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에 등장한 순간부터 I.O.I. 활동을 거쳐 안정적인 솔로로 인정받기까지, 청하의 가치는 꾸준히 상승하기만 했다. 그 이름이 더 높고 크게 향할 수 있을 듯한 지금, 청하는 꿈이 없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만난 지금은 청하의 컴백 직전이지만, <더블유> 3월호가 나올 즈음이면 신곡과 컴백에 대한 반응이 있을 것이다. 첫 정규 앨범 <케렌시아>(Querencia)에 무려 스물한 개 트랙을 담았다고?
청하 실제 노래는 열 여섯 곡인데, 총 다섯 가지 테마를 정해 각 카테고리마다 네 곡씩 분류했다. 마지막 트랙에 에필로그 개념으로 한 곡이 있고.
정규 앨범에 수록될 곡 중 몇 개를 사전에 순차적으로 공개했다. 그런 싱글 컷 방식은 팝 시장에서 주로 통용되는 스타일로 안다.
싱글을 선공개하는 방식을 택한 이유 중 하나가 앨범 수록곡이 많아서다. 보통 곡을 발표하고 나면 무대 활동은 일주일 정도만 바짝 집중적으로 하고, 팬들뿐 아니라 더 다양한 사람이 내 노래를 들어주지 못하고 지나가는 듯해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 앨범이 발매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떻게 보면 장기 프로젝트였다. 앨범이 나오기 전에 중간중간 싱글과 뮤직비디오까지 공개했으니. 2020년 내내 가수들이 무대에 설 자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조금씩 나를 선보였다.
그동안 청하를 생각하면 대견스러우면서 신기하기도 했다. 히트곡인 ‘벌써 12시’뿐 아니라 첫 솔로 활동 때 곡인 ‘Why Don’t You Know’나 ‘롤러코스터’는 곡 명을 모르는 사람이 들어봐도 알 법한 노래다. I.O.I의 지명도를 벗어나 솔로로 도전한 처음부터 ‘흥한 솔로’였다. 솔로 데뷔가 어떤 과정으로 이뤄졌는지 늘 궁금했다.
I.O.I 활동을 마친 후 회사에서 먼저 솔로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내 반응은 ‘흐억!’이었다(웃음). 더 준비를 하고 싶었다. <프로듀스 101>에 나갈 때도 회사에서 먼저 도전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네’ 한 거다. 연습생 때부터 나는 막연히 ‘걸 그룹으로 데뷔할 것 같다’, ‘나는 춤 포지션을 맡겠지’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솔로 활동이라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그룹에 더 맞는 사람입니다’라고 했지만 회사 이사님은 ‘아니다, 너는 솔로를 해야한다, 어쩔 수가 없다, 타협하자!’ 하셨다. 이끌어주시는 대로 간 거다.
베테랑은 당신을 알아본 거다. 어릴 적 처음 춤 학원이라는 데를 다녔을 때도, 화장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선생님이 계속 춤춰보라고 했다지 않았나?
“생각 한번 잘 해봐요. 계속 춤췄으면 좋겠어요”라고 하셨지. 나는 방학을 이용해 그냥 가본 거라 특별한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학원 원장님도, 또 다른 분도 비슷한 얘길 하시길래 ‘오 어디 한번 해볼까?’ 한 게 시작이다.
춤을 출 때면 어떤 기분이 드나?
예전에는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춤을 대할 때 안절부절못하기도 했다. 왜 어린 강아지를 내 앞에 데려다놓으면 내가 놓친 사이 얘가 어디로 가버릴 것 같고 불안한 마음 드는 거. 나에게 춤이 그랬다. 무작정 다가가야 친해질 수 있을 거 같은, 어디로 가버릴 거 같은 친구. 우리 집에 밤비라는 강아지가 있는데 같이 보낸 시간이 흘렀더니 이젠 집 안에서 늘 내 옆에 있는 존재다. 춤도 그런 대상이 된 것 같다.
엔터테이너한테는 내가 봐도 내가 너무 멋진, 소위 ‘자뻑’ 증상이 어느 정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청하는 어떤가?
모르겠다. 나는 나를 보는 게 좀 오글거린다(웃음). 어느 현장에서 내 노래가 울려 퍼지면 ‘헉’ 소리가 나고. 내 모습을 모니터링하는 건 내가 아주 힘들어하는 일 중 하나다(웃음). 나는 SNS를 하지도 않고, 남의 SNS를 잘 보지도 않는다. 연예 기사도 안 봐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친구들에게 듣고서야 안다. 이런 직업이면 없던 관심도 생겨야 하는데 오히려 관심이 점점 줄더라.
어떤 사람은 본인이 가진 것보다 스스로를 더 높게 평가한다. 그런데 청하는 자기가 뭘 가졌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누군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주면 그때부터 달을 인지하고 거기로 향하는 사람 같다, 성실하게.
아직도 솔로 생활에 적응하는 중이다.
솔로 활동한 지 4년인데 아직도?
혼자 하는 게 익숙해질 즈음 활동이 끝나고. 이제 좀 익숙해지나 했더니 코로나19라는 것이 터졌다. 무대와 공연에서 점점 멀어지다 보니 ‘나 무대라는 게 뭔지 잘 기억이 안나!’ 싶으면서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작년 12월, 당신이 코로나19 확진자라는 기사가 났다. 청하와 일면식이 없는 사람도 놀랐을 거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일단 많이 황당했겠다, 몸이 아프거나 증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아주 차분한 상태였다. 다만 걱정이 될 뿐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 나로 인해 피해를 입을 장소들, 우리 회사가 받을 수많은 연락들, 그리고 엄마… 우선 직전에 만났던 친구들에게 전화했다. ‘채연아. 미나야. 얘들아. 너희 빨리 일어나봐,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언니가 너무 미안해. 언니도 몰랐어.’ 친구들의 반응은 ‘언니, 우린 괜찮아. 근데 언니는 괜찮아?’ 식이었다. 그런데 나는 정말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웃음). 그러다 보니 실감이 나는 게 아니라 약간 꿈꾸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행히 나로 인한 아픔 없이 지나가서 고맙다.
생활보호센터에서 완치 판정 후 나오기까지 얼마나 머물렀나?
12일 정도였나. 2인 1실이었다. 같이 방 쓰는 사람에게 내가 먼저 말을 너무 많이 걸었지(웃음). ‘뭐 좀 드실래요?’ ‘이거 드실래요?’ 하면서.
그 안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나?
아무 생각 없이 시간 흐르는 대로 지내는 게 베스트일 것 같아서 별 생각 없이 지냈다. 책 좀 읽다가, 눈이 피로하면 눈 붙였다가, 밥 먹었다가, 먹기 싫으면 방 청소하다가 하루가 갔다. 그럼 ‘아, 오늘도 하루가 잘 갔구나’ 하고. 계속 누워 있다가 허리가 아프면 자세도 좀 바꿔주면서(웃음). 일차원적으로 보내려고 노력했다. 조그만 방에서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기도 했다.
억울한 마음은 안 들었나?
처음에는 ‘왜 나에게!’ 하면서 조금 억울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5분 만에 스르르 사라지는 타입이다. 5분 있다가 ‘그래, 뭐 어쩌겠어’ 하는 거지.
다행히 통증으로 인한 고통 없이 지나갔고,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바쁘게 살던 당신에게 찾아온 귀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떤가?
생활보호센터에서 나온 후 한동안 집에서 자가 격리하며 보냈다. 나는 괜찮아도 다른 사람들이 더 불안해할 것 같기도 했고. 센터보다 집에서 보낸 그 시간이 좋긴 했다. 나 때문에 아픈 사람이 없었고, 나도 아프지 않았고, 개인적인 문제도 대부분 잘 해결됐고. 이제 기도하면서 2021년을 잘 맞이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머무는 동안 강아지한테 미안함을 많이 느꼈다. 밤비랑 얼마 만에 눈을 제대로 맞추고 부대끼는 건가 싶어서.
힘들 때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버티나?
힘들면 생각이라는 걸 안 하면서 지내려고 한다. 그냥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들부터 보기 시작한다. 사소하게는 바로 앞에 있는 밥상, 내 옆에 있는 강아지, 강아지가 흔드는 꼬리. 그 꼬리를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웃고 있다.
누구나 살면서 자주 힘들다고 느끼는 점의 주제랄까, 레퍼토리가 있다. 집집마다 그 집안사의 레퍼토리가 있듯이. 돌이켜보면 데뷔 후 지금까지 당신이 가장 힘든 부분은 어떤 점이었을까?
내가 누군가를 오해하고, 또 누군가가 나를 오해하면서 물음표가 생기는 지점이 있을 때면 늘 어려웠다. 한 번 얼굴을 찡그리거나 한 번 웃기만 해도 거기에 큰 의미가 부여되곤 했다. 어떤 순간이든 나는 그냥 똑같은 나인데. 일을 하면서 누군가와 오해가 생기는 것 같으면 주변에라도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됐다. ‘저는 사람입니다, 완벽하지 않아요. 혹시나 제가 기분 나쁘게 한 점이 있으면 사과하고 싶으니 오해를 풀 수 있게 해주세요.’ 무엇보다 자꾸 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심리 상담 선생님과 대화하면서 그런 부분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어떤 시간을 보낼 때 행복감을 느끼나?
일할 때는 일하는 그대로 행복할 때가 있고, 자연인일 때의 행복감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뭐 별거 없이 소소하다. 엄마랑 밥 먹고, 강아지 꼬리를 볼 때 행복하다. 강아지들의 꼬리를 보면 참 귀엽다.
청하의 꿈은 뭔가?
꿈이 없는 게 꿈이다(웃음). 나는 그냥 현재 존재하는 것들에 감사하면서 살고 싶다. 뭔가를 바라고 욕심을 크게 내는 것도 좋겠지만, 그런 건 10대 때 열심히 했다. 굳이 꿈을 말하자면 가족과 친구들, 모든 사람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 그것도 제법 큰 꿈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보다 큰 꿈은 안 꾸려고. 나는 이미 꿈속에서 사는 기분도 들고. 이거 썰렁한 개그일지 모르겠는데, 내가 평소에 잘 때 꿈을 많이 꿔서 꿈 좀 없이 자봤으면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니까 꿈은, 좀 없어도 좋은 무엇이라는 거지.
그럼 가장 성취감을 느끼는 부분은?
성취감, 우월감 같은 개념은 지금 나에게 별로 없다. 언젠가부터 성취감보다는 안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기를, 내 주위 모든 이들이 좀 더 안정을 찾기를 바란다.
앨범명 ‘케렌시아’가 스페인어인데, 영어로 하면 적당한 단어가 뭔가?
Shelter. 심리 상담 선생님이 “청하 씨의 케렌시아는 어디예요?”라고 물어서 처음 접한 단어다. 스스로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곳, 안식처 같은 것. 처음에는 ‘내 방’, ‘이불 속’ 정도만 떠올랐는데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한동안 나의 케렌시아는 이번 ‘앨범’이더라. 붙잡고 매달릴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아직 스페인에 가본 적은 없다(웃음).
나만의 안식처에서 안정된 삶을, 끄떡없이 온전한 나를 유지할 수 있다면 거기서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꿈이 없는 게 꿈, 2021년의 목표가 없는 게 목표. 그런 상태로 살면 소소한 시간을 더 챙길 수 있을 것 같다. 어서 무대에 서고 팬들을 만나고 싶다는 욕심 정도는 가져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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