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른 뒤 [FT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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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야기의 시작은 2007년. 록밴드를 꿈꾸며 세 멤버 이홍기, 이재진, 최민환은 FT아일랜드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그 긴 여정에 슬픔도 아픔도 많았지만 지금 이들에게 남은 건 음악을 향한 여전한 뜨거움과 서로라는 존재다.

최민환이 입은 가죽 재킷은 메종 마르지엘라 by 육스, 셔츠는 김서룡, 팬츠는 언더커버 제품,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재진이 입은 코트와 데님 팬츠는 김서룡, 부츠는 하이젠버그 제품, 안에 입은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홍기가 입은 호피 코트는 아미리 by 지스트리트494 옴므플러스, 셔츠와 레더 팬츠는 렉토, 부츠는 로스트가든 제품.

<W Korea> 오늘, 밤의 서울을 배회하며 촬영했다. 마지막 컷을 찍을 땐 기온이 거의 영하까지 내려갔는데, 그때 이재진이 한마디 하더라. “우리 백골은 추위에 지지 않아.”

이홍기 아우, 창피해. 어디 가서 전역한 티 좀 내지 마라(웃음).

하하. 이제는 ‘군필밴드’라 불러야 하나?

이재진 그렇지. 막내 민환이를 마지막으로 셋 모두 전역했다.

2007년 데뷔 때만 해도 ‘현역 고교생 밴드’라 불린 기억이 있다.

이홍기 심지어 민환이는 중학생이었다. 이제는 어느덧 군필밴드가 다 됐다.

데뷔곡 ‘사랑앓이’에선 이렇게 울부짖지 않았나. “널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죄를 말하기엔 그때 이홍기의 나이가 18세였다(웃음).

이홍기 열여덟이 사랑앓이의 감정을 어떻게 알겠어(웃음). 그때 장장 3일 동안 스트레스 받으면서 녹음했다. 나중엔 거의 악으로 불렀다. 열 받아서. 노래 하나 가지고 사흘에 걸쳐 녹음한 게 그때가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거다.

남자들은 군대 전후 삶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라진다 들었다. 세 사람은 어땠나?

이홍기 아무래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막상 나오면 무용지물이 된다. 입대 초에는 정말 큰 결심을 하곤 하는데.

이를테면 어떤 결심을 했나?

이홍기 훈련소에 막 입소하면 군용 수첩을 나눠준다. 딱히 할 게 없으니까 거기에 가사도 적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 10가지를 막 적는다. 병장이 돼서 오랜만에 꺼내 본 날이 있었는데 소름이 돋아서 찢어버렸다(웃음). 아직도 기억나는 게, 전역하자마자 첫째로 해야 할 것으로 가족사진 찍기가 있었는데 그걸 아직도 못하고 있다.

최민환 다들 똑같을 거다. 막상 전역하면 안 하게 된다.

재작년 인터뷰로 만난 한 셀럽은 의경으로 군 복무를 할 때 면회실에 춤 선생님까지 모셔서 강습을 받는 열정을 보였다고 했다. 그 사람이 특별한 경우인가?

이홍기 내가 군에 있을 땐 코로나19 때문에 면회가 안 됐다. 그리고 그분은 의경이라 서울에 계셨겠지만 나는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했다. 아무도 안 온다. 강원도까지(웃음).

이재진 물론 군대에 있으면 내 지난 인생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기는 하다. 앞으로의 일도 계획해보고. 나는 새로 낼 앨범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멤버가 다섯 명일 때와 다르게 지금 남은 세 명이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음악도 정말 많이 들었다. 맨날 들으면서 ‘아, 이런 건 우리가 도전해볼 만하겠다’ 싶은 건 홍기 형과 바로 공유하고.

이재진의 말처럼 2019년 말 밴드가 3인조로 재편됐다. 이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이홍기 있었지. 처음 데뷔했을 땐 보컬을 강조한 음악을 주로 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악기 비중을 늘려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찾아가는 중이었는데 어떻게 이제는 리듬 악기만 남게 됐다. 남은 셋이서 정말 많은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심플한 악기 구성이되 좀 더 우리만의 색깔이 들어간 뭔가를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많이 주고받았다.

이재진 그런데 굳이 한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더라고. 해외 밴드도 보면 멤버가 셋인데 투어 때는 고정 세션과 함께하니까. 또 기타가 아닌 다른 악기를 넣을 수도 있는 거고. 우리 팀이 좋은 게 셋 다 직접 곡을 쓴다. 각자 스타일이 조금씩 달라서 앞으로도 할 건 많은 것 같다.

얼마 전인 12월 8번째 미니앨범 <Lock Up>을 발매했다. 이별 후의 감정을 담은 다섯 곡으로 구성해서인지 초창기 ‘사랑앓이’나 ‘바래’, ‘지독하게’ 같은 곡이 떠오르더라.

이홍기 회사에서 먼저 초창기 무드로 가자고 제안했다. 2020년 전역할 즈음 과거 우리가 발매한 노래들이 이슈 아닌 이슈가 되었더라고.

맞다. 방송가에서 한창 2000년대 초중반 음악을 조명한 때가 있었다.

이홍기 그 시절 남자들이 우리 노래를 유난히 좋아해줬던 것 같다. 어쨌든 회사에서 대중이 우리 노래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 거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그 추억을 자극할 수 있을 만한 음악이 무엇인지 많이 고민했다. 이번 앨범을 통해선 새로운 음악적 색깔을 표현했다기보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라는 마음을 전했달까.

최근 앨범 발매에 맞춰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 〈살림하는 남자들>에도 출연했다. 이홍기와 이재진은 각각 뮤지컬 <잭 더 리퍼>, <뱀파이어 아더>에 출연 중이고. 여러 활동 중에서도 콘서트를 못하는 지금, 뮤지컬은 무대 갈증을 풀어주는 좋은 창구가 될 것 같다.

이홍기 뮤지컬을 하면서 많이 놀랐다. 관객과 가까이서 호흡하고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오니까. 하지만 콘서트만 못하지. 수많은 무대 중에서 내가 살아 있다고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건 아무래도 역시 FT아일랜드로 다 함께 서는 콘서트다.

슈트와 셔츠는 김서룡, 부츠는 쏘유레슈어 제품.

어느덧 데뷔 15년 차다. 처음 밴드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15년이란 세월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홍기 나는 오히려 끝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FT아일랜드는 계속 갈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가끔 술 마시다 서로 싸울 때 빼고는(웃음).

최민환 하하. 워낙 어려서 만났으니까 어느 순간 당연해진 것 같다. 밴드가 없는 삶이 상상이 안 되고. 오히려 ‘너희 되게 오래 했다’는 말이 어색하다. 어차피 계속할 건데 오래 하고 그런 게 어딨어, 이런 느낌이다.

오늘 촬영하면서도 느꼈지만 분위기가 정말 ‘가족적’ 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징글징글하지만 돈 때문에 계속하는 것 같은 밴드도 봤거든.

최민환 가족 같은 분위기도 크지만 그것보다 아직까지 셋 다 패기가 있는 것 같다. 그냥 생계형으로 밴드를 하는 게 아니라 나도 드러머로서 하나의 악기로 정상을 한번 찍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거든. 언젠가 밴드 붐이 일고 많은 사람이 지금 힙합이나 트로트처럼 밴드의 악기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봐주는 시기가 온다면 그때 인정받는 드러머가 되어 있고 싶은 욕심이 있다.

최민환은 과거 여러 인터뷰에서도 ‘록의 부활을 기다린다’는 식의 말을 자주 하더라.

이홍기 멤버끼리 항상 그 얘기를 한다. ‘오겠지.’ 나는 트로트가 잘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 엄마도 이찬원 씨 팬이다. 집에 이찬원 씨 굿즈가 있다. ‘아, 이 정도구나. 한번 붐이란 게 오면’ 싶었다. 그래서 우리도 간절하지. 우리끼리 가볍게 이런 얘기도 했다. 밴드 경연 프로그램 <슈퍼밴드>에 나가볼까 하고. 자극을 받고 싶으니까. 밑바닥부터 시작할 수 있다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 물론 자신감도 어느 정도 있고.

정말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간다면 무엇으로 어필할 것 같나?

이홍기 일단 잘하지. 외모도 나쁘지 않고(웃음). 우리가 항상 바라는 게 있거든. ‘이 친구들은 대한민국 밴드계에 한 획을 그었다.’ 우리로 인해 많은 밴드가 탄생했고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서 늘 새로운 자극을 바라는 것 같다.

사실 보이 밴드라는 선례를 만들지 않았나. FT아일랜드의 등장 이후 씨엔블루, 엔플라잉 등이 나왔다.

이홍기 에이, 모자라지. 그 정도로는. 방금 말한 밴드는 다 우리와 같은 회사이기도 하고.

이재진 물론 그 정도로도 대단한 거지만 정말 한 밴드를 음악적으로 좋아해서 영향을 많이 받고 따라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우리가 그렇게 되고 싶은 야망이 있지.

엔플라잉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FT아일랜드가 거의 슈퍼 밴드던데? 특히 이홍기는 그들 사이에서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것 같더라.

이홍기 우리는 엔플라잉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예쁘잖아. 우리 같아서. 데뷔 초엔 다른 회사 소속 뮤지션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장르는 다르지만 한 회사에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선배가 있다는 게 든든해 보였다. 우리에겐 그런 게 없었거든. 항상 우리끼리였다. 엔플라잉은 우리와 같은 장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애들이 너무 예쁘다. 열심히 하니까. 안 좋아할 수가 없다.

내가 받지 못한 걸 해주고 싶은 마음일까?

이홍기 그럼. 그래서 서로 알려준다. 레슨도 해주고.

카디건은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 by 분더샵, 안에 입은 크로셰 셔츠는 보디 by 분더샵, 데님 팬츠는 마르니 by 지스트리트494 옴므플러스, 부츠는 로스트가든 제품.

지난 15년을 펼쳐봤을 때 밴드에게 큰 위기로 다가온 순간이 있다면?

이재진 우리가 참 신기한 게, 워낙 애기 때 서로를 만났다. 요즘 데뷔한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어떤 사랑을 받고 싶다는 걸 명확하게 생각하면서 일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숙소 생활을 할 때도 무슨 수련회 온 것마냥 그냥 놀면서 어울렸다. 내 기억으로는 딱히 경쟁이랄 게 없는 구도였다. 각자 맡은 파트가 있으니까. 정말 자유로웠고 친했기 때문에 고비가 있을 때마다 굉장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도 그럴 게 우리 사이엔 ‘나는 너 없으면 안 되고, 너도 나 없으면 안 돼’라는 게 있었으니까. 그래서 팀의 위기라고 하면 아무래로 멤버끼리 싸울 때밖에 없는 것 같다. 어릴 때 마치 환상동화처럼 꿈꿨던 목표와 다르게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현실도 보게 되니까.

15년에 걸친 변화 중 하나로 최민환의 결혼도 빼놓을 수 없을 거다. 팀에선 가장 막내지만 세 아이를 낳은 가장이라 어쩌면 셋 중 가장 어른일 수도 있다는 점이 이홍기와 이재진에게 새롭게 다가갔겠다.

이홍기 멤버끼리 항상 얘기했던 게, 민환이가 가장 먼저 결혼한다는 거였다. 왜냐하면 한번 연애하면 정말 오래 만났거든. 책임감 있는 친구라 우리 모두 민환이 제일 먼저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다.

최민환 내가 형들에게 결혼 얘기를 자주 하기도 했다. 빨리 하고 싶다고. 팀에선 막내지만 집에서는 장남이거든. 내가 항상 뭔가를 주도해서 이끌어가는 걸 좋아하는 성향인데 막내 생활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까 어떤 만족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빨리 가정을 꾸려서 내가 리드하고 이끌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가족도 하나의 팀이니까.

결혼 전도사의 말에 두 사람은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나?

이홍기, 이재진 전혀(웃음).

이재진 아, 이건 있었다. 민환이 첫아이가 태어난날 병원에 갔는데 그때 내가 아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원래는 손만 대도 다칠 것 같아서 멀리했는데. 근데 또 웃긴 게 아이는 갖고 싶은데 결혼은 별로 하고 싶지 않더라고(웃음).

이홍기 성향 차이인 것 같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결혼도 연애도 잘 안 된다. 누군가가 생기면 그 사람에게 신경 써야 하는데 나는 내가 항상 1순위라.

이제는 서로가 오래 산 부부처럼 느껴질 것 같다. 각자가 보는 멤버는 어떤 사람인가?

이홍기 민환이는 옛날부터 내가 하는 말이지만, 돌이다. 고집 있고 우직하고. 나는 뭔가로부터 자극을 받으면 바로 티가 나거든. ‘나 자극받았어. 이거 할 거야.’ 근데 이 친구는 그걸 조금씩 쌓아뒀다가 한 번에 분출하는 스타일이다.

이홍기와 최민환은 서로 정반대 성향인가 보다.

이홍기 완전 반대다. 재진이는 어렸을 때만 해도 정말 교과서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많이 오픈된 것 같다. 유해졌다. 또 생각이 정말 깊다. 어쩌면 우리 셋 중 가장 성숙하다.

그럼 성숙함으로 순위를 매기자면 당신은 몇 위인가?

이홍기 제일 밑이지(웃음). 그런데 나는 일부러 그렇게 한다. 정해진 기준이라든지 틀을 워낙 싫어한다. 밴드 생활을 할 때도 그 틀이 싫어서 일부러 삐죽삐죽 나가곤 했다. 내가 삐죽삐죽 나가서 뚫린 구멍이 멤버들에겐 숨 쉴 수 있는 구멍이 되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아, 물론 그 삐죽삐죽 뚫린 것 때문에 우리의 좋은 점이 조금씩 흘러 나간 것도 있지만(웃음).

하하. 나이가 들면 소위 그 ‘삐죽함’이 깎이지 않나?

이재진 많이 깎였지. 형은 이제 점잖게 삐죽거린다(웃음). 나는 홍기 형이 좋은 게, 성격이 굉장히 불같아서 확 타올랐다가 다른 걸 보면 또 확 타오른다. 그게 너무 좋다. 형 특유의 직감이. 우리 팀은 보컬은 보컬답고, 드럼은 드럼답고, 베이스는 베이스답다. 민환이는 막내지만 참 믿음을 주는 친구다. 어릴 땐 많이 다투기도 했는데 내가 어느새 얘를 엄청 믿고 있더라고.

불같은 이홍기가 있어 그 우직함이 더 빛났던 건 아닐까?

이홍기 그렇지. 그게 바로 시너지지(웃음).

하하. 최민환이 보기에 두 형은 어떤가?

최민환 사실 지금에 와서는 셋 다 성향이 비슷해진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엔 홍기 형이 진짜 이해가 안 갔거든. 저 형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이재진 하하! 진짜 이해 안 갔다.

최민환 성향이 너무 반대다 보니까. 안 좋게 말하면 ‘어떻게 저렇게 매번 엇나갈 수 있지?’ 싶었다. 회사와의 관계라든지(웃음). 그때 당시 내 기준에서 현명함은 둥글둥글하게 ‘유도리’를 발휘하는 거였다. 그런데 형은 항상 어딘가 모가 나 있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보컬이고 우리 팀의 얼굴인데 홍기 형이 어디서 불같이 행동하면 ‘FT 애들은 다 저래’라고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만 같아서 처음엔 미울 때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정말 홍기 형 말대로 우리한테 묶여 있던 족쇄를 형이 풀어준 느낌이 있더라고. 지금은 고맙게 생각한다. 나도 이제는 ‘홍기화’가 돼서 어디 가서 쭈구리처럼 있는 게 싫다.

코트는 모스키노, 니트 베스트는 마르니 by 분더샵 제품, 팬츠는 컴젠, 뮬은 JW앤더슨, 네크리스는 1064 스튜디오 제품.

꼭 그렇지는 않지만 밴드의 운명은 프런트맨인 보컬에 의해 결정된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홍기의 역할이 컸고, 늘 어떤 책임감을 느꼈을 것 같은데, 맞나?

이홍기 늘 느끼지. 최근 회사와 재계약하면서도 멤버들에게 물은 건 이거 하나였다. 끝까지 FT아일랜드 할 거냐, 지킬 거냐. 나는 무조건 ‘FT아일랜드는 지킨다’였고 멤버들도 전부 그랬다. 그리고 나는 솔로가 이상하게 싫더라고.

실제 솔로 앨범 <FM302>도 데뷔 8년 차가 되던 해 뒤늦게 발매했고, 이후로도 그렇다 할 솔로 활동이 없었다.

이홍기 너무 재미없었다. 지금도 할 생각이 없다.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걸 FT아일랜드 안에서 녹이고 싶지, 딱히 솔로 앨범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밴드는 보컬이 너무 중요하고 보컬이 떠나면 밴드가 없어진다. 근데 나는 그 말이 너무 싫더라고. 여태껏 15년 동안 밴드를 해오면서 단 한 번도 나가서 혼자 뭘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FT아일랜드는 밴드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은 다 이룬 것 같다는 인상이 있다. 음원으로 정상을 찍기도 했고, 월드 투어도 돌았다. 그럼에도 아직 셋에게 남은 목표가 있는가?

이홍기 우리가 어릴 때부터 꿈꿔온 게 있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전용기를 타고 각자의 가족, 여자친구, 친구들을 다 태우고 함께 월드 투어를 도는 거다. 그렇게 도착한 도시에서 무대도 하고 여행도 하는 게 꿈이다.

록스타의 삶이다.

이홍기 그렇지. 먼 미래라도 꼭 이루고 싶은 꿈이다.

그럼 그 전용기에는 최민환의 세 아이도 함께하는 건가?

최민환 아… 좀 피곤할 것 같기도 하고?(웃음)

이홍기 하하, 옛날에는 그거 너무 해보고 싶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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