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아이템을 광적으로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그저 좋아하기 때문에 수집하고, 그로 인해 순수하게 행복한 사람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컬렉터 혹은 ‘덕후’라고 부른다.
펑크 이즈 낫 데드
바조우(99% IS- 디자이너)
모으는 것 | 라이더 재킷
나를 기억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늘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고 있으니까. 외모에서 알아챌 수 있듯 나는 펑크 음악을 사랑하는 패션 디자이너다. 펑크 음악의 상징인 라이더 재킷을 100벌 정도(내 브랜드는 제외하고도) 가지고 있다. 그저 수량만 많은 것이 아니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레어한 제품을 다수 소유하고 있다. 라이더 재킷의 대명사인 루이스 레더의 60~70년대 제품은 역으로 영국 루이스 레더에서 빌려달라고 연락이 올 정도다. 지금은 없어진 70~80년대 브랜드인 울프 레더스(얼마 전 셀린에서 출시한 라이더 재킷의 베이스가 된 제품이다), 마스코트, 라로카 등의 원본도 소장하고 있다. 브랜드는 없지만 옛날에 펑크 밴드들이 즐겨 입던 제품도 색깔별로 4~5개씩 가지고 있다.
나는 다른 컬렉터들과는 조금 다르다. 직접 입고, 뜯어보고, 커스텀해야 직성이 풀린다. 특별히 맞춤으로 제작해주는 고가의 루이스 레더조차 상징 같은 가슴의 태그를 제거해버린다. 안감을 다 해체해서 각각의 공정을 보고 좋은 방식은 내 브랜드에 도입하기도 한다. 물론 고이 모셔두는 것도 있지만. 맨 처음 입은 건 아버지의 라이더 재킷으로 잘라서 베스트로 만들었다. 라이더 재킷을 처음 구입한 시점은 중 2 때 미국에서다. 펑크 숍에서 스파이크 헤어를 한 서양인을 처음 보고 문화 충격과 함께 라이더 재킷을 구매했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비싼 것은 아마도 루이스 레더의 빈티지 제품으로 가격은 600~700만원 정도. 그 외에도 가격을 책정하기 어려운 제품을 많이 가지고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지금의 브랜드를 하기 전 맬컴 매클래런과 만들었던 세디너리즈(섹스 피스톨즈 보컬 조니 로턴이 입어서 유명해졌다)라는 브랜드가 있다. 그 옷의 프린트를 해주던 할아버지를 영국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당시 가지고 있던 빈티지 라이더 재킷들 안감에 전부 그 프린트를 받아버리기도 했다.
메두사를
사랑한 남자
도날드 케이(나띵앤나띵 이발사)
모으는 것 | 빈티지 베르사체 액세서리
나는 이발사다. 홍대에 위치한 바버샵 ‘나띵앤나띵(Nothing N Nothing)’에서 남자들의 머리를 만지고, 펑크 밴드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내다. 수많은 타투, 리젠트 헤어스타일 등 강렬한 외모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젠틀한 남자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바로 90년대 출시된 빈티지 베르사체 액세서리들. 선글라스, 반지, 목걸이, 팔찌, 넥타이 등 다양한 종류를 모은다. 최근엔 레트로 열풍으로 옛날 감성이 느껴지는 물건이 많이 출시되고 있어 그런 제품도 함께 수집하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건 여러 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성격이라 촬영장에 가져온 것보다 더 많은 제품이 집에 있다. 모두 합치면 대략 70개 정도. 사실 집에 있는 것과 촬영장에 가져온 것보다 서울 길바닥에 잃어버린 게 더 많다.
처음 베르사체를 알게 된 것은 또래 친구들이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스포츠 브랜드에 목을 매던 15살 때다. 그리스 신화에 관심이 많던 귀여운 아이는 ‘모습을 보는 자는 너무도 무서워서 피가 얼어붙어 돌로 변해버린다’는 메두사의 전설을 좋아했고, 메두사를 모티프로 하는 베르사체의 로고가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어렸을 적부터 금을 좋아했던 다소 어른스러운 취향 덕분에 금(도금)을 사용한 디자인이 많았던 베르사체와는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빈티지 베르사체 중고 제품은 해외 경매 사이트를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지만 기왕이면 데드 스탁(옛날에 출시됐지만 새 상품인 상태)으로 구하려고 하는 편이다. 데드 스탁은 구하기가 힘들고 매물이 많지 않아 1년 이상 찾아보고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가 써서 유명한 지아니 베르사체의 MOD 424 같은 제품은 가격도 중고의 3~4배 정도 한다. 가장 비싸게 구입한 선글라스는 1500달러. 베르사체 선글라스는 클리어 모델이 희귀성이 높다. 그중 421
클리어라는 제품을 구매했는데 얼마 후 에이셉 로키의 ‘Fashion Killa’ 뮤직비디오에서 리한나가 쓰고 나와 단숨에 가격이 오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난 리셀러가 아니기 때문에 프리미엄이 붙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빈티지의 매력은 당연히 희소성이다. 좋아하고 찾지 않으면 구하기 어렵다는 것, 정말 그 시대를 좋아해야 가능한 일이다. 가지고 싶은 것들은 이미 많이 가졌다. 꼭 해보고 싶은 것은 지아니 베르사체와의 악수.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돌아와요,
커트 코베인
구영준(스트리트 포토그래퍼)
모으는 것 | 커트 코베인 선글라스
최근 한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무한도전 가요제’를 보는데 지드래곤의 스타일이 나랑 비슷했다고. 무슨 뜻인지 단번
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드래곤이 태양, 광희와 함께 간 노래방에서 쓴 하얀색 선글라스 때문일 것이다. 나는 커트 코베인의 상징과도 같은 캐츠아이 선글라스를 모은다. 모은다기보다는 마음에 들면 생각 없이 계속 사다 보니 어느덧 40개 정도가 됐다. 선글라스뿐만 아니라 커트 코베인에 관련된 거라면 종류를 막론하고 일단 구매하고 본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커트 코베인을 좋아하니까. 다양한 브랜드에서 커트 코베인 스타일의 선글라스를 출시하고 있지만 가장 선호하고 아끼는 것은 넘버나인 2003 S/S 컬렉션 선글라스다. 넘버나인이라는 브랜드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디자이너 다히로 미야시타가 록, 펑크 음악, 커트 코베인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그리고 정확하게 커트 코베인을 이해하고 디자인으로 구현한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구입하는 경로는 다양하다. 전 세계로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일을 하기에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발견하기도 하고, 이베이 경매를 통해 찾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엔 검색도 구매도 쉽지가 않다. 빅뱅의 ‘베베’ 뮤직비디오와 지드래곤이나 해외 뮤지션들이 착용하면서 가장 핫한 아이템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아크네와 생로랑 등에서 출시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구하기 어려운 것은 브랜드에 상관없이 하얀색 프레임으로 된 제품들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작년 런던에서 미국의 유명 힙합 뮤지션인 위즈 칼리파가 흰색을 구매하고 싶다는 요청을 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최근엔 국내 연예인들에게서도 간접적으로 연락이 왔지만 역시 거절했다. 그 어떤 구매 요청이 와도 절대 안팔 거니까 연락하지 마!
어차피
인생은 도박
손희락(리타 디렉터)
모으는 것 | 트럼프 카드
그때부터였다. 카드에 손을 댄 건. 내가 모으는 것은 포커나 홀덤 같은 게임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트럼프 카드다. 처음엔 그저 명절이나 친구들끼리 모이게 되면 잔돈으로 카드 게임을 하는 정도였다. 어쩌다 한 번이 일주일에 두세 번이 되면서 자연스레 트럼프 카드에 관심이 생겼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이라 해외에 나갔을 때마다 눈에 띄는 카드를 구해 친구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그때마다 내 것도 함께 구매하기 시작했더니 어느 순간 불어나 있었다. 친구들 기념품을 사다 주던 내가 이제는 친구들이 여행 가면 선물로 하나씩 사다 주면서 오히려 받는 입장이 됐다. 모두 꺼내서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가지고 있는 것은 대략 50개 정도. 개중에는 두 개씩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하나는 소장용, 하나는 플레이용으로 구입한 경우도 있고, 무턱대고 사다가 있는지 모르고 같은 걸 또 산 것도 몇 있다. 사실 모으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이렇게 컬렉터로 소개된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뭐 모으는 건 사실이니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건, 본가에 있는 카드는 가져오지 못했고 사무실에 있는 것만 ‘가볍게’ 촬영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카테고리를 한정 짓지 않고 예쁘면 눈에 띄는 대로 구입하는 편이다. 특정한 카드를 모으기 위해서 시작한 취미가 아니라 실제로 카드 게임을 즐기다가 시작된 거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다른 아이템들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충동구매를 해도 경제적으로 별 무리는 가지 않는다. 물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모으는 것은 아니고 나름의 취향은 존재한다. 두산 매거진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엘지 트윈스의 광팬이며 사회인 야구단도 하고 있을 정도의 야구광이라 야구와 관련된 것이라면 환장한다. 뉴욕 사는 친구가 MLB와 뉴에라의 카드를 선물해줬을땐 얼마나 기뻤던지. 야구 외에도 좀비나 핀업걸 같은 올드스쿨 스타일에도 관심이 많다. 이렇게 다양한 카드를 모으지만 대부분은 관상용이다. 실제 플레이할 때는 종이 카드로 게임을 하다가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카드로 교환한다. ‘손장난 방지 차원’으로 그렇게들 하는데 우리가 그 정도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운동화, 안경, 부츠 등 지금도 모으고 있고 중간에 포기한 것도 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렇게 뭔가를 수집할 것 같은데…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려나?
알라딘의
난로 그리고 랜턴
제이애스(휴먼트리 디렉터)
모으는 것 | 빈티지 랜턴&난로
이름은 김종선, 보통 제이애스(Jayass)라고들 부른다. 내가 모으는 것은 두 가지. 영국제 알라딘 석유난로와 미국제 콜맨의 가솔린 랜턴이다.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으니 설명을 하자면, 알라딘 석유난로는 1950년대에 영국에서 생산된 제품이다. 한국에도 1970~80년대 잠깐 수입되었다가 영국에서 더 이상 생산을 하지 않아 단종됐다. 완전 연소를 통해 파란 불빛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블루 플레임 히터(Blue Flame Heater)라고도 불리는, 난리 나는 ‘형님’이다. 콜맨은 1900년에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세워진 브랜드로 세계 최초로 가정용 랜턴을 개발한 회사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캠핑용품을 만들어내면서 지금은 캠핑 브랜드 중 가장 인정받는 브랜드로 손꼽힌다. 내가 모으는 랜턴은 가장 대표적인 제품으로 대부분 1950~60년대 200A 빈티지 모델이다. 알라딘 난로는 11개, 콜맨 랜턴은 30개 정도 가지고 있다. 모으게 된 계기는 사실 둘 다 필요에 의해서였다. 지금 사무실 전력이 너무 약해서 전기난로를 사용하면 사무실 전기가 나가기 때문에 석유난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래 뭐 하나를 하면 또 끝도 없이 빠지는 편이라 난로의 끝판왕이 영국제 알라딘 난로라는 걸 알게 됐고 파란 불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생김새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빈티지 스타일이라 안 끌릴 수가 없었다. 처음에 이베이에서 하나를 샀는데 이게 생각보다 따뜻하지 않았다. 그래서 옥션을 뒤져서 하나를 더 샀다. 이후 지금 동대문에 DDP가 생기기 전에 풍물시장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거기서 알라딘 난로를 또 발견해버리고 말았다. 당시에 30만원 정도 하는 걸 말도 안 되는 가격 4만원에 사고, 서울에 있는 시장 다 돌아다니다가 황학동 시장에서는 3만원에 샀다. 그랬더니 이게 병처럼 도져서 이베이 붙잡고 하나둘 사다 보니 이지경이 된 거다. 콜맨랜턴도 마찬가지다. 캠핑에 꽂혀서 다니던 시절에 처음엔 배터리로 사용하는 랜턴을 샀는데 이게 약해서 잘 보이지도 않더라. 다시 한번 파고들던 중 가솔린 랜턴이 밝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콜맨 랜턴을 만났고 이베이에서 처음에 6개를 한꺼번에 파는 사람이 있길래 흥정해서 전부 사버렸다. 이게 시리즈가 엄청 많다. 글로브(유리)가 동그란 것 부터 마름모, 수직, 빨간색, 녹색, 파란색 등등 너무 다양한거다. 별수 없이 다 샀다.
- 에디터
- 정환욱
- 포토그래퍼
- 박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