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면 소재를 주제로 한국 디자이너와 특별한 협업을 진행하는 코튼USA가 올해 선택한 파트너는 권문수다. 2016 S/S 시즌 다채로운 면 소재를 활용해 ‘귀어’를 주제로 풍요로운 이야기를 펼친 그와 그의 룩을 입은 모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 만나게 된 건 코튼USA의 올해의 협업 디자이너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제안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오랜 역사를 가진 저명한 협회가 나를 선택했다는 건 굉장한 영광이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이번 소식을 들으니 2015 울마크 프라이즈 수상자였다는 점이 다시 떠올랐다. 지난 더블유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에 앤드루 버클 러와 일하며 배운 것 중 하나가 ‘좋은 소재를 가려내는 눈’이라 말했는데, 소재 선택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1차적으로 눈으로 보자마자 드는 생각이 ‘고급스럽다’여야 한다. 남성복은 소재가 정말 중요하기에 더더욱. 그러기 위해선 우아한 색감이 필수다. 또 질감 부분에도 민감한데, 시각적으로도 질감이 드러나는 소재를 좋아하는 편이다.
울마크 프라이즈 수상 후 ‘울은 권문수에게 생애 첫 세계 대회 입상을 안겨준 고마운 소재’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남겼다. 그렇다면 면은? 대중성, 실용성, 편안함을 모두 갖춘 소재. 나의 컬렉션 역시 어렵고 과하기보단 늘 입기 좋고 어디에나 어울리는 방향성을 추구하기에 잘 맞는 소재다. 관리도 쉬워 손이 자주 가는 소재 아닌가?
맞다. 아까 5월 11일에 있을 ‘코튼 데이’ 행사를 위해 새로운 룩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세 벌가량의 여성복을 만들고 있다. ‘귀어’ 컬렉션의 연장선상에 있는 여성복이라 생각하면 된다.
권문수의 여성복이라니 반가운 이야기다. 남성 메인 컬렉션이 언제 여성복으로 확장될지 늘 궁금했다. 카디건이나 셔츠 같은 상의는 여성의 구매 비율도 높지 않나? 좋아하는 여성이 많다. 그런데 이건 해외 얘기다. 국내에선 현재 S/S 시즌 메인 컬렉션을 판매하지 않고 있다. 여성복으로의 확장 역시 아직 불투명하다.
문수권세컨은 ‘무성’ 혹은 ‘양성’ 브랜드를 표방하는 것 같다.
맞다. 그리고 2016 F/W 컬렉션을 살펴보면 여성 모델 김설희가 입고 나온 후드 티셔츠와 트레이닝 팬츠 세트 착장이 있다. 이는 남성 메인 컬렉션을 여성복으로 변주한 게 아닌 문수권세컨의 룩 이다. 세컨드 브랜드로 만든 건 쇼가 끝난 뒤 대량생산 과정을 거쳐 바로 판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 주에 판매를 시작한다.
2016 F/W 컬렉션은 1990년대, 그중에서도 룰라에 헌정하는 의미가 담긴 컬렉션이었다. 요즘 세대가 공감하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은 없었나? 하하하. 실제로 느꼈다. 1990년대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생각하며 인스타그램 계정에 당시의 뮤직비디오 클립을 연속적으로 포스팅했는데, 팔로어 숫자가 줄더라. 하하. 나의 팔로어들이 좋아하는 요즘 남성 모델들이 아닌 옛날 가수들 포스팅이 이어지니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문수권 컬렉션을 통해 대중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계속적으로 들려주고 싶다. S/S 시즌 ‘귀어’의 경우엔 컬렉션을 준비할 당시 뉴스에서 본 가장 재미있는 뉴스였다. 사건, 사고, 테러가 난무하는 뉴스 중반에 등장한 ‘어촌으로 향하는 젊은 세대’에 관한 뉴스였으니 얼마나 따뜻하 고 흥미로웠겠나?
나 역시 ‘귀농’은 익숙해도 ‘귀어’는 문수권 컬렉션에서 처음 들은 단어다. 알고 보니, 꽤 많은 이들이 어촌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더라. 뉴스를 본 뒤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인천 근방의 한 섬은 성공적인 ‘귀어’의 삶을 사는 이들이 모여 부촌을 형성했더라. 이렇듯, 나는 컬렉션을 통해 패션 트렌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 트렌드를 전하고 싶다.
그렇다면 1990년대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온몸으로 겪은 세대지. 1990년대는 가요계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앨범도 엄청나게 팔렸잖나. 최근의 응답하라 시리즈 열풍이나 복고 클럽 열풍만 봐도 1990년대가 현시대 흐름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 다. 보통 20년 주기로 유행이 돌고 돈다고 하는데, 지금이 딱 90 년대 중반에서 20년이 흐른 시점이다. 90년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결정하고 나니,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내가 팬클럽으로 활동한 그룹 ‘룰라’다. 어릴 적 디자이너를 꿈꾸며 꼭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특정 뮤지션의 컬렉션을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외국의 경우 마돈나, 데이비드 보위, 마이클 잭슨, 건즈앤로지스 등의 뮤지션을 뮤즈로 한 컬렉션을 왕왕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런 사례가 없었기에, 이번에 내가 직접 오랫동안 나의 우상이었던 ‘룰라’를 뮤즈로 컬렉션을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프런트로에 예전 룰라의 이상민이 자리했다. 딱히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다. 팬클럽이었지만, 가수가 아는 팬은 아니었으니까. 우연한 기회를 통해 연락이 닿았고, 이번 쇼의 콘셉트와 브로스 시절의 이상민을 오마주한 피날레 룩에 관해 이야기를 전했더니 쇼날 직접 백스테이지까지 와서 인사를 건넸다. 감동적이었다. 하하하.
언제나 스토리텔링이 강한 쇼들을 만드는데, 때론 그 부분이 더 큰 중압감을 주진 않나? 글쎄. 자신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잘할 줄 아는 디자이너가 좋은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디자이너의 머릿속을 궁금해하고, 새로운 시즌이 되었을 때 그 사람 옷에 관해 호기심을 보일 테니까. 2016 컬렉션의 주제가 된 1990년대 팬덤 문화와 귀어 현상은 물론이거니와 2015 F/W 시즌의 테마였던 불면증의 경우도 당시 내가 겪던 증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전의 한강을 주제로 한 2015 S/S 컬렉션 역시 여유에 관한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고.
2년 전에는 재킷과 셔츠의 뒷면에 있는 트임 디테일과 셔츠의 포켓 장식, 직선적인 실루엣을 당신의 시그너처로 언급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나? 뒷면의 트임은 유지하고 있고, 셔츠의 포켓 장식은 디테일이 좀 복잡한 편이어서 공장에서 자꾸 불량이 나오기에 없앴다. 하하하. 실루엣 부분은 맞다. 로고를 통해 알려지는 컬렉션보다 디테일로 구매자에게 각인되어 사람들이 해당 디테일만 봐도 ‘아! 이거 문수권!’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그러한 시그너처 요소들이 세컨드 브랜드에도 영향을 끼치게 될까? 아니다. 문수권세컨은 드러나는 로고 플레이를 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코튼USA의 프로그램 매니저 최원정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귀어 컬렉션의 청량감 있는 시어서커 면 소재 룩이 특히 눈에 띄어 주목하게 되었다고 하더라. 일단 면은 여름에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이지 않나. 흡수성도 좋고, 편안하니까. 이를 좀 더 우아하게 풀고 싶었다. 특별해 보이는 면 소재를 찾다 보니 베이식한 원단보다는 왁싱 코팅된 원단, 시어서커처럼 질감이 도드라진 원단 등에 마음이 더 가더라. 또 아까 장기용과 정용수가 입은 스리 피스 슈트에 사용된 촘촘한 줄무늬가 더해진 차콜 그레이 원단은 굉장히 부드럽다. 매 시즌 스리피스 슈트를 새롭게 제안하고자 고민하는데, 이번엔 그 소재를 사용해 색다르게 풀어보았다. 거기에 동남아시아의 전통 의상에서 영감 받은 하렘팬츠를 접목해 포인트를 더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부한 뒤 뉴욕에서 톰 브라운, 헬무트 랭, 로버트 갤러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인턴 경험을 쌓고, 앤드루 버클러에서는 다섯 시즌 가까이 디자이너로 일했다. 다시 외국에서 생활하고 싶진 않나? 한국에서 살고 싶다. 당시에 귀국한 이유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인데, 가족과 함께 보 내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깨달았다. 해외엔 가벼운 마음으로 짧게 다녀오고 싶다. 다들 잘 있나 보러.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