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모두가 주목하는 2등. 존박이라는 스타 탄생의 스토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케이블이 시청률 10%를 넘기는 건 기적이라는 말들을 할 때, 아예 20% 근처까지 가버렸다. 아무리 무관한 사람이라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슈퍼스타 K>가 도대체 뭐야? 존박이, 대체 누구야? 88년생 스물셋인 이 청년은 미국 시카고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아카펠라 그룹에서 노래했으며 아메리칸 아이돌 최근 시즌에서 톱 20에 들었다. <슈퍼스타 K 2>에서는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 덕분에 여성 시청자들의 전화투표를 많이 받았다. 쇼가 끝나기도 전에 유명해졌다. 그만큼 흠도 많이 잡혔다. 우리말에 서툴러 한글 가사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여자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바람둥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사람들은 머리 크기까지 트집을 잡았다. 방송에서도 착하게 굴기만 했거니와, 존박은 인터뷰에서도 모범생다운 대답만 내놓았다. 그런데 이 싱거운 사람이 재미있다. 그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람들이 스타에 대해 열망하고 기대하는 바가 가감 없이 투사되기 때문이다. 존박은 2명이 살아남은 마지막 회에서 패자가 되었다. 1등의 이름으로는 ‘간절함으로는 내내 최고’라는 평을 받은 허각이 호명되었다. 그 곁에서 존박은 한 점 그늘도 드리우지 않은 밝은 얼굴로 포옹하고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우승자의 앙코르 곡에 누가 청하지도 않은 화음을 근사하게 넣었다. 남극 탐험에서 아문젠에게 패배한 스콧 이후로 가장 신사적인 2등이었다. 인터뷰 호흡을 고르며 얼음을 깨는 시간, 존박이라는 이름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첫 인터넷 기사를 그에게 읽어주었다. ‘첫눈 오는 날 같이 와인 마시고 싶은 남자 1위’로 그가 뽑혔다는 기사였다. 여자 1위는 고현정, 남자 2위는 비였다. 존박은 멍하니 눈을 꿈뻑이며 되물었다. “제가요? 전 연예인도 아닌데요?” 자기가 어떤 세계에 발을 들였는지도 모르는 채 이미 그는 레일 위를 걷고 있다. 쇼는 끝났고 이제 누구도 점수 매겨주지 않는 혹독한 세상에서 스스로 슈퍼스타의 가능성을 증명해야 할 시간이다.
연습과 경쟁으로 치열하게 보낸 몇 달이 지났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방송 할 때보다는 훨씬 여유 있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지 시간이나 몸의 여유는 아니다. 스케줄은 그때보다 더 바쁘다. 이렇게 화보도 찍어보고, TV나 라디오에도 출연하고. 우리(<슈퍼스타 K 2> 출연진들)가 함께 노래하는 영상이 편집되어 인터넷에 뜨는 게 신기하다. 같이 화음 넣고 만드는 노래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게 기쁘다. 내가 아카펠라 그룹 출신이라서인지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노래할 때가 가장 재미있다.
탈락했을 때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우승자 허각에게 화음을 넣어주며 함께 노래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지만 져서 속상한 마음이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 같다.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고 나도 그럴 거라 예상했다. 끝나고 각이 형이 상을 타면 아쉽겠지, 생각 했는데 전혀 안 그래서 신기했다. 생각해보니까 1등 안 된 게 나에게 다행이다. 1등 했으면 부담이 엄청 컸을 거 같다.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전체적인 그림이나 메시지가 있는데, 각이 형이 1등 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다.
존박은 어차피 1등을 안 해도 스타가 될 거니까, 라고 말하는 목소리들이 많았다.
1등을 안 해도 스타가 될 수 있다기보다. 1등을 안 했기 때문에 더 주목받는 거 같다. 삼촌이 그러시더라. 네가 2등 해서 다행히 안티들이 거의 다 없어졌다고(웃음). 어쩌면 각이 형은 부담이나 기대를 더 크게 느끼고 있을 텐데 나는 형보다는 편하다. 지금 활동하는 기회도 생기고.
허각이 우승할 걸 알고 있었다, 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
각이 형은 처음에 우승 후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장재인, 김지수, 존박이라고들 했다. 그런데 6명, 4명 남으면서부터 좋은 무대를 참 많이 보여줬다. 첫째로 노래 실력 하나는 누가 봐도 여러 명 중에 가장 앞섰고, 두 번째는 형의 인간적인 매력 그리고 스토리다. 전체적인 그림을 봤을 때 형이 1등을 하는 게 가장 완벽했다.
결국 1, 2등을 한 두 사람이 본선 때부터 친해서 화제였다. 외모나 출신지, 환경이 다른 둘을 가깝게 해준 건 무엇이었나?
나는 각이 형의 목소리가 좋았다. 노래를 듣고 이 사람 노래 진짜 잘한다, 그리고 노래하는 스타일이 나랑 잘 맞다고 생각했다. 그게 있어서 함께 노래를 하고 싶었다. 형도 내 음악성이 좋다고 말해줬고, 나를 팀원으로 선택했다. 같이 노래하면서 서로 리스펙트가 생겼다. 음악을 통해 서로를 인정하고 마음을 나눈 거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농담의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 어떤 기분이었나?
‘슈퍼스타 게이’? (웃음) 내가 미국 정서 때문에 스킨십이 많아서 그런 거 같다. 남자건 여자건 잘 포옹하고 감싸주고 그런 스타일이다. 톱 11 모두들 서로 축하하거나 위로할 때 잘 껴안는다. 그건 남자 여자를 이성적으로 보면 그렇게 못할 거다. 우리는 합숙하면서 열한 명이 가족처럼 지내니까 여자애들이 여자처럼 안 보인다.
마지막 무대에서 부를 자유곡을 놓고 여러 가지로 고민했을 텐데 ‘취중 진담’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여성 팬들을 너무 의식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가요를 잘 모르고 그래서 노래를 정하기 힘들었다. 곡을 찾는 데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몰랐고, 추천받은 리스트 가운데서 많이 들어보고 정했다. 유명한 곡이고, 가사가 멋있고, 내 스타일이랑 잘 맞는 거 같아서. 중저음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노래로 고른 거다.
영어 가사가 더 편하게 느껴지지 않나? 팝송을 부를 수도 있을 텐데.
자유곡 규정이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팝송을 불러도 되는 거였는지 모르겠다. 혹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해도 팝송을 안 했을 거다. 많이 알고 쉽게 소화할 수 있지만 가요를 부르고 싶었다. 내가 한국에 온 건 우리말로 노래 부르기 위해서니까. 편하다고 팝을 부르면 내가 더 잘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가요로 승부를 걸고 싶었다.
<슈퍼스타 K 2> 를 겪으면서 자신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뭐라고 생각하나?
자신감. 자신감이 생기는 이유가, 그냥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사랑받기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 동료들, 선배님들, 선생님들, 피디님들, 가족, 가장 중요한 팬들…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았다. 진심으로 내 노래를 좋아해주는 순간들을 보면서 감사하게 됐다. 그게 나에게는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잘 되면 사람이 변한다고 하지만 나는 내가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기억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존은 참 겸손하네요 하는데, 나는 겸손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게 안 믿어지는 거다. 이런 일이 주어졌다는 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신기하다. 내가 자신감이 생겼다는 게 정말 좋은만큼 거만해지지 않으려고 한다.
평범한 학생으로 살다가 유명세를 얻는다는 게 당혹스러운 경험이었을 것 같다. 자기도 모르는 상황에서 여자친구들과의 사진이 막 인터넷에 떠다니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마음은 어땠나?
아카펠라 그룹이랑 찍은 사진들이 계속 나오고, 전혀 그렇지 않은데 바람둥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람들이 자꾸 물어보니까 그냥 아니라고 설명한다. 신경 안 쓴다. 악플 같은 거 안 읽는다. 톱 11이랑 똑같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여행도 한, 소중하고 친한 친구들이다. 여자애들도 여자로 안 보이고, 여자들도 날 남자로 안 볼 거다.
미국과 한국의 서바이벌 오디션 쇼를 다 경험해본 유일한 사람이다. 차이는 무엇인 것 같나? 한국 출연자들끼리는 너무 훈훈해서 오디션 쇼로서의 재미가 좀 덜할 지경이었다.
문화에서 오는 차이가 있다. 한국 <슈퍼스타 K2>는 훨씬 바쁘고(웃음) 대단하다. 그만큼 참가자로서도 어렵지만 훨씬 더 성장하는 거 같다. 합숙 생활을 하니까 서로 경쟁자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 무대 리허설 보면 쟤가 어떻게 하면 더 멋진 무대를 보여줄 수 있을까 같이 고민하고 집에 가게 되면 진심으로 위로하고… 특히 나는 한국에 친구들이 없으니까 톱 11이 유일한 열 명의 친구다. 아무 데서나 만들 수 없는 인연이라 더 소중하다.
이런 오디션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들은 뭘 가져서 그런 걸까?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매력, 아우라, 존재감이 있어야 멀리 가는 거 같다. 그게 실력에서 나오건 외모에서 나오건 스토리에서 나오건,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이 좋아해야 한다. 아무리 노래를 완벽하게 한다고 해도 매력이 없으면 안 될 거다. 예를 들어 (강)승윤이처럼 건방진 이미지도 색다른 매력이 된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심사평을 잘 못 받다가 성장한 캐릭터다.
가족이 미국에 있으니까 굳이 한국에 돌아올 이유는 없었을 것 같은데. 뭘 하든, 미국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나?
미국에서는 못한다. 한국사람이 미국에서 가수가 된다는 것은… 아직 메이저에서는 불가능하다. 나는 아메리칸아이돌 하면서 톱 20에 들었기 때문에 더더욱 성공하기 힘들다. 매년 이런 사람들이 20명씩 나온다는 얘기니까. 톱 5에 들어가도 4등 5등은 기획사 들어가기 힘들다. 톱텐 가운데서도 아주 특이한 한두 명 아니면 1등만 기억한다.
그렇다면 가수가 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나 보다.
항상 꿈이었다. 현실적으로 음악을 포기해야겠다, 공부해야겠다 싶은 때도 많았다. 그래도 하고 싶어서 도전해보고 도전해보고 멈추지 않았다. 그 도전의 하나가 <아메리칸 아이돌>이 되었다가 <슈퍼스타 K>가 되었다가 한 거다.
심사위원들에게서 들은 멘트 가운데 정말 뼈아팠던 말은 어떤 것인가? 동의할 수 없었던 얘기는?
제일 중요한 충고는 윤종신 선배님의 말씀이었다. 채찍과 당근을 다 주셨다. “이 무대는 존박이었다. 예상한 만큼이었고, 한계를 보였다.” 이 얘기 들었을 때 미칠 거 같았다. 내가 스스로 모니터했을 때도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느낌은 좋았는데 뭔가 더가 안 나오는 거다. 그 한 마디에 너무 답답하고, 한동안 시달렸지만 그 다음 주부터 바뀔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용기를 주었던 심사평 역시 윤종신 선배님 말씀이었다. “존박은 탐나는 사람”이라고 해주셨다. 그리고 어느 인터뷰에서 <슈퍼스타K2> 최고의 무대를 묻는 질문에 내가 부른 ‘맨 인 더 미러’라고 답하셔서 깜짝 놀랐다.
공중파 토크쇼에도 출연했는데 어떤 경험이었나?
엄청 떨려서 3일 동안 한숨도 못 잤다. 옆에 토니안 선배님, 강호동 선배님, 다른 연예인도 많아서 티비 속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신기하고 얼떨떨하고 긴장했다.
말이 없고 내성적인 성격이라는데,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연예인이 되는 게 두렵지는 않나?
일단 지금 많이 배우고 있고 훨씬 더 밖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중이다. 표현하려고 노력하지만 진짜 나의 성격은 변함없을 거 같다. 내성적이고 쑥스러워하고… 그게 싫은 사람은 싫어할 거고 나한테 안 좋다면 안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어쩔 수 없을 거 같다.
자기 목소리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톤과 스타일. 요즘 많이 들리는 목소리와 다르다고 느껴지는 거.
그렇다면 스스로 평가하는 자신의 댄스 실력은?
1이 제일 못 추고 10이 제일 잘 추는 거라면 2 정도 주고 싶다.
그런데 지금 한국 가요 시장에서는 댄스가 주류다.
나도 잘 안다. 나 같은 목소리, 내가 만들고 싶은 음악은 아마 새로을 거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폭발할 수 있지만 안 그러면 두 번 다시 못 들을지도 모른다. 리스크가 많다. 그런데 해야 한다. 내가 춤을 잘 춰서 아이돌 그룹에 들어갈 사람도 아니고 어쩌나. 하고 싶은 걸 그냥 할 거다. 그게 제일 중요한 거 같다. 보컬 트레이너인 박선주 선생님도 말씀하셨다. 지금 유행하는 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거보다 완성도가 있으면 된다고. 인기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도 내가 잘하는 거 좋아하는 걸 완벽하게 하면 사람들은 주목해줄 거라고.
많은 가수들을 가르쳐온 보컬 트레이너인 박선주가 ‘특별한 제자’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나를 잘 안다. 목소리뿐 아니라 성격까지 파악하고 있다. 항상 하시는 얘기가 존 너는 참 바보 같다는 거다. 어른답게 행동하려고 하고, 걱정 많고, 사람들 배려하고 그런 게 바보 같다고 한다. 내가 불쌍하게 보이나? 마음이 약한 걸 알기 때문에 나를 많이 아껴준다.
연예계가 쉽지 않다는 걸 아는 선배라서 그런 거 아닐까. 독하고 이기적이고 그래야 살아남는 정글이니까.
음악에 대해서는 정말 노력할 거다. 일은 철저히 성실하게 확실히 할 생각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거나 인터뷰를 하거나 방송에 나가거나 그럴 때는 내 성격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냥 순하고 좀 엉뚱하고 멍할 때도 있고 성격이 그렇다.
부모님에게서 어떤 얘기를 많이 들으면서 컸나?
미국에서 살았지만 항상 한국사람이라는 걸 잊을 수 없었다. 특히 어른들이나 아버지 쪽 가족을 대하거나 할 때 예의 바른 걸 중요하게 교육받았다.
가족과 친구들을 빼고 미국에서 떠나와 가장 그리운 것은?
학교가 그립다. 대학을 2년 끝내고 2년 더 다녀야 하는데 그게 좀 아쉽다. 당연히 공부를 마칠 생각은 있다. 친구들이랑 노래도 재밌게 하고 공부도 하고 그랬는데 갑자기 나오게 돼서. 나중에 혼자 해야지.
이런저런 기획사들에서 제안을 하고 있다. 신인으로서는 유리하게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인 것도 사실인데 기획사를 고른다면 어떤 분위기를 고려할 것 같나?
내가 만들고 싶은 음악을 해주는 회사가 가장 중요하다. 나한테 맞는 프로듀서를 만나야 될 거 같다. 내 음악에 대한 생각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엉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회사도 프로듀서도 신중하게 만나야 할 거 같다.
같이 노래 불러보고 싶은 한국 남녀 가수 1명씩을 꼽아본다면?
남자는 타이거 JK 선배님. 내가 노래하고 신나게 리듬 타면서 그분이 랩을 하시면 멋질 거 같다. 윤미래 선배님이랑 셋이 같이 하면, 최고겠다! 여자도 정말 많은데… 박정현 선배님이랑 얼마 전에 ‘시월의 눈내리는 마을’ 공연에서 같이 노래했다. 노래도 워낙 잘하시고 스타일이 나랑 어울렸던 거 같다.
어떤 가수가 되고 싶나?
훌륭한 가수, 하지만 가수보다 더 중요한 게 좋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새로운 음악, 새로운 가사, 새로운 의미를 느끼게 해드리고 싶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드리고 싶다. 음악으로나 음악 밖에서나 사람들한테 위로를 줄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성공해야 할 거 같다. 일단은 좋은 음악 만들고 인정을 받는 게 먼저다.
2년쯤 후에 만나도 여전히 이렇게 나이브한 사람일지 궁금하다.
달라져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똑같았음 좋겠다. 어리석은 꿈을 꾸는 걸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나도 똑똑하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박선주 선생님이 ‘넌 정말 계산적이야. 그런데 진짜 안 계산적이야.’ 이런 얘기를 하셨다. 전공이 경제학이라 공부도 하고, 나름 어떤 게 좋은 선택일까 많이 생각하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스타일이라 걱정도 많고 그렇다. 그런데 내 꿈, 사람들에게 대하는 건 그렇게 못한다고.
상품으로 받았던 콜라 100박스는 어떻게 했나.
주변에 다 뿌렸다. 근데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 해도 되나?
- 에디터
- 황선우, 김석원
- 스탭
- 헤어&메이크업/임원묵(살롱루즈), 디지털 리터칭 / 장원석(99 Digital), 어시스턴트/최희원