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남자 스타 사용 설명서
당신이 ‘대한민국 남자 톱 배우’라고 할 때 떠올리는 인물은 누구인가? 20세기에 데뷔한 배우는 아닌가? 여기, 세대 교체의 주역인 청춘 배우 여섯 명의 미덕과 탁월한 사용법을 조목조목 분석해봤다.
1. 정해인
바른 청년 이미지를 활용하라 정석대로 가도 좋고, 반전을 줘도 좋다. 정해인의 강점은 성이 바를 ‘정’자인가 싶을 만큼 단정하고 말쑥한 인상이다. 김수현 작가가 SBS <그래, 그런거야>에서 이 시대 청춘의 얼굴로 그를 택한 이유. 그에겐 아무리 좌충우돌해도 결국 자신의 해답을 찾을 것 같은 신뢰감이 있다. SBS〈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경찰 우탁은 이 느낌을 더 잘 살렸고, 마침내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국민 연하남 탄생으로 이어졌다. ‘국민’이라는 수식어는 아무에게나 붙지 않는다. 역으로 가서 대박 난 사례도 있다. tvN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악마 유대위는 정석적 활용과 반전의 이중 플레이로 열광을 얻어냈다.
제복을 입힐 것, 맞춤 슈트면 더할 나위 없고 선 고운 얼굴에 탄탄한 근육을 지닌 정해인의 진가는 딱 맞는 제복 차림에서 가장 빛난다. 성칠(박근형)의 아역으로 등장한 영화 <장수상회>에서 단 3분 출연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힘이 뭐겠는가. 소년 같은 미소와 빚어낸 듯한 가쿠란 복장이다. tvN <도깨비>에서 은탁(김고은)의 첫사랑 ‘태희 오빠’(정해인)에게 야구복을 입힌 김은숙 작가의 심미안에도 찬사를.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환상적인 경찰 제복은 또 어떻고. 심지어는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죄수복 마저 맞춤옷처럼 똑 떨어졌다. 이제 슈트발을 마음껏 뽐낼 차기작을 기다려보자. 요즘 전성시대를 맞이한 법조물 같은 전문직 드라마를 추천한다.
‘꿀성대’에 주목하라 정해인도 꿀성대과에 속한다. 맑고 깨끗한 발성과 똑 부러지는 딕션이 만들어낸 매력. 듣기 좋은 목소리가 특유의 담백한 연기와 어우러져 딱딱한 문어체 대사도 유려하게 전달된다. 필모그래피에 사극이 네 편이나 되고, 현대극에서도 유독 경찰이나 군인 역할이 많은데도 연기가 편안하다. 차기작을 고려할 때 꿀성대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대본을 눈여겨볼 것. 마침 다음 작품이 정지우 감독의 영화 <음악앨범>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사연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쌓아가는 남녀의 이야기. 그의 말간 얼굴에 뺏긴 시선을 잠시 거두고 이제 달콤한 목소리를 감상할차례다.
무해한 이미지를 절대 유해하게 쓰지 말 것 누구나 동의하는 정해인의 최대 강점은 무해한 이미지. 자칫 무색무취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요즘엔 좀 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무해한 남성이란, 유해한 것들로 넘쳐나는 지금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남성상이다. 고로 연기 변신은 필요하되, 일부러 이미지를 배반할 필요는 없다. 마초적인 캐릭터나 악역을 맡더라도 혐오를 유발하는 내용은 알아서 걸러야 한다. 무해함은 단순히 개인적 강점을 넘어선 시대적 경쟁력임을 기억해야 더 오래갈 수 있다.
글 – 김선영(칼럼니스트)
2. 서강준
‘만찢남’이 필요하면 캐스팅하라 하얀 피부, 오뚝한 콧날, 날렵한 턱선, 작은 얼굴, 180cm정도의 훤칠한 키…. 이 모든 요소를 갖춘 서강준은 그야말로 만찢남이다. 다른 남자 배우에게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연갈색 눈동자로 신비한 매력까지 발산한다. 2013년 웹드라마 〈방과 후 복불복〉과 2016년 tvN 〈치즈인더트랩>은 각각 드라마툰과 웹툰이라는 원작 속 잘생김도 장착해야 했으니, 서강준에게 딱 맞는 캐릭터였다.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 KBS 〈당신의 하우스 헬퍼〉, JTBC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등 웹툰 원작 드라마가 활개를 치는 요즘, 만찢남 서강준은 드라마 캐스팅 순위가 매우 높다.
1인 4역도 가능하다 최근 종영한 KBS 〈너도 인간이니?〉를 통해 서강준은 데뷔 이래 가장 큰 임팩트를 남겼다. 이 드라마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인공지능 로봇을 통
해 진정한 사랑과 인간다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AI 휴먼 로맨스물’이었다. 서강준은 차갑고 냉소적인 캐릭터의 인간, 바르고 따뜻한 캐릭터의 로봇 1인 2역을 하며 두 얼굴을 자유자재로 오갔다. 여기에 스토리상 인간인 척하는 로봇, 로봇인 척하는 인간으로 분하는 장면까지 있었으니, 다 합치면 사실상 1인 4역을 소화해낸 셈.
OST 작업도 문제없다 지난 8월 7일 〈너도 인간이니?〉 종영일에 이 드라마의 마지막 OST인 ‘You Are My Love’가 공개됐다. 서강준이 부른 서정적인 멜로디의 발라드 곡이다. 그 이전 〈방과 후 복불복〉과 <치즈인더트랩〉OST 작업도 해냈다. 자꾸 잊지만, 그는 공명, 이태환, 유일, 강태오와 함께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로 활동하면서 일본에서 싱글 앨범을 두개나 낸 ‘가수’이기도 하다. 그러니 드라마나 영화에 서강준을 캐스팅했다면 그에게 OST 작업까지 맡겨봐도 좋다.
어린 역할에 적극 활용해라 MBC <화정〉에서 홍주원(서강준) 역을 맡아 수염을 붙이고 40대 연기까지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연기력 논란이 있었다. 3년도 더 된 얘기다. 지금의 서강준은 꽤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소화할 수 있다. 물론 20대인 서강준이 맡으면 더 빛을 발할 캐릭터의 나이는 40대가 아니라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이다. 서강준 본인도 가장 관심있는 역할은 지금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밝혔으니 그에게 어린 역할, 청춘에 맞는 역할을 맡기면 잘할 것이다. 그는 1993년생이다. 사극에서 수염 분장을 한 때는 겨우 스물셋이었다.
글 – 이응경(프리랜스 에디터)
3. 최우식
꼭 있을 것 같은데 없는 단정한 소년 MBC <짝패>의 귀동 역할로 그를 처음 봤을 때 <혼불〉의 한 줄이 생각났다. ‘꽃잎 같은 도련님.’ 귀하게 자라서 세상으로 나가면 금세 상처를 받을 것만 같은 단정한 얼굴. 아몬드 모양의 눈이, 웃을 때 살짝 드러나는 송곳니 같은 것이 무척 귀여웠다. 장난끼는 많아도 거들먹거리지 않고, 좋아해서 자주 입은 낡은 티셔츠를 잘 빨아서 입을 것 같은, 주변에 있을 것 같은데 절대 없는 이미지가 그를 다른 배우와 구별되도록 하는 점이다. 본인 스스로 평범하다고 말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다들 알 것이다. 정말로 주변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쩌면 있을 것도 같은데, 최우식 같은 친구는 주변에 절대 없다. 절대.
소년이 자라면 무엇이 되나 최우식은 이미 소년이 아니지만, 그의 소년 연기는 정말 좋았다. <거인>의 영재나 <부산행>의 영국은 현실이 두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려고 애쓰는 소년이다. 모두가 사랑하게 만드는 소년을 그는 용케 보여주었다. 이건 아주 소중한 자산이다. 소년에게 우리는 항상 모종의 기대감을 품는다. 달라질 거라고, 자랄 거라고, 나아갈 거라고. 어떤 배우는 성장을 멈추고 싶으면 원숙해졌다거나 남자가 됐다거나 하면서, 소년을 버린다. 그가 소년을 일부러 버리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나 더는 소년 연기를 하지 않더라도, 계속 자라나는 소년을 지닌 제대로 된 어른 최우식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가졌으면 좋겠다.
사람이 아니어도 좋겠다 최근 영화 <마녀>에서 최우식은 우아한 동시에, 가엽고 무서운 귀공자였다. 어수룩하지만 귀여운 남자친구 연기도 되면서, 이런 가망 없이 저주받은 남자 연기도 되는가! 된다! 게다가 사극도 영어도 되는 그이니만큼, 시대를 초월해서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계인, 도깨비, 흡혈귀, 구미호, 인공지능 등등 그는 무엇이든 될 것 같다. 심지어 귀신 연기도 잘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정형화된 이 존재에 대한 관념에 의표를 찌르고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더불어 몸을 활용하는 장면을 많이 찍었으면 좋겠다. <마녀>에서 귀공자의 나른하면서도 날렵한 액션이 좋았다. 몸을 잘 쓰는 배우를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이어도 좋겠다 최우식의 악역도 기대된다. 물론 한국형 사이코패스의 정형화된 모습을 그에게까지 요구할 필요는 없겠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악한을 보고 싶다. 자신이 왜 나쁜지 모르는 평범한 악인, 해사한 얼굴로 별 의도 없이 나쁜 선택을 하는 이. 그래서 불행해지는데 본인이 불행한 줄도 모르는 이. 더 나아가서 최우식은 고요한 분노나 슬픔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면서, 세상이 멸망해도 혼자 평화로운 이조차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에겐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나쁜 자를 연기할 줄 아 는 배우가 더 필요하다. 그들은 악함보다 더 복잡하고 어렵기 그지없는 선함도 연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우식은 앞으로, 우리가 미처 정의 내리지 못한 인간의 인간성을 보여 줄 수 있으리라.
글 – 김복희(시인)
4. 박정민
양아치, 믿고 맡겨라 ‘품행이 천박하고 못된 짓을 일삼는’ 양아치에도 스타일이 있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외양부터 콘셉추얼한 부류가 있는가 하면, 동네 골목 어귀를 돌면 만날 수 있을 법한 일상적인 부류가 있을 테다. 박정민은 후자다. 이는 위협적인 깡패와 달리 백수나 잉여 캐릭터 쪽과 더 교집합이 있다. tvN <일리 있는 사랑>에서 주인공 엄태웅의 동생이자 이시영의 시동생으로 나와 사돈 처녀에게 툭툭대던 그가 그랬고, 최근 영화 <변산>의 주인공도 박정민의 분석에 따르면 ‘사실, 양아치’다. 얼마 전 <더블유>와의 인터뷰에서 박정민이 밝힌 생활형 양아치 연기의 비결은 ‘지질하게 살았던 남자들은 소위 양아치에 대한 동경이 있기 때문에, 어릴 적 괜히 센 친구들을 따라 해보거나 허세도 부려본 기억을 참조한다’는 것. 이준익 감독은 자연인 박정민을 지적인 양아치라고 추켜세운다. 박정민은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직후 자퇴하고, 한예종에 입학했다. 뚝심과 ‘곤조’ 사이에 있을 무엇을 품으며 결국 성인이 되자마자 자기 바람을 관철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주>에서의 그를 기억하라 그는 연기 모범생 스타일이다. 같이 작업한 이준익 감독과 배우 이병헌의 말을 종합해보면 그냥 모범생이 아니라 연구생에 가까운 듯하다. 역할을 세심하게 분석하며 고민하는 건 밥을 오래도록 꼭꼭 씹어 먹는 것과 비슷하다. 즉, 소화력이 좋다. <동주>에서 식물성 인간 윤동주와 달리 동물적 기질의 행동하는 인간인 송몽규를 박정민은 절제된 연기로 표현한다. 일관된 저음의 북간도 사투리, 차분하고도 단호한 연기를 보여준 그는 타협하지 않으며 당찬 청년 독립운동가였다. 과하지 않고 누르는 연기를 택한 그의 결정에 박수를.
그의 자유로움을 활용하라 올초 개봉한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도전한 역은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피아노 천재 진태다. 같이 출연한 이병헌의 말대로,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평생 피아노를 친 적 없는 그는 캐스팅이 확정되자마자 레슨을 받았고, CG의 미세한 부자연스러움을 우려해 직접 연주를 해냈으며, 무엇보다 자폐증을 앓는 인물을 귀엽고 호감 가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도전 정신을 갖추는 건 물론 정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역할을 소화하는 젊은 배우는 많지 않다. <말아톤>에서 자폐아 초원이를 완성한 조승우 이후, 어느 청춘 배우가 진태 역에 도전할 수 있었을까? 언론이 박정민에게 자꾸 ‘리틀 송강호’라는 수식을 부여하는 이유는 오로지 연기만으로 거인이 돼가는 중이기 때문일 터. 하반기 개봉을 앞둔 작품은 이정재가 목사로 출연하는 <사바하>다. 박정민은 사이비 교주로 등장한다. 현재는 살을 불리고 <타짜 3>을 촬영하는 중이다. 짝귀(주진모)의 아들 설정이라고. 벌써 등골이 서늘하다
글도 잘 쓴다는 사실을 주목할 것 이제훈과 함께 출연한 영화 <파수꾼> 개봉 당시, 영화 마케터가 박정민의 싸이월드를 보고선 영화 블로그에 비하인드 스토리를 일기 형식으로 연재하자고 권유했다. 필력이 점점 소문나면서, 그는 한 공연 전문지에 3년 동안 기고를 했다. 그 칼럼을 모아 책으로 낸 게 산문집 <쓸만한 인간>이다. 촬영장 이야기 외에 생활하며 연기하며 그가 느끼고 통찰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시콜콜하고 과장과 허풍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문장이 술술 읽힌다. 대종상 신인상 후보에 오른 후 수상이 유력한 김수현에게 능숙하게 박수를 쳐주려고 사흘 밤낮 박수 치는 연습을 했다는 에피소드(그날 밤 생애 가장 현란한 박수를 쳤다고), 한예종 면접 당시 이창동, 김성수 감독 등과의 대화를 한 편의 콩트처럼 기술한 센스로 보건대 그는 훗날 직접 시나리오를 쓸지도 모른다. 원래 초기에는 연출을 지망하기도 했다. 배우가 연기 잘하고, 필력 되고, 연출에도 관심 가져봤다는 건 많은 가능성을 시사한다. ‘영화인’으로서 그의 외연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궁금한 대목이다.
글- 권은경(<더블유> 피처 에디터)
5. 양세종
사려 깊은 청년 베이스에 영리한 소년 분위기를 토핑해라 시청률 29%를 달성한 히트 드라마, SBS <낭만닥터 김사부> 당시만 해도 똘똘한 남자 조연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양세종을 주목하게 된 건 SBS <사임당: 빛의 일기>쪽. 드라마 자체는 성공작으로 꼽히진 않지만, 여기서 그가 해낸 1인 2역은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성형 두 명이었다. 첫눈에 반한 여자를 위해 평생을 바친 직진남(의 아역), 똑똑하고 정의로운 미술 사학도로 위기에 빠진 선배를 곁에서 늘 지켜주는 연하남. 곧이어 쉴 틈 없이 1인 3역의 OCN 〈듀얼>을 지나 안착한 SBS <사랑의 온도>에서 자신에게 잘 맞는 따뜻한 남자를 연기하면서 단연 차세대 기대주로 떠오른다.
일상의 대형견미를 탈착하라 톱스타의 길은 하늘이 내준다고 해도, 그 직전까지 이르는 남자 배우에게는 일정한 공통점이 있다. 남을 안아줄 만큼 너른 어깨와 커다란 덩치면서도 되레 자기가 안겨 올 것 같은 외모가 그것. 강아지를 이길 사람 없다고, ‘멍뭉미’가 강조될 때 대중의 호감도 증폭한다. 서늘한 얼굴이지만,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서 쌍꺼풀 없는 눈을 축 늘어뜨리고 눈물 글썽글썽할 때는 세상 가엾게 귀엽다.
울리되 오열은 시키지 말자 그는 남자 배우로서 청순하게 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다. 우는 연기에서 시청자의 감정선을 건드린다는 평. 하지만 너무 울면 연약한 이미지가 박힐 수도 있으니 조심할 필요 있다.
뷔페식 연기 가능, 일단 정통 코스를 공략하자 대중의 눈에 띈 지는 얼마 안 됐지만, 그간 닥치는 대로 연기했다. 심지어 한 작품에서 두세 가지 연기를 동시에 했으므로 짧은 시간 안에 최대 경험치 달성. 그 결과 멜로부터 액션까지, 다정부터 냉정까지, 스펙트럼의 극과 극을 달리고 모든 역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해낸다. K-드라마에 늘 있는 전문직 변호사 판검사는 물론, 형사도 가능하다. 영리한 동시에 액션도 할 수 있는 배우라는 느낌. 톱스타 직행 열차, 드라마에 흔하고 세상엔 하나 없는 완벽한 실장님 역할도 언젠가 거쳐 갈 듯하다. 사극에도 튀지 않는 외모인 만큼 정통이건 퓨전 로맨스이건 사극도 모색할 만하다.
코믹은 필수, 그러나 얼굴을 막 쓰진 말자 그러나 멋있는 역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코믹 연기 없이 치명적인 척만 하는 실장님은 흑역사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또, 남배우의 덫인 사극 장발을 이길 생각은 하지 말자. 장발은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1회에 보여준 존 스노우 스타일로 이미 허용치를 넘었다. 움짤을 양산할 수 있으니 섬세하게 배역을 선정해야 한다.
어린 말투에 주의, 원톱 파워를 보일 때 저음의 목소리는 음질 자체는 좋지만, 말투와 억양이 어리게 들릴 때도 있다. 대사 자체가 강하다면 말투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상적 연기 톤에서는 학원 가기 싫은 고등학생의 투정처럼 들릴 수도 있다. 또 이제까지는 서현진, 신혜선 등 고군분투하는 여자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이었다. 단독으로 극을 끌어갈 수 있는 파워가 있는지 입증해야 한다.
글- 박현주(번역가)
6. 박서준
그에게 ‘영화배우’라는 수식어를 더 많이 허하라 ‘차세대 스타 배우’를 묻는 질문에 ‘박서준’이라고 답했더니 모두가 의아해했다. 그는 이미 ‘톱’이 아니냐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겠다. 박서준은 브라운관의 명실상부한 스타일지 몰라도 영화계에서는 앞날이 기대되는 유망주 정도다. <악의 연대기>의 막내 형사 차동재, <뷰티 인사이드>의 수많은 우진 중 하나로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 뒤 <청년경찰>의 어수룩한 경찰대생 역할로 비로소 영화인의 눈길을 끌었다고 할까? 그를 바라보는 방송계와 영화계의 상당한 온도 차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40대 이상의 남자 배우들이 평정한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는 20, 30대 남자 배우가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다. 여배우들과 특히 좋은 케미스트리를 선보인 박서준의 매력도 테스토스테론이 들끓는 충무로에서 충분히 발굴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타이틀롤을 맡은 영화 <청년경찰>의 성공은 청년 배우 박서준의 건강한 에너지가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음을 입증했다. 다소 정체된 느낌인 최근의 충무로에 건강한 긴장감을 선사할 30대 청춘 배우로서의 역할을 박서준이 해낸다면 어떨까?
‘로코 불도저’라는 수식어는 그만 배우 박서준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다. 드라마 tvN <마녀의 연애>의 바람직한 연하남 윤동하부터 그에게 ‘로코 불도저’란 수식어를 안겨준 KBS <쌈, 마이웨이>의 고동만, 그를 한류 스타로 등극하게 한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이영준까지, 박서준은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연인의 모습에 최적화된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그는 하나의 뚜렷한 이미지로만 기억되길 원하지 않는다. 코믹 현대물 MBC <그녀는 예뻤다> 이후 사극인 KBS <화랑>을 선택하고, 로코 드라마 <마녀의 연애>를 찍으며 <청년경찰>의 출연을 병행하는 등 생각보다 꽤 치열하게 새로움을 추구해왔다. 그러니 ‘로코 불도저’라는 수식어에 그를 가두지 말 것. 봉인되지 않은 그는 더 흥미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찰나의 서늘함을 포착하라 밝고 건강한 이미지로 잘 알려진 박서준이지만, 그런 그에게서 엿볼 수 있는 막간의 서늘함이 있다. 자신의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을 먼저 직시한다는 엄격함, 오직 집에서만 드러낸다고 스스로 고백한 바 있는 내성적인 모습, 이러한 박서준의 ‘그늘’을 영리하게 활용할 연출자가 어디 없을까? 박서준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라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를 통해 새로운 페르소나를 얻었듯, 예술적 자극을 줄 수 있는 파트너가 나타난다면 박서준 역시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글- 장영엽(<씨네21 > 취재팀장)
- 에디터
- 권은경
- 아트워크
- 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