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런던, 밀란, 파리까지 이어지는 성대한 패션위크에서 본 더블유 에디터들의 생생한 다이어리. 2018 F/W 컬렉션 프런트로에서 포착한 패셔너블한 순간과 도시별 핫 스폿까지 모두 담았다.
MILAN 2018.02.21 ~ 02.25
드론의 오프닝
시작이 1시간 가까이 지체되는 와중에도 쇼장을 가득 메운 건 와이파이를 꺼달라는 3개 국어 안내 방송이었다. 쇼가 시작되고 나서야 그 이유가 밝혀졌는데, 다름 아닌 뉴 백을 매단 드론 군단의 등장. 가운을 입은 기술자의 지휘에 따라 런웨이로 미끄러지듯 입장하는 드론에 프레스들의 갈채가 쏟아졌다.
구찌판 특수 분장실
자신의 머릿속은 마치 수술방과 같다며 크리에이티브한 행동을 의사의 수술에 빗댄 미켈레는 모델이 자신의 얼굴과 똑같은 머리통을 들게 하거나, 이마에 눈을 붙이는 등 기괴한 상상력을 펼쳤다. 이는 6개월 전 할리우드 기술팀이 컴퓨터 3D로 모델의 얼굴을 스캔해 사전 제작한 것이라고.
프라다 왕국의 네온사인
밤 8시 건물 5층에서 열어 궁금증을 자아낸 프라다 쇼. 이유는 폰다치오네 프라다 건물 중 새로 완공된 ‘Torre’에서 볼 수 있는 야경을 배경으로 쇼를 펼치기 위함이었다. 컬렉션의 메인 컬러 형광색이 통유리에 반사된 풍경은 미래적이었고, OMA 그룹이 디자인한 네온사인과 어우러져 프라다 왕국의 굳건한 힘을 보여주는 듯했다.
재활용과 패션의 공생
마르니는 버려진 섬유, 낡은 양탄자, 모래주머니, 폐타이어 위에 관객을 앉게 했다. 정돈되지 않은 디테일의 더플코트, 헝겊을 이은 듯한 니트, 담요 뭉치 등 세련된 스타일로 섞은 재활용 소재의 룩을 보면서 프란체스코 리소가 말하고자 한 바를 눈치챘다. 혁신과 기술에 대한 인류의 거부할 수 없는 사랑과 인간의 낭비벽 사이의 갈등. 과연 우리는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오, 라라 스톤!
현존하는 슈퍼모델 중 단연 최고인 라라 스톤이 밀란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단 한 번, 막스마라 쇼였다. 익스클루시브 모델로 오프닝에 선 그녀의 카리스마는 상상 그 이상. 공전의 히트를 친 테디베어 코트의 새로운 레오퍼드 버전을 입은 그녀의 강렬한 워킹은 진한 여운을 남겼다.
즉석 만남
쇼장 앞에서 패션 피플을 일러스트로 그려주는 퍼포먼스로 유명한 임수와(@suwa_)와 구찌 쇼장 앞에서 마주쳤다. 구찌 남성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이혜주 편집장을 즉석에서 그려주겠다는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 그렇게 탄생한 일러스트와 함께 인증샷을 남긴 순간.
영화의 한 장면
죽음의 스케줄 와중에도 굳이 짬을 내서 찾아간 곳은 밀란의 핫한 브랜드 아티코의 프레젠테이션. 구석진 아파트 빌딩의 좁은 복도로 들어서자 어딘가 불량한데 매력이 넘쳐흐르는 소녀들과 눈이 마주쳤다. 파티에서 지루함을 느끼고 탈출을 꿈꾸는 듯, 밀란에서 목격한 가장 예쁘고 영화 같았던 순간.
팬이에요
드넓은 쇼장을 꽉 메운 관중 사이로 디자이너 8명의 방을 재빨리 훑어야 했던 몽클레르의 쇼. 가장 먼저 팬심 가득했던 디자이너 크레이그 그린의 방을 들어간 순간, 거대한 무빙 폼을 만든 주인공 크레이그 그린을 실제로 목격했다. 이게 생시인가, 흥분된 마음으로 인증샷 찰칵.
힙 플레이스
밀란에 고전적인 르네상스의 유산만 있는 것은 아니다. 4대 패션 도시답게 지금 가장 유행인 스트리트 웨어를 만날 수 있는 남성 편집숍 슬램 잼(Slam Jam)은 힙스터를 위한 감도 넘치는 셀렉션을 선보인다. 한국 브랜드 아더에러가 바잉되어 있어 놀랐다!
짜릿한 레이싱 경기
거대한 돔을 레이싱 경기장으로 변신시킨 타미 힐피거는 커다란 스크린에 쏜 현란한 영상과 음악 등 압도적인 스케일로 시선을 장악했다. 지지, 벨라, 앤워 하디드 삼남매가 총출동했고, 지지 하디드의 피날레 워킹이 빛을 발했다.
PARIS 2018.02.26 ~ 03.06
미우미우의 레터 플레이
미우미우는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인 ‘M/M Paris’와 협업한 레터를 쇼 직전 공개했다. 이윽고 쇼장엔 마치 패션 가문의 휘장처럼 보이는 알파벳들이 허공을 가득 메우는 장관이 펼쳐졌다.
트러플의 풍미
마들렌 광장 근처에 위치한 유서 깊은 트러플 전문 레스토랑인 ‘La Maison de la Truffe’. 식전빵에 트러플 오일을 찍거나 트러플 버터를 발라 먹는 것은 기본. 진한 트러플 향기가 코와 혀끝을 유혹하는 관자, 계란, 리소토, 푸아그라를 맛보았다. 오직 트러플에의한 황홀한 순간!
환경을 위하는 스텔라
스텔라 매카트니의 인비테이션은 늘 기대감을 안겨준다. 이번에 그녀가 선택한 건 다름 아닌 업사이클 양말! 다음 세대를 위해 물과 화학적 염색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더했다. 환경 보호에 대한 메시지를 꾸준히 설파해온 그녀다운 뜻깊은 선물에 감사를.
지금은 지방시 타임
비 내리는 아침, 본질에 다가선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글램한 지방시 쇼를 보고 나서는 길. 올 블랙 룩의 지방시 가이가 나눠준 마들렌과 커피 한 잔은 잠시 파리의 정취에 취할 여유를 안겨줬다. 그날 밤, 한 호텔에서 열린 지방시 애프터 파티에선 으스스한 퍼포먼스가 펼쳐져 오싹한 즐거움을 안겨주기도.
꼼데가르송의 아트
레이 가와쿠보의 꼼데가르송 컬렉션을 두고 옷인가 예술인가를 논하자면 끝이 없다. 중요한 건 옷의 끊임없는 해체와 조합을 보여주는 노장의 결과물에 까칠한 해외 프레스들도 박수 세례를 보낸다는 점. 파리를 접수한 일본 디자이너들의 영리한 고집에 살짝 질투도 났지만 나 역시 감탄할 수밖에.
쿠튀리에, 알라이아
파리에 가기 전부터 고대한 아제딘 알라이아 회고전. 알라이아와 깊은 우정을 나눈 큐레이터 올리비에 사이야르가 고른 41벌의 의상이 전시된 공간에서 진정한 쿠튀리에의 작품을 마주했다. 또 큐레이터에게 직접 듣는 알라이아와의 옛 추억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전했다.
매퀸의 쿠튀르 터치
쇼를 마친 다음 날, 알렉산더 매퀸의 프레젠테이션 현장. 나비에서 영감을 받은 드라마틱한 실루엣과 정교한 손맛까지… 여자로 태어나 한 번쯤 경험하고픈 궁극의 아름다움에 할 말을 잃었다.
언더커버의 스피릿
미드 <기묘한 이야기2>로 인기를 얻고 있는 새디가 오프닝을 장식한 언더커버 쇼. 스케이터 룩에서 영감을 받아 청량한 청춘의 기운이 느껴지는 쇼엔 의미 있는 메시지도 등장했다. 바로 아우터와 부츠에 두루 적힌 ‘We are Infinite’. 이 의미심장한 문구 덕에 벅찬 희망의 감정까지 느낄 수 있었던 쇼.
웨스트우드의 파격
품격 따위는 무시하겠다는 듯 늘 놀라움을 안겨주는 펑크의 여왕, 비비안 웨스트우드 여사. 인비테이션에 주름이 선명한 자신의 얼굴을 보란 듯이 프린트해 보내더니 쇼장에선 런던에서 모셔온 댄서들이 파격 댄스를 추며 시선을 압도했다. 그래서 더욱 멋진 웨스트우드의 위풍당당 컬렉션!
루부탱의 집
크리스찬 루부탱의 프레젠테이션에서 눈길을 끈 건 인형의 집을 연상시킨 디스플레이. 응접실과 침실, 부엌에 이르기까지, 정교한 소품과 어우러져 위트 있게 자존감을 드러낸 슈즈들이 눈길을 끌었다.
매혹적인 샤넬 레이디
가을 숲이 된 그랑팔레에서 만난 매력 넘치는 샤넬의 여인들. 서른한 번의 쇼를 서고 이젠 프런트로에서 당당히 샤넬의 뮤즈로 자리한 수주, 반갑게 조우한 샤넬 앰배서더 박신혜와 아이린, 쇼에 서는 동시에 룩북의 주인공으로도 샤넬 하우스에 입성한 정호연까지… 코리안 우먼 파워가 눈부시게 빛난 순간이었다.
Welcome to Paris
지난 시즌에 이어 또 한 번 파리 컬렉션 당첨. 떠나기 전엔 바빠 죽겠다며, 피곤하다며 세상만사 귀찮아하지만, 호텔에 도착해 날 반기는 정성스러운 인비테이션을 볼 때면 여전히 설레고 긴장되곤 한다. 이번 시즌도 무사히!
여성시대
파리의 첫 번째 빅 쇼 디올의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1960년대의 혁신적인 여성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당시 패션 매거진과 여성들의 이미지, 슬로건 등으로 콜라주한 쇼장의 벽과 바닥은 여전히 여성의 진정한 자유를 외치고 있었다.
눈 덮인 파리
따뜻할 거라 생각한 파리는 러시아발 매서운 바람으로 날 맞았다. 둘째 날에는 급기야 눈까지 내리는데… 얇은 재킷 차림에 하염없이 흐르는 콧물을 훔쳐야 했지만, 그래도 눈 내리는 파리는 아름다웠다.
완벽한 하모니
파코라반 쇼에선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에 맞춰 아주 특별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었다. 바로 옷의 부딪침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소리들. 줄리앙 도세나의 지휘 아래 쇠, 아크릴 등 미래적인 소재들이 모델의 걸음에 맞춰 연주하는, 완벽한 하모니가 울려 퍼졌다.
샹들리에 너는 LOVE
언젠가는 집에 크고 멋진 샹들리에를 놓는 로망을 가지고 있다. 파리에 가면 애정하는 샹들리에를 원 없이 구경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 드리스 반 노튼과 발맹, 니나리치의 쇼에서 만난 환상적인 샹들리에들.
‘세젤맛’ 핫도그
파리 마레 지구에 엄청난 핫도그 가게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슈프림 매장에 갈 때 꼭 들러야지 했던 곳을 기어코 찾아 들어갔다. 조그마한 핫도그 가게 안에는 오바마, 클린턴 등 미국 대통령이 왔다 간 듯한 사진도 붙어 있었다. 사진의 진실은 알 수 없지만, 핫도그 맛은 끝내줬다.
눈부신 발렌시아가
‘이번엔 또 뭘 보여주려고?’ 발렌시아가 쇼를 기다리는 이들은 모두 이런 기대를 품었을 거고, 뎀나 바잘리아는 이번에도 완벽히 부응했다. 스노보드에서 받은 영감은 빙하를 표현한 조형물, 메시지를 담은 형광 그라피티, 눈이 시릴 정도로 과도한 컬러 매칭과 레이어드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이번 시즌 역시 물개 박수!
생로랑의 불쇼
에펠탑이 정면으로 보이는 트로카데로 공원에서 열린 생로랑 쇼장은 마치 밝게 빛나는 에펠탑 같았다. 끝없이 줄지어 나오는 클래식하면서도 화려한 의상, 그보다 더 화려했던 조명 쇼에 비로소 파리에 왔음을 실감했다.
마르지엘라여 영원히
파리를 떠나는 날 알게 된 메종 마르지엘라 전시. 공항 출발까지 1시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30분이나 줄을 서서 입장하는 열정을 보였다. 전시는 1989년부터 2009년까지 마르지엘라의 아카이브로 구성되었다.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봐야 했지만, 열심히 사진 찍으며 끝까지 보고 나온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기로.
- 패션 에디터
- 박연경(파리), 정환욱(파리), 이예지(밀란)
- 사진
- Indigital Media, Courtesy of CHANEL, BURBE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