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에 태어난 10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1990년대 패션.
아름다운 것, 흥미로운 것, 기괴한 것이 이미 지천에 널려있고, 하루에도 수 많은 새로움이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콸콸 쏟아지는 시절 속에서 ‘양준일’이라는 사람에 열렬하게 열광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태세는 상당히 희한한 현상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대체로 양준일의 음악이나 생김새보다는 패션 스타일이나 그것을 소화하는 방식에 폭발적으로 열광한다. 가령 오버 사이즈 코트의 어깨를 신경질적으로 확 젖혀 바닥에 질질 끌리게 입거나, 단정한 수트 위에 화려한 주황색 머플러를 귀찮다는 듯 대충 둘둘 둘러매는 것과 같은 양준일만의 스타일링 방식에 말이다.
이런 흐름은 90년대 상상치 못했던 인기를 얻었던 ‘292513=STORM’의 광고 캠페인을 다시 화두에 오르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몸에 꼭 붙는 티셔츠, 허리 아래 길게 내려 입은 헐렁한 바지, <매트릭스> 속 네오가 썼던 작고 날렵한 선글라스. 그 시절의 292513=STORM 광고를 가득 채웠던 90년대적 차림은, 기묘하게도 요즘 가장 동시대적이라 불리는 GmbH나 마틴 로즈, 루도빅 드 세인트 세르닌과 같은 브랜드에서 선보이는 차림과 쏙 닮아있다.
그러고 보니 미치도록 90년대에 열광하는 이 현상이 비단 서울의 것만이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패션은 몇 년 째 90년대 문화에 영감을 받고 있고, 이는 버질 아블로나 매튜 윌리엄스, 헤론 프레스톤과 같이 그 시절의 힙합 문화를 기반으로 한 디자이너들을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해는 조금 다른 태세다. 미시 엘리엇이나 버스타 라임즈처럼 미래 지향적인 퓨처리즘 스타일을 지향하던 음악가들의 스타일이 새로운 계절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런 90년대로의 회귀는 ‘90s’라는 단어를 이름 앞에 붙인 수 많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위노나 라이더나 리버 피닉스, 기네스 펠트로, 케이트 모스처럼 90년대 인기 좋던 스타들의 모습이 그 속에 가득하다. 무엇보다 그들에게서는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던 어떤 당찬 기백이 느껴진다. 작은 것에도 쉽게 주눅들게 되는 요즘과는 달리,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입고 다니는 모습에서 일종의 해방감이 느껴진다. 90년대 특유의 자유분방함, 이것이 동시대 젊은이들이 90년대에 미치도록 열광하는 이유이자 가치일 테다.
- 프리랜스 에디터
- 김선영
- 사진
- James Cochrane, Instagram @yangjoonil, @soobaak_vintage, @90sanxiety, @90s.daily, @90scelebvibes, @90s.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