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와 한 남자가 있다. 세상의 많은 이야기는 이 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여기, 전도연과 공유가 있다.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을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이해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까불지 말자라고 속으로 생각했죠. 나름 디테일 하면 나도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누나가 연기할 때는 그걸 쪼개고 쪼개고 그러고 들어가니까. 섬세하다라고 표현하기엔 그 말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상대 배우 공유에게 <남과 여>를 촬영한 몇 달은 전도연이라는 모닥불 곁에 앉은 시간이었다. 이 배우는 언제나 자신을 끝까지 태우며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충만하고 황홀한, 뜨겁고 위험한 기운을 전한다.
‘너무 연인같이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고 오늘 촬영에 대한 의견을 냈다.
좀 쿨한 남녀면 어떨까 싶었다. 아주 끈적끈적하기보다는 친구처럼 보이면 좋을 것 같았다. 연인의 느낌은 흔하니까.
하지만 두 사람이 주연한 영화 <남과 여>는 꽤 끈적끈적한 연인의 이야기인 걸로 알고 있다.
내년 초에 개봉하지만 시나리오 자체는 오래된 프로젝트였다. <하녀>를 찍고 있을 때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좋아서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는데, 시기적으로 맞지 않아 고사하기도 하고 몇 번의 번복이 있었다. 봄 영화사 오정완 대표님이 “도저히 너 아니면 안 되겠다”고 해서 뭔가 필연적으로 하게 됐다. 내가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윤기 감독과 이전에 함께한 <멋진 하루>를 좋아하기도 하고. 감독님이 감정을 다루는 데 있어 무척 건조한 분이다. 그런 건조함이 <남과 여>에 묻어나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당신은 건조한 사람이 결코 아닌데.
건조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감독님의 성향이 그러면 표현에 영향을 받게 된다. 감독 역시 자신의 건조함과 습도 차가 있는 배우를 만나면 연출에서 보완되는 작용이 있을 것이다. 배우와 감독은 서로의 성향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변신이라고 하면 흔히 장르적인 선택을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부분이다. 인물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보고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게 연기 변신이다.
<밀양>과 <해피엔드>를 두고 배우로서 도약하게 해준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영화는 당신에게 무엇을 남겼나?
<남과 여>도 나에게는 도전이었다. 이 나이에 해보는 도전? (웃음) 사실 그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의 연장선상이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혹은 받고 싶은 사랑 이야기. 사랑은 받고 싶을 때도 있고 하고 싶을 때도 있지 않나. 그런 부분들도 배우로서는 작품 고를 때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나 인물에 대해 환상도 가질 수 있고, 물론 촬영을 시작하게 되면 환상보다는 현실적인 것에 가깝게 되지만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심쿵’하고 설레기도 하고 그런 점들이 있었다.
할리우드에서는 여성의 역할이 점점 줄어드는 것에 대해 영향력 있는 여배우들이 이슈화하는 움직임이 있다. 한국에서 느끼는 답답함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 갑갑함은 오래됐다. 할리우드의 이야기를 들으면 비단 한국 영화계의 문제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쪽이 조금 더 폭넓은 선택을 할 기회가 있지 않나 하는 부러움도 있다. 예를 들어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샤를리즈 테론을 보면서 너무 부러웠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잖나. 똑같이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출연할 만한 영화의 편수가 적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서 탄생하는 빛나는 작품이 있는 것 같다.
자기 분야에서의 성취와 영광을 이미 크게 이룬 사람인데 여전히 나아가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일단 원동력은 애정인 거 같다. 끊임없는 사랑. 나 자신에 대해 부족함을 메우고자 하는 노력, 분주함 이런 것 아닐까.
어딜 가든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어떤 느낌인가?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그전에는 불편하고, 뭔가 극복해야 할 거 같았다. 이제 그 안에서 편안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거 같다. 아침에 여기 오면서 오랜만에 윤여정 선생님과 통화했다. “너는 그러니까, 그 ‘칸의 여왕’을 빨리 벗어나야 돼” 하시더라. “저도 벗어나고 싶은데 그럼 아카데미에서 상이라도 받아야 돼요?” 하니까 “너 영어 못하는 거 다 안다, 어디 홍콩쯤으루 해서 아시아의 여왕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러셔서 아침부터 크게 웃었다. 그런데 상 받은 게 잊혀질 만하니까 또 심사위원으로 초대를 받아 ‘칸이 사랑하는 여자’ 이렇게 다시 회자되더라(웃음).
사랑받는 건 사실이니까.
존중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칸에 가면 그곳에서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존중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하다.
당신의 언어로 요약하자면, <남과 여>는 어떤 사랑 이야기인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판타지였지만, 역시 쓴맛을 느끼게 하는 현실적인 사랑이기도 하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해피엔딩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상대방을 안심시켜주는 배우예요. 내가 뭘 해도 괜찮게끔 만들어주거든요. 평상시의 공유는 아우트라인이 분명한 친구지만 연기적으로는 뭘 해도 다 받아줘요.”
오래 알아온 동생과 첫 영화를 함께 찍은 전도연은, 자신이 불이라면 공유는 물이라고 말했다. 오늘도 이 배우는 부드럽게 끌어안고, 촉촉하게 적시고, 뜨거운 것을 식히고, 고요하게 흘러간다.
영화 <남과 여>는 여자 주인공의 캐스팅이 먼저 정해진 프로젝트라고 들었다.
같은 소속사다 보니까 이 영화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나에게 시나리오가 들어왔다고 했을 때 기뻤다. 멜로도, 도연 누나와의 영화도 하고 싶었기에 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도연과 함께 한다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나? 일가를 이룬 사람인데.
부담스러웠다면 안 했겠지.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단순했고, 실제로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겁이 나긴 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잘해야 하니까.
<용의자> 이후 꽤 오랜만의 영화 같다.
어쩌다 보니 띄엄띄엄 해왔지만 작품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젊음은 머물러 있는 게 아닌데 보다 많은 사람이 날 보고 싶어 할 때 많은 작품을 남겨놓으면 그게 재산이니까.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가 작아서일 수도 있지만, 하나가 끝나면 그걸 매듭 짓고 다음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올해는 그 원칙을 깨고 늘 영화 현장에 있었다. 내 연기 인생에 두 작품을 미리 찍어놓고 기다려본 건 처음이다. <남과 여> 끝난 다음에는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부산행>을 찍었고, 10월 중순부터는 중국에서 <밀정>을 촬영한다. 내가 양띠인데 이상하게 양의 해인 올해 운이나 타이밍이 자연스럽게 잘 맞았다. 그런데 연달아 찍고 나서 피드백이 없으니까 좀 심심하기도 하다. 이제는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지더라.
반응이 궁금하다는 건 결과물에 자신이 있다는 뜻 같다.
그런 개념과는 또 다른 것 같다. 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 다르니 내 연기든 나란 배우한테 느끼는 것이든 호불호는 평생 나뉠 것이다. 영화의 결과는 내가 좌우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다만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세 작품째 연이어 촬영하기 직전이 되니까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쉬고 싶다는 느낌도 받았다. 내가 일개미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전도연 씨는 거꾸로, 영화 촬영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 지낼 때 오히려 소진되는 게 있다고 하더라.
새로운 영화에 들어갈 때 환경이며 사람들이 바뀌는 설렘과 미묘한 긴장에서 에너지를 얻는 배우도 있는데 나는 그런 타입은 아니다. 일상에서 뭔가 보충하고 돌아가는 게 좋다. 너무 일만 하면 오히려 공허하다.
<남과 여>를 촬영하며 전도연은 당신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하더라. 당신은 어땠나?
멋진 선배, 우리나라 최고의 여배우, 이렇게 표면적으로 알아 왔다면 작품을 하면서 비로소 전도연이라는 사람을 이해한 것 같다. 물론 다 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이해하는 시간으로 의미가 있었다. 석 달이라는 시간 동안 여배우를, 그리고 선배를 내가 케어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도 있었다. 감정의 골이 깊은 멜로 영화기도 하고, 이 사람의 필모그래피나 이 영화의 완성도에 내가 누가 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런 여러 가지 심리적 압박이 있었지만 이 영화를 하고 얻은 것 중에, 그 시간이 가장 소중했다.
성인의 사랑 이야기는 처음인 것 같다. 표현의 수위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액션신보다 베드신이 더 힘들다. 에너지 소모량도 많고 사전에 액션의 합을 맞추듯 서로 간의 동선에 대해서 테크닉적으로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상대 배우가 도연 누나였고, 나를 믿어주는 게 느껴졌기 때문에 제대로 안 할 수 없었다. 서로 좋은 텐션을 주고 받은 것 같다. 연기는 절대 혼자 하는 게 아니라서 나는 우연의 미학같은 걸 믿는다. 배우들이 자기 방식대로 서로 좋은 기운을 던져주고 받을 때 내가 생각한 이상의 아름다운 것이 나온다. 그게 내가 보는 영화, 연기에 대한 큰 부분이다.
야구팬으로 알고 있다. 만약에 당신이 야구선수라면 어느 선수의 인생을 살고 싶나?
오늘 받은 질문 중 가장 어려운데… (웃음) 아버지가 야구를 하셨다. 초등학교 때, 지금 현직 감독, 코치이신 아버지 지인들이 집에 와서 내 발목이나 어깨 같은 데를 잡아보면서 “투수야, 투수” 이런 말씀도 많이 하시고. 사실 투수가 배우와 많이 비슷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마운드에서 혼자 외로운 싸움을 긴 시간 동안 펼치니까. 그래서 투수가 위대한 거고, 무너지지 않게끔 모든 선수들이 격려한다. 이닝이 끝나고 들어갈 때 응원해주고 어깨 두드려주고. 그런데 나는 배우를 15년 동안 해왔으니까, 그런 투수를 위로해주는 야수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도 배우로서 주변 스태프들에게 늘 도움을 받아왔으니 이제 다른 포지션으로 도움을 주면서. 빨리 쾌유해서 재활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금 부상 중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강정호 선수로 하겠다.
핀란드 하얀 설원 속에서 낯설지만, 뜨거운 끌림에 빠져드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영화 <남과 여>. 더블유 2015년 11월호 커버를 장식하기도 했던 두 주인공, 전도연과 공유가 활약한 한겨울의 로맨스 영화 예매권을 여러분에게 선물합니다. 화보와 인터뷰 후기를 아래 댓글에 남기고, 함께 보고 싶은 친구를 태그해주세요. 추첨을 통해 영화 <남과 여> 예매권 1인 2매를 증정합니다.
이벤트 일정 : 2월 19일(금) ~ 24일(수) 오전
발표 : 24(수) 오후, 10명 추첨(1인 2매, 총 20명)
참여 방법 : 아래 댓글에 화보, 인터뷰 후기를 남기고 함께 보고 싶은 친구 @태그하기
- 에디터
- 황선우, 박연경
- 포토그래퍼
- 홍장현
- 모델
- 전도연, 공유
- 스타일리스트
- 강이슬(전도연), 이혜영(공유)
- 헤어
- 이혜영 @Aveda(전도연), 임철우 @Aura Beauty(공유)
- 메이크업
- 김지현(전도연), 강윤진 @Aura Beauty(공유)
- 세트 스타일리스트
- 유여정
- 어시스턴트
- 임다혜, 장진영, 채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