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눈은 요즘 유독 촉촉하다. 시크하다는 수식어와 한 몸이었던 나나가 사랑을, 연기를, 그리고 눈물을 말할 때 그 이유를 알았다.
MBC <오! 주인님>이 막 종영했다. ‘로코퀸’ 배우지만 실상은 연애를 못하던 여자라는 설정이었다. 드라마가 끝났으니 말인데, 상대역인 이민기와 강민혁이 연기한 남자 중 어느 쪽이 좀 더 나나의 취향인가?
나나 음. 강민혁(웃음).
성품만 놓고 보자면 각각 까칠한 데가 있는 남자와 다정한 남자라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세심하게 챙겨주고, 늘 내 옆에 있을 것 같고,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든든한 남자가 좋다. 나는 드라마틱한 사랑을 하면서 불안한 것보다는 안정감을 추구하는 쪽이다.
꿈꾸는 사랑이 있나?
오래 연애해서 결혼하는 게 내 꿈이었다. 서로 모든 걸 다 알고 정말 편안해졌을 때 결혼하는 것.
오랜 연애라고 하면 어느 정도를 말하나?
10년 정도? 이젠 30대니까 10년이나 잡기엔 너무 먼 느낌이고… 내가 사람에게 쉽게 질리지 않는 편이다.
그거 재능인데?
재능인가? 하지만 사람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 질리기 시작한다. 내가 꿈꾸는 로맨스는 변하지 않는 사랑, 한결같은 사랑이라고 해야겠다. 상대가 좋아지면 처음부터 오픈하고 다 보여준다. 내 못난 모습까지도. 연애 초반에는 상대가 내 그런 면까지 다 사랑해주다가 어느 순간부터 소홀해지는 걸 보면…
그때부터는 사랑이 차게 식나?
내 사랑이 사그라든다. 한결같이 똑같은 사람이 좋다. 사실 사람이 변했다는 거, 변한 게 아니라 그게 그의 본 모습이겠지. 그래서 호감 가는 사람이 생기면 나는 물어본다. 가장 오래 연애한 기간이 어떻게 되냐고. 좀 오래 연애해본 사람에겐 아무래도 믿음이 간다.
예전에 전도연 배우가 당신에게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 많이 하라’는 말을 해줬다고 언급한 짧은 기사가 기억난다. 일과 사랑의 밸런스는 잘 맞추는 편인가?
그렇다. 일은 일, 사랑은 사랑대로 구분해서. 사랑에 빠져 거기 올인하고 다른 건 안 보인다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아직 그런 사랑을 못 만나봐서 그런가?
도도하고 차가운 인상이라는 소리 많이 듣지 않았나? 그런 말 들으면 어떤 기분인가?
예전에는 나 그런 사람 아니라고, 나를 더 보여주고 해명하려 했다. 이제는 그냥 받아들인다. 첫인상과 달리 보고 지내는 시간이 흐르면 사람에 대해 더 알게 되고 그런 거니까. 키도 크고, 눈썹도 진하고, 전체적으로 강한 이미지라 그런 이야길 자주 들었다. 누가 먼저 ‘좀 차가운 인상인데 실제로는 어때요?’라고 물어본다면 모를까, 굳이 설명하지 않는 쪽으로 변했다.
인터넷에 도는 정보 중 당신이 예전에 유도를 했다던데, 사실인가?
유도? 전혀 아니다. 그런데 예전에도 유도를 배웠냐는 질문 들어봤다.
학창 시절 어머니가 바나나와 우유와 꿀을 갈아서 맥주잔 정도의 컵으로 하루에 두세 번씩 마시게 했다는 건?
사실이다(웃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갈 때까지 그랬던가. 내가 어릴 때 워낙 마르고 키도 작아서 엄마가 한약을 수시로 먹였다. 그런데 어디서 어떤 정보를 채집하셨는지 갑자기 바나나와 우유를 열심히 갈아주시기 시작했지. 우유를 정말 싫어했는데 아침저녁으로 꽤 많은 양을 억지로 마셨다.
어머니의 꾸준함이 대단하다. 그 결과 모델 대회에도 나갈 수 있었던 오늘날의 나나가 된 건가?
바나나와 우유 주스 때문이라고 나도 믿고 싶다(웃음). 사실은 가만 나눠도 이만큼 키가 자랄 아이였을지 모르지만, 엄마의 노력을 생각하자니 그렇다. 그런데 주스를 마신 그 몇 년 동안 키가 15cm 자랐다.
그 정도면 어머니의 주스 덕분인 것으로 정리해야겠는데? 건강 주스를 규칙적으로 챙겨 먹고, 뷰티에 관심이 커서 고등학생 때 관련 자격증도 땄다니 학창 시절에 좋은 일 두 가지는 확실히 했다.
자격증 따서 그쪽 분야로 갈 생각을 어릴 때 했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열심히 하는데, 그렇게 만드는 관심사가 많지는 않다.
요즘에는 관심사가 있나?
‘다음 작품’. 이제 내 주 관심사는 연기다. 할 수 있는 일 중 유일하게 질리지 않는 게 연기인 것 같다.
오! 2주 전까지도 연기를 하며 한동안 보냈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서는 뭘 얻었나?
작품 하나를 할 때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어떤 때는 촬영만 하느라 아주 단순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기분이 들면서 너무 힘들고, 그러다 현장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재밌는 연기를 하다 보면 또 즐겁고. 그렇게 한 작품이 끝나고 나면 내가 조금이라도 성숙해졌다는 걸 느낀다. 이번에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 흔들리지 않고 내 역할에 집중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이젠 어엿한 연기자 나나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작년엔 드라마 <출사표>와 영화 <자백>, 재작년에는 드라마 <저스티스>와 <킬잇>, 2017년에는 영화 <꾼>. 국내 드라마 데뷔작은 2016년 <굿 와이프>이고.
내가 준비한 것과 현장에서 실제 하는 것, 또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다 다르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경험을 계속, 많이 쌓고 싶었다. 운도, 타이밍도 좋게 제안이 꾸준히 들어왔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굿 와이프>의 로펌 조사원 김단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당신과 전도연이 함께 있는 모습이 멋졌고, 그 점은 방영 당시에도 회자됐지.
<굿 와이프>의 김단이 사람들에게 평소 겉으로 비친 내 이미지와 비슷한 데가 많았던 듯하다. 그래선지 더 잘할 수 있었다. 감정을 잘 안 드러내고, 할 말만 딱딱 하고, 도시적인 느낌.
첫 작품이라 낯설고 긴장했을 시절인데. 당시 한 장면을 같이 촬영할 일이 많았던 전도연이 어떤 말을 해주던가?
도연 언니는 별말 안 해준다. “얘, 너 잘하면서 뭘 그래. 잘하고 있어” 정도(웃음). 언니가 대놓고 칭찬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좀 츤데레 같은 면이 있다. 말로 뭔가를 해주기보다는 모니터링을 항상 해줬지.
<굿 와이프>에서 씩씩하게 해내는 당신을 보면서 얼마나 갈고닦았는지 궁금했다. 가수 활동을 하면서 연기 연습을 병행하는 경우가 워낙 일반적이니까 당신도 그렇게 준비한 건가?
가수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오디션 제의가 들어오곤 했다. 한마디로 연습이나 준비가 전혀 안 된 채로 한번 해보자는 식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다 떨어졌지(웃음). 연기도 모르고, 관심도 없었고. 그런데 오디션을 볼 때마다 안 좋은 소리를 들으니까 어느 순간 욕심이 생겼다. 뭐 내가 못하기도 했겠지만 ‘아니 대체 뭘 얼마나 못하길래?’ 싶어서. 그렇게 발성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제대로 배우다 보니 연기가 재밌더라. 좀 배웠다 싶을 때 본 첫 오디션이 <굿 와이프>였다.
연기의 어떤 면이 재밌나? 연기가 왜 좋은가?
표출할 수 있어서. 난 어릴 때부터 남 앞에서 감정 표현을 잘 못하고, 잘 울지도 못하는 성격이었다. 친구나 부모님 앞에서도 그랬다. 누구한테 크게 화를 내본 적도 없고. 혼자 화내고, 혼자 삭히고, 좀 소심했다. 연기라는 것도 주어진 캐릭터 안에서 하는 일이겠지만, 뭐랄까… 내 안에 쌓인 감정과 스트레스를 표출하게되면서 언젠가부터 뭔가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점이 너무나 행복했다.
연기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시작했나 보다. 그럼 연기를 통해 원래의 나나와 전혀 다른 모습을 표출하기 시작한 작품이 뭐였나?
KBS <출사표>. 그 작품을 하면서 내가 처음 제대로 울어봤다.
그 작품 끝난 지 아직 1년이 안 됐다. ‘흙수저에 한량 기질 다분한, 취업 대신 출마를 선택한 스물아홉 구세라’.
소리를 지르면서 운동장을 달리는 신이 있었다. 울면서 달려야 하는 신이 아니었는데 그냥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서 한참을 울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크게 소리 질러본 기억이 없다. 소리를 지르면서 감정이 터졌던 것 같다.
상당히 인상적이고 내밀한 경험이었겠다.
사람들은 보면서 그랬을 거다, ‘쟤 뛰는 게 많이 힘든가 보다.’(웃음) 나는 그때 행복하고 감사했다. 그 작품의 현장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감독님과 스태프들, 배우 선배들 역시 내가 뭘 하든 좋게 받아주시고 나를 믿어줬다. 그러니 편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뭔가가 나왔구나.
그렇다. 나왔지.
제대로 울지 못하는 사람에겐 눈물이야말로 수위 높은 ‘노출’이다. 울 때 그나마 터뜨릴 수가 있는데 혼자 숨죽여 우는게 버릇되면 자꾸 그런 식으로만 울게 되고. 방문 잠그고 혼자 펑펑 운 기억은 없나?
혼자서 울기야 했지만, 그런 적도 많지가 않다. 어릴 때도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편이었고, 당연히 남들 앞에서 엉엉 울어본 기억이 20대엔 없는 것 같다. 우는 게 창피했다. 만약 부모님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나보다 부모님이 더 아파할 거라 생각해서 눈물이 나오려 하면 꾹꾹 참았다. 그게 반복되다 보니 감정을 표출하는 데 어색함이 생겼던 듯하다.
연기를 하면서 비로소 눈물을 제대로 터뜨린 걸 기념해 나나에게 ‘눈물의 여왕’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주고 싶다. 연기의 맛을 알고, 눈물의 맛을 알고. 이젠 좀 우나? 울고 싶을 때가 있다거나.
운다는 게 뭔지, 우는 법을 좀 터득한 기분이다. 특히 요즘 들어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연기를 하면서 사람이 변한 것 같다(웃음). 그런데 이젠 울고 싶지 않다.
왜? 봇물 터지듯 뭐가 터질까봐 두렵나?
그렇다. 그게 무섭다기보다는 슬픈 생각에 잠길 일이 있거나 슬픈 영화를 보거나, 혹은 그런 역할을 할 때 너무 깊이 빠져드는 것 같아서다. 그리고 울 상황이 아닌데 눈물이 나와버리면 주위에서 ‘갑자기 왜 울어?’ 하면서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별 일도 아닌데 울어버리는 사람들 있잖아. 내가 갑자기 그런 스타일로 변했다. 마음은 너무 힘든데 왜 눈물이 안 날까 싶어 답답한 시절도 있었다면, 지금은 또 ‘여기서 울면 안 돼’라고 다짐해야 한다.
그런 솔직한 감정이, 밖으로 표출할 수 있게 만드는 연기가 당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연기하는 인물에 따라 내 생활과 환경 등등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니까 가능하다면 ‘좋은 역할’을 자주 맡고 싶다는 바람이 있기는 하다. 나에게, 내 인생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역할 말이다. 좋은 거 보고 웃고, 즐겁게 연기하면서 도연 언니처럼 오래 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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