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좀비 지옥도,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의 반장 최남라가 다음 이야기의 열쇠를 쥔 채 사라진 후, 지금 여기 조이현이 나타났다.
<W Korea> 오늘은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이 공개된 지 12일째 되는 날이에요. 요즘 어떤 기분인가요?
조이현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신기해요.
1월 28일 금요일에 작품이 공개됐죠. 주말 이후 3일 동안 설 연 휴였으니, 가족과 함께 <지금 우리 학교는>을 봤겠어요.
네. 특히 엄마는 제가 이 작품에 캐스팅됐을 때부터 좋아하셨어요. 좀비물을 즐겨 보시거든요, 저도 그렇고. 제가 영화 <월드워Z>를 워낙 좋아해서 6~7번은 봤는데 그중 절반은 엄마랑 같이 본 거예요. <워킹데드>도 같이 자주 봤고요.
와, 좀비물을 즐겨 보는 모녀라니! 좀비물의 어떤 점에 끌려요?
제가 겁이 많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무서운 작품을 좋아해요(웃음). 좀비는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무서움을 주잖아요.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어선지 언젠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 더 집중이 되는 것 같아요. ‘저런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유심히 보게 돼요.
<월드워Z>에서 브래드 피트가 좀비들한테 맞서기 전에 잡지를 감아 양팔 보호대로 만든 거 기억해요? 저는 그 장면에서 유사시 잡지의 쓸모를 발견했어요. 판형이 크면서 종이는 가벼운〈더블유〉라면 최적의 갑옷 아이템이 될 거예요(웃음).
하하. 맞아요, 저도 그 작품 보면서 책을 그렇게 감아 이용하면 무기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책이 두꺼우면서도 가벼워야죠.
그런데 좀비 장르에서 어기적어기적 걷던 좀비들이 언젠가부터 냅다 뛰기 시작했어요. 그거 반칙 아닌가요? 너무 무서워요.
<지금 우리 학교는>의 좀비들은 엄청 빠르게 뛰는데 어쩌지….
이번 작품에서는 좀비든 학생이든 학교라는 갇힌 공간을 배경으로 뛰고, 도망 다니고, 몸을 써야 했으니 액션 스쿨에서 훈련 과정을 거치는 일이 필수였을 거예요. 그 경험은 어땠어요?
3개월 정도 훈련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운동신경은 좀 있는 편이지만 체력이 그다지 안 좋은 터라 감독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최남라는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세지고, 극 중 윤귀남이라는 존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거든요. 귀남이를 업어치기 하는 연습을 하는데, 힘이 아니라 반동을 이용하는 동작인데도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악바리 같은 면이 있어서 촬영 기간 동안 체력도 좀 늘어난 것 같아요. 대역 배우도 많이 도와주셨고요.
시청자와 관객은 늘 매끈한 결과물을 보기 때문에 과정이나 사정을 짐작하기 어려워요.
사실 제가 가장 많이 연습한 건 이유미 언니가 연기한 나연이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었어요. 좀비들을 피해 도망 다니거나 싸울 때는, 우리가 학생이기 때문에 멋진 액션 연기를 하기보다 어느 정도 마구잡이로 해도 되는 면이 있거든요. 뺨 때리는 동작을 할 때는 저도 모르게 손이 뺨까지 가기 전에 자꾸 멈추고, 이상했어요. 거울 보면서 스윙 날리는 동작만 엄청나게 연습했어요(웃음).
아직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우리 인터뷰가 꽤 스포일러가 되겠네요.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여러 인물이 나오잖아요. 저는 조이현이 연기한 최남라라는 인물이 가장 흥미로웠어요. 후반으로 가면서 남라의 변화로 극의 장르마저 변모하는 느낌이고, 빌런에 맞서는 ‘우리 편’의 슈퍼 히어로가 탄생하죠.
촬영 중 마지막 회 대본이 나온 후 현장에서 배우들이 남라 멋있다는 말을 많이 해줬어요. 저더러 ‘멋진 건 혼자 다 하는 거 아니야?’ 같은 우스갯소리도 하고, 장난 식으로 제 대사를 따라 하는 배우도 있었고요.
저는 남라에게서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조금 더 느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동물적인 본능을 억누르고 통제하면서 자신과 싸우는 외로운 상태가 되잖아요.
맞아요, 맞아요.
그런 모습의 조이현이 <더블유> 화보에서는 얼마든지 유별나거나 불량해도 괜찮은, 자기 멋대로인 여자의 모습이길 바랐어요.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특별히 에너지를 많이 쓰거나 감정적으로 더욱 신경 써야 했던 장면이 있나요?
마지막 즈음, 제가 온조를 물려고 할 때요. 물지 않으려고 혼자 갈등하던 장면. ‘오지 마, 오지 말라고 했잖아!’ 소리치면서 남라가 사라져버리죠. 촬영하기 전에는 그 장면을 생각하면 막막하고, 어떻게 연기할지 혼란스러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촬영날이 실제 저의 가장 마지막 촬영날이기도 해서 그런지 여태까지 했던 것들이 쭉 스쳐 지나가면서 이입이 잘됐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해요. 여러 친구들과 무리 지어 있다가 단둘이 붙는 장면인데 지후 배우와의 촬영이 참 편안했거든요.
참, 어떤 작품인지 모른 채 오디션을 봤다면서요?
네. 이재규 감독님이 최근 드라마보다 영화에 집중하던 터라 새 영화를 앞두신 줄 알았어요. 저한테 어떤 작품 하고 싶냐고 물어보시길래 ‘멀쩡한 거 하고 싶다’고 했죠. 피, 땀, 눈물은 안 흘리는 작품이면 좋겠다고.
이번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제가 기억하는 이현 씨의 얼굴은〈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참하고 잔잔한 인상이었어요. 2020년 〈지금 우리 학교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사극 <나의 나라>에서는 지병이 있고 굴곡진 인생을 사는 여자였죠? 영화 <변신>은 악마와 엑소시즘 소재였으니 캐릭터로서는 마음 고생, 몸 고생을 좀 했네요.
처음에는 박지후 배우가 연기한 온조 역할로 오디션을 봤는데, 좀 더 밝게 연기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이게 최선의 밝음’이라고 했더니 ‘원래 그렇게 차분한 편이냐’고 하셨어요(웃음). ‘잘 모르겠다, 제가 어떻다고 스스로 말하기는 좀 어렵다’ 라고 했죠. 그래서 저는 오디션에 떨어졌을 줄 알았어요.
최남라라는 인물은 시놉시스에 어떻게 소개되어 있던가요?
‘2학년 5반 반장, 남라의 최종 목표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교에 간 다음 혼자 사는 것이다’ 정도의 설명이 기억나요. 성인이 된 이후 다시는 부모와 접점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아이라고요.
남라에게는 자기만의 목적과 목표가 있었고, 그래서 벽을 쌓은 듯한 분위기가 생겼군요. 감독님이 왜 조이현을 캐스팅했는지 언급해주었나요?
딱히 이유를 말해주시진 않았지만 ‘이현이는 정말 남라 같아’라는 말을 자주 하셨어요.
우리 유튜브 촬영할 때 조이현과 최남라의 닮은 점으로 ‘쿨함’을 꼽았죠? 어떤 게 쿨한 거예요?
털털하기도 하면서… 뒤끝이 없는 것.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이현 씨가 좋아하는 부류라고 하면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되겠네요.
저와 친한 사람들에겐 이런 공통점이 있어요. 만나면 밝고 즐겁게 잘 노는데, 그 만남을 이루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웃음). 또 집순이들이고요. 저는 주로 조용조용하게 노는 이들을 좋아해요. 물론 활달한 친구도 많아요. 서로 이해가 되는 사이라면, 함께했을 때 너무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서 재밌게 놀 수 있다면, 괜찮아요.
MBTI 유형은 뭐예요?
ISFP. ‘호기심 많은 예술가’ 타입인가 그래요. 제가 MBTI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ISFP의 특징으로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같은 설명을 볼 때면 자동으로 이래요. ‘어? 이거 나잖아?’ 그런데 <지금 우리 학교는>을 촬영하는 동안 테스트해보니 ISTP로 바뀐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역시, 냉철한 반장 역할에 임하다 보니 일시적으로 ‘Feeling’보다 ‘Thinking’의 기능이 두드러진 것인가….
그러니까요, 저도 너무 신기했어요! 하지만 작년에 드라마 <학교 2021>을 촬영하면서 다시 본래의 ISFP로 돌아왔습니다(웃음).
조이현이라는 사람에 대해선 아직 우리가 모르는 게 많아요. 인터넷상에 기계체조가 특기라는 정보가 떠도는데 사실인가요? 검색해보면 ‘광명시 출생’이라는 얘기도 있어요.
아니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기계체조도 할 줄 몰라요(웃음). 아마 제가 유연한 데가 있어서 기계체조를 한다고 와전됐나 봐요. 고등학생 때 뮤지컬과였거든요. 저는 춤, 노래, 연기 세 가지를 다 못했기 때문에 모두 열심히 배워야 했어요. 주말에도 하루에 6시간씩 무용 연습을 하고 그러다 보니 몸이 좀 유연해졌어요. 촬영이 없는 날에는 플라잉 요가를 하기도 해요.
음. 예고의 뮤지컬과에 합격한 학생인데, 춤, 노래, 연기에 다 약했다고요? 그럼 이현 씨가 잘하는 건 뭐 같아요?
포기하는 걸 잘해요. ‘포기할 줄 아는 것’, 이거 참 어려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웃음).
판단력이 빠르다는 걸까요?
쓸데없는 미련을 갖지 않는 거요. 겁이 많은 거죠. 예를 들어 너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안 되겠다’고 인지하면 놓을 줄 알아요.
살면서 그나마 간절하게 욕망했던 게 있다면 뭘까요?
뮤지컬요. 하지만 제가 부족하다는 걸 알고서 바로 포기했죠.
‘욕심 좀 가져봐’ 같은 말 자주 들었나요?
지금의 매니지먼트를 만나기 전, 연기 연습생 시절에 그 소리 많이 들었어요. 회사에서 ‘오디션 잘 보고 왔어?’라고 누가 물으면 저는 이런 식이었어요. ‘잘 봤다는 게 뭐예요? 붙어야 잘 본 거 아닐까요? 붙고 나면 잘 봤다고 말씀드릴게요, 지금으로선 잘 본 건지 뭔지 모르겠어요.’
배우들은 오디션에서 자유 연기를 주문받으면 자신이 잘 선보이는 레퍼토리가 있잖아요. 그럴 때 조이현은 어떤 연기로 어필하죠?
잘하는 걸 해보라고 할 때 ‘그런 게 없어요’, 라고 하는 게 저의 레퍼토리예요.
와, 오디션이라는 건 내가 어떤 기회를 쟁취하러 가는 자리인데 그래도 돼요?
그러면 안 될 수도 있지만, 정말로 잘하는 게 없어서…. 언젠가 엄마한테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사람들한테 ‘왜 이렇게 욕심이 없냐’ 같은 말을 듣는다고. 그런데 엄마 말씀이 저를 일부러 그렇게 키웠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혹시나 제가 욕심부리는 아이가 될까 봐 사탕을 여러 봉지 사다 주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법을 가르쳐주셨거든요. 그러고 보니 유치원생일 때 사탕을 가방에 가득 갖고 다녔던 게 아직도 기억나요.
사탕을 탐하는 아이가 될까 봐 그걸 눈앞에서 치워버린 게 아니라, 오히려 넉넉하게 마련하고서 주변에 베풀게 해주셨군요. 10대 때 스스로 ‘끼’는 좀 느꼈나요? 초등학생 때 조이현을 알았던 동창들은 지금 이현 씨를 보면서 놀랄까요?
끼가 없다고 여겼는데,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 동요대회에 여러 번 나갔고 초등학생 때도 뮤지컬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하지만 제 친구들 역시 저처럼 엄청 신기해하죠(웃음). 초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 간 친구들이 많거든요. 오늘은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지금 우리 학교는〉 트레일러 광고가 나갔대요. 놀이터에서 같이 흙 파면서 놀던 애가 거기에 있으니, 친구들이 다 놀랄 수밖에요.
욕심이 크지 않아 보이고, ‘내가 딱히 잘하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엔터테인먼트 산업 속에서 연습생 시절을 거쳤다면 스스로를 의심하거나 낙담할 일도 많았을 것 같네요.
처음엔 그랬죠. 그러다 어느 날은 오디션 보러 가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오늘도 떨어지러 가는 길이다. 열심히 하고 떨어지고 와야지.’ 드디어 놔버린 거예요. 그랬더니 그 오디션에 붙었어요. 이후로는 그런 비슷한 상태로 편하게 임하는 게 잘 보이려고 의식하는 것보다 낫구나 싶더라고요. 제가 또래 배우나 경력에 비해서는 오디션 때 긴장을 안 하는 편에 속하는 것 같아요.
배우가 잘되고 유명해진다는 건 그만큼 감수할 일도 많아진다는 뜻이잖아요. 유명세에 대해 생각해봤나요?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한다거나, 악플을 보게 된다거나.
밖에 돌아다닐 일이 있다면 전처럼 돌아다닐 거예요.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아요. 악플 같은 건… 그런 것들에 담담할 수만은 없겠죠. 마주하기가 무서울 거라는 생각은 해요. 아직 그럴 준비는 안 됐어요, 준비한다고 한들 막상 맞닥뜨리면 누구든 무서울 테고요. 그래도 얽매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살아가야죠, 어떻게든….
간혹 욕심 없는 걸 ‘파이팅’이 없다는 뜻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죠? 저는 이현 씨가 딴마음 먹지 않고 충실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고 이해해요.
정말 그래요. 시키는 일 열심히 하고, 오디션에 수없이 떨어지고, 그러다 운 좋게 붙으면 주어진 바에 최선을 다해 임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왔더니 <지금 우리 학교는>이 잘돼 있어요. 제 욕심은 갈수록 점점 더 없어지는 거 같아요. 그럴수록 좋은 일이 더 많이 생겼거든요.
당신을 모르는 이들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남겨줄래요?
저 조이현은 ‘오늘을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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