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mmortal C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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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화가 여러 번 반복한 단어는 ‘반짝반짝’과 ‘빛나는’이었다. “난 내가 매일매일 빛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늘 반짝이는 곳을 찾아다녔죠.” 반짝임은 그녀를 비추는 조명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의 총기 속에도 존재한다.

러프한 커팅의 악어가죽 베스트는 Simonetta Ravizza by 21Defaye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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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엄정화의 롤모델은 마돈나였다. 배우이자 가수로 데뷔한지 25년이 지난 지금, 엄정화는 스스로가 수많은 이들의 롤모델이 되어 있다. 연기와 음악을 병행한다는 점이나 늘 파격적인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면에서 여러 매체가 마돈나와 엄정화를 비교해왔다. 두 사람의 가장 큰 공통점은 나이와 상관없이, 그리고 성공과 실패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는 점이다. ‘눈동자’의 섹시한 이미지를 시작으로, 가수 엄정화는 ‘배반의 장미’, ‘Poison’, ‘초대’, ‘몰라’, ‘다가라’를 비롯한 다수의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화려한 비주얼, 참신한 퍼포먼스는 늘 함께였다. 하지만 2015년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기획을 제외하면 꽤 오랜 시간 그녀는 음악보다 연기에 집중하는 듯 했다. 그 사이로 갑상선 수술이라는 큰 고비를 지나왔다. 2017년 새해를 앞둔 시점, 엄정화는 드디어 자신의 10번째 정규 앨범을 선보일 준비를 마쳤다. 빅뱅의 탑이 피처링한 미니 앨범<D.I.S.C.O>로부터 8년, 정규 9집 앨범 <Prestige>로부터 무려 10년 만이다. “지금 앨범 발매를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제게는 가슴 뭉클한 일이에요. 사람들이 말하는 ‘이 나이에’, 심지어 목에 수술을 겪은 내가 다시 음반을 낼 수 있을까? 저도 반신반의했죠. 하지만 해내고 싶었어요. ‘앨범을 꼭 내고 싶었는데… 시도라도 해볼걸’ 제 인생에 이런 후회가 남는 것을 원치 않았거든요. 설레고 떨리는 건 전과 다름없지만, 예전처럼 잘 안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없어요. 선배로서 부끄럽지않게 멋진 곡과 무대를 보여주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1992년과 지금. 그 시차조차 별로 느껴지지 않는 엄정화는 마치 정체성을 잘 지켜가는 하나의 브랜드처럼, 모두가 알고 있는 모습 그대로 여전히 생기와 에너지가 넘친다.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기억을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그녀가 10년 차의 욕심과 불안, 20년 차의 회의와 고민 같은 것을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다. 뜨겁게 노래하고 연기하면서, 자신과 주변의 난항을 겪어내면서, 온몸으로 시간을 건너온 그녀에게는 새로운 자기애가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롤모델, 혹은 어떤 기준으로서 엄정화가 왕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그런 것일 터다. 단지 성공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관통해 살아남은 자의 여유, 자신을 아끼고 들여다볼 줄 아는 지혜까지 가졌다는 점.

깃털 장식의 드레스는 21Defaye, 구조적인 어깨 장식이 돋보이는 재킷은 Comme des Garcons, 스터드 장식의 와이드 벨트는 Demande de Mutation by Dem Project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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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Korea 10번째 정규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2006년 <Prestige> 이후 10년 만이다.
엄정화 워낙 오랜만의 음반이다 보니 신인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작업했다. 총 9곡을 수록했는데, 그중 4곡이 파트 1로 먼저 공개된다. 앨범 제목은 <The Cloud Dream of the Nine>. 말 그대로 아홉 가지 꿈 이야기다. 여자 9명이 등장하는 <구운몽>처럼 한 곡 한 곡에 각각 다른 여자에 관한 스토리가 담겼다.

지난 8집, 9집 앨범은 일렉트로니카라는 장르 안에서 만들어졌는데 이번에는 어떤가?
여러 작곡가가 저마다 ‘엄정화’라는 여자를 떠올리면서 생각한 이미지를 곡으로 풀어낸 결과물이다. 윤상을 비롯해 작곡가 신혁, 이민수, 포스티노 작사가 김이나 등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참여해준 덕분에 작업 과정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윤상의 곡 ‘Dreamer’는 일렉트로니카를 베이스로 한 디스코 펑크, 신혁의 곡 ‘Watch Me Move’는 딥하우스다. 이 두 곡이 더블 타이틀곡이 될 예정이고, 이 외에 R&B,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담았다.

9집 앨범을 내고 ‘다음 음반이 참 막연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그랬나? 9집을 준비할 당시 (롤러코스터의) 지누와 함께 작업실에서 글 쓰고 멜로디 라인도 만들었다. 8집은 작곡가들을 찾아다니면서 정재형과 내가 거의 공동으로 프로듀싱하다시피 했다. 두 작업 다 무척 즐거웠지만, 동시에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다음에는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가수 엄정화로서 아주 대중적인 노래로 주류 무대에 서봤고, 나름의 음악적인 시도도 다채롭게 해본 셈이니까.

이번 앨범으로 공연이나 방송도 계획하고 있나?
12월 26일 <SBS 가요대전>을 시작으로 각종 연말 무대에 오른다. 사실 음원만 발표하고 방송에는 출연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

그건 대중에게도 너무 아쉬운 일이 될 거다. 가수 엄정화는 음악뿐 아니라 무대 퍼포먼스,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도 늘 화제였으니까.
사람이 잘 변하지 않더라. 예나지금이나 나는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시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번 앨범에도 확실한 콘셉트가 있다. 곡에 따라 매번 새로운 콘셉트를 즐긴다. 의식적으로 음악도 많이 들으려고 하는 것이 내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린 친구들과 비교해서도 아주 뒤떨어지진 않을 듯하다.

보디슈트는 La Perla, 헤드피스는 Cocodemer by Han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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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어떤 음악을 자주 들었나?
많은 이들이 그렇듯 위켄드. 다프트펑크나 뮤즈도 좋아하고, 콜드플레이는 공연 티켓을 아직 못 구해 속상하다. 얼마 전 나온 롤링스톤스 신보도 멋지다. 어릴 때는 블루스를 즐겨 듣지 않았는데, 이런 게 나이 드는 건가 싶기도 한다. 어쩜 그렇게 자신들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감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클래식까지 다양하게 듣는데, 웬일인지 메탈만큼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롤모델을 엄정화로 꼽는 후배가 한둘이 아니다. 스스로도 지금껏 잘해왔다는 생각이 드나?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 수 있어 다행이다. 오래 활동해온 보람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매번 운이 좋았다. 그렇다고 만족스럽다,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노래도 연기도 내가 너무 좋아하니까 놓치고 싶지 않은 거다. 그래서 조바심도 난다. 쉬면서도 끊임없이 ‘이 다음에 뭘 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보면 ‘이런 일을 어떻게 발전시켜볼까?’ 생각한다. 예전에는 쉬는 것이 불안해 잠도 못 자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좋은 작업을 기다리는 시간조차 즐길 수 있게 됐다. 우연찮게 쉴 시간이 주어졌을 때 깨달았다. 일 말고도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참 많다는 사실을. 예전에 비해 요즘은 그런 재미를 다양하게 느끼고 산다.

어떤 재미를 말하는 건가?
서핑 여행 같은 것들. 예전에는 절대 도시를 떠나 지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난 매일매일 빛나야 해’ ‘반짝이는 곳을 찾아갈 거야’ 밤마다 클러빙하고. 물론 그런 것도 즐거웠지만 서핑을 시작하고 다시 눈을 뜬 기분이다. 2년 전 호주 바이런 베이에서 한 달하고도 열흘을 머문 적이 있다. 일정을 계속 연장하면서. 파도를 잡으러 달려가고, 물속에서 넘어지다 지쳐서 걸어 나올 때면 뇌까지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저녁에는 친구들과 오붓한 식사를 즐기고. 그런 여행이 주는 여유로움, 한적한 곳에서의 조용한 생활도 괜찮더라. 이런 것도 힙하지 않나?

‘우연찮게 쉴 시간이 주어졌다’는 건 어떤 이야기인가?
갑상선 수술을 하고 나서. 수술 뒤 처음 6개월간은 아예 말을 못했다. 갑상선 한쪽이 마비되어 아예 안 움직이는 거다. 당시에는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지도 못했다. 일이 뚝 끊길 테니까. 딱히 치료 방법도 없다 보니 <슈퍼스타K>에 출연했을 때도 마이크에 대고 거의 속삭이는 수준이었다. 당시 지원자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심사에 집중하는 한편, 너무 괴로웠다. ‘난 다시 노래할 수 없겠지. 왜 노래할 수 있을 때 더 노래하지 않았지?’ 모든 의사들이 앞으로 노래를 못할 거라고 했다. 연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성대 치료사를 만나면서 2년 넘게 계속 성대 훈련하고 연습했다. 이제는 말하는 데 불편함이 없음은 물론, 앨범까지 내게 됐다.

여러 가지 면에서 신인의 마인드로 작업을 했다는 말이 맞겠다.
일부러 앨범 발매라는 목표를 잡았다. 노래도 연기도 앞으로 계속 오래하고 싶은데, 목표가 없으면 어느 순간 내가 목소리 때문에 포기할 것만 같았다. 앨범을 내겠다고 다짐한 것이 3년 전, 곡을 수집하고 고른 것이 1년 반 전이다. 올 4월부터 녹음을 시작했고, 10월에 발매하려던 것도 늦춰졌지만 시기는 중요하지 않다. 첫 녹음한 날 눈물이 많이 나더라. 다시는 녹음실에 못 들어갈 줄 알았으니까. 이번 앨범은 내 인생에서 ‘극복’을 뜻한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벌써부터 이 다음 앨범 작업이 기다려진다. 그때쯤이면 내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는 내 이야기를 쓰자니 계속 슬픈 쪽으로 흘러갈 것 같아서 그만뒀다.

맥시한 실루엣의 케이프코트는 Dries van Noten, 사이하이 부츠는 Tom Ford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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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차례 ‘여자 연예인’이라는 한계를 넘어섰고, 나이에 대한 편견과도 계속 맞서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지 못하는 것이 생기는 일은 당연하다. 예를 들어 연기의 경우, 나이가 들어 더는 소화하지 못하는 역할이 있듯이. 하지만 반대로 이전에는 못했는데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생긴다. 어떤 기회든지 내게 왔을 때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순리에 맞게, 하지만 뒤처지지 않도록.

연애나 결혼에 관한 고정관념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듯하다.
결혼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 좋은 사람과 결혼해도 죽네 사네 하는데, ‘적당한 사람’과 결혼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평생 혼자 살고 싶지는 않다. 나이 들수록 짝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나중에 더 나이 먹어서 결혼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고. 연애하듯 친구처럼 손잡고 함께 갈 수 있는 사람과 서로의 편이 되어준다는 것. 결혼한 사람들이 부러운 부분이 있다면 정말 나처럼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말이지 쉬는 동안 전혀 살이 찐 것 같지 않다.
다이어트 중이다. 힘들지만 컴백이 코앞인데 해야지 어떡하나. 절식과 운동을 병행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면 힘이 달린다. 운동하면서 단백질 위주로 잘 챙겨 먹으려고 한다.

요즘은 어떤 운동을 하나?
PT는 꾸준히 받아왔고 필라테스도 한다. 얼마 전에 이효리가 서울 왔을 때 함께 요가를 해보니 너무 좋더라. 호흡과 명상의 매력을 알게 돼서, 제대로 깊게 해보고 싶다. 반면 부트캠프처럼 격렬한 운동도 좋아한다. 하다 보면 정말 죽을 것 같은데, 그런 데서 오는 만족감이 분명 있다.

노래에 비해 연기는 공백 없이 지속해온 편이다. 같은 일을 25년쯤 하면서 자유로워진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
마음은 좀 더 편해지지만 아쉬움은 여전하다. 어떤 배우들은 작품이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본다는데, 나는 여러 번 곱씹는 편이다. 애착이 가는 신을 잘 끝냈을 때 그 쾌감은 대단하다. 반대로 ‘가짜’로 연기한 경우는 마음에 남아서 잠을 못 잔다. 모두가 괜찮다고 해도 나는 아니까. 효율이 떨어질지는 몰라도 내가 느껴야 할 감정을 직접 느끼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힘들다. <오로라 공주>의 여자나 아기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아플 만큼.

앞으로 또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갈 텐데,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나?
뉴욕의 극장에서 아티스트 아그네스 마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이야기할 때 눈빛에 총기가 가득했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 사람이 여태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궁금했을 정도다.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 장난스럽지만 눈빛이 맑은 할머니. 깊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볼 줄 아는 사람.

누드 톤의 보디슈트는 Maison Margiela, 어깨 장식은 Comme des Garçons, 페이턴트 스커트는 BNB12 제품,

누드 톤의 보디슈트는 Maison Margiela, 어깨 장식은 Comme des Garçons, 페이턴트 스커트는 BNB12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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