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에서 만난 릭 오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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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2016 S/S 쇼를 성공적으로 마친 릭 오웬스201610월의 어느 날, 23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서울에서 그와 함께 있고 싶은 곳을 고민했고, 고민 끝에 그의 그로테스크한 취향에 딱 맞는 답십리 고미술상을 선택했다. 한편으로는 좋은 취향을 가진 그의 쇼핑 리스트를 확인해보고도 싶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업무를 보러 온 그에게 왠지 이번 쇼에 대해선 깊이, 꼬치꼬치 묻고 싶지 않았다.

정신없이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는 릭 오웬스.

그는 수많은 상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두루 살펴보았다.

미셸에게 마음에 드는 모자를 사도 되는지 컨펌 받기 위해 에디터를 불러 모자를 씌우고 사진을 찍는 릭 오웬스.

종이로 만든 그릇, 청록색 보석함, 미니멀한 나무 선반을 고른 뒤 이리저리 살펴보는 릭 오웬스.

그는 재미있는 곳을 데려와줘서 고맙고, 다음 시즌 파리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건넸다.

차를 타고 가면서까지 더블유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드는 다정한 모습.

<W Korea> 한국에 처음 왔다고 들었다. 비공식적으로 방문한 이유가 궁금하다.
릭 오웬스 2박 3일, 아주 짧은 일정이라 최대한 편안하게 다녀가고 싶었다. 매장도 둘러보고 관광도 하고, 개인적인 미팅 시간도 가졌다.

한국에 오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었나?
새로운 곳에 갈 때면, 종교적이거나 예배하는 장소에 가는 것은 해당 국가의 코드나 가치를 이해하면서 동시에 그 문화를 존중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엔 방문하고 싶었던 몇몇 절에 가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종교가 있나?
나는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여러 종교에서 강조하는 친절, 공감, 명예심, 자기 수양 등의 가치를 믿는다. 하나의 문명을 다른 것들과 잇는 연결 고리, 이러한 종류의 가치를 좋아한다. 세상은 이미 너무 많은 이유로 갈라지고 분열되어 있다. 나는 국가 간의 차이점보다는 보편적인 인도주의적 본능을 믿는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난 후 한국에 대한 느낌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한국 가구박물관에 갔는데, 모든 것이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인 루돌프 쉰들러,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엘리엘 사리넨의 세계관에 딱 맞춰져 있어 좋았다. 한국 전통 가구와 건축물을 보는 것은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기분이 들게 했고, 정말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더블유 코리아가 안내한 답십리 고미술 상가에서의 쇼핑은 어떤가?
더블유 코리아가 소개해준 답십리 고미술 상가는 정말 멋졌다. 이런 곳으로 날 데려와줘 고마울 따름이다.

고미술 상가에서 물건 더미를 뒤지고, 원하는 물건을 발견하며 아이처럼 기뻐하는 당신을 봤다. 무엇을 샀나?
나무 단상, 간결한 박스들, 종이 바구니, 나무 그릇, 오래된 이야기가 담긴 부드럽고 하얀 사기 그릇들을 골랐다.

오늘 구입한 물건들은 하나같이 차분한 우아함, 당신의 취향이 드러나는 것들이다. 어디에 둘 생각인가?
베니스 리보 해변에 있는 우리 집에 두고 싶다. 한쪽으로는 아드리아 해가 보이고, 다른 쪽으로는 베니스 대운하가 펼쳐지는 곳. 회색 스톤으로 이루어진 테라스에 두고 싶다.

이번 2017 S/S 쇼를 끝내자마자 한국에 왔다. 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파리에서 당신의 쇼를 직접 보았다. 옷을 만들며 어떤 감정에 충실했나?
이번 시즌을 진행하면서 나는 1933년 조지 큐커의 영화 <8시 석찬> 속 진 할로의 옷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35년 마크 샌드리치 감독의 <톱 햇>에 나오는 진저 로저스의 의상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1930년대의 흑백영화는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 흑백이 주는 진지함, 장식적이고도 정밀한 아르데코풍 세팅들, 화려한 깃털은 나를 매혹시킨다.

이번 시즌 룩 중 가장 매혹적이었던 것 역시 깃털 케이프였다. 모델의 워킹에 맞춰 우아하게 출렁이는 퍼가 환상적이었다. 한편으로는 건축적이고 강인한 동시에 연약했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그 코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90cm 정도의 타조 깃털을 손으로 하나하나 이어 만들었다. 진저 로저스가 입었던 것보다 더 길고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극도로 섬세하고 완전히 비실용적이다. 하지만 타조털 코트의 매력은 당신이 본 것과 딱 같은 느낌이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동시에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놓쳐버리거나 없어질 수 있는 약함을 지니고 있다.

옐로, 퍼플 등 평소 당신이 자주 쓰지 않는, 당신에게 특별히 선택받은 듯한 색감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옷감의 색을 선택할 때 각각의 원단에 맞는 적절한 톤의 채도에 굉장히 공을 들이는 편이다. 그리고 소재에 맞는 완벽한 채도를 만났을 때 기쁨의 확신이 터지며, 그 순간이 비로소 옳았음을 느낀다.

릭 오웬스는 다양한 물건 중 유독 미니멀하고 우아한 형태를 좋아했다.

카드 결제 후 사인을 하는 중.

릭 오웬스는 쇼핑 내내 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더블유 코리아가 선물한 갓을 미셸에게 직접 씌워주고, 디테일을 챙기는 중이다.

미셸과 함께 기념 촬영 중인 릭오웬스. 특유의 카리스마가 넘쳐난다.

쇼핑한 물건을 직접 들고 복도를 걸어가는 릭 오웬스.

그는 하얀 사기 그릇, 단정한 선반을 구입했다. 마지막 나무 조형물은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지만, 상점이 문을 열지 않아 구입하지 못했다. 나중에라도 구입하겠다며 전화번호를 따로 적어갈 정도로 아쉬워했다.

그는 하얀 사기 그릇, 단정한 선반을 구입했다. 마지막 나무 조형물은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지만, 상점이 문을 열지 않아 구입하지 못했다. 나중에라도 구입하겠다며 전화번호를 따로 적어갈 정도로 아쉬워했다.

그는 하얀 사기 그릇, 단정한 선반을 구입했다. 마지막 나무 조형물은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지만, 상점이 문을 열지 않아 구입하지 못했다. 나중에라도 구입하겠다며 전화번호를 따로 적어갈 정도로 아쉬워했다.

이번 시즌 룩은 볼수록 건축적 디자인이 참 인상적이었다. 옷을 짓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건축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당신은 늘 스토어 디자인을 직접 한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특별히 미셸(릭 오웬스의 뮤즈)에게 부탁했다고 들었다. 당신이 만든 스토어와 미셸이 만든 스토어는 어떤 부분이 달랐나?
뉴욕 스토어에 사용할 가구 디자인을 미셸에게 맡겼다. 그녀는 나보다 더 감정적이고 따뜻하고, 때로는 카오스적 접근도 한다. 나는 보통은 세심하게 관리하고, 사전에 철저히 계획하는 스타일인데, 그 공간은 미셸만의 즉흥적이거나 새로운 방식이 더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맡기게 되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무척 만족스럽고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음에 드는 점은 무엇인가? 뉴욕에 가서 그 부분을 유심히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구조물과 낙타가죽의 기이한 조합이 마음에 들고 록 크리스털과 대리석의 거대한 덩어리가 멋진 것 같다.

릭 오웬스의 가구, 인테리어에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작업을 하나? 그 철학은 옷을 만들 때와 같나?
나는 복잡한 삶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하는 옷이나 인테리어 작업의 결과물이 더없이 우아하기를 바란다. 옷을 짓고 인테리어를 하는 건 그런 의미에서 한 편의 ‘시’를 짓는 것과 같다. 모두가 이를 중요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나는 오롯이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는 릭 오웬스의 골수 팬이 정말 많다. 어떤 사람들이 릭 오웬스를 향유하길 바라나?
내 옷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특유의 방식이다. 무척 조심스러운 제안이랄까. 누군가가 내 작업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때 정말 기쁘다.

서울에 있는 숍을 비롯해 당신 매장에는 당신을 꼭 닮은 조각을 늘 세워둔다. 들어오는 사람들이 가끔 깜짝깜짝 놀라는 모습도 많이 목격했다. 그 조각은 왜 만들었나?
시작은 우리 집에 둘 초상화처럼 쓰기 위해 왁스 조각상을 만들었다. 과거의 남자들은 자신의 삶의 절정이라고 생각하는 특정 시점에 다다르면, 벽난로 선반에 올려둘 초상화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해 남겼다고 한다. 나는 그 전통이 함축하고 있는 것들, 예를들면 지위, 자만, 피할 수 없는 죽음, 그리고 너무도 빨리 끝나버리는 찰나의 순간을 붙잡아두려는 인간의 욕망을 재미있게 표현해보고 싶었다. 자신의 전성기를 붙잡고, 기억되고 싶은 방향으로 통제하려는 인간의 표현이다. 터무니없고 자기 중심적이며 완전히 우울한 의식일지도 모르지만. 이 이상한 자기 연출이 가져오는 환기 효과가 흥미로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에 놓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파리에 첫 스토어를 오픈했을 때, 전통적으로 아름다운 코너 쪽에 그 조각상을 두었다. 그 완벽함을 방해할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각 스토어에 이런 마지막 마무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설치한다. 또한 이 조각상은 우리의 자립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조각상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릭 오웬스라는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인 내 자신을 표현한 것이니까. 그리고 조각상은 약간의 상상력과 규율을 떠올리게 만든다.

평범한 사람들도 조각상을 만들어 둘 수 있다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조각상 같은 작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줄 순 없겠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모습을 존중하고 그 모습에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추상적이고, 개인적이어도 좋다.
친절, 유머, 열망, 초월, 자연, 공감, 규율, 산업, 건강.

릭오웬스-영상

에디터
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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