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 고깔, 탈, 자개, 노리개, 한삼… 구찌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만나 그리는 오색찬란의 춤.
2013년 물레아트페스티벌 현장에서 당신들의 무대 ‘공존’을 관람한 적 있다. 8년 전에는 좁고 어두운 소극장에서 당신들을 봤는데, 오늘 이렇게 구찌 가옥 익스클루시브와 오버추어 컬렉션을 빼입고 화보 촬영 현장에서 만나니 낯설면서도 반갑다.
장경민 어깨는 항상 올라가 있었다(웃음). 2013년 이후로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때 인연으로 5년 가까이 무용단이 안산문화재단에서 상주예술단체로 활동할 수 있었다.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고(故) 강은영 기획자와 함께 다양한 무대를 올렸고. 강 기획자가 생전 사람들에게 베푼 영향 덕분인지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작년 한국관광공사와 함께한 홍보 영상 ‘Feel the Rhythm of Korea’ 시리즈도 성공적으로 촬영했고.
최근 당신들의 유튜브 채널을 방문하니 ‘진짜 머리 아픈 춤’이란 제목의 안무 연습 영상이 올라와 있더라. 지금 새로운 작품을 준비 중인가?
김보람 7월 9일부터 이틀간 광명시민회관에서 ‘언더 더 쇼’ 공연을 펼치게 됐다. 그때 선보일 ‘언어학’이란 작품의 연습 영상으로 올린 콘텐츠다. ‘언어학’은 2009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초연한 ‘힙합의 진화’라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확장한 작품이다. 마이클 잭슨의 ‘Beat It’에 맞춰 춤을 추는데 무용수당 동작이 4개밖에 없다. 단 4개의 동작만으로 음악의 가사, 비트, 멜로디를 표현해야 하는데 춤을 다 추고 나면 정말 머리가 아파온다(웃음). 지금 무용수들이 머리 싸매가며 연습하고 있다.
5월엔 서울 이태원에 상륙한 구찌의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의 오픈을 기념하며 ‘헬로 구찌’ 캠페인 영상에 참여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다운 역동적이면서 위트 있는 안무도 안무지만 무엇보다 소위 ‘명품’ 옷이 잘 어울려 놀랐다.
김보람 그러게 말이다. 여태 별의별 무대 의상을 입고 춤을 춰와서 그런지 명품을 입고 춤춰도 어색하지 않을 지경에 다다른 것 같다. 옷이 생각보다 무용수 모두에게 잘 어울렸다. 한국의 전통 주택 ‘가옥’에서 영감을 얻어 구찌만의 식으로 재해석한 구찌 가옥의 콘텐츠도 좋았고. 또 ‘여보나리’ 안무를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찰나에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또 좋은 기회로 안무를 선보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 구찌와 협업하며 특별히 신경 쓴 지점이 있었나?
김보람 구찌는 오랜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다. 그들만의 뚜렷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크게 의식하며 작업하진 않았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란 무용단의 이름도 모호하다는 의미의 영어 ‘앰비규어스(Ambiguous)’에서 따온 만큼 우리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펼친다. 사람들에게 무용단을 ‘애매모호한 춤 회사’라고 소개할 정도다. 구찌의 옷을 잘 소화하되, 우리만이 가진 바로 그 애매모호한 색깔을 보여주는 방법에 대해 더 고민했던 것 같다.
캠페인 영상을 보면 구찌의 컬렉션 의상이 아닌 ‘Feel the Rhythm of Korea’ 전주 편에서 입어 화제가 된 색동 코스튬도 등장한다.
김보람 그게 참 절묘한 포인트였지. 색동 의상은 2019년 작품 ‘피버’를 준비하며 제작한 의상이다. 당시 한국 고유의 색깔이 담긴 색동 천이 이렇게나 예쁜데 왜 활용되지 않을까 싶어 직접 천을 구해 의상을 제작했다. 구찌 가옥에서도 색동 문양에서 영감을 얻은 의상을 볼 수 있는데 마침 우리도 색동 의상을 가지고 있어서 영상에서 참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났던 것 같다.
이혜상 무용수는 자타공인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리더라(웃음). 색동 코스튬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줄 수 있나?
이혜상 김보람 감독이 처음엔 색동 쫄쫄이(타이츠) 의상을 입고 싶어 했다. 그런데 서울의 원단 시장이란 시장은 죄다 뒤졌는데도 스판 재질의 색동 천은 없더라고. 고민하다 우연히 발레 숍에 들렀는데 발레복 중 지금의 색동 의상과 비슷한 디자인의 옷이 있었다. 그걸 발견하곤 동대문 지하 상가의 재단사에게 바로 제작 의뢰를 했지.
김보람 정말 색동 의상을 입고 싶었거든. 단순히 전통을 재해석한 의상이 아니라 지금 사람들에게 ‘저것 한번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옷, 미래에도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만들고 싶었다. 6월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올리는데 그때 소량의 색동 의상을 판매할 계획도 있다. 기존 코스튬이 워낙 색이 바래기도 했고, 유튜브 댓글에 옷을 판매해달라는 요청도 있었기에 겸사겸사.
당신들에게 의상은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보인다. 매 작품마다 직접 의상을 준비하거나 ‘피버’란 작품에서는 패션쇼에서 모티프를 딴 안무도 선보였다.
김보람 결국 춤이란 보여지는 것이니까. 어떤 옷을 입고 춤을 추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늘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이유도 눈을 가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대신 관객이 더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게 유도하기 위함이다. 의상을 준비하면서 무용수끼리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을 자주 한다. 사람들은 실제 상품을 보기 전까지는 자기가 뭘 사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는 말. 우리도 사람들에게 ‘아, 내가 이걸 보고 싶어 했구나’ 깨닫는 경험을 주고 싶다. 그래서 이미지적인 것, 특히 의상에 상당히 많이 신경 쓴다.
‘헬로 구찌’에선 밴드 이날치의 노래 ‘여보나리’에 맞춰 춤을 춘다. 작년 ‘Feel the Rhythm of Korea’ 캠페인 이후 이날치와 또다시 손을 잡은 셈이다. 그들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김보람 2019년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에서의 협업이 첫 단추였다. 이날치를 이끄는 장영규 음악감독이 같이 무대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해 함께하게 됐다. 굉장히 신나서 작업한 기억이 난다. 항상 우리끼리 진지하게 작품용 안무만 하다 밴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숨 쉴 공간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랄까?
장경민 그때 인연으로 작년 발매된 이날치의 정규 1집 <수궁가>의 안무 작업에도 참여했다. 당시 유럽 투어 일정이 있어 도저히 시간 여유가 없었는데도 음악을 듣고선 바로 ‘하겠다’ 했지. 일주일 만에 10곡의 안무를 만들었던 것 같다. 투어 틈틈이 스튜디오를 잡아 연습하고.
현대무용가 안은미도 장영규와 오랜 협업 관계다. 소문난 안무가들이 장영규의 음악을 아끼는 이유가 문득 궁금한데, 무용수로서 그의 음악은 어떻게 다가오고 어떤 영감을 던져주나?
이혜상 아주 원초적으로, 신난다!
장경민 일단 장영규가 이끄는 이날치처럼 두 대의 베이스로 구성된 밴드가 흔치 않다. 또 그가 어어부 프로젝트, 복숭아 프레젠트 등의 그룹으로 영화음악 작업을 많이 해온 덕분인지 음악에서 뚜렷한 서사와 드라마가 느껴지고, 확실히 음악을 잘 만든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당시에도 군가를 새롭게 편곡해 음악을 완성했는데 익히 알던 딱딱한 군가에서 저만치 벗어나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어서 놀란 기억이 있다.
당신들의 무대를 보면 ‘몸으로 음악을 연주한다’는 인상이 강하게 스친다. 작년 국립현대무용단의 디지털 영상 콘텐츠 ‘춤추는 강의실’에 출연해 안무 창작 과정을 선보였는데, 영상을 보고 그 인상이 더 굳어졌다.
김보람 사람들이 우리에게 음악을 독특하게 해석한다고 말하는데 그에 대해 특별히 의식해본 적은 없다. 음악을 다른 식으로 재해석한다기보다는 단지 음악을 중요시하며 안무를 짤 뿐이다. ‘춤추는 강의실’에서 공개한 안무 창작 과정은 내겐 다소 ‘고전’이다. 무용단 초창기 작업에 형식을 만들기 위해 내 나름대로 음악을 분석하는 방법, 동작을 분석하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그날 그걸 선보였다. 사실 요즘엔 그렇게까지 음악을 분석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그날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를 초청해 대담을 진행했는데, 그와 어떤 대화를 나눌지가 더 기대됐지.
안 그래도 뇌과학자와 무용수의 만남이 흥미로웠다. 그와는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었나?
김보람 춤이라는 것이 진짜 미래에 필요한 것인지. 그날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교수님은 지식에 기반한 이론적 이야기를 던진다면 나는 반대로 원초적인 이야기를 하고.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 통하듯 통하지 않는 대화를 한다는 상황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얼핏 작년 화제가 된 일론 머스크와 마윈의 대담이 떠오르기도 했고. 지금도 교수님과 종종 카톡을 주고받는다(웃음).
영상에서 김보람 감독이 “일부러 몸에 불편하고 어색한 동작을 구상한다”고 말한 지점이 흥미로웠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장경민 그런 분이 무용수들에겐 늘 “자유롭게 짜세요. 그리고 제일 쉽게 짜세요”라고 말하신다(웃음).
김보람 하하. 쉽게 짜되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어떤 동작을 할지 고민하되 굳이 그게 어려울 필요는 없는 거지. 안무 창작은 결국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의 과정에서 고민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몸에 편한 쪽으로 동작을 만들게 된다. 그러면 재미없어지고 뻔한 안무가 탄생하는 거다. 그런 동작은 대충 봐도 ‘아, 저기서 고민을 놓쳤구나’ 하는 게 보인다.
김보람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춤추지 않는 것’이 곧 안무 철학이라 말한 적이 있다. 다소 역설적으로 다가오는 이 말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
김보람 매번 그렇지는 않다. 이날치와 작업할 땐 무용수들한테 허구한 날 “춤 좀 똑바로 춰!”라고 했으니까(웃음). 춤추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은 ‘바디 콘서트’ 공연 당시부터 시작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 안의 ‘소리’를 분석하는 공연이었고 소리를 표현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는 무엇이든 배제하고자 했다. 동작에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몸이 자연스럽게 박자를 타거나 거기에 자기의 춤을 넣기 마련이다. 한데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선 춤에서 최대한 멀어져야 한다. 우리가 가는 방향에 소리만 있어야 하는데 그걸 자꾸 까먹으면 신나면 신나는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춤을 추게 되니까.
방금 말한 ‘바디 콘서트’는 한 번 공연하고 나면 몸무게가 2~3kg 빠진다는 바로 그 전설의 공연 아닌가?(웃음)
김보람 확실히 늙어서인지 요즘엔 또 그렇지도 않다(웃음). 과거엔 죽을 정도로 춤을 췄다면 이젠 뭐랄까 본능적으로 힘을 빼는 것 같고. 예전보다 땀도 덜 나는 것 같다. 요즘엔 이런 것과 스스로가 싸우고 있다고 본다. 이제는 내 춤을 유지해야 할 때니까. 언제까지 춤을 출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니까. 노화에 절대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가짐이다(웃음).
당신 말처럼 무용수란 제 몸을 오롯이 재료로 쓰기에 자신의 춤이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가 큰 고민이겠다.
김보람 그렇지. 그런데 요즘엔 우리의 춤이 보다 다른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나만 하더라도 현대무용계에 발을 들이기 이전 방송 댄스를 췄던 사람이다. 언제까지나 극장용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지만 극장 바깥에서도 우리의 언어를 보여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스트리밍 공연을 펼칠 일도 많아졌고, 오늘처럼 구찌라는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는 경우도 있고, 나아가 최근엔 메타버스 사업이 활성화되며 무대란 것의 정의가 넓어졌다. 그러다 보니 새롭게 출현하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우리 춤이 어떤 식으로 지속될지에 대해 생각한다.
당신들에게 춤에 얽힌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인가?
이혜상 어려선 부끄럼이 많아 남들 앞에서 춤추는 건 상상도 못해봤다. 유치원생 시절 무용 학원에 가서 춤을 춘 게 첫 기억인데 당시 무용복도 너무 예뻤고 춤추는 것도 즐거웠던 터라 그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학원에 다닌 기억이 있다.
장경민 1990년대 TV 너머로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의 춤을 본 기억. 당시 내게 굉장히 센세이션했다.
김보람 초등학교 6학년 소풍 때 장기자랑으로 전교생 앞에서 춤을 췄다. 그날 하필 비가 오는 바람에 교실에서 책상을 한쪽으로 몰아두고 춤을 추긴 했지만. 전교생이 내 춤을 보기 위해 우리 반으로 찾아왔다. 어떤 친구들은 창문에 달라붙어 구경했고. 완도에 있는 작은 학교를 다녔거든.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 맞춰 춤을 췄는데 멋지게 턴을 딱 도는 순간 저 멀리 피아노 앞에 짝사랑하던 여자애가 열심히 날 보고 있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그 어린 시절에도 용케 관객의 존재를 의식했다(웃음).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는가?
이혜상 사소한 모든 것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충전됨을 느낀다.
장경민 개그맨들. 그들을 모방하면서 나만의 스타일을 찾을 때가 있다. 가끔 삶이 피로할 때 영감을 찾기 위해 유재석 님의 영상을 본다(웃음).
김보람 고전. 먼 과거의 예술 활동에서 영감을 얻는다. 거장들에 대한 대단한 지식을 갖고 접근하는 게 아니라 그림이나 음악을 경험하며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에서 많은 걸 길러온다. 특히 클래식이 그렇다. 클래식을 듣자면 이 음악가가 어떤 풍경 속에서 음악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지고 한편 그게 부럽기도 하다. 분명 그 당시는 지금처럼 세상이 복잡하지 않았을 테고 오롯이 창작에만 집중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 테니까. 그렇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김보람 감독은 과거 ‘왜 춤을 추는가’에 대한 이유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춤을 춘다는 말을 남긴 적 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답을 찾은 상태인가?
김보람 어느 정도는. 이런 생각을 한다. 춤을 그만두기 위해 춤을 춘다고. 내게 춤은 삶이고, 삶이 춤이다. 춤에 있어서 방법은 없다. 옛날엔 그걸 찾으려 많이 애썼지. 그런데 계속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더라고. 지금까지 이뤄온 것이 많다. 반대로 더 해야 할 것도 많다. 나는 그만두기 위해 춤을 춘다.
마지막 질문이다. 보유하고 있는 선글라스는 총 몇 개인가?(웃음)
김보람 하하! 200~300개 될 거다. 2008년 창단 당시 착용한 선글라스도 아직 갖고 있다. 훗날 선글라스만 모아 전시회를 열어도 되겠다.
장경민 그것 참 괜찮은데?(웃음)
김보람 1만 개 정도 모이면 생각해보겠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2008년 창단한 현대무용 그룹. ‘춤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솔직한 소통의 도구’라는 데 집중해 본질과 순수성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악동을 연상시키는 역동적이면서도 위트 있는 안무와 음악 안의 소리에 세밀하게 접근하는 태도가 특징이다. ‘공존’, ‘인간의 리듬’, ‘실수’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펼쳐왔으며, 작년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영상 ‘Feel the Rhythm of Korea’ 시리즈에 등장하며 많은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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