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과 방송은 동시대 트렌드를 둘러싸고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에서 가장 잦은 교집합을 이루는 건 바로 ‘사람’과 ‘이야기’다. 특히 출연자의 하루를 관찰하거나 미션을 수행하는 스타일의 요즘 예능 방송은 날것에 가까운 셀렙의 본얼굴을 드러내기도 하고, 이는 다시 우리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무수한 이야깃거리를 만든다. 한 예능 안에서 특별한 케미를 일으키는 셀렙들이 화보를 함께 촬영하는 순간에는 과연 어떤 근사한 합을 보여줄까? 유쾌한 엔터테인먼트의 카메라 뒤에는 어떤 모습이 있을까? <더블유>는 세 개의 예능 프로그램과 드문 협업을 했다. 유튜브 ‘채널 십오야’의 웹 예능이자 TV로도 방영 중인 tvN <악마는 정남이를 입는다>의 패셔너블한 듀오 배정남과 카이, E채널 <맘 편한 카페>를 통해 평범한 삶의 표정을 보여주고 있는 축구 선수 출신 이동국과 사랑스러운 10대 소녀 재시&재아, 흐트러짐 없는 패션 화보와 패션쇼를 벗어나 스포츠에 맹렬히 도전 중인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의 여섯 모델. 그들과 함께 빚어낸 화보 현장은 각 프로그램의 방영분으로도 소개될 예정이다. <더블유>와 예능의 랑데부, 이제, 큐!
하이힐 대신 축구화를 신었다. 국내 최초의 여성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에 출연하는 FC ‘구척장신’의 한혜진, 차수민, 김진경, 아이린, 이현이, 송해나 6인의 여성 모델이 밝히는 축구에 빠진 이유, 그리고 축구가 변화시킨 몸과 마음.
여기 공놀이에 푹 빠진 여자들이 있다. 국내 최초의 여성 축구 예능, SBS 파일럿 방송 <골 때리는 그녀들>은 지난 설 예능 시청률 1위를 차지했고, 정규 편성에 성공해 6월 16일 첫 방송을 탄다. “이 방송에 호응이 있었던 까닭은 사람들의 고정관념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여자축구가 분명 존재하지만, 예능에서 여성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이 비춰질 기회는 없었죠.” 여성 모델로 이뤄진 FC ‘구척장신’의 주장 한혜진의 말대로, 여자 스포츠 예능은 없었다. <천하무적 야구단> <청춘FC> <핸섬타이거즈> <날아라 슛돌이> <뭉쳐야 찬다> 등 숱한 스포츠 예능이 차고 넘칠 동안, 방송가에서는 파일럿 예능으로 시작한 <골 때리는 그녀들>, 웹 예능으로 시작한 <마녀들> 단 두 편만이 여성들이 스포츠에 도전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런 예능을 기다려왔어요. 정말로요.” 짧은 커트 머리에 크로스핏을 즐기고, 어릴 적부터 인형 대신 축구화와 공을 사달라고 떼썼다는 ‘구척장신’의 뉴 페이스이자 에이스, 차수민은 눈을 빛냈다. “초등학생 때 운동장에서 축구 하던 남자애들을 보면 저도 공을 차고 싶었죠.” 또 다른 뉴 페이스 김진경은 여자 축구팀이 없어 남자 축구팀에 들어간 어린 시절을 털어놓는다. “유소년 축구 대회도 두 번 나갔어요. 진짜 나를 보여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커요.” 나머지 ‘구척장신’은 축구 경험이 없다. 아이린은 학창 시절 축구부 매니저를 하며 물을 떠다 주고 밴드를 붙여줬고, 송해나는 공을 차본 적도 없다. 이현이는 돌이켜보면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전 평생 제가 공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어요. 남자애들이 축구를 하면 여자애들은 고무줄을 하는 게 당연했으니까.” 각자 사정은 다르지만 막상 공을 차보니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야. 공놀이가. 다들 공만 보면 눈이 뒤집어져서 와르르 달려가요. 생각해보면 개들이 왜 그렇게 공을 쫓겠어요? 재미있으니까 그렇지!”
물론 처음 뛸 때는 죽을 것 같았다. 입에서 피 맛이 돌 정도였다. 이현이는 “처음 설날 특집 때 경기장이 너무 넓어서 뛰다 토할 뻔했던” 기억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번 정규 방송에서 뛰는데 경기장이 좁은 거예요. 같은 곳인데. 그만큼 훈련을 통해 체력이 올라왔고, 발만 대면 달아나던 공도 컨트롤되는 거죠.” 그렇게 되기까지 뛰고, 넘어지고, 차고 또 찼다. 그들은 파일럿 방송에서의 패배에 절치부심하며 주 3, 4회씩 모여 드리블이며 킥을 연습하고, 아르기닌을 챙겨 먹고, 집에 축구공을 가져가 축구 유튜브를 보며 공을 찬다. 입을 모아 “예능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라 할 정도다. 발톱이 빠지는 부상을 겪으면서도 축구에 매진하는 한혜진은 “축구화를 신으면 그렇게 된다”고 설명한다. “모든 사람이 골을 넣는다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는 축구는 심플해요. 그리고 확실하죠. 이 단순함이 굉장한 동기 부여가 돼요. 또 하나, 다 커서 이렇게 실력이 향상되는 느낌을 온몸으로 느껴본 게 정말 오랜만이에요. 생각보다 축구가 빨리 늘거든요. 여자들이 그라운드에서 이렇게까지 진심인 게 흥밋거리로 보일 수 있겠지만, 뭔가에 최선을 다하는 데 성별이 어디 있겠어요?”
FC 구척장신의 구호는 ‘발은 빠르게, 플레이는 침착하게’다. 공격수인 한혜진과 이현이가 골문을 노리면, ‘차미네이터’라는 별명을 얻은 미드필더 차수민이 필드를 가르고, “축구 할 땐 계급장 뗀다” 는 송해나와 “몸싸움만큼은 지지 않는다”는 김진경이 몸을 던져 방어하며, 파일럿 때부터 뛰어난 기량을 보인 ‘거미손’ 아이린이 “팀의 뒤통수”로서 골을 막아낸다. 이현이는 “팀플레이를 하며 새 가족이 생긴 기분”이라고 말한다. “스포츠 정신이 이런 것 아닐까요? 개성 강한 사람들이 팀을 이뤄, 모두가 최선을 다해 뛰는 것.” 송해나는 “원래 모델은 혼자 일하는 직업이라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데, 이 방송을 통해 정말 가까워졌죠”라 덧붙인다.
고충도 있다. 무게중심을 아래에 두어야 하는 축구는 키 크고 마른 체형에 유리한 스포츠는 아니다. “불리한 조건은 다 갖췄어요. 축구는 잘게 뛰어야 하는데, 보폭이 커서 사이사이로 공이 다 빠져나가요. 처음엔 키 큰 숙주나물들 같았죠(웃음).” 이현이의 말에 이어, 한혜진은 “모델의 몸과 축구 선수의 몸은 정반대”라 설명한다. “모델은 종아리가 가늘수록 좋은데, 지금 제 종아리는 현역 모델 때에 비해 두 배가 됐어요. 두꺼워질수록 공은 잘 차져요.” 그러자 김진경이 말한다. “훈련을 하면서 허벅지 근육이 갈라졌어요. 몸은 솔직하더라고요.” 첫날엔 자다가 근육통 때문에 깼다는 아이린은 “힙이 생겼다”며 변화를 반긴다. “예전엔 너무 마른 몸이었는데 지금은 청바지가 작아요. 근력이 생기고 입맛도 더 생겼고, 잠도 푹 자요.” 송해나는 예전엔 트레이너에게 “허벅지, 팔뚝이 커지지 않게 해달라”고 주문하곤 했지만, 이젠 근육이 받쳐주는 지금의 몸이 좋다. 비교적 큰 체격이 모델로서 콤플렉스였던 차수민은 자신의 몸을 긍정하게 됐다. 두 아이의 엄마인 이현이도 할 말이 많다. “원래 마른 체질인데, 출산 후 살가죽이 늘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하루에 4시간씩 축구 연습을 하니 늘어진 게 다 달라붙은 느낌이에요. 종아리, 허벅지 사이즈는 늘었을지언정 몸이 탄탄해졌어요. 피부도 보기 좋게 탔고. 사람이 해를 봐야죠(웃음). 이젠 마른 몸보다 이런 몸이 더 좋아요.”
그들이 겪은 건 신체적인 변화뿐이 아니다. 한혜진은 인스타그램에 축구화 사진과 함께 ‘football boots, instead of high heels’란 게시글을 올렸다. “하이힐은 22년간 해온 제 일을 상징해요. 모델을 할 땐 하이힐 위에 올라서서 정해진 규칙과 동선을 따라 움직여야 하는 런웨이에 갇혀 있었다면, 축구를 할 때는 달라요. 감독과 코치가 있다 해도 그라운드의 주인공, 결정권자는 플레이어거든요. 해방감을 느꼈죠.” 그는 출연을 결정할 때만 해도 축구에 큰 흥미가 없었단다. “‘이건 내 거 아냐’라는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으려고요. 이렇게 상자 속 의외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마찬가지로 가볍게 생각하고 나왔다 축구에 코가 꿰인 이현이는 “출산 전후가 아니라 축구 전후로” 삶이 나뉜다. “전 그냥 살아‘졌’어요. 모델 됐네, 방송도 해, 결혼했네, 애 낳아야지, 흘러가듯 살아왔고, ‘해내겠다’며 매달린 건 축구가 처음이에요. 주변에서 ‘축구에 미쳤어? 왜 그렇게까지 해?’라고 하면 ‘정규 들어갔잖아, 잘해야 해’라 핑계 대지만, 사실 내가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뭔가를 하는 기준이 ‘난 이걸 못해, 잘해’에서 ‘난 이걸 좋아해, 안 좋아해’로 바뀌었어요.” 아이린 역시 자신이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뭘 입고 신느냐에 따라 캐릭터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축구화를 신고 글러브를 낀 아이린이 마음에 들어요. 화려하고 빠르게만 살아가던 저를 축구가 잠시 멈춰 서게 했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죠. 축구를 하니 필라테스가 비싼 스트레칭처럼 느껴져요(웃음).”
한편 차수민은 “본연의 나를 되찾은 기분”을 느낀다. “저는 쇼트커트에 젠더리스한 의상을 즐겨 입고 운동을 좋아하는데, 일을 하면서 몸을 사리게 됐어요. 스타일로만 절 판단하는 분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축구를 하고 멋진 언니들을 만나며 제 스타일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의 편견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못하고, 좋아하는 스타일을 포기해야만 할까요? 아니요, 전 제가 무엇보다 이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어요. 저 같은 캐릭터도 많이 보이면 좋겠고, 용기를 가지면 좋겠어요.” 데뷔 방송에서 “언니들이 잘 모르는 거 같은데 저 승부욕 강하거든요?”란 명언을 남겼던(<도전! 슈퍼모델코리아3>) 김진경은 “그간 단단해졌어요.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드릴게요”라 선언한다. 송해나는 “앞으로도 축구를 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방송 끝나도 같이 축구 하기로 했어요. 아마추어 축구팀이 경기하자고 제안하기도 해요.” 추가 영입 의사는? 이현이는 호탕하게 웃으며 답한다. “그건 오디션 봐야죠(웃음).”
그들은 방송이 끝나고도 축구를 할 것이다. 종종 힐을 벗고 축구화를 신을 것이고, 필드에서 마음껏 공을 차고 소리칠 것이다. 예단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골을 먹으면 ‘질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도, 어쨌든 남은 시간이 있잖아요? ‘아냐, 무조건 한 골은 넣자’고 생각하게 돼요. 축구는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스포츠더라고요. 제일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걸 알았어요”라는 차수민의 말처럼.
- 콘텐츠 에디터
- 진정아
- 글
- 이예지
- 포토그래퍼
- 신선혜
- 스타일리스트
- 이동연(믹스테이지)
- 모델
- 한혜진, 이현이, 송해나, 아이린, 김진경, 차수민
- 헤어
- 경민정
- 메이크업
- 이아영
- 프로젝트 매니저
- 서이진(에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