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이라는 두 단어 네 글자로 설명하기에는 좀 낯설고 새로운 음악을 한다. XXX(엑스엑스엑스)의 래퍼 심야와 프로듀서 프랭크, 90년대생 두 청년은 당신 앞에 이제 막 도착한 편지, 아직 열지 않은 봉투, 읽지 못하는 미지의 기호다.
깊은 밤이라는 이름을 지어 ‘Ximya’라고 표기하는 래퍼 김심야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면 당신은 힙합 리스너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수감 투혼으로 불리며 뛰어난 음악성을 인정받고, 최초로 옥중에서 한국 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한 이센스의 앨범 <The Anecdote>에 유일한 피처링으로 참여한 인물이자 시상식에서 이센스를 대신해 수상한 인물이 바로 그다. 95년생, 스물두 살의 이 래퍼가 ‘Tic Toc’에서 들려준 노련하고 안정적인 실력은 언더신에서 제법 회자되었지만 그 실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센스 형이랑 작업하면서 뭘 배웠느냐고 많이 물어보는 데, 강의하듯이 랩을 가르쳐주고 그러진 않았어요. 하지만 가사를 쓸 때 허세를 버리라는 정말 큰 가르침을 얻었죠.” 얼마 전 음악 전문 공중파 방송의 힙합 특집에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를 만날 수 있는 제대로 된 첫 기회는 3월 말 공개될 XXX (엑스엑스엑스)의 데뷔 앨범이 될 거다. 한편 프로듀서 FRNK(이하 프랭크)의 이름은 아이돌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눈에 띄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1월 f(x) 의 컴백 프로젝트에서 ‘4 Walls’ 공식 리믹스를 담당했으며, 이센스의 싱글 ‘Sleep Tight’를 프로듀싱한 이 실력 있는 음악가 역시 겨우 93년생이다. “에프엑스 곡을 리믹스하면서 힘들었던 점요? 원곡이 너무 좋아서 어떻게 리믹스를 해야 하나를 고민했을 뿐입니다, 하하!”
2000년대 후반에 사춘기 시절을 보낸 이 90년대 중반 청년들은 음악을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만들 때도 장르나 스타일의 구속에 갇히지 않는다. “DJ가 다른 음악을 루핑시키면서 거기에 MC가 랩을 얹고, 샘플링이 들어가고 하는 식으로 이질적 요소들을 보태고 더해 탄생한 음악이잖아요. 정답과 오답, 진짜와 가짜가 따로 있다는 식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접근하고 싶었어요.” 프랭크의 말이다. 힙합 음악 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건 세상을 달라지게 만들 새로운 세대의 특징을 뭔가로 정의할 수 있다면, 바로 이렇게 흑백을 금방 가르거나 뭔가를 쉽게 정의하지 않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F R N K
완성된 앨범에 대해서는 스스로 만족하나? 처음에는 내가 곡을 쓰고 심야가 랩을 붙이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작업했다. 그러다가 이렇다면 왜 팀으로 작업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부딪쳤다. 이런 식으로 만든다면 내가 한 명의 래퍼를 프로듀싱하는 방식으로 앨범이 나올 수도 있고, 내 음악에 어떤 래퍼를 피처링시켜 진행할 수도 있는 건데 굳이 왜 우리는 팀이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나갔다.
어떤 방식이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래퍼가 랩을 먼저 하고 나서 비트를 찍거나, 비트를 먼저 주고 랩을 쓰는 보편적인 순서로 해봤다가, 다시 처음부터 같이 만들어 나갔다. 아마 우리 음악을 듣는다면 ‘이 음악에 랩이 왜 이렇게 들어갔지? 왜 이런 식으로 랩을 쓴 거지?’ 의문이 들 거다. 그런 신선한 걸 주려고 관습적인 방식을 바꿔 봤다.
래퍼 김심야에게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가사를 쓸 때 시점을 표현하는 방식이 남들과 달라 마음에 들었다. 비트를 만드는 사람들보다 비트 음악을 더 많이 듣고 잘 알고 있다. 음악적인 호기심이 강하다.
어떤 음악을 들으며 성장했나? 초등학생 때부터 막내 외삼촌의 영향을 받아서 음악 듣는 걸 좋아했다. 제이 딜라, 포티쉐드, 라디오헤드도 좋아했고. 밴드 음악, 재즈까지 다양하게 좋아한 거 같다.
f(x) ‘4 walls’ 리믹스 작업은 어떻게 하게 됐나? 대표 형이 주선했다. 나 역시 평소에도 좋아하던 그룹이고 재밌는 작업이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조금 힘들었던 건 원곡이 너무 좋았다는 점이다. 어떻게 리믹스를 해야 하나 이런 고민 말고는 재밌게 했던 것 같다.
곧 앨범이 세상에 나온다. 어떻게 들어줬으면 좋겠나? 귀에 편한 음악은 아닐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도 힙합을 풀어낼 수 있구나, 하는 접근으로 편하게 들어 주면 좋겠다. 너무 다들 정해놓고 하는 게 많으니까.
음악 외에는 무엇을 좋아하나? 작업할 때는 잘못했 지만 BMX 타는 거 좋아하고, 돌아다니면서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고 혼자 노는 거 좋아한다. 카메라는 미놀타 X 700을 쓴다.
요즘은 어떤 음악을 듣나? 최근에 많이 들었던 건 옛날 노래들이다. 램지 루이스, 존 콜트레인.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음지에 실력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 사람들하고 뭔가 벌일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게 음악적으로는 목표다. 음악 외적으로는… 친구들 만날 때 걱정 없이 돈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매일 택시 타고 다니고 싶고. 좋은 차에 대한 욕심은 없는데 어디 가든 카카오택시 블랙을 탈 수 있으면 성공한 기분이 들 것 같다.
Kim Ximya
앨범 작업을 마치고 무엇이 달라졌나?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시간을 충분히 두고 여러 번 작업을 거치다 보니까 가사를 쓸 때의 태도나 생각이 특히 성숙해진 것 같다. 이전에 서너 곡에 나누어 담은 생각을 한 곡에 압축해서 넣었다면 이해가 쉬울까.
두 사람의 작업 과정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었다는 데, 어떤 방식이었나? 표면적으로 보면 가사 선택도 의견을 모아 같이 들어가고, 비트도 같이 편곡해서 짜임새 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프로듀서 한 명, MC 한 명이 서로 같이 작업했을 때 어느 한쪽의 앨범이 아닌 느낌을 더 주기 위해 편곡이나 그런 걸 신경 썼다. 프랭크 형이 고생을 많이 했다.
어떤 음악을 들으며 성장했나? 중3 때부터 주로 외국 힙합보다는 한국 랩을 들었다. 버벌진트라던가. 요즘은 소프트록을 듣고 있는데, 프랭크 형이 음악을 정말 많이 아니까 형의 그늘에서 못 벗어난다.
이센스 앨범에 참여한 경험은 어땠나?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고, 내가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정도로 엄청난 결과물이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고등학생 때 좋아한 우상 같은 사람의 앨범에 들어간다는 게 얼떨떨 했다. 더 믿기 힘들었던 건 녹음을 해서 보냈는데 두 번 만에 채택됐다는 거지만. 앨범이 나오고 나서 센스 형한테 랩 몇 번 배웠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사실 기술 자체를 가르쳐주거나 그런 건 없었다. 다만 생각하는 방식이나 단어 선택에 대해서는 큰 가르침을 얻었다. 센스 형은 워낙 담백한 음악을 하다 보니까 가사를 쓸 때 허세를 버리는 법을 배웠다. 예를 들면, 외국 몇 번 갔다 왔다고 심하게 영어발음 굴리는 사람에게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전달이 된다는 식의 가르침이었다.
앨범이 나오면 어떤 점에 귀 기울여서 들어봐줬으면 좋겠나? 오후 9시부터 아침 7시까지의 시간 플로우를 생각하면서 들으면 더 재밌을 것 같다. 심야부터 조조까지의 시간이다.
서울에서 좋아하는 장소는? 가로수길. 예쁜 여성들이 많기도 하고, 그 여성들이 입고 있는 멋진 옷차림을 볼 수 있어 좋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패션 디자이너셔서 옷에 관심이 많다. 이번 앨범은 클럽에서 나를 자꾸 밀어내는 여자들이 입고 있는 옷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자에 관심이 많은가? 요즘 유행인 것 같기도 하지만 원래 나는 연상이 좋다. 그래서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누나들은 시간이 없으니까!
- 에디터
- 황선우, 최유경
- 포토그래퍼
- 곽기곤
- 헤어&메이크업
- 임해경
- 스타일리스트
- 김현지(B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