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슈타인은 다른 세상에서 불시착해 혼자 순도가 다른 무엇처럼 <쇼미더머니 9>에 홀연 나타났다. 그는 랩을 한다거나 힙합을 한다기보다, 마법처럼 가슴에 훅 꽂히는 음악을 한다.
원슈타인은 그의 엄마가 입던 청바지에 엄마가 두르던 검은색 가죽 벨트를 하고서 스튜디오에 등장했다. 원슈타인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엄마는 그보다 훨씬 패션 감각이 뛰어난 분이다. 밀도 높게 뽀글뽀글한 머리카락 역시 청주에서 오랫동안 미용실을 운영하고 계신 엄마의 작품이다. 그의 오른쪽 팔에는 엄마를 상징한다는 골든리트리버와 여동생, 첫 싱글 커버의 캐릭터, 자유롭게 나는 새들이, 왼쪽 팔에는 여동생의 탄생화가 몸에 새긴 다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채로, 원슈타인은 다른 세상에서 불시착해 혼자 순도가 다른 무엇처럼 <쇼미더머니 9>에 나타났다. ‘내가 노래할 때 랩 할 때 여긴 지구가 아니게 돼 그냥 미끄러져 원하는 대로 멜로디가 마치 롤러코스터.’ 원슈타인이 노래하니, 해를 거듭하며 내리막길을 가던 <쇼미더머니>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 다시 하늘 위로 치솟았다. 원슈타인을 만나고 난 후, 그가 속한 뷰티풀 노이즈의 수장 마미손에게 통화를 요청했다. 몇 년 전 마미손이(당시 매드 클라운이) 원슈타인의 집으로 찾아가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을 때 그에게서 뭘 발견하고 느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자기 방에서 믹스 테이프의 곡들을 쭉 불러주는데… 제 음악 인생에서 손에 꼽을 충격적인 경험이었어요. 완전 반했죠. 이 친구가 잘될 아티스트라는 게 그냥 명확히 보였어요, 명확히. 단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시간이나 노출 정도의 문제가 있을 뿐이었어요. 어투와 표현, 소리를 내고 랩을 하는 방식,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톤 등등 그 모든 음악적 특색에 꾸밈이 하나도 없다는 게 기존 뮤지션과 다르게 다가왔어요. 역량을 갖춘 상태에서 그러기까지 하니까 아주 신선했죠.” 이제 원슈타인은 아티스트들이 좋아하는, 또 아티스트들이 질투하는 아티스트가 됐다. 집에 빨간 차압 딱지가 붙던 나날을 자연재해에 비유하고(‘3기니’), 요즘 흔한 적외선 카메라에서 사랑의 온도를 떠올리는(‘적외선 카메라’) 그의 노래는 언젠가는 마법이 이루어진다고(‘Freak’) 따뜻한 주문을 걸기 시작한다. ‘윙가루디움 레비오우사.’
당신의 헤어스타일 말이다. 오늘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니까 용수철처럼 탱글탱글함이 더욱 살아난다. 몇 호로 파마하면 그렇게 나올까?
원슈타인 엄마가 20여 년째 미용 일을 하시는데, 일 시작한 이후 그렇게 작은 롯드로 장시간 말아놓은 적은 처음이라고 한다. 파마한 직후엔 엄마나 나나 너무 놀라서 ‘헉’ 하면서 계속 웃었다.
예쁘고 임팩트 있다. 그런데 파마하기 전에 엄마와 스타일에 대한 합의는 봤나? 봤다면 봤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원래 빡빡 미는 스타일을 좋아해서 심할 때는 스님처럼 하고 다녔다. 미용실을 하는 엄마가 정작 내 머리는 만져볼 수도 없었다. 지난여름에 <Zoo>라는 EP를 냈는데, 그걸 만드는 과정에서 스타일이나 외적인 면에 있어서는 내 생각 접고 엄마를 믿는 게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가 아주 옛날에 입고 쓰던 걸 버리지 않고 내가 받아 와서 입고 어디 나가면, 코디해주는 분들이 이 예쁜 거 어디서 샀냐고 물어본다.
다비드 루이스라는 브라질 축구 선수 헤어스타일이 당신 머리와 꼭 닮았다. 그 선수 아나? 안다. 내가 살던 동네가 거의 시골이라 놀 거리가 없어서 방과 후면 축구를 자주 했다. 음악 말고 다른 일을 했다면 뭘 했을까, 생각해보면 아마 축구 선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오! 잘 뛰었나 보다. 잘해서가 아니다. 요즘 뒤돌아보며 느끼는 건데 내가 서울에 올라와 아르바이트하면서 음악을 해온 원동력은 ‘더 잘하고 싶은 것, 그리고 그 과정이 다른 것보다 상대적으로 덜 힘든 것’에 있다. 그 기준으로 봤을 때 남는 게 음악과 축구다. 축구를 했으면 잘 하진 못해도 종일 지루하지 않게 했을 것 같다.
지금 스물여섯이다. 성인 될 때까지 살았던 청주 내수는 어떤 동네인가? 밤 되면 길가에 고라니가 나타나고, 뒷산 가면 오소리가 있었다. 마을 입구에 가끔 족제비도 지나다녔다. 그런데 군대 다녀오고 나서부터 풍경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산을 깎은 자리에 빌라들이 들어서더니, 롯데리아와 맘스터치도 생겼다!
음악과는 언제 결정적으로 만나버렸나? 결정적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게, 그냥 자연스러웠다. 노래를 듣다가 나도 이렇게 노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나지 않은 어린 시절의 환경이나 어떤 요인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줬을 수도 있다. 아주 어릴 때 나에게 사랑을 준 이모들 덕분일지도 모르고.
케이윌의 노래 MR을 다운받아 거기에 가사를 써본 게 음악을 뚝딱거린 시작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랩’이었나? 내 기억이 맞는다면 중1 올라가는 방학 때였을 거다. ‘나라면 이 반주에 이런 식으로 노래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만들어봤다. 노래도 좋지만 랩을 쓰는 게 더 멋있다고 느꼈다. 일단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으니까. 하고 싶고 쓰고 싶은 말이 많았다.
랩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뭔가? 모든 것. 내 음악의 중요한 특성이 엄마냐고 묻는 이들도 있는데, 최근의 내 기분이나 떠오르는 게 그럴 뿐이다. 나는 지금 마시고 있는 이 토마토 주스에 대해서 음악으로 풀어도 남다르게 표현할 자신이 있다. 뭘 해도,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게 음악 하겠다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의 목표다.
당신이 <쇼미더머니>를 통해 유명해지니까 가족의 반응은 어떤가? 내가 잘되거나 알려져서 좋아한다기보다 행복해 보인다고 좋아한다. 엄마는 <쇼미더머니>가 뭔지 잘 모르신다. 이름도 헷갈려서 자꾸 ‘쇼머니무드’라고 하신다. 얘기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같이 ‘쇼머니무드’라고 말하고 있다.
네티즌과 팬들부터 출연자들까지, 원슈타인을 두고 선한 인상이라고들 한다. 나도 당신이 디스 배틀 같은 거 잘할까 싶어 조마조마했다. 자꾸 바닥을 보거나 상대의 시선을 피하던데 그런 상황이 민망했나? 솔직히 좀 싫었다. 상대와 내가 아는 사이여서 서로가 가진 정보를 공격적으로 까발린 것처럼 썼지만, 그 무대가 있기 전까지 촬영장에서 마주쳤을 때 나눈 대화가 있다면 ‘안녕하세요, 팬입니다’ 정도다. 내 팀원들은 열심히 준비하는데 나는 대충 할 수가 없으니까 내용을 세게 만들어서라도 상대 멘탈을 무너뜨리려고 한 거다. 그런데 막상 래원 님이 하는 걸 보니까…
잘 쳐다보지도 못하던데. 여튼 마음이 약해졌나? 래원님이 스무 살이다. 디스 배틀을 귀엽고 해맑게 준비해오셨더라. 그런 스타일로 나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나오는데 내가 준비한 걸 액션까지 제대로 취하면서 공격했다가는 혹시나 마음 깊은 곳에 상처로 남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원래는 ‘죽여버리겠다’는 각오로 무대 올라갔는데 강하게 못했다. 내가 눈도 잘 못 마주쳤다는 건 나중에 방송 보면서야 알았다.
원슈타인은 랩에 욕설을 섞거나 과격하게 자기 과시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좋은 음악과 신선한 음악을 들려주기 때문에 환호하는 이가 많은 거고. 나도 공격적이고 거친 스타일 좋아한다. 내가 그런 걸 하는 것도 좋고. 다만 그런 음악을 지금 하고 싶지는 않다. 그때그때 내 기분과 상태에 일치하는 음악을 내놓고 싶다. 거칠게 굴어야 할 이유가 없는 대상을 공격하는 건 싫은 일이다.
원슈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좋아한다고 생각하나? 지난여름에 낸 <Zoo>를 만드는 동안 이제 내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이 세상에 200명 정도는 있다고 스스로 측정했다. 일단 내 가사 내용이 친절하지만은 않은데, 그걸 이해하고 나면 내 음악에 진정성이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래퍼로서 ‘엄마’를 언급하는 게 멋이 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멋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멋있어 보이는 말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하고 싶다.
당신의 무대를 본 프로듀서 팔로알토가 ‘원슈타인은 슈퍼스타가 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프로듀서들의 좋은 반응을 듣고 소감을 말할 때도 당신은 울컥해서인지 고개를 숙였다. 들뜨지 않으려고 나를 조절하는 거다. 머릿속으로 가끔 극단적인 가정을 세우곤 한다. 예를 들면 팔로알토 님이 ‘당신은 슈퍼스타가 될 것 같아요’라고 한 다음에 ‘농담이고요’라고 할 수도 있다는 상상.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만약 그런 일이 있을 때도 무안해지지 않으려고, 너무 좋았다가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일부러 스스로를 다운시킨다.
릴 보이가 인스타 라이브에서 ‘원슈타인은 감정의 고저가 크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 너무 좋아서 정신의 고삐가 풀어진 것처럼 흥분했다가 순식간에 무안해지거나 실망이 커서 절망하는 등의 낙차를 겪으면, 감정을 컨트롤하려는 성격으로 변하기도 한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내가 너무 즐기면 망가진다. 너무 슬퍼도 당연히 망가지고. 갑자기 큰일이 닥쳐도 ‘이런 일 생길 수 있지 뭐’ 식으로 넘기는 사람이 돼야 다음 날도 내 것을 챙기고, 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기복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다. 희망도 갖지 말고, 대신 너무 불안해하지도 말고, 그렇게 가운데서만 흘러가는 상태처럼 되려고. 성인이 된 후 어느 순간 ‘더 이상 손해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커져서 작정하고 다른 사람이 된 점도 있다.
아니, 스무 살 남짓의 인생일 때 뭘 그렇게 손해 봤길래. 남과 세상 눈치 보느라 내 것을 못 챙기며 살고 싶지가 않았다. 이전부터 변하고 싶은 마음이나 다짐이 쌓이고 쌓이다가 ‘물러날 곳이 없다, 이제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자’라고 몰아붙인 거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주변에서 당연히 당황한다. 그걸 감수하고서 마음먹고 확 달라졌다.
확 다른 사람이 된 증거로 예를 들면 어떤 일이 있었나? 다이어트에 수십 번 실패하다가 한 달 만에 12킬로그램을 뺀 후 여태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보통 오빠들은 여동생과 자주 싸우면서 크지 사랑한다는 말을 육성으로 뱉지는 못할 텐데, 그런 말을 하고 살아야겠다 싶어서 어느 날 전화를 걸어 ‘사랑해’ 했다.
여동생의 반응은 혹시… “오빠 미쳤어?” 미쳤냐고는 안 하고, ‘어… 왜 이러지?’ 하는 느낌이었다. 무슨 안 좋은 일 생겼느나고 묻더라.
가사들을 보면 ‘착하다’는 소리는 어릴 적부터 들었나 보다. 그런 말 들으면 어떤 기분인가? 좀 부담된다. ‘기믹’이라는 게 있는데, 나의 기믹은 ‘착한 척’인 것 같다. 늘 나이스하게 행동하려고 한다.
‘나 힙합’인데, 왜 착한 척하나? 착한 아이 콤플렉스 있나? 강박 정도는 아니다. 사람을 대할 때 굳이 기분 나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서로 좋은 게 좋지 않을까 해서 그렇다. 스스로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안다. 초등학생 때 친구 가방에서 딱지를 훔친 적이 있다. 어려서 그랬다고 봐주기에는 들키지 않고 훔치기 위해 영리하게 머리 쓰던 나를 생생히 기억한다.
비난에는 무덤덤한 편인가? 요즘 원슈타인을 헐뜯는 악플 같은 건 세상에 없어 보이지만. 치유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나더러 누군가를 따라 하는 거 같다거나 별로라고 하면 나의 지난날을 돌이켜본다. 자이언티 형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음 해외 아무개의 스타일과 비슷하군’, ‘나라면 이 비트에 이렇게 저렇게 더 잘 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방구석에서 9천원짜리 마이크로 녹음하는 처지에. 내가 그랬듯이 시간이 지나 스스로를 부끄럽다고 여길 수 있는 순간부터 사람이 한 단계 성장할 것이다. 그러니까 악플, 혹은 어떤 프레임에 아티스트를 가두고 판단하려는 모든 행동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놔둬도 될 일 같다.
방구석에서 음악 하던 시절에 자이언티의 영향을 좀 받았나? 음악적으로 자이언티와 비슷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내가 그 형의 음악을 워낙 좋아하고 어릴 때는 질투도 좀 했으니까 무슨 수로 영향을 안 받았을까 싶다.
음악을 들으면, 원슈타인 안에 음악적 소스가 힙합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낀다. 직간접적으로 흡수해서 자양분처럼 지니고 있는 해외 음악에는 어떤 종류가 있나? 광범위한데… 우선 칸예 웨스트. 너무 오래 음악해서 더 이상 지금 핫한 뮤지션들 같은 느낌은 못 낼 것 같다가도 막상 앨범을 내면 그때마다 최고다. 그분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면 부모님이 일 당한 것마냥 슬플 거다. 토니 베넷과 브라이언 맥나이트도 즐겨 들었다. 아티스트 자체에 대해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도 이런 장르가 성행하던 시대의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환상을 품었다.
노래하면서 애드립을 넣을 때 보면 당신 보컬에 재즈의 느낌도 배어 있다. 재즈를 아주 좋아한다. 재즈학적으로 아는 건 거의 없고, 그저 재즈 음악에서 영감을 받곤 했다. 고등학생 때 토니 베넷의 노래를 듣고 ‘와 이 좋은 걸 제대로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니,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상태에서 감상하면 환상적일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학교를 땡땡이치고 자전거로 그냥 발길 가는 대로 가면서 음악을 들었다. 그분의 노래를 쭉 듣고 있으면 아주 값비싼 걸 향유하는 기분이다.
그렇게 살던 당신에게 손 내민 게 마미손인데. 원슈타인에게 마미손이란? 상장(웃음).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유명 아티스트가 내 음악을 듣고 나를 찾아줬다는, 설명하기 편한 증빙이 생긴 기분이었다. 가족에게도 내 음악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내가 이 정도는 되나 봐’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게 편했다. 앞으로 그런 상장을 늘려가고 싶다. 말하고 보니 상장이란 한마디로 ‘인정’이네.
일단 팔로알토 역시 당신을 인정하면서 황홀한 말 들려줬다. 그의 예언처럼, 자신이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고 믿나? 음… 그건 모르겠지만 이런 믿음은 있다. 무대 위에서도 평소의 나와 다름없이 임하는 수준이 되면, 슈퍼스타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대개 그게 어려우니까 스타가 나오기도 힘든 것 같다.
무대 위와 아래에서의 면이 같을 정도로 여유 있게 즐기는 수준을 말하는가? 그렇다. 나는 방송 보면서 ‘엇 내가 저때 저런 춤을 대체 어떻게 췄지?’ 싶고 기억이 잘 안 났다. ‘윙가루디움 레비오우사’라고 뱉을 때까지는 너무 재밌었는데 그다음 구절에서는 정신이 좀 나갔다가, 내가 좋아하는 구절을 부르면 다시 제정신 돌아오는 식으로 왔다 갔다 하고(웃음). 방에서 혼자 노래 부를 땐 정말 즐기면서 한단 말이다. 그 느낌을 무대 통째로 고스란히 성공시킨 적이 없다.
<쇼미더머니>의 여운이 남아 있을 때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 있나? 뭔가 작업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앨범이 될 확률은 낮다. 이젠 믹스테이프든, EP든, 정규든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뭘 발표해도 그 퀄리티가 일정하게 늘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시기에어서 뭘 내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듣는데,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겠다.
그러다 시간이 너무 흐르면 어떡하지? 소위 말하는 ‘〈쇼미더머니> 발’ 없이는 일이 잘 안 풀리고 음악 생활을 더 영위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게 내 수준인 것 아닐까? ‘<쇼미더머니>가 없었으면 어차피 난 이렇게 될 운명이었구나’ 생각할 수 있을 거다.
아직까지는 멀리 있는 궁극의 목표나 꿈이 있나?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거야 당연하고. 그 외에는 사람들이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이상적인 세상을 꿈꿔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행복을 느끼고 여유가 있어야 딥하고 새로운 음악도 찾아 듣는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아티스트 세대가 돈을 벌고 커가려면, 세상 사람들이 행복한 상태여야 한다.
이번에 가까워진 릴 보이와 여전히 서로 존댓말 쓴다고 들었다. 두 사람 비슷한 면도 있어 보이는데, 앞으로 더 친해져도 존댓말 유지하는 거 어떤가? 힙합신의 정우성과 이정재 느낌을 목표로… 릴 보이 형! 내가 초중고 통틀어서 현재까지 가까운 친구라고는 초등학교 때 처음 친해진 아이들뿐이다. 새로운 사람을 사귈 때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언제부터 어떻게 말을 놓는지 그런 걸 잘 모른다. 존댓말 쓰면서도 나는 친하다고 느끼는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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