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스윙, 페미닌한 르 스모킹, 보이시 펑크,페티시 스트리트, 포멀 에스닉, 90년대 그런지. 이번 시즌을 이끌어갈 키 트렌드에 반해버린 <W Korea> 에디터들이 제안하는 스타일링 아이디어가 펼쳐진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접어두고 지극히 현실 가능한 아이템으로만 골랐다.
FORMAL ETHNIC
나는 달마다 독자들에게 유행과 스타일링을 운운하고, 쇼핑을 독려한다. 그런데 만약 독자가 내 실체를 본다면 이렇게 일갈할지도 모를 일 “그러는 너는?” 아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으리라. 도전 정신이 결핍된 채 비슷한 스타일에 안주한 의생활은 10여 년 전과 비교해도 별다른 변화나 진전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좋게 말해 캐주얼한 매니시 룩이고 실상은 그냥 보이는 대로 꿰어 입은 하숙생 룩이랄까. 어쨌든 이 칼럼을 계기로 새삼스레 성찰의 시간을 가지던 중 전광석화처럼 내 마음을 건드린 건 이번 시즌 드리스 반 노튼, 프로엔자 스쿨러, 타쿤 등의 컬렉션을 지배한 모던 에스닉 룩이었다. 하지만 물담배 냄새 자욱한 바에서 마주칠 법한, 홍대 앞 보헤미안 걸의 차림새를 오마주로 삼을 생각은 없다. 여의도 증권가를 캣워킹해도 어색하지 않을, 포멀하고 여성스러운 에스닉 룩이 목표. 그렇다면 프린트는 이국적이되 실루엣은 우아한 펜슬 스커트에 회화적인 무늬의 스카프를 톱처럼 두르고 퍼 베스트를 더하면 어떨까? 이를 담백하게 중화시켜줄 지원군으론 간결하고 넉넉한 테일러드 재킷이 제격일 듯. 만약 주얼리를 매치한다면 있는 듯 없는 듯 작고 미니멀한 것이어야 옳다. 에스닉 룩이라고 해서 치렁치렁 주얼리를 더하는 건? 과유불급! – 송선민
SWING MY BABY
루루의 ‘To Sir With Love’라는 OST 수록곡으로 유명한 영국 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1967)>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 교사가 “너희들의 그 옷차림은 반항하기 위한 거 아냐?”라고 묻자 한 학생이 일어나 “이건 그냥 새로운 패션일 뿐이에요”라고 차분히 답한다. 그 장면에서 학생들의 옷은 모즈 룩(Mod’s Look)이었다. 어머니 세대가 입었던, 허리가 잘록하고 풍성한 스커트를 거부한 60년대의 젊은 세대는 짧고 선이 간결하며 움직이기 편하면서도 현란한 색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다. 사실, 60년대 룩은 패션 복식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트위기, 비틀스, 앤디 워홀의 팩토리. 이 세 가지만 읊어도 누구나 특정 스타일을 떠올릴 만큼 친근하고 쉬운 룩이니까. 그 장점을 2011년의 영민한 디자이너들이 놓칠 리 없다. 물론 60년대는 한두 시즌이 멀다 하고 또 다시 떠오르는 대표적인 재활용도 1순위 테마이긴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좀 더 하이패션적인 코드가 더해진 것이 특징. 그중에서도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코쿤 실루엣이나 앙드레 쿠레주의 미래적인 직선 실루엣을 고급스러운 소재에 적용한 코트 드레스가 키 아이템이다. 허리선은 골반 즈음으로 느슨하게 내린 것, 여기에 간결한 버클이 달린 벨트로 낮은 허리선을 강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참고로 60년대 리바이벌에 집중한 대표 레이블인 프라다와 버버리 프로섬, 이브 생 로랑 등의 컬렉션에서는 킬티 텅 슈즈와 각이 잘 잡힌 모자를 함께 스타일링했다는 것도 쏠쏠히 써먹을 만한 팁이 될 것이다. – 최유경
90’S GRUNGE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가고 햇살이 비치면 투명하던 이슬도 한순간에 말라버리지’라고 김광석은 노래했다. 잔잔한 선율만으로 마음을 울리는 그의 감성에는 자극적이고 천박하게만 들리는 요즘 음악에 결여된 90년대의 낭만이 존재한다. 90년대에 사춘기를 지낸 알투자라도 조니 뎁 옆에서 새치름하게 웃던 90년대 케이트 모스의 사진을 다시 꺼내 봤고, (그를 비롯한) 90년대 키즈들을 요동치게 한 그런지 룩을 오마주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요즘 여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캐치할 수 있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시크’가 아니라 ‘넌셜런스(Nonchalance)’다. 후자에는 전자에는 없는 우아함이라는 코드가 묻어 있다. 투박한 사파리 재킷에 갈리아노 식의 글래머러스한 슬립 드레스를 매치해 하이엔드와 스트리트의 함량을 조율하는 식이다. 조금 더 웨어러블하게 접근하려면? 사냥개처럼 사나운 이빨 같은 버클이 달린 클러치나 반짝임으로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코스튬 주얼리, 레이스업 스케이트 부티 같은 트렌디 아이템을 더해주면 된다. – 정진아
CHEERFUL BOY
남성과 여성의 경계가 허물어진 혼합과 어울림의 시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을 더욱 자유롭게 했다. 관례를 뛰어넘어 계속해서 성의 개념을 깨고 있는 앤드로지니 스타일은 하이패션의 범주 안으로 흡수된 스트리트 문화와 함께 강력한 트렌드로 자리매김했으며, 이번 시즌에도 그 존재감이 무척 선명하다. 이 중성의 매력이 특히 반가운 이유는 이번 시즌 돌체&가바나의 룩처럼 남자 모델로 착각할 만큼 남성적인 아이템으로 무장했지만 옷을 통해 보여주는 그 성격이 명랑 쾌활하기 때문. 중절모와 넓은 라펠의 테일러드 재킷, 흰색 셔츠에 서스펜더를 하고 옥스퍼드 슈즈를 신은 채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유니크한 액세서리, 알록달록한 색감, 별 프린트와 스팽글 장식이 더해지니 어쩐지 뒤돌아서 씨익 웃을 것 같은 위트와 여유가 느껴진다. 이처럼 남성적인 딱딱한 수트도 노랑, 파랑, 주황 등 애시드한 색감의 재킷, 앙증맞은 프린트의 팬츠, 캐주얼한 모자, 컬러풀한 양말, 큼지막한 클러치 등 몇 가지 요소를 더하면 유쾌하고 쿨한 룩으로 변신하니, 이러한 고정관념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즐겁기 그지없다. – 김한슬
STREET POWER
하이패션이 스트리트 패션에서 영향을 받아온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 만남은 더욱 잦아지고 그 방법은 더욱 과감해지고 있다. 이번 시즌 런웨이에는 특히 야구 점퍼, 야구 모자, 워커, 스니커즈 등 스트리트 패션에서 영감 받은 젊고 신선한 아이템들이 목격되었는데 이를 가장 자유롭고 세련되게 표현한 이는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였다. 그는 모델들에게 펜슬 스커트에 스틸레토 힐을 매치하고 야구 점퍼와 야구 모자를 더했다. 또 너드 스타일의 검은 뿔테 안경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살려주었는데 양면성을 지닌 요소들의 조화는 몹시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미우미우 컬렉션에서는 단정한 스커트 룩에 야구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오버사이즈 클러치를 마치 럭비공 들 듯 옆구리에 끼게 하여 스트리트적 요소와 스포티즘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실제로 하이 스트리트 패션을 연출하려면 이 두 가지 요소를 자연스럽게 조화시키는 것이 포인트! 현란한 프린트 티셔츠 위에 심플한 야구 점퍼를 매치하고 펜슬 스커트와 스틸레토 힐을 신은 후 체인이나 스터드 같은 터프한 액세서리를 가미하면 쿨한 룩이 완성될 것이다. 또 손목, 백, 혹은 머리에 연출해도 감각적인 프린트 스카프는 룩에 감도를 더해줄 것이다. – 김석원
YVES LE SMOKING
이브 생 로랑이 남긴 위대한 유산인 르 스모킹 룩엔 아담의 옷을 탐한 이브의 사회적이고 성적인 욕망, 즉 관능미가 숨어 있다. 비앙카 재거가 자신의 결혼식에 이브 생 로랑이 만든 흰색 테일러드 재킷을 입은 것처럼(단, 큰 모자를 매치하고 재킷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턱시도 재킷엔 카멜레온 같은 매력이 있다. 그러니 올가을 내 계획은 이렇다. 우선, 검은색 턱시도 재킷과 시가렛 팬츠를 구입할 것. 이때 이왕이면 재킷은 엉덩이를 살짝 가리는 길이로, 팬츠는 발목이 드러나는 길이로 선택한다. 그리고 데이타임 룩으로 연출할 때는 흰색 블라우스나 루스한 실루엣의 톱과 함께 연출하고 각진 클러치나 브리프케이스를 들 것. 그리고 저녁에 특별한 모임이나 파티가 있다면 이너를 스파클링한 시퀸 장식 톱으로 대체하고 재킷의 버튼을 오픈한 채 연출한다. 여기에 뱀피 클러치와 주얼 장식의 스트랩 샌들, 볼드한 코스튬 주얼리를 더하면 그 어떤 드레스보다 글래머러스한 이브닝 룩을 연출할 수 있다. 이처럼 활용도 만점에 매력까지 업그레이드해주는 르 스모킹 룩을 위해 얼른 옷장 한 켠을 비워둬야겠다. – 박연경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정진아
- 포토그래퍼
- 김범경
- 아트 디자이너
- illust by 박하나
- 스탭
- 어시스턴트/ 강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