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의 모든 일상이, 걸음 하나하나가 음악과 연결돼 있다. 음악을 통한 숨이 마침내 화사라는 세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chapter 1.
한복 입고 돌아다니던 아이
제 과거부터 지금까지 일대기를 쭉 듣고 싶다고요? 좋아요, 준비됐습니다(웃음). 어릴 때 살던 동네요. 골목이 많았어요. 동네 사람끼리 누가 누군지 다 알았죠. 그곳 풍경을 생각하면 딱 <응답하라 1988>이 떠올라요. 엄마 화장품으로 화장하고, 한복 입고 동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집안이 어려워서 그런지 화려한 것을 갈망했나 봐요. 아래위로 샛노란 색에 진분홍 색이 어우러진 한복이 있었거든요. 어린 여자아이들이 입는 꼬까옷, 그게 왜 그렇게 좋았나 몰라요. 유치원 다닐 때 저요? 그때부터 그야말로 불나방 같았어요(웃음).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불타오르는. 좀 소심한 면도 있었지만 하고 싶은 게 뚜렷하고 화끈한 아이였어요. 툭하면 유치원을 땡땡이 쳐서 엄마 속 좀 썩였죠. 가기 싫으면 안 가고, 유치원생이 참 프리했다… 언니가 둘 있어요. 언니들은 연년생이고 저는 둘째 언니랑 네 살 차이예요. 저 혼자 어린 데다 제멋대로였으니, 언니들이 놀 때 저를 따돌리곤 했죠. 그럼 저는 기죽지 않고 매번 아빠한테 일렀어요. 자매들이 만나면 맨날 하는 얘기가 우리 어릴 적 얘기예요. 최근에도 언니들과 옛날 얘기하며 웃었어요. 우리 그렇게 싸웠지, 하면서 추억하는데 이제는 그때를 그리워하는 거 같기도 해요.
네, 어릴 적부터 끼가 어마어마하다는 소릴 들었어요. 그 시작은 부모님 때문이에요. 우리 몇 달 전 환불원정대 화보로 만났을 때도 제가 이 얘기 좀 한 거 같네요. IMF 시절에 집안이 타격을 받으면서 부모님이 맞벌이로 아주 바빴거든요. 엄마 아빠는 그때 얘길 하면 너무 여유가 없어서 그 시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세요. 유치원에서 학예회를 하거나 초등학교 때 체육대회를 하면 친구들 부모님은 다 오는데 우리 엄마 아빠는 바빠서 못 오시잖아요. 1등 도장 받은 거 보여주고 싶어서 제가 뭐든 기를 쓰고 했어요. “나 이번에 장기자랑 하니까 꼭 와야 돼”라고 엄마 아빠가 오시게끔 일을 만들었고. 부모님한테 예쁜 모습 보여주고 싶다, 칭찬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제 뽐내기의 출발이었어요. 그러다 점점 ‘너 잘한다’는 반응을 들으면서 더 재미를 느낀 거죠. 집에서도 혼자 아주 쇼를 하며 놀았어요. 노래 부르고, 거울 보면서 춤추고, 누구 흉내도 내고, 영화 보다가 대사도 따라 해보고.
사춘기는 꽤 성숙하게 보냈어요. 뭐 그때도 여전히 엄마 아빠 속 썩인 면은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고생한 사람이 나이에 비해 성숙하듯이 저도 자아 성찰을 했죠. 중고등학교 시절은 가수라는 꿈을 향한 열정이 폭발했을 때예요. 어린 나이 부터 꿈에 확신이 있었다는 것. 그게 제 큰 복이라고 생각해요. “에이, 너는 안 돼” 하는 비아냥도 들었고, 가수 데뷔 과정에 실패라는 맛도 겪었고. 그런 일들이 저에겐 소중한 자극이 됐어요. 누가 저를 쉽게 판단하면 눈이 돌아가더라고요? ‘당신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겠어.’ 무시당한다 싶으면 더 강해졌죠. “너는 개성도 강하고 노래도 너무 잘하지만 뚱뚱하고 예쁘지가 않아”라고 한 사람. 누군지는 비밀로 할래요. 그 말 들은 날 집에서 밤새 본 영상이 비욘세 공연이에요. 2019년 마마무 콘서트의 ‘화사 쇼’에서 제가 오마주한 게 그때 본 영상이거든요.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공연. 투어 타이틀이 <I Am… Yours>와 <I Am World Tour>였나 헷갈리네요. 제가 그때 비욘세 공연 두 개에 완전 빠져 있었죠. 이상하게, 그걸 보고 있으면 그냥 위안이 돼요. 동질감하고는 다른데. 뭐라 해야 할까, 희로애락을 다 느끼게 해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어요. 비욘세 투어 다큐멘터리 <홈커밍>도 좋죠. 요즘도 힘들 때 비욘세 공연 영상을 보면 막 힘이 생겨요. 고갈된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는 기분. 보고 있으면 영감이 떠올라요.
chapter 2.
꿈은 이루어진다
데뷔는 2014년 스무 살 때 했어요. 그리고 2018년, 마마무의 ‘별이 빛나는 밤’으로 활동할 무렵부터 제가 좀 달라진 걸 느꼈어요. 좀 더 역량이 갖춰졌달까. 더 정돈되고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죠. ‘별이 빛나는 밤’ 전후로 무대에서 제 모습의 결이 달라요. 사실 그사이에 개인적으로 사건이 있었어요. 이후 제가 좀 고요해졌죠. 2017년 9월에 삼촌이 돌아가셨거든요. 저에게 아주 큰 존재였어요. 난생처음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경험을 한 거예요. 그때 제가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기억이 제대로 안 날 정도예요. 그 여파가 아직까지 오고 있어요. 시간이 흘렀으니 이젠 고통스럽다기보다는 그리운 거죠. 제가 어릴 때부터 꾸미는 거 좋아하고 끼 부릴 때, 삼촌만이 저를 예뻐하고 호응해줬어요. 전주에서 지금 마마무 멤버인 제 친구 휘인이랑 같이 서울 올라와 자취하고 어렵게 살 때도 삼촌이 저를 챙겼어요. 장가도 안 가고 할머니 모시고 살면서 외로웠을 텐데,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그렇게 저만 찾아봤나 봐요. 삼촌의 휴대폰과 지갑이 저한테 있거든요. 그걸 머리맡에 두고 자요. 삼촌한테 미안하지만, 한 번은 폰을 켜 봤어요. 온통 제 노래, 제가 연습생 때 녹음한 가이드, 사진들….
화사의 결정적 순간요. 아마 대중에게는 2018년 연말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마마(MAMA)’ 무대가 아닐까요? 새빨간 라텍스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섰을 때. 아직까지도 그 무대에서의 기분을 넘는 무대가 없어요. 저 그때 막 잘하려고 용 쓰는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희한하게 모든 게 다 맞아떨어질 때가 있어요. 그 무대 올라가기 직전에도 ‘지금 이 순간을 먹어버릴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다 들어맞는, 충만하게 준비된 느낌이 확실히 있었어요. 무대 마치고 내려올 때는 너무 행복해서 온몸이 후들후들. 그 무대가 그렇게 화제가 될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저는 이미 최고의 순간을 느낀 거죠. 아, 그때의 그 기분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다면.
저는 부족한 게 많아요. 무대 위에서 잘 해내고 싶은 저만의 목표가 있는데 ‘나 왜 이렇게 어설프지?’ ‘왜 이런 표정밖에 못 지을까?’ 싶고. 춤추는 거요. 너무 좋아요, 춤이. 에너제틱하고, 움직임이 많잖아요. 그런데 제가 춤을 못 추거든요. 진짜예요. 마마무 멤버 중에서 안무를 제일 느리게 익히는 사람이 저예요. 그 어색함을 스스로 못 참아서 계속 연습하는 거고요. 처음에 그 어색하던 몸 동작을 내 거로 만들었다는 데서 희열이 와요. 준비를 다 마친 뒤 카메라 앞에서 제 모든 걸 뿜어낼 때는… 와, 미칠 것 같아요. 솔로곡인 ‘마리아’를 발표했을 때의 제가 그나마 지금까지 제 모습 중에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게 해요. 완벽해서라기보단 저를 잘 반영해서요. 시원하게 한 번 싹 비워낸 듯해요. ‘마리아’의 가사와 그 밖의 모든 것에 담은 아이디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것들이라 그 곡이 저를 뚜렷하게 보여주거든요. 저에게 음악이란, ‘숨’이라고 하겠어요. 숨 쉬는 것과 같다고 느껴요. 제 모든 일상이, 제 걸음 하나하나가 다 음악이고 음악과 연결돼 있어요. 음악 없으면 저는 숨 못 쉬어서 답답해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요즘의 호흡요? 음…. 한숨?(웃음) 모르겠어요, ‘에휴’를 자주 해요. 지금은 저에게 한숨 돌릴 타이밍이라 그런가 봐요. 조만간 다시 가쁜 호흡을 하게 될 거예요.
chapter 3.
외로움, 사랑, 진심 그리고 강인함
오프라 윈프리가 마돈나 인터뷰할 때 뭐라고 했는데요? 갖은 화려한 포장과 마케팅 같은 걸 다 치워버리고 나면 남는 것… 저는요, 그냥 동네 백수 같은 사람입니다(웃음). 평소 추레하게 하고 다녀요. ‘내가 편하면 그게 멋이다’라고 생각해서. 또 외로움도 많고 사랑도 많은 사람이에요.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런지 말에 상처를 잘 받거든요. 제가 그렇다 보니 누군가와 말을 할 때 혹시나 상대가 내 말로 인해서 외로워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잘 휩싸여요. 말도 표현도 신중히 하려고 하죠. 어? 맞아요, 어릴 때 조숙하게 보냈더니 오히려 나이 들수록 제가 아기처럼 되어가요! 전에는 힘든 티를 내는 게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혼자 감내했어요. 요새는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하고 투정 부려요, 가까운 사람들한테. 그게 건강한 건데 왜 전에는 그러지 못했을까?
요즘 제 화두는 ‘평화’예요. 최근에 좀 쉬는 시간을 가졌는데 제가 쉬는 법을 잘 모르더라고요. 쉰다는 게 뭔지 까먹었나 봐요. 온전히 행복하게 평화로운 쉼을 위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싶어서 저 혼자 드라이브하며 바람 쐬고 오기도 했죠. 일만 열심히 하다 일을 멈추니까 확실히 잡생각이 많았어요(웃음). 문득 든 생각이, 제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팬들뿐 아니라 가까운 이들에게서 이미 많은 걸 받고 있더라고요. 저와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거 아닌가 싶었어요. 이젠 저보다 그들의 컨디션을 먼저 살피고 싶고, 그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걸 알겠어요. 그렇게 제 나름의 사랑을 주면서 소소하게 웃고 이야기 나눌 때 행복해요.
그저 매 순간 진심으로 하자는 것. 그게 제게 남아 있는 배움 비슷한 거예요. 예능도 저는 재밌어서 하는 거거든요. 재미없으면 피곤한 티가 좀 나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진심이 있으면, 돈이나 다른 무엇은 다 따라오는 것 같아요. 저는 누군가를 만날 때도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요. 만남을 앞두고 노력한다는 뜻이에요. 그 사람이 뭘 좋아할지 사소한 부분을 생각하고 신경 써요. ‘아, 와인을 좋아하지’ 싶으면 나는 와인을 잘 모르지만 이리저리 알아보고 선물로 준비해 간다든가. 바라는 게 있다면 세상에 대해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면 좋겠어요. 아직 저는 시야가 너무 좁거든요. 단순한 예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는 생각을 하기 보다 좀 더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럼 음악적으로도 더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제가 강인한 사람이라 이렇게 발전해왔다고 봐요. 엄마 아빠가 결과적으로 저를 강하게 키우셨어요. 부모님이 저에게 해줄 수 있는 다른 서포트가 없었고, 주실 수 있는 게 그냥 사랑뿐이었잖아요. 그러니까 사랑을 열심히, 듬뿍 주신 거죠. 가수를 준비할 때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저 자신이 대견스러우면서 슬퍼요. 저는 독립적이어야 했어요. 그래서 결국 강해졌고요. 네, 제 안의 외로움과 사랑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저는 아주 강인한 사람입니다. 안 그랬으면 못 버티고 나가떨어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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