸며 한눈팔지 않고 걸어온 편인가요?
그렇죠.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려고 입시에서 3수까지 했으니까요. 물론 3수째엔 다른 과를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언젠가는 제가 다시 연기하고 싶다고 뛰쳐나올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 눈치는 보이지만 ‘해볼 수 있는 데까진 해보자’란 마음으로 버텼던 것 같아요. 또 입시 연기가 재미있기도 했어요. 약간 희열이라고 할까. 근데 그때도 전 수험장에서 ‘어떻게 해야 웃길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웃음). 최종 합격 통지를 받은 대학에서 시험을 칠 때도 엄청 코믹한 연기를 했거든요. 그게 제가 가장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거였어요.
돌이키면 왜 연기여야만 했나요?
그냥 연기를 할 때만 제 가치가 증명되는 기분이었어요. 저에게 연기는 ‘내가 이렇게 쓰이는구나’ 를 온몸으로 느끼게 만드는 일이거든요.
그런 느낌을 받은 최초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예고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웠는데 어떤 짜릿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전 사실 자존감이 낮은 편인데 연기를 할 때만큼은 그런 사실로 저를 평가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내뿜는 에너지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웃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고등학생 때 그런 순간을 몇 번 겪었어요. 그래서 무조건 나는 연기로 나의 가치를 느껴야겠다 생각했죠.
연기는 당신에게 절박한 것인가요, 즐거운 것인가요?
즐거운 거예요. 사실 제가 생각을 해봤거든요. ‘내가 연기를 왜 이렇게까지 좋아할까?’ 그런데 제가 연기를 대하는 감정이 약간 남자친구와 연애하는 것과 비슷하더라고요. 연기가 너무 안 풀리면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답답하고 화가 나는데 막상 그게 해결되면 너무 행복한 거예요. 꼭 연애할 때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기분인 것처럼요.
나에겐 없는 모습이라 동경하게 되는 타인의 모습이 있나요?
있어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 실은 제 전 남친 얘기고요(웃음). 그 친구 MBTI가 ISTP였거든요. ISTP의 특징이기도 한데 그 친구는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어느 집단에 가도 ‘내가 여기서 어느 정도의 위치다’라는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까 굉장히 자유로워 보였어요. 한마디로 쿨했죠. 그게 너무 부럽더라고요.
지금 주현영을 가장 강렬하게 지배하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이게 하나라고 지칭하지 못하겠는데… 설렘과 두려움이 섞여 있는 상태? <SNL>로 많은 주목을 받았고 주변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인데 즐겨야 하지 않겠느냐고들 말해주세요. 그런데 저는 사실 즐기는 방법을 모르겠거든요. 지금은 수조에 잉크 한 방울이 떨어져 물에 완전히 섞여드는 것처럼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상태인 것 같아요.
그럼 언제쯤 온전히 설렐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예측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요즘 하는 생각은 ‘흔들리지 말자’예요. 또는 ‘당장 내가 해야 하는 것만 하자’. 무엇이든 제게 닥쳐올 것을 감당하려면 흔들리지 않고 ‘오케이’ 하며 넘기는 쿨함을 가져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전 남친처럼?
전 남친처럼(웃음).
마지막으로, 주기자는 늘 날카롭고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하기로 유명한 기자잖아요. 그런 주기자가 <더블유>에 한 가지 질문을 한다면?
음… <더블유>에게 주현영이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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