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이 중심이 된 유료 뉴스레터 서비스가 전 세계적으로 작지만 강력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공룡 IT 기업도 뛰어들었다. 지금 뉴스레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작년 한 해 <더 버지>의 캐시 뉴튼, <버즈피드>의 앤 헬렌 피터슨, <롤링 스톤>의 매트 타이비 등 트위터에서 1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거느린 영향력 있는 기자들이 자신의 직장을 떠났다. 그리고 이들의 퇴사는 마치 스포츠 스타의 이적 소식처럼 뉴스거리가 됐다. ‘모 기자, 모 매체를 떠나다!’ 작년은 재능 있는 많은 언론인이 자리를 잃은 한 해였다. 미디어 산업은 팬데믹으로부터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몇몇 기자들이 자리를 보전했음에 안도할 때, 방금 말한 이들은 제 손으로 명함을 버리고 홀연히 기존 미디어를 떠났다. 그리고 이들이 새로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일제히 향한 행선지가 있다. 어쩌면 기자 개인의 인사이동이 떠들썩한 뉴스가 됐던 이유, 바로 2017년 설립된 유료 뉴스레터 플랫폼 ‘서브스택’이다.
올해 3월 서브스택은 65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752억원의 투자 유치를 추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투자로 서브스택의 기업 가치가 6억5000만 달러(7520억원)로 껑충 뛸 거라 예상한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불과 4년 만에 유니콘 기업의 반열에 오를 일만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서브스택은 작가, 언론인 등 창작자가 뉴스레터를 제작·발송하고 이를 통해 수익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다. 창작자가 원하는 만큼 자유로이 구독료를 설정하면, 독자는 매달 평균 5~10달러의 구독료를 지불하고, 서브스택이 구독 수익의 10%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창작자에게 청구하는 시스템이다. 서브스택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개인 창작자가 유료로 뉴스레터를 발행하려면 직접 웹 사이트를 만들고,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독자를 관리해야만 했다. 그러나 서브스택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복잡한 과정은 오롯이 플랫폼의 몫이 되었고 창작자들은 이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올해 8월 기준 서브스택의 유료 이용자는 약 50만 명. 인상적인 것은 상위 10명의 창작자가 연간 1500만 달러(174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벌어들인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시대가 시작되자 몇몇 낡은 레거시 미디어는 뒷무대로 쓸쓸히 사라져야 했다. 난파선에서 벗어나려는 구명보트처럼 뉴미디어가 떠올랐고, 그중에서도 뉴스레터 플랫폼은 지금 뉴미디어 산업을 힘차게 견인하는 중이다. 해외에선 서브스택을 비롯해 ‘더스킴, ‘미디엄’, ‘모닝 브루’ 등이 기존 미디어와 어깨를 견줄 만큼 성장했으며, 국내에서도 ‘뉴닉, ‘북저널리즘’, ‘스티비’, ‘캐릿’ 등이 순항 중이다. 다소 뒤늦은 감은 있지만, 나아가 서브스택의 카피캣이라 놀림받고 있지만 페이스북도 지난 6월 새로운 뉴스레터 플랫폼 ‘불레틴’을 선보였다. 후발 주자가 이를 갈며 제대로 작정한 느낌이랄까? 지금 페이스북은 어마한 액수의 계약금을 치르며 스포츠 캐스터 에린 앤드루스, 작가 말콤 글래드월 등 유명 저널리스트들을 쓸어 오는 중이다. 트위터도 올해 1월 네덜란드 뉴스레터 스타트업 ‘레뷰’를 인수해 8월 이용자가 트위터 계정과 연결된 이메일로 레뷰의 뉴스레터를 받아 볼 수 있는 구독 서비스를 공식 론칭했다. 벌써부터 몇몇 외신은 새롭게 구독 기능을 탑재한 트위터가 ‘서브스택 킬러’가 될 수 있을지 흥미롭게 점치는 중이다.
지금 서브스택 홈페이지에만 접속해도 오늘날 뉴스레터 서비스가 얼마나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분야의 최신 뉴스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큐레이션해 전달하는 뉴스레터도 있지만, 그보다 전통적인 뉴스 보도의 영역을 넘어선 이야기를 하려는 시도가 훨씬 자주 눈에 띈다. 예를 들어 8월 서브스택에 새롭게 합류한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Mike’s Movie Night’이란 뉴스레터를 발행하며 자신의 취향으로 고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혹 감독, 배우와 나눈 인터뷰도 소개하고, 구독자를 대상으로 Q&A 세션을 진행하기도 한다. <지큐>에 패션 크리틱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 레이철 타쉬지안은 하이패션 세계를 말하는 ‘Opulent Tips’를 발행하고, 음악 기반 뉴스레터 ‘Flow State’ 는 매일 오전 3시, 구독자가 곧 출근할 시간에 맞춰 2시간 분량의 음악을 전송한다. 한편 국내 뉴스레터 플랫폼도 다양한 읽을거리를 전한다.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뉴스레터라 불리는 ‘뉴닉’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아침 시사 이슈를 일상의 대화처럼 쉽게 풀어 편집한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북저널리즘’은 자체 제작한 뉴스는 물론 <가디언>, <이코노미스트>와 파트너십을 맺고 해외 미디어의 기사를 번역해 소개하고 있다.
어쩌면 유료 뉴스레터 서비스의 인기는 예견된 일이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채 소화할 수 없을 양의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이후의 상황은 굳이 설명을 보탤 필요가 없이 모두가 알고 있다. 마치 장애물 피하기 게임처럼 어렵사리 내가 찾으려는 정보를 포함한 기사 페이지로 이동하자 기대와 달리 민망한 광고 창을 마주해야 했던 경험. 인터넷에 있는 콘텐츠를 ‘공짜’로 즐기는 대가는 가짜 뉴스, 자극적인 보도,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된 싸구려 광고 콘텐츠로 돌아왔다. 메일 스팸함과 다름없어진 기성 온라인 미디어의 대안으로 뉴스레터만큼 ‘가성비’ 좋은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매달 커피 한두 잔 값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나의 시간을 절약하고, 내가 원하는 양질의 콘텐츠를, 나의 개인 메일함으로 받아 보는 일. 지금 유튜브에 뉴스레터를 검색하면 알 수 있듯 뉴스레터는 “갑자기 똑똑해질 수 있는 방법”이자 “일 잘하는 사람들이 몰래 본다는” 콘텐츠가 되었고, ‘뉴닉’의 슬로건 ‘우리가 시간이 없지, 세상이 안 궁금하냐’처럼 사람들의 갈증을 달래주는 ‘먹히는’ 장사인 셈이다.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은 점점 높아지고, 알고리즘이 친히 떠먹여주는 ‘피드’가 아닌 세분화되고 개인화된 콘텐츠를 능동적으로 소비하려는 흐름, 잘 만든 콘텐츠라면 기꺼이 지갑을 열려는 태도. 이러한 움직임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결과, 뉴스레터 열풍에 빠르게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이제 ‘제3의 물결’ 속에 있다. 첫 번째 물결은 아무도 온라인에서 돈을 벌거나 쓰지 않았을 때다. 두 번째 물결은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던 시기다. 세 번째 물결은 사용자와 창작자가 연결돼 창작자가 직접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 시대다.” 넷스케이프의 공동 창립자이자 페이스북 이사 마크 안드레센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이제 인터넷 생태계는 창작자가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해 수익을 올리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로 새로운 퍼즐이 맞춰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가장 기민하게 응답하고 있는 카테고리 중 하나가 뉴스레터다. 사용자가 창작자에게 콘텐츠 이용료를 직접 지급하는 ‘D2C(Direct to Creator)’ 흐름은 언론인을 비롯해 트래픽에 발 묶이던 창작자들에게 속 시원한 해방구가 되어준다. 오롯이 광고를 통해 수익을 보전했던 과거와 달리 구독료라는 새로운 수익 파이프라인이 생기며 창작자는 트래픽을 높이기 위한 과장 보도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된다. 철저한 개인 퍼블리싱이기 때문에 특정 미디어, 혹은 형편없는 편집자에게 자신의 글이 종속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창작자와 독자가 ‘1:다’가 아닌 ‘1:1’로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보다 전략적으로 타게팅한 창작물을 만들 수 있고, 콘텐츠의 힘만 있다면 강력한 ‘팬덤’이 만들어지게 된다. 팬덤 정보를 트래킹해 다양한 부가 사업을 펼치는 것은 더 이상 일도 아니게 된다. 서브스택의 CEO 크리스 베스트가 말했듯 이제는 창작자가 메일이라는 가장 오래되고 흔한 소통 수단을 통해 ‘작은 미디어 제국’을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뉴스레터가 하나의 플랫폼 비즈니스가 되기 이전, 2018년 국내에서 작가 이슬아가 ‘일간 이슬아’라는 제목으로 한 달 구독료 1만원을 내건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유료 뉴스레터는 ‘마니악한 실험’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서브스택을 비롯한 전문 뉴스레터 플랫폼이 해외, 국내 할 것 없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이제는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공룡 IT 기업도 눈에 불을 켜고 뉴스레터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페이스북, 트위터의 밥벌이는 광고였다. 실제 올해 1분기 페이스북은 전체 매출의 97%, 트위터는 83%가 광고 매출에서 나왔다. 광고주의 플랫폼이던 페이스북, 트위터는 이제 자신들에게 구독 수수료라는 새로운 수익을 가져다주는 창작자의 플랫폼으로 향해 가고 있다. 앞서 말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뉴스레터로 실현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보다 중요한 사실. 페이스북, 트위터의 기업 가치가 판단되는 것은, 그래서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이용자다. 뉴스레터는 작지만 강력한 커뮤니티를 만들며 창작자와 이용자를 직접 ‘연결’한다. 뉴스레터 창작자에게 투자하는 일은 곧 이용자를 서비스에 붙잡아두는 전략이 된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가 “2023년까지 창작자들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인센티브를 건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이지 않을까? 놀라운 것은, 이제 막 뉴스레터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 전쟁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켜볼 일이다.
- 피처 에디터
- 전여울
- 사진
- GETTY IMAGES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