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을 뿐 이들은 언제나 음악과 함께였다. 이젠 음악과 함께하는 확연히 다른 챕터가 시작될 것이다. 방송의 막이 내리고, <싱어게인>의 Top 3인, 이승윤, 정홍일, 이무진의 막이 올랐다.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신개념 리부팅 오디션 프로그램.’ JTBC <싱어게인>의 자기 소개이자 이 프로그램의 취지다. 생명력이 다한 듯했던 오디션 장르는 이렇게 ‘다시’ 불씨를 지폈다. 음악 세계에 처음 발 디딘 보통 사람이 스타의 신화를 쓰고, 아이돌 연습생이 최정예 군단의 멤버가 되기 위해 눈물 흘리는 걸 지켜본 지난 몇 년이다. 시청자야 집에서 발 뻗고 그 무대를 감상 혹은 평가하면 그만이지만, 거듭되는 생존 게임 속에 반가움과 피로함이 교차하기도 했다. 그 사이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용어가 먹구름처럼 우리 삶에 드리웠다. 그 99가지 이유 중 하나는 이거다. ‘실패하면 재기할 기회를 얻기 힘든 사회.’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시대와 따로 놀지 않는다. 무명가수 71명이 출연한 <싱어게인>의 참가 조건은 ‘단 한 장이라도 앨범을 낸 적 있는 가수’였다. 그 때문에 나이도, 경력도, 장르도 다양한 이들이 한곳에 모였다. 세상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재야의 숨은 실력자들. 한때는 잘나갔지만 지금은 잊힌 가수들. 압박감이 상당할 방송사의 대기실에 그들이 모였을 때 맴도는 건 경쟁 심리가 아니라 공감대였다.
<싱어게인>의 우승자 이승윤, 준우승자 정홍일, 3위 이무진은 지금 음악 신에서 가장 바쁜 하루하루를 보낼 이들이다. 문자 그대로 눈 뜨니 스타가 된 그들이 점심부터 이른 밤까지 스튜디오에 머무를 때 어떤 분위기였는지는 같이 노래하고 게임도 즐긴 <더블유> 유튜브 콘텐츠에 잘 담겨 있다. 이승윤은 등이 훤히 드러나는 의상도 놀란 기색 없이 받아 들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타일은 (전문가에게) 얼마든지 내줄 수 있고, 나는 음악을 잘 챙기면 된다’고 말한 그였다. 얼마 전까지 더벅머리에 기타를 안고서 박진영의 ‘허니’를 부르던 이가 돌아서자 등 근육이 드러났다. 곱고 긴 머리카락을 푼 채 저 멀리 서 있는 로커 정홍일은 예수가 펜디 슈트를 입고서 논현동에 재림한 듯했다. 이승윤이 정홍일의 낯선 차림에 활짝 웃으며 감탄하는 사이, 가장 부지런하게 스튜디오 이곳저곳을 누빈 건 이무진이다. 취향을 알아보는 양자택일식 게임에서 두 형들이 토마토 파스타와 크림 파스타 중 ‘토마토’라고 답한 것 때문에 그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무진은 모든 촬영이 끝난 후에도 <더블유> 에디터들을 붙잡고 “토마토 파스타 좋아하세요, 크림 파스타 좋아하세요?”라고 동의를 구하듯 질문을 던졌다.
“반골 기질이 강하시죠?” 이승윤과 마주 앉아 물었다. “엄청 강하죠. 빈정거리기도 잘해요.” 세상과 타협한다는 기분이 드는 걸 반기지 않는 것인지 물었을 때는 주저함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죠. 저도 세상의 구성원인데. 타협해야 할 부분이란 있는 거고,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이승윤은 과거 알라리깡숑이라는 밴드로, 그리고 솔로로 <달이 참 예쁘다고>, <영웅 수집가> 등 몇 차례 음반을 냈다. 그의 표현을 쓰자면 ‘앨범을 쓸데없이 많이 내서 몇 장인지 세지도 못하겠다.’ 10년 전 대학가요제에 나갔을 때는 ‘내 음악이 남들에게도 필요한 음악인지 시험해보기 위해’ 참가했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꽤 많은 이승윤의 영상 자료를 찾아보면 그는 ‘필요’라는 말을 자주 쓴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의 쓸모와 필요성을 생각하는 건 세상에서 나의 좌표를 가늠하는 일과 비슷하다. ‘무명’이 아니라 ‘유명세가 없을 뿐’이라던 그는 방구석이라는 좌표에서 그가 만들어낸 음악과 세상의 상호작용이 궁금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유효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다면 저 혼자 간직하면 되는 거잖아요. 내가 나를 아끼는 것과 별개로 다른 사람에게도 이게 필요할까. 저에겐 경험치가 필요했어요. 내 음악이 누군가에게 가 닿는 경험.”
세상의 기준으로 무명이던 인물이 금세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우승자가 됐다는 드라마보다 먼저 쓰인 드라마가 있다. 사실 이승윤이 2020년 말까지만 음악을 하자고 결심했다는 점이다. 용기 없다는 그가 음악 생활의 마지막까지 미뤄놓은 두 가지가 ‘오디션에 진심을 다해 참가하는 것’과 ‘남의 노래를 불러 내 이름을 알리는 것’이었다. 용기 낸 걸음 앞에 날벼락 선물 같은 인생의 사건이 벌어지면, 마음을 고쳐먹었더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식의 깨달음이 스치진 않을까? “제가 염세주의자라 정말 최선을 다하니 이렇게 잘됐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 생긴 사람의 말은 결과적으로 덜 좋은 상황의 사람에게 폭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정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용기와 최선이 저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 건 사실이에요. 저는 작은 세계에서 혼자, 우리끼리 열광하며 음악 하는 삶 속에 있었기 때문에 제 장점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어요. <싱어게인>은 제가 잘하는 게 뭔지 정리하고 설명해줬죠.”
이승윤이 <싱어게인>에서 보여준 ‘치티치티뱅뱅’은 문제적 무대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 그는 ‘누가 이기든 지든 패배자를 심사위원으로 만들자’고, 투지도 긴장감도 없는 억양으로 센 말을 했다. 무대가 시작되고 그가 뱉은 첫 가사는 ‘너의 말이 그냥 나는 웃긴다.’ <싱어게인>의 참가자이자 교수인 가수 재주소년은 그날 밤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이승윤의 무대가 왜 충격적으로 놀라운지, 감동이 가시기 전에 그 순간을 나누고 싶어서다. 그는 어느 만화에서 본 ‘기타는 6현으로 울려 퍼지는 인간성’이라는 대사를 언급하며 이승윤의 ‘치티치티뱅뱅’이 곧 이승윤이라는 사람의 인간성이고 예술성이라고 말했다 (애프터눈 레코즈의 유튜브 채널에서 얼얼한 표정의 재주소년이 36분간 쏟아낸 리뷰 영상을 볼 수 있다). 나는 재주소년의 그 모든 말과 유희열의 반응(“대체 족보가 어디야?”)에 동의한다. 심사위원과 평가받는 자, 수십 대의 카메라와 무대 위에 홀로 선 참가자라는 구도를 뒤집고, 큰 음폭 안에서 예상할 수 없는 전개로 튀며, 무대 시작 전 멘트부터 남의 노래를 가져온 그 무대의 끝까지 스스로 설계한 것처럼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와 이승윤식 해석. 그가 무대에서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놀랍게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애초 ‘판단하기 어려움’을 콘셉트 삼았죠(웃음). 첫 무대와 그에 대한 심사평까지 제가 의도한 바대로 흘러갔어요. 딱 첫 무대까지는 그랬어요. 그다음엔 무진이와 팀을 이뤄 홍일이 형을 떨어뜨려야 했고, 또 그다음엔 제가 무진이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됐죠. 아, 이젠 그만해야겠다 싶었어요. 경연이지만 경연답지 않게 플레이하겠다는 마음으로 각오하고 시작한 일인데도 도저히 저와 맞지가 않았어요. 이효리 님의 ‘치티치티뱅뱅’은 의도적으로 고른 곡이에요. 오디션용이라고는 할 수 없는 스타일의 곡을 제 맘대로 부르고서 마치자는 생각이었거든요. 그게 마지막 무대가 될 줄 알았는데… 추가 합격은 예상 못했어요(웃음). 도망치려고 했는데 저를 붙잡아준 거예요.” 이승윤은 도망자를 자처했으나, 그의 무대를 맛본 심사위원들은 그를 쉽게 놔주지 않았다. “저에게 고마운 기회를 준 거잖아요. 제가 필요하다는 거잖아요. 그때부터는 매 라운드마다 좀 더 목적을 가지고 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Top 3 중 심사위원이 붙잡은 사람은 또 있다. 이승윤이 무대 위에서 괴로움으로 눈물 훔치게 한 원인, 헤비메탈 로커 정홍일이다. 이승윤과 이무진이 부른 신해철의 ‘연극 속에서’, 정홍일과 김준휘가 부른 빛과 소금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는 모두 다시 찾아 들을 만한 음악이었지만, 심사위원들은 이승윤과 이무진의 손을 들어주었다. 정홍일이 탈락자의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던 순간, 심사위원이 딱 한 번 탈락자를 구제할 수 있는 카드를 이선희가 썼다. “그 결과로 제가 지금 여기 있는 거죠. 바로 다음 라운드에서 부른 들국화의 ‘제발’은 사실 <싱어게인> 무대에서 가장 먼저 부르고 싶었던 곡이에요. 방송에도 나왔지만, 그때 MC 이승기 씨가 옆에서 제가 떠는 걸 알아챘어요. 정말 떨렸습니다. 하지만 그 곡을 불렀을 때 제일 잘했다 싶어요.”
정홍일과의 대화는 동굴 속에서 나누는 기분이었다. 베이스의 볼륨을 한껏 높였을 때처럼, 그의 성대에는 울림 증폭기가 있는 듯하다. 정홍일은 부산을 기반으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작년 11월에는 밴드 출신 보컬리스트로서 솔로 앨범 <숨쉴 수만 있다면>을 냈고, 밴드의 이름으로 첫 앨범을 낸 건 2006년이다. 희귀 음반을 파는 어느 인터넷 몰에서는 정홍일이 활동한 헤비메탈 밴드 바크하우스의 미개봉 CD를 8만5천원에 내놨다. “아이러니한 일이죠. 당시 1천 장, 2천 장 정도 앨범을 찍었을 거예요. 우리 밴드가 오래 지속된 이유는 구성원 누구 하나라도 ‘No’를 하면 바로 포기했기 때문이에요. 모두의 의견이 일치해야만 움직였어요. 어느 순간 우리가 포기하는 게 너무 많아졌다는 걸 알았습니다. 욕심이란 게 없어진 거죠. 살길을 찾기 위해 저는 지역에서 대중음악을 시도했어요.” ‘신’이라는 말을 하기엔 협소한 환경에서 정홍일은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과 콜라보하는 식으로 관중을 끌었다. 기획 공연인 <김현식 트리뷰트>는 종종 매진되었을 정도다. 그런 생활을 3년 정도 하면서 나름 자신감도 생겼다. 유명해진다는 건 인생이 들추어질 일도 많다는 뜻이다. 40대 중반이 되어 돌연 다른 인생을 맞은 그에게 10대와 20대 시절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능숙한 예의 바름으로 답했다. “어릴 때 아픔이 많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흔한 힘겨움이 아니었거든요. 과거를 숨기겠다는 건 아니지만, 단 하나를 꺼내더라도 제가 편하고 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때가 오면….” 대화의 소재는 곧장 ‘록’으로 옮겨갔다. 다만 우리가 서둘러 벗어나려 했던 이야기는 정홍일이 하는 음악의 뿌리였기에, 금방 떨쳐낼 수는 없었다. “저는 말수가 많지 않고 조용한 편입니다. 하지만 에너지가 넘쳐나는데 해소할 길이 없으면 사람은 병이 나요. 감당하기 힘들었던 고통과 외로움이 내재돼 있다가 록을 할 때면 에너지가 발산됩니다. 그 덕에 록을 오래 할 수 있었죠. 저에겐 고마운 음악이에요. 록이라는 건 간단히 말하면 뭔가가 과하게 다가오는 겁니다. 음악이 주는 그 과함이 나에게 흡수되고 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 또 에너지가 생겨요. 특히 라이브가 있는 현장에서 그런 경험을 하면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정홍일은 언젠가 ‘도중에 관객이 한 명도 안 빠져나갈 수 있는’ 본인의 록 콘서트를 하길 상상해본다.
저음의 정홍일과 비교하자면 이무진의 평상시 목소리는 메조소프라노에 가까울 듯하다. 나는 이무진과 인터뷰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그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묻고 말았다. “저기… 원래 이렇게 하이 텐션이세요?” 그는 자신이 대중음악가를 꿈꾸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중의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어서 요즘 ‘자제’하는 거라고 말했다. 몇 시간 동안 이무진을 관찰하면서 그를 파악하기까지 적응기가 좀 필요했다. 개구진 청춘일까 싶다가도 말투가 발랄할 뿐인가 싶었다. 몇 번은 정말 재밌어서 크게 웃었다.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리액션까지 하는 1인 2역 화법은 오랜만에 봤다. 우연히 엿들은 통화 중 한 대목에서는 “네, 어머니! 괜찮아요 저 샌드위치 챙겨 먹고 나왔어요”라고 기특하고 씩씩하게 말하는 아들이었다. 스키니한 가죽 팬츠가 의외로 모델이 입은 것처럼 잘 어울려서 키를 물어봤을 때는 명랑만화 주인공 소년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비밀!”
이무진은 <싱어게인>에 등장해 첫 곡을 부르기 전, ‘이제 수면 위로 올라가도 되는 사람’임을 증명하려 나왔다고 말했다. 예선 때는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떨어질 것 같습니다!”라고 귀여운 외침도 했다. “준비는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적인 것 외에 필요한 건 뭘까 고민했죠. 그러던 시기에 <싱어게인>과 연이 닿았어요. 자신 없다고 말한 건 제 목소리가 통할 가능성이 낮다고 느껴서였어요. 저는 임팩트 있는 음악보다는 편하게 흘려보낼 수 있는 음악을 추구하기 때문에 경연이라는 장에서 매력적으로 보일지 확신이 없었죠. 하지만 만약 통한다면 경연에서 오래 높이 갈 수 있겠다는 판단도 들었어요.” 명곡은, 특히 개성 강한 명곡은 아무나 건드려선 안 되는 거지만 이무진이 첫 무대에서 부른 한영애의 ‘누구 없소’는 국내 커버송 분야 명예의 전당 차트가 있다면 추대될 만하다. <싱어게인>의 모든 무대 클립 중 가장 조회수가 높은(3월 중순 기준으로 1799만 회) 주인공을 두고, 이승윤은 ‘조회수 높으면 형’이라는 말을 남겼다.
“저는 음치였어요. 박치였고요. 중학생 때 처음 노래의 재미를 느꼈는데, 노래를 부르면 음정을 못 맞추더라고요. 몸 안에 노래라는 조직이 아예 내포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저는 재능이 없음을 인지하고 ‘1+1’부터 시작했어요. 어느 순간 나중에 보컬리스트가 안 되더라도 음악 관련된 일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죠. 왜 어릴 때는 당시에 느낀 게 인생의 전부 같은 거 있잖아요. 저는 평생 손댄 게 음악밖에 없어요.” 이무진이 2000년 12월 28일생이니까, 그가 말하는 ‘평생’은 만으로 20년 3개월 정도 된다. 이무진은 음악관이 확고하게 잡혀 있는 듯했다. 좋아하고 추구하는 장르를 묻자 오히려 되물었다. “가장 여유가 없게 느껴지는 장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메탈요? 음… 메탈 중에도 좀 음미하면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스타일이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걸 장르로 말하면 ‘모든 것’이에요. ‘내가 장르다’라는 게 아니고요, 어떤 장르든 거기서 여유가 느껴진다면 제 취향이에요. 죽기 전에 모든 장르의 음악을 다 발표해보고 싶어요. 다만 그 안에 늘 여유라는 요소를 스며들게 하는 거죠. 제이슨 므라즈는 인류 문명이 창시된 이래 가장 담백한 뮤지션이 아닐까… 그 사람 음악 때문에 저에게 ‘여유’라는 단어가 깊이 박혔어요.”
20대의 이무진, 30대의 이승윤, 40대의 정홍일은 지금 주어진 행운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 단 하루를 목격했을 뿐이지만, 갑작스러운 삶의 변화에 자칫 부적응하는 기색은 느끼지 못해서 다행이다. 물론 얼떨떨함을 떨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이를테면 ‘주변 친구들조차 잘 듣지 않던 음악’을 한 이승윤이 이제 와 그를 가치 있다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겪는 낙차는 그에게 묘한 기분을 안겨줄 법하다. 나는 이승윤이 방송에서도 자주 내비친 ‘주제 파악’ 하는 태도나 자조적인 면이 원래 그의 성정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지금은 들뜨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가 어릴 적엔 ‘음악 천재인 줄 착각한 시절’이 있었다는 답을 들었다. ‘시건방진’ 태도는 음악적 세계를 완벽히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끄러움으로 변해갔고, 거기에 센 자존심이 얽히길 거듭하다 점점 그릇이 작아진 것 같다고 그는 돌아봤다. “방송이라는 포장도 있으니 저는 누군가에게 영웅이 되어 있을 것 같아요. 그것도 두렵지만, 그들의 말에 취해서 제가 영웅이 되고자 할까 봐 그게 가장 두려워요. 세상에 차근차근 등장한 게 아니라 갑자기 이렇게 됐어요. 조심하거나 함구해야 할 일이 생기면서 친구들과의 대화도 다소 일차원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제가 앞으로 친구들에게 가식적인 사람이 되지 않길 원해요.”
2021년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우리는 ‘반짝’하며 사라지지 않고 활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이승윤과 정홍일과 이무진을 볼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나타난 가수들의 존재감이 금세 휘발된 적도 있었지만, 이런 방송 장르가 경험치를 쌓은 만큼 관련 매니지먼트 업계도 진화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노래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이들은 이제 자기 음악으로 증명해야 한다. 어쩌면 그건 지금의 상황과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부담과 두려움이라고는 없이 씩씩하게 대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무진처럼. “향후 제가 선보일 음악은 저의 ‘누구 없소’ 스타일과 다르다는 걸 미리 알려드립니다. 아, 뭐라도 빨리 내보고 싶다! 저 좋은 곡 많거든요. 내 새끼들….” 시작은 했으나 도중에 ‘런’할 마음을 품었던 이승윤은 도망에 실패한 결과 도전에 성공했다. 용기를 내고 갈등을 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음악을 게을리하지 않았을 텐데, 우리는 왜 이제야 그들을 알게 됐을까? “도망치려 했던 제 시도 자체는 후회하지 않아요. 그리고 다시 기회가 주어졌을 때 또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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