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무수한 별들 속에서 반짝이는 존재감을 보여준 피겨 스케이팅의 차준환, 쇼트트랙의 황대헌과 김예진. 올림픽 신고식을 치른 한국 스포츠계의 명백한 신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 차준환은 열여덟 살, 쇼트트랙 선수 황대헌과 김예진은 스무 살이다. 국가대표 선수 중 이들이 어떻게 해서 친구가 됐는지, 두 번 묻고 한 번은 묻다 말았지만 결국 구체적 스토리는 알아내지 못했다. 조금 이야기가 진행되려 하면 서로를 놀리거나 의식의 흐름 기법에 따른 ‘아무 말 대잔치’가 여기저기서 방해했기 때문이다. 서로를 칭찬해보라는 낯간지러운 요청에 굉장히 곤란한 기색을 보이는 것만 봐도 이들은 티격태격하는 가까운 관계였다.
김예진 (1999년생)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
2017년 국제빙상연맹 쇼트트랙 월드컵 3차 대회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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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진은 거울 앞에 앉은 차준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준환이는 여자가 봐도 예뻐요. 너무 예뻐서 짜증 나.” 차준환과 황대헌은 2016년 유스올림픽에 함께 출전한 이후 가까워졌다. “제가 피겨 스케이팅 외의 다른 종목에 대해선 전혀 몰랐거든요. 그런데…” 차준환은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쇼트트랙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경기를 관전하고 응원하는 준환의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쇼트트랙에 반했다고 고백하는 그의 표정은 뭔가 어마어마한 걸 목격하고 집에 와서는 가족들에게 온갖 동작을 사용하며 설명하는 아이 같았다. “우와, 다들 진짜 멋지다니까요. 예진이 누나에게도 예쁘다는 말보다 멋지다는 말을 쓰고 싶어요. 어쩜 그렇게 달릴 수 있지?”
차준환 (2001년생)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피겨 스케이팅 싱글 종합 15위
2017년, 2018년 전국 피겨 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1위
2017년과 2018년, 전국 남녀 피겨 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1위를 차지한 차준환은 일찍부터 피겨 기대주였다. 평창에서 그는 집시풍의 음악에 맞춰 실수 없이 클린 경기를 치른 쇼트 프로그램으로 83.43점, 우아함을 강조한 프리 스케이팅으로 165.16점을 받으며 공식적으로 개인 최고점을 냈다. 최종 순위는 전체 15위. 톱 텐 안에 드는 성적을 기대하는 이도 있었지만, 한국 남자 싱글 선수로는 24년 만에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그가 이번 싱글 출전 선수 30명 중 최연소인 점을 생각하면 대견한 결과다. 준환에게 평창에서의 ‘결정적 장면’을 꼽아달라고 하자, 아이스링크에 막 올라가기 전 장내에 선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을 떠올렸다. “이가 덜덜 떨릴 정도로 긴장했는데, 제 이름이 불리니까 관중석에서 함성이 들려오는 거예요. 그 환호 소리에 침착해지고 힘을 얻었어요. 경기에 나서기 전이면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늘 이런 말을 해요. You are ready. You are in charge.”
휘문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지만 주로 캐나다에서 훈련하는 준환은 지난 3년 동안 거의 모든 끼니를 밥 한두 숟가락과 고기만 먹었다. 점심엔 소고기, 저녁엔 돼지고기 식으로. 고기라고 해도 소금이나 후추 등의 간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시합 때면 그 정도도 먹지 않고 에너지바로 때운다. 이 놀라운 식단과 피겨 부츠를 벗고 땅에 맨발을 딛고 있어도 출중한 몸의 비율 덕분에, 그는 가만히 있을 때도 아름다운 피사체다. 미국 피겨 스케이팅 선수인 그레이시 골드는 준환의 경기를 보고 트위터에 “차준환은 머리카락에도 자체적인 안무가 있다”라고 썼다. 준환은 검고 진한 장발의 헤어스타일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저는 일평생 머리에 ‘바리캉’을 대본 적이 없어요! 좋아서 유지한다기보다 어릴 때부터 그냥 쭉 이 스타일이었어요. 그리고 숱이 많아서 짧게 자르면 고슴도치처럼 머리카락이 뻗을 거란 말이에요.” ‘이 헤어스타일이 내 헤어스타일이라 유지하고 살 뿐인데, 왜 고수하냐고 물으신다면…’ 하고 여러 차례 난감해한 10대 소년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황대헌 (1999년생)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 은메달
2017년 국제빙상연맹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 남자 5000m 계주 금메달, 남자 1000m 은메달
“준환이는 섹시해요.” 피겨 스케이팅 선수와 같이 얼음 위를 달리지만 그 목적과 방식도, 훈련으로 빚어진 하체 근육의 생김새도 다른 황대헌이 말했다. 한국이 메달을 휩쓰는 게 당연시되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팀에서 그는 남자 선수 중 막내였다. 대헌은 남자 5000미터 계주 외에 3개의 개인 종목에 모두 도전했고, 500미터 경기에서 당당히 은메달을 수상했다. 빠른 스타트로 일제히 출발한 선수들이 경기장을 네 바퀴 반 돌면 끝나는 순식간의 스포츠. 약 40초 동안 아드레날린이 얼음 위에 퍼지는 사이 경쟁자들의 위치가 눈속임처럼 엎치락뒤치락하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여러 다리가 결승선을 통과한다. 대헌은 마지막 ‘피니시’의 순간 그 옹골진 왼쪽 다리를 힘차게 뻗었다.
더 많은 화보 컷과 자세한 인터뷰는 더블유 4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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