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소설의 한 장면처럼 비로소 연기에 ‘사랑한다’고 고백하게 된 배우 박은빈, 때로 안개꽃처럼 흔들리며 되려 단단해지는 중인 가수이자 배우 로운. 두 사람이 비밀의 장막이 드리운 사극 드라마 <연모>에서 만났다.
<W Korea> 오늘 서로가 낯설게 느껴지겠다. 10월 방영하는 KBS 사극 드라마 <연모> 촬영으로 매번 도포 차림으로만 만났을 텐데.
박은빈 이렇게 모던한 스타일로 만나는 건 처음이지 않나?
로운 맞다. 현장에선 도포 아니면 에어리즘 티셔츠였다(웃음).
올봄 첫 촬영이 시작됐다 들었다. 두 사람이 어느덧 세 계절을 함께했겠다.
박은빈 우리나라 사계절을 전부 맛본 기분이다. 아마 추울 때쯤 촬영이 끝날 것 같다. 전국 팔도를 돌며 찍느라 하루하루가 길게도, 또 너무 짧게도 느껴진다.
로운 정말 부산 빼고 다 돈 것 같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지방 촬영의 묘미는 맛집 탐방인데, 코로나19라 그런 낭만은 없었겠다.
로운 그렇지. 원래 다음 날 콜이 늦으면 스태프랑 배우끼리 모여 맛있는 거 먹고 술 한잔 기울이면서 ‘으쌰으쌰’ 하는 건데, 이번엔 그런 게 없어서 아쉽긴 하다. 밥도 각자 차 안에서 먹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연모>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극 중 이휘(박은빈)가 남장을 통해 왕이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남장 여자라는 소재를 궁으로 가져왔다는 설정이 독특한데, 이번 작품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박은빈 사극에 여러 편 참여해봤지만 이번에 대본을 받아 들고 가장 처음 든 생각이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다니’였다. 어디서도 여자 배우가 용포를 입고 등장한 적은 없었으니까. 클리셰를 뒤트는 작품이다. 익숙지 않은 소재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낯섦이 있다. 그래서 나에겐 큰 도전 같은 작품이다.
로운 작품성도 작품성이지만, 은빈 누나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드라마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도 있다. 지금 누나 들으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웃음).
하하. 로운은 평소 박은빈의 작품을 챙겨 보는 편이었나?
로운 정말 많이 봤다. 특히 작년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너무 재미있게 봤다. 거기서 누나가 막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참으면서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번에 누나를 만나 직접 물어봤다. 그건 대체 어떻게 한 거냐고, 대본에 적혀 있던 거냐고 (웃음). 인스타그램에서 누나가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것도 봤다. 박은빈이란 배우가 정말 열정적으로 작품을 대하는구나 느꼈고 함께 작품을 하면 나도 배울 점이 많겠다 싶었다. 그래서 좀 마음이 놓였다. 이번에 함께한다는 소식을 듣고.
박은빈도 로운의 전작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를 본 적 있나?
박은빈 영화 <마녀2> 촬영 때문에 제주도에 갔을 때 봤다. 사실 집에 있을 땐 할 게 너무 많아서 시간을 도저히 못 냈는데….
로운 하하. 완벽한 집순이다.
박은빈 나 혼자 갑자기 제주도에 오니 유배당한 기분이었다. ‘와, 이렇게 숙소에서 아무것도 할 게 없다니!’ 하면서 TV를 계속 틀어놨다. 그때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를 몰아 봤다. ‘차기작에서 나의 파트너가 저 친구구나’, ‘저런 부분을 저렇게 연기할 줄도 아는 배우구나’ 하면서 나도 정말 다행이라고 느꼈다.
두 사람 모두 작품을 통해 상대에 대해 품은 인상이 좋았던 거네.
박은빈 사실 나도 연기자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연기를 평가하고 싶진 않은데, 언뜻 봤을 때 굉장히 재치 있어 보였다. 그러다 현장에서 실제 로운이를 만났는데 아는 것이 참 많은 사람이더라고. 끊임없이 앎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내가 더 말을 덧댈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지금도 좋은 배우지만 앞으로도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운 가만히 듣고 있자니 좀 힘들다. 부끄럽다. 아무래도 술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 여기 조명도 딱 알맞게 어둡고, 위스키 한잔 어떤가?(웃음)
박은빈 그냥 술 마시고 싶은 건 아니고? 하하. 어쨌든 제대로 연기하는 걸 처음 본 건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였는데 굉장히 성숙해 보였다.
게다가 그 작품에서 ‘플러팅 끝판왕’으로 등장했으니까.
박은빈 그러니까. 거의 뭐, 누나들의 로망이었지.
로운 나는 진심이었다. 노리고 한 거 아니다(웃음).
<연모>는 <뷰티 인사이드>, <또! 오해영> 등의 송현욱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로맨스 장인’이라 불리는 그와의 호흡은 어땠나?
박은빈 아주 디테일하시다. 한 장면을 찍더라도 여러 각도에서 담아낸다. 그렇기에 배우로서 지구력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같은 장면을 반복해 연기하다 보면 즉흥적인 무언가가 나올 때가 있다. 다른 걸 끄집어낼 수 있는 거다. 또 언젠가 사극을 꼭 연출하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인지 촬영 감독님을 포함해 모든 스태프가 이번 작품에 진심인 게 느껴진다.
로운 배우의 역량을 믿고 자유를 주시는 편이다. 그래서 배우가 더 공부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언젠가 문경에서 감독님과 술 한잔 마시며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좋은 배우는 연출자 입장에서도 신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사실 각자의 몫이란 게 있지 않나. 배우는 신을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센스 있게 표현할까만 고민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연출자의 시선에서 신을 보려고 하게 된 것 같다. ‘이런 거 한번 해봐도 돼요?’라는 배우의 의견에 굉장히 열려 있으시다.
사극은 특히 배우의 상상력이 많이 필요한 장르다. 게다가 박은빈은 남장에 도전해야 했기에 부담이 더 컸을 것 같은데.
박은빈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나의 장점 중 하나라 생각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자기 효능감이란 게 강했다. 무엇이든 막상 하면 ‘잘할 수 있어’라는 나에 대한 믿음이랄까.
누군가의 입 밖으로 자기 효능감이란 말이 나오는 걸 처음 봤다(웃음). 심리학 용어이지 않나? 실제 박은빈은 서강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로운 그렇지. 심리학 학사다(웃음).
박은빈 하하. 실제론 무지랭이다. 어디서 명함도 못 내민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 감독님께 이런 얘기를 들었다. 이휘 역할을 어느 배우에게 맡길까, 과연 누가 소화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나를 떠올리셨다고. 그 말을 듣고 그제야 ‘그래, 어려운 역할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땐 작품을 고사하기엔 너무 아깝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작품을 하겠다고 했다. 정작 이휘란 캐릭터가 얼마나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인지 뒤늦게 실감한 셈이다. 촬영하면서 자주 난관에 부딪히지만 요즘 나의 신념이랄까, 그냥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부담만 가지자라는 생각이다.
‘이휘는 박은빈만이 해낼 수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감독에게 직접 물은 적이 있나?
박은빈 없다. 제작발표회 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웃음). 평소 호기심이 많아서 감독님께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는 편인데 그 부분만큼은 좀 공식적으로 들어보고 싶어서 아직 안 여쭸다.
하하. 이번 작품은 로운에게도 큰 도전이었을 것 같다. 이휘의 스승 정지운 역할을 맡았는데, 사극 연기는 처음이지 않나?
로운 맞다. 그런데 나는 누나와 다르게 지레 ‘못할 거야’ 생각하면서 작품에 들어가는 편이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열등한 마음이 나를 성장시켜주는 것 같다. 이제 나의 이런 점을 인정하기로 했다. 원래 부정하고 싶었는데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고. 이번 작품에선 사극이라는 설정을 떠나 내가 맡은 인물인 ‘정지운스러움’이 뭘까에 집중하려고 했다. 대본에 적힌 것과 달리 지운이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도 높임말을 쓴다를 설정을 추가하기도 했다. ‘지운이라면 그랬을 것 같아’ 하는 나만의 설정을 만들어가는 거다.
둘의 시작점이 정반대였다. 박은빈은 ‘나’를 믿었고, 로운은 ‘나’를 믿지 못했다.
박은빈 말은 그렇게 해도 나도 나를 믿는 만큼 남을 안 믿고, 나를 안 믿는 만큼 남을 믿는다. 이런 줄다리기를 어렸을 때부터 해오다 보니까 이제 어느 정도 내적 균형감을 찾은 거랄까.
두 사람은 새 작품, 인물을 받았을 때 어떻게 접근하는 편인가?
박은빈 아무래도 인물의 내면에 집중하는 편인 것 같다. 설령 비슷한 성향의 캐릭터일지라도 각자의 서사, 근원은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근원, 핵심적인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항상 거치는 것 같다.
박은빈은 전공을 참 잘 살리는 것 같다. 인간 내면의 근원!(웃음)
박은빈 하하. 그렇다고 계산적으로만 연기하는 것은 아닌데 ‘이 캐릭터는 이런 정서를 가진 인물이구나’라고 어느 정도 내재화하면 편해지더라고.
로운은 자신이 맡은 인물에 어떻게 접근하는 편인가?
로운 마음처럼 연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배우 이제훈 형에게 들은 말이 있다. ‘내 속엔 여러 가지 색깔이 있을 거고 그중엔 내가 연기할 캐릭터와 조금이라도 맞닿아 있는 색깔이 있을 거다, 그것을 끄집어내서 증폭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결국 ‘나’로 시작하는 게 좋을 거다.’ 처음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좀 알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면 형의 말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연기를 하면서 나를 만날 때가 있다. 계산의 범주를 넘어서 진심이란 게 나올 때, 가짜가 진짜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가 정말 재미있어서 연기를 계속 하는 것 같다.
어느덧 촬영이 극의 후반부를 향해 가고 있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함께 부대끼면서 느낀 서로는 어떤 사람 같은가?
박은빈 굉장히 발랄하고 유쾌한 미남(웃음).
로운 하하. 나는 누나가 작은 거인 같다고 느껴진다. 듬직하다. 그리고 누나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랑 닮은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같이 있을 때 편하다. 저는 잘 맞다고 생각합니다, 선배.
화보 촬영하면서도 느꼈지만, 로운은 박은빈에게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선배’라 부르는 것 같다(웃음).
박은빈 내가 항상 하는 말이다. 이럴 때만 선배다(웃음). 평소에는 별의별 호칭으로 나를 부른다. 지금도 로운이를 알아가는 중이지만, 이 청년은 참 진지한 청년 같다. 너무 자신의 생각에 짓눌려 있는 듯해서 내가 가끔 제동을 걸어주기도 한다. 그런 진중한 면이 로운이를 더 성장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계속 지켜보게 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럼 철저히 상대 배우로서 서로는 어떤 색깔을 가진 배우라 생각하나?
로운 내가 생각하기에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대본에 있는 것을 오롯이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쩌면 내가 대본에 없는 상황을 만들려고 하는 것도 이런 정면 승부를 피하기 위함일 수 있다. 그런데 누나는 정면으로 부딪친다. 복잡한 심리도 선명하고 깔끔하게 표현해낸다.
은빈 로운이는 물음표를 많이 품는 배우다. 살면서 물음표가 많은 것은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꿀 수 있으니까. 열의가 대단한 배우라고 느껴진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고.
박은빈은 작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통해 S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당시 울음을 애써 참으며 전한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됐다. ‘다섯 살에 연기를 시작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내가 연기를 굉장히 많이 사랑하고 있었구나를 깨달았다.’
박은빈 정말 그런 마음이었다. 사실 내가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 정말 몇 없다. 수상 소감을 말할 때 비로소 ‘내가 연기를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더라고.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란에 배우라 적긴 했지만, 진정 내가 배우의 길을 가고 싶은 게 맞나 하는 물음이 늘 있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배우의 성향과 적성이란 게, 나와는 안 맞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어느 순간 지치거나 크게 상처받는 날이 오면 언제든지 미련 없이 훌훌 떠날 수 있도록 나를 놓고 살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를 놓지 않으려 했고. 그런데 이제는 정말 배우란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이제는 연기가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을 하기까지 엄청난 자기 의심과 부침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은빈 그랬지. 과거엔 흔들리는 청춘 그 자체였다. 안개꽃 같은 사람이었다. 뭐 하나에도 바들바들 떨면서(웃음).
로운 누나도 흔들렸구나. 뭔가 위안이 된다. 나에게도 지금이 그런 과정이겠구나 생각하면.
박은빈 아, 그럼.
로운은 올해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를 통해 연기자로서 아주 안정적으로 다지기에 들어섰다는 인상이 있었다.
박은빈 안정적이었다, 정말로. 로운이가 장면 안에서 뛰어오는 게 느껴졌다.
로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알게 모르게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나의 피해 의식인데, 그런 편견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떨 땐 대본을 통째로 다 외우기도 하고, 심지어 미신이지만 베개 밑에 대본을 깔고 자기도 했다(웃음). 아무래도 나의 원동력은 열등감인 것 같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면서 나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가는 것 같다.
박은빈 스스로를 세공하는 타입인 것 같긴 하다. 조각상이라 그런가? 흐흐.
악, 조각상!(웃음)
로운 하하. 어쨌든 나에게 굉장히 소중한 작품이었다. 덕분에 세상을 보는 시각이 많이 트인 것 같다. 내가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작품이기도 하고. 물론 또 새로운 작품을 만나면 다시 자신감이 원점으로 돌아가긴 하지만, 지금은 연기가 너무 재미있다. 특히 아까 말한 가짜가 진짜가 되는 순간을 만날 때가 그렇다.
박은빈 가끔 현장에서 보면 되게 신나 할 때가 있다. 마치 비 올 때 뛰어다니는 멍멍이처럼(웃음). 막 나를 흔든다. 너무 재미있다고, 방금 감정이 차올라 오열할 뻔했다고. 그럴 때면 로운이가 연기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느껴진다.
박은빈은 1996년 아동복 카탈로그 모델로 데뷔했으니 참여한 작품 수가 많다. 이제는 어느덧 여러 작품 중 좀 더 손이 가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박은빈 글쎄, 뚜렷한 성향이 있다기보다 가보지 않은 여러 길에 대한 희망이 크달까. 사실 나는 계획을 세워두고 사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실컷 계획을 세우고 그걸 실행하지 못하거나 기대치에 못 미쳤을 때 드는 자괴감으로부터 나를 떼어놓고 싶어서. 그래서 그냥 잘 사는 것, 왜 빙(Being)하는 것 있지 않나. 그것에 인생의 가치를 두는 편이다. 그저 잘 있고 싶고, 그러다 보면 나의 마음을 노크하는 작품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로운은 여러 인터뷰에서 예쁜 캐릭터가 아닌 인물에 도전하고 싶다는 말을 하더라. 그건 어떤 마음인가?
로운 대중문화 예술인은 이미지가 중요하지 않나.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예쁘다’, ‘잘생겼다’ 말해준다. 그게 나의 장점이자 무기이긴 하지만 연기를 할수록 꼭 그러한 외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이 커지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엔 아직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내밀한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진 않거든. 나 또한 나 자신과 많이 싸우기도 한다. 한편으론 예쁜 나이에 예쁜 걸 보여드리는 게 맞는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으니까. 그런데 솔직한 마음으로, 감독님이든 작가님이든 누가 나에게 한번 걸어봤으면 좋겠다. 연하남에 어딘가 순한 멍멍이 같은 맑은 청년으로만 보이겠지만, 그에 반하는 모습을 나에게 기대하고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지금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
박은빈 ‘나 괜찮나?’ 스스로 안부를 묻게 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연기를 하다 보면 나 자신을 의심할 만한 상황이 많이 생긴다. ‘너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어?’라고 스스로를 채근하는 거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자신을 몰아간다 한들 나아지는 건 없다는 걸 안다. 결국에는 지치지 않게 지켜야 하는 게 나 자신과의 관계인 것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 자신에게 좀 관대한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좀 숨통이 트였던 것 같고. 비로소 나를 용서하는 방법을 알게 된 거다. 그래서 지금 내가 괜찮은지를 계속해서 묻는다. 결국 괜찮아야만 건강하게 살고 건강한 연기를 할 수 있으니까.
로운 나는 너무 간단하다. ‘지금 당장 행복한가?’ 팬들에게도자주 ‘사소한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사실 나 스스로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과거의 나는 일부러 불행한 것만 보려고 했던 것 같다. 모르겠다. 뭔가 불쌍해 보이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간 내가 아플 것 같았다, 정신이. 그래서 늘 생각한다. 오늘 하루 행복한가, 그런 삶을 살고 있나.
<연모>가 종영할 즈음 올 한 해도 저물고 있을 거다. 올해는 어떤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나?
박은빈 올해 새롭게 세운 신조가 있었다. ‘삶의 미지수를 사랑해보자.’ 살면서 불쑥 튀어나온 미지수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기 마련이니까. 삼십대를 시작하는 올해, 나름 그 미지수들을 반갑게 끌어안았다고 생각한다.
로운 글쎄, 별반 다를 것 없는 한 해이지 않았을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아마 내년에도 마찬가지일 거다.
별다를 것 없는 한 해, 좋은 것 맞지?
로운 그럼. 이렇게 작은 점을 하나씩 찍다 보면,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게 하나의 유의미한 선이 되어 있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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